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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스럽고 안정되지 못한 세상에서 무, 허, 정, 유약, 소박을 찬양한 노자. 그 시절과 지금이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욱 소란스러워지기만 했으니 노자의 사상은 여전히 마음 깊숙히 와닿는다.
노자는 이 도덕경이라는 책에서 시종일관 무위자연의 도에 대해 말한다. 부자연스러운 것을 피하고 자연스러움을 따라 고요한 그 상태로 돌아가는 것. 자연이란 작위하지 않는 것이다. 자연은 작위하지 않음에도 저절로 만물을 다스리고 소생시킴에 부족함이 없다. 군주가 백성을 다스릴때에도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도 이러한 자연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 천지자연은 만물을 소생시키면서도 그 공을 스스로 드러내거나 자랑하지 않는다. 물과 같이 가장 낮은 곳에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자랑하지 않는 자는 천지자연의 상태와 같이 그 공이 오랫동안 빛을 발한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道)
내가 어떤 것을 두고 잘한다 혹은 아름답다고 말하면 그에 비해 못하고 못난것이 생긴다. 비교와 차별은 무언가에 이름을 붙이는데에서 생긴다. 그렇기에 노자는 무위자연의 도를 칭송하였다. 또한 자연의 법칙과 같이 자신의 공에 대해 자처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 공이 영원히 함께하는 것이라 말한다. 무(無)의 공효(功效)함
없는 것이 사실은 가장 있는 것이다. 마치 태양이 세상을 가득 비추고도 때가 되면 빛을 감추는 것처럼, 만물을 소생케하는 봄이 가고 다음 계절이 오는 것처럼 만족할 줄 알고 멈추고 비워낼줄 아는 인생에 대해 말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박수칠 때 떠날 줄 알아야 한다. 공을 이루고 난 후에 자연이 그 노고를 자랑하지 않듯이 물러나는 것이 하늘을 따르는 천도인 것이다. 도는 항상 비고 무한 것이다. 항상 겸허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찬 것을 비워낼 수 있고 교만하지 않는다. 따라서 작위하여 새로이 채우려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순응할 뿐이다. 작위(作爲)함이 없는 것
지혜를 부리려 애쓰지 않기 때문에 욕망에 휩쓸리지 않고 흐트러짐없는 자연적인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작위하지 않으면 치세와 난세가 오고가는 때에도 태양이 뜨고 지는 것과 같이 물이 흐르듯 천하는 잘 다스려질 수 있다. 노자는 사람이 만든 즉 작위한 지혜는 도가 아니라고 하였다. 그것이 옳은 것인양 사람을 다스리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작위하면 모든 것이 옳고 그른 것처럼 양극으로 나뉘는데 그러면 다툼이 난다. 사람의 혼과 백이 따로 놀 수 없듯이 세상 만물도 '자연스레' 물 흐르듯 흘러야 하고, 통치하는 일도 그렇게 다스려져야 한다. 성인의 자세
군주가 아름다운 빛만을 탐내면 백성의 굶주린 얼굴을 볼 수 없고, 아름다운 음악만을 즐기면 백성의 원성을 들을 수 없으며 진귀한 재화만을 탐내면 도둑질을 하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무릇 진정한 선이라는 것은 물과 같이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생물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이다. 겸허하게 가장 낮은 곳에 있기를 즐겨 스스로 드러내지고, 공을 자랑하지도 않는 것이 성인의 자세라고 말한다. 알리거나 자랑하지 않지만 그 덕이 온 세상에 퍼지는 것이 불가사의한 덕을 현덕이라 하였다.
자연의 법칙은 비어있기 때문에 채워질 수 있다. 낮은 곳이 있기에 높은 곳도 있다. 이와 같이 사람도 자랑하거나 뽐내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공이 함께 있을 수 있다. 천지가 늘 그자리에 영원히 장구하듯이 사람도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는다면 장구할 수 있다. 자신의 위치를 알려면 무엇보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뒤에 남이 업신여긴다." 남에게 업신여기는 사람은 이미 자신 스스로에게도 업신여겨지는 사람이다. "뜻있는 자는 마침내 뜻하는 일을 성취한다." 자신의 위치를 알고 인생의 뜻을 찾아 사력을 다하는 사람은 그치지 않기 때문에 장구할 수 있다.
만족할 줄 아는 것
재물에서나 모든 것에서나 만족할 줄 알고 그칠 줄 알아야 한다. 넘치면 잃게되니 덜어내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법칙이며 성인의 도이다. 끝없는 욕망은 삶을 싫어지게 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자신의 환경을 좁게 여기고 싫어하게 되는 것을 버리고 천지의 뜻에 맞게 자연스러움을 따라야 한다. 현재에 순응하고 만족하는 것은 부족한 듯 보이지만 실은 가장 넉넉한 것임을 다시 한 번 말해준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고, 뜨거운 여름이 지나면 서늘한 가을이 오는 자연의 법칙과 같이 하늘의 도는 남음이 있는 것을 덜어서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이다. 세상의 일은 그렇지 못하니 오직 하늘의 도를 따르는 성인만이 자신의 남음을 덜어 부족한 곳에 채울 수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공을 자처하거나 현명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무위 정치, 군주의 자세
최상의 군주는 마치 우리가 너무도 당연해 고마움을 모르는 태양의 존재와도 같다. 그의 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질정도로 크다. 그만한 능력이 없는 군주는 이를 눈에 보이게 작위하여 그를 칭송하게 한다. 그럴 능력도 없는 군주는 법과 형벌로 다스린다. 공을 행할 능력도 없거니와 형벌이 없이는 백성을 이끌어갈 능력이 없는 군주의 정치다. 그나마의 형벌로도 다스릴 능력이 없는 최하위의 군주는 그저 속이고 거짓말만으로 백성을 농락하고, 백성조차 그를 업신여긴다. 수천년 전의 혼란했던 그 시대와 비교한 지금은 어떤가. 살 곳을 얻으려고 보면 나라가 얼마나 이 땅을 도둑질해가서 귀하고 어렵게 만들어놓았는지를 깨닫게 하고, 국가에 바친 세금은 어디로 새 나가는지 이 나라의 어느 곳이 이롭게 되는지 체감되는 것이 없으며, 청년때는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고, 노년때까지 먹고 살 것을 걱정해야 하며, 죽을 때까지 나라가 주는 공과 덕을 태양이 그 자리에 있듯이 누리게 해주기는 커녕 손으로 잡아보기 조차 힘에 겹다. 처음엔 서론에 나온 말처럼 노자가 우민정치를 지향하는게 아닌가 오해했는데 도경을 다 읽어갈때쯤 무위 정치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백성을 어리석게 만든다는 말은 세상이 작위한 지혜에 휘둘리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기본적인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을 말하는 듯 하다. 당연히 누려야할 것에 의문을 가질 필요도 지혜를 작위할 필요도 없이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최상의 군주가 해야할 도임을 말한다. 중국 요임금 때에 한 늙은 농부가 "밭 갈아 밥 먹고, 우물 파 물 마시고, 날이 새면 일하고, 밤이 오면 잠자니 임금의 공력이 내게 무엇이 있는가"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지금 이 시대에 주는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덕경에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군주가 작위하지 말아야 국민이 안정하고 불안에 떨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준다. 비록 선의에서 하는 일이라도 지나치게 간섭하고, 법령을 계속 바꾸거나 좋은 것이라도 강요하고 간섭하면 안된다. 자연스러운 생활 속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농부가 잡초를 뜯으며 자연이 농작물을 키우는 것을 지켜보듯이 그 근본만을 북돋아 주라고 말한다. 큰 일이 나기 전에 미연에 방지하다
농사를 잘 짓는 농부가 잡초를 미연에 방지하고 둑이 무너지기전에 제방의 구멍을 막는 것과 같이 큰 일은 항상 작은 데서부터 시작하니 미연에 방지할 수 없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이를 이루지 못하면 미연에 방지하지 못해서 일이 터지고나야 고치는 것이고, 최악은 일이 터지면 아예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노자의 세 가지 보물
자애와 겸허의 존귀함을 강조한 노자. 자애하고 겸허하여 나를 낮출 줄 알아야 남의 힘을 도리어 나의 힘으로 쓸 수 있다. 그래서 노자는 이를 잃는 것이 가진 보물을 모두 잃는 것처럼 큰 실이라고 여겼다. |
| 다른 건 모르겠고 이 책에서 줄곧 말하는 것은 하나다. 도를 추구하라는 것. 작위하지 말고 공연히 지혜와 같은 것들을 만들지 않으며, 그저 물 흐르는 대로 하라는 것. 내가 잘못 읽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비슷비슷한 말이 줄곧 반복되어선 조금 지루할 수도 있고, 현대에는 맞지 않는 부분도 있겠지만 한 번 읽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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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자연은 만물을 활동하게 하고도 그 노고를 사양하지 아니하며 만물을 생육하게 하고도 소유하지 않는다. 물은 낮고 더러운 곳에 스스로 위치를 정하고 있다. 군주는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하며 말하였으면 반드시 믿음성이 있어야 한다.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근본이 되고 안정한 것은 조동하는 것의 임금이 된다. 도는 만물을 옷으로 덮어 주듯 따뜻이 품어 길러 주면서도 오직 자연에 순응할 뿐 스스로 주재하지 않는다. 훌륭한 장수는 앞을 다투어 적을 먼저 공격하는 무용을 부리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