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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몇명의 유대인하면 늘 회자되는 마르크스이기에 이름은 익숙하지만 제대로 그의 책을 접해 본적이 없었다. 자본론에 대해서는 늘 요약된 이야기를 듣다보니 마치 내가 알고 있다는 착각마저 가지고 있었다. 최근에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내가 속해있는 자본주의를 너무 당연하게만 볼 것이 아닌 그 속성을 알 필요가 있다는 필요를 느끼며, 과연 자본주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호기심도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본론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만 3권으로 이루어져 있는 원전이 어렵다고 하니 좀 쉽게 풀어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체계안에서 살다 보니 상품, 화폐, 생산, 자본은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하다. 도처에 널려 있고 늘 접하게 되는 것이니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도 안해보고 산다. 화폐는 학생시절 배운 정도로 물물교환의 불편으로 화폐가 만들어졌다 정도이지 이 또한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나마 "화폐전쟁"에서 달러가 어떻게 기축통화가 되었는지 그래서 미국이 왜 유리한지 등등만 생각해 볼 따름이었다. 세계경제는 지속적인 성장을 해왔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과연 그 부는 어디에서 발생되는 것일까를 생각해 봐도 아리송하기만 했는데 자본론을 통해 잉여가치의 원천이 인간의 노동이라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다. 결국 인간의 부단한 노동은 상품을 통해 잉여가치를 지속적으로 창출하고 그에 따라 경제 규모가 커지면 원활한 순환을 위해 돈은 더 찍어낼 수 밖에 없으니 통화량은 계속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물론 경제 규모를 넘어서는 통화량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니 이를 조절하겠지만 생산이 지속적으로 팽창해 나간다면 통화량의 증가는 계속되는 것이 아닌지? 자본주의에서는 통화량이 계속 증가되는데 다만 속도 조절만이 문제인 것일까? 자본론에 따르면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인데.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부채한도, 아베노믹스, 유럽의 경제위기, 중국과 인도의 성장 둔화 - 이 모두가 엄청나게 풀린 돈과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자본은 계속된 확대를 추구하는 멈출지 않는 기차일까? 지속적인 생산과 소비는 계속 규모가 확대되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최근에 와서는 금용자본에 의한 경제위기가 자주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는데 결국 금융자본에 의한 경제 공항이 오는 것일까? 자본주의는 어떻게 진화될 것인가? 책을 보면 볼수록 궁금증이 더 쌓여만 가는 듯 하다. 현대의 고도화된 분업화 체계에서는 마르크스가 지적한대로 노동소외가 심화되는 듯 싶다. 어떤 목적을 위해 자신을 소진하는 것이 아닌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에 종속되고 있고 자신의 일과 생활외에는 점점 무지해지고 무관심해진다. 매스컴에 보도되는 경제 위기설에 잠시 신경을 곤두 세우다가도 이 일과 내 자신의 삶간의 연관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니 그냥 지나치게 된다. 그저 경제가 어렵다 먹고 살기가 만만치 않다 정도의 푸념만 반복할 뿐이다. 내가 속해 있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좀 더 이해하고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본론은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라고 생각된다. 특히나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책이다 보니 내용도 평이하게 잘 구성되어 있는 듯 하다.
8/8/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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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초반 부분은 화폐의 출현과 자본의 출현 과정을 나타내, 한 편의 경제학 교과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나 대학 경제학 교과서를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첫 경제학 교과서인 셈이다.
화폐의 출현과 자본의 출현 과정은 다소 쉽게 이해되었지만, 잉여가치 이후 부분부터는 개념을 파악하는데 약간 애를 먹었다.
마르크스(맑스)는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흡수하는 흡혈귀에 비유했는데, 그 당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수준을 보니 정말 그렇게 비유할 만하다고 하다. 고대의 노예, 중세의 농노의 개념이 근대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라는 신개념의 계급으로 과거 노예나 농노들을 대신한 셈이다. 오히려,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아주 그럴 듯한 하지만, 실상은 중세 농노보다 더 지독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 착취를 보니, 과거 우리나라에, 소외 계층인 노동자들의 근로 개선을 요구 하며 온 몸을 불사른 전태일씨가 생각났다.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죽어라 일을 해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정치, 언론, 법률 모두 자본가의 손을 들어주는 상황에서 ,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허공의 메아 리일 뿐이다.
이 자본론을 계기로, 마르크스 사상이 생겨나고 그 이후에 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탄생하게 된다. 그들은 고대 노예제- 중세 농노제- 자본주의- 공산주의 순서로 인류 역사제도가 발전되었다고 주장했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모두가 평등하게 공동 생산 공동 분배라는 주장은 아주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플라톤의 국가나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생각난다.
하지만 소련의 붕괴로 인하여 이러한 사상은 이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주었다. 마르크스 그가 영향을 끼친 공산주의는 현실성 없는 사상으로 전락해버렸지만, 이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의 반성의 메아리로 울려, 자본주의사상도 수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칼 마르크스. 그는 우리 인류 역사나 사상의 주요 무대에 노동이라는 개념을 출현 시켰으며, 20세기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위인 중 한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가 그 당시에 비해 훨씬 좋은 현대의 근로조건과 복지국가의 등장 등으로 많이 개선되었지만 동시에 21세기 정보화 시대에도 여전히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나는 가운데, 근대와 현대에 걸쳐 인류의 삶을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비판하기 위한 열쇠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고전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마르크스가 지적했던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들을 다시 한번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1000페이지의 에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단 한번 나오는데, 사람들은 국부론하면 ‘보이지 않는 손’만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자본론에서 일부에 불과한 ‘공산주의’ 또한 앞선 ‘보이지 않는 손’의 경우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자신이 직접 손에 들고 확인할 때까지 다른 사람들의 말을 믿지 말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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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있든 아니든 보이지 않는 체제 하에서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가 어떠한 원리로 혹은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 선택했던 책이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었다. 하지만 쉽게 읽어나가기는 어려웠다. 때마침 청소년 철학창고라는 시리즈를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내 수준엔 이렇게 고전들을 풀어서 해설해주는 조력자들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칼 마르크스가 쓴 자본론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쓰여졌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유명한 고전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칼 마르크스의 책이 왜 고전으로 불리는지 알 것 같다. 과거에 비해 비약적인 기술 발전이 이루어진 현대 사회이기는 하지만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 사회도 역시 자본주의의 원리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대량 생산 체계 안의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칼 마르크스가 가정했던 자본가의 모습과 현대 사회의 자본가의 모습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 근본적인 욕망을 동일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칼 마르크스가 말했던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는 현대 사회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 자본가와 그리고 그들의 욕망에 충실했던 국가 권력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대한 민국의 경우 그러한 경향이 더욱 강화되어왔다. 박정희 시절부터 급속화된 재벌기업 위주 경제발전은 민주화 이후에도 더욱 강화되어 최근에 이르기까지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일반 시민들도 이제는 대한민국에 삼성, 현대와 같은 재벌기업이 없으면 마치 대한민국이 사라지게 되는 것 아니냐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거대 자본에 의해 지배되는 진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치적 민주화와 함께 노동자 중심의 경제적 민주화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지금과 같이 나라의 모든 이들이 자본의 정신에 충실히 복종하는 것에서 벗어나 진정 사람 중심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내가 지금 해야할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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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거울이 그시대 삶을 보여준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는 그런 행태뒤에 철기 문화가 들어와서 깨지고 박살나고 다른 문화가 나타나고 그런 연관성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론을 보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의미가 있다. 철지난 사고방식, 폐기되어야 할 낡고 빨간 책 이라고 말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책이 가져온 시대의 변화는 획기적이고 한 획을 그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다른 어떤 책들보다 고전의 반열에 오를 가치가 있다. 책하나가 사람들에게 뜨거운 영향을 줘서 사회가 바뀌고 나라가 바뀌고 국가가 바뀌고 세계가 바뀌었던 그런 영향을 준 책이 성경급 말고 없지 않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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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제 이북책장에 있던 책이네요. 사실 제목부터가 <자본론> 선뜻 손이 안가고 어려울꺼같고해서 읽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느낌이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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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배운 유명한 이론서이지만 사실 전체를 읽겠다는 생각을 거의 못하고 지냈는데 좋은 기회에 책을 받게 되었네요.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그 시작은 어찌보면 자본론이라는 이론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죠. 또한 우리가 이것을 알고 있든 아니든 보이지 않는 체제 하에서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기도 하고요. 기존에 자본주의라고 하면 사회주의란 반대되서 사회주의보단 좋은 것이라는 얕은 지식만을 갖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자본론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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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책의 초반 부분은 화폐의 출현과 자본의 출현 과정을 나타내, 한 편의
경제학 교과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나 대학 경제학 교과서를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첫 경제학 교과서인 셈이다.
화폐의 출현과 자본의 출현 과정은 다소 쉽게 이해되었지만, 잉여가치 이후 부분부터는
개념을 파악하는데 약간 애를 먹었다.
마르크스(맑스)는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흡수하는 흡혈귀에 비유했는데,
그 당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수준을 보니 정말 그렇게 비유할 만하다고 하다.
고대의 노예, 중세의 농노의 개념이 근대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라는 신개념의 계급으로
과거 노예나 농노들을 대신한 셈이다. 오히려,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아주
그럴 듯한 하지만, 실상은 중세 농노보다 더 지독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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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론
마르크스(맑스)는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흡수하는 흡혈귀에 비유했는데, 그 당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수준을 보니 정말 그렇게 비유할 만하다고 하다.
고대의 노예, 중세의 농노의 개념이 근대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라는 신개념의 계급으로
과거 노예나 농노들을 대신한 셈이다. 오히려,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아주
그럴 듯한 하지만, 실상은 중세 농노보다 더 지독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동 착취를 보니, 과거 우리나라에, 소외 계층인 노동자들의 근로 개선을 요구
하며 온 몸을 불사른 전태일씨가 생각났다.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죽어라 일을 해도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정치, 언론, 법률 모두 자본가의 손을 들어주는 상황에서 ,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허공의 메아
리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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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책의 초반 부분은 화폐의 출현과 자본의 출현 과정을 나타내, 한 편의
경제학 교과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나 대학 경제학 교과서를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첫 경제학 교과서인 셈이다.
화폐의 출현과 자본의 출현 과정은 다소 쉽게 이해되었지만, 잉여가치 이후 부분부터는
개념을 파악하는데 약간 애를 먹었다.
마르크스(맑스)는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흡수하는 흡혈귀에 비유했는데,
그 당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수준을 보니 정말 그렇게 비유할 만하다고 하다.
고대의 노예, 중세의 농노의 개념이 근대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라는 신개념의 계급으로
과거 노예나 농노들을 대신한 셈이다. 오히려,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아주
그럴 듯한 하지만, 실상은 중세 농노보다 더 지독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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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론
책의 초반 부분은 화폐의 출현과 자본의 출현 과정을 나타내, 한 편의 경제학 교과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나 대학 경제학 교과서를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첫 경제학 교과서인 셈이다.
화폐의 출현과 자본의 출현 과정은 다소 쉽게 이해되었지만, 잉여가치 이후 부분부터는
개념을 파악하는데 약간 애를 먹었다.
마르크스(맑스)는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흡수하는 흡혈귀에 비유했는데,
그 당시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수준을 보니 정말 그렇게 비유할 만하다고 하다.
고대의 노예, 중세의 농노의 개념이 근대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라는 신개념의 계급으로
과거 노예나 농노들을 대신한 셈이다. 오히려, 임금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아주
그럴 듯한 하지만, 실상은 중세 농노보다 더 지독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