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0년이 훨씬 넘는 장구한 세월이 흐른 지금, 토함산 기슭의 잘 닦아 놓은 경주 불국사에 이르면 주위의 노상 행렬과 왁자지껄한 관광객들의 발걸음으로, 아사달, 아사녀, 구슬 아기, 경신의 그 애틋하고 아름다웠던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나 또한 그러했다. 오늘 일요일 한나절 이 책을 6시간을 투자해가며 읽었는데 문득 저 1200년 전의 번화했던 서라벌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 소설의 내용은 비록 이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사달 아사녀 설화로서 유명하다. 어느 정도 책을 읽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얼핏 들어보았음직한 설화이다. 아직 읽어 보지 못한 독자라면, 그 설화를 현진건 특유의 표현과 상상력으로 한단계 진보시켜 놓았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아사달의 탑에 대한 열정, 아사녀의 굽힐 줄 모르는 정조, 구슬 아기의 시대를 초월하는 사랑, 경신의 화랑다움, 통일 신라 도읍지 서라벌의 번화함과 부패함...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다 결코 초월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새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5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장편이라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되었는데 나랑 같은 걱정을 하는 독자라면 그만두는게 좋겠다. 현진건 특유의 오밀조밀한 구성과 시종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문체가 여러분을 사로잡을 것이다. 만약 이글을 보는 독자가 나처럼 청소년이라면 더욱 권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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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으로 대충 짐작할 수 있듯이 무영탑이란 그림자가 없는 탑이라는 뜻이다.그림자가 없는 탑이라..물론 그런게 존재할 리가 없겠지만 이 탑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면 적절한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무영탑이란 불국사 석가탑의 다른 이름이다.이쯤되면 이 소설이 석가탑 건립 뒤안길에 서린 전설을 다룬 역사소설일거라는 짐작도 가능할 것이다.백제의 석공 아사달은 다보탑과 석가탑의 건축을 맡아 신라에 온다.
그에게는 결혼한지 얼마 안되는 아름다운 아내 아사녀가 있다.아버지의 죽음으로 형편이 어려워진 아사녀는 아사달을 찾아오지만 불국사 출입을 저지당하고 근처의 못에서 석가탑의 그림자가 비취길 기다린다.결국 기다림에 지친 아사녀는 못에 뛰어들고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뛰어온 아사달은 절망끝에 근처 사람의 형상을 한 돌에 아사녀를 닮은 부처의 모습을 조각한다.이것이 전체적인 줄거리이다.그 밖에도 구슬아기,경신,금성,팽개등이 나와 작품의 갈등을 더해간다.책을 다 읽어보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유치한 신파극같다고 하고,어떤 사람은 감동적이라고 한다.아마 둘다 일리가 있는 말일 것이다.
아사녀의 가련한 처지는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눈물을 짜아낸다고 할 수도 있으니까.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고 모든 것을 잃고 체념한다고 해도 석가탑이나 부처 조각의 결실은 영원하다.인생의 비극이나 애증을 넘어서 예술은 영원하다는 것.그리고 그 영원한 미를 창조하는 것이 애증을 겪는 인간이라는 사실에는 감동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이 책을 읽은 다음에는 석가탑이 달리 보인다.그 싸늘한 돌에 손을 대면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이 생생해지고 신공 아사달의 땀과 한숨이 묻어있는 것 같아 어느새 온기가 느껴질 것만 같다. [인상깊은구절] -지금 생각하니 그때가 아마 작년 겨울인가봐요.눈보라가 몹시 쳐서 문풍지는 덜덜 떨고..잠은 점점 달아나고 무섭기는 하고,그래 제가 일어나서 옷을 주섬주섬 주워입고 웅크리고 있노라니 눈보라가 버석버석 창에 부딪치는데 어디선지 이상한 소리가 들여와요.쩡쩡...그때 '석'하시는 스님은 아직 안나오시고 온 절이 괴괴한데 이 난데없는 소리를 듣고 저는 간이 콩만했다가 겁결에도 오 옳지 이 어른이 이 눈 오시는 새벽에도 탑을 지으시나부다 하는 생각이 문득 들겠지요!제가 그대로 뛰어나와 버석버석하는 눈 위로 줄달음질을 쳐서 탑 모시는 곳으로 올라가보았지요. 새벽이라 해도 아직 날이 덜 새어서 어둑어둑 했지만 눈길은 환했습니다.올라가보니 아니다다를까 그 어른이 정을 들고 한참 바쁘게 일을 하시더군요.제가 곁에 가도 사람 오는 줄도 모르시고 머리에 등에 눈을 뒤집어쓰신 채 정과 망치를 번개같이 놀리셨지요.거기가 워낙 바람모지가 되어서 저는 얼마를 서 있지를 못해 귀가 떨어져 달아날 것 같고 발이 쓰리고 온 몸이 덜덜 떨려서'에이 추워'소리가 저절로 나와버렸습니다.그제야 그 어른이 놀란듯이 저를 돌아보시는데 그 얼굴에는 구슬같은 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