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태평점에 별 한 개밖에 주지 않은 이유는 번역이 너무나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번역이 기계적이다. 대화 부분에서 한국어의 구어 표현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그/그녀''라는 표현을 곧이곧대로 옮긴다든가, 한국어답게 표현하기 위해 주어나 목적어를 생략해야 할 부분에서도 생략하지 않고 그대로 반복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몇몇 부분에서는 오역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컨대 "내가 밭을 팔고 네 집을 사길 원한다고? 내 밭을 팔길 원한다고?"(「황금 족쇄(金鎖記)」p. 243)는 "나더러 밭을 팔아 네 집을 사라고? 밭을 팔라고?"라고 하는 것이 맞다. 이런 번역상의 문제 때문에 장아이링 특유의 쓸쓸하면서도 우아한 문체가 많이 죽어버린 느낌이다.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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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지련은 20세기초 중국여성들의 결혼지침서이다. 경성지련의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결혼을 했거나 하려고 하는 인물들이다. 그녀들의 결혼은 행복한가? 그렇지 않다. '난새의 경사'의 러우부인은 좋은 남편과 살고 있지만 외로워하며, '남은 감정'의 둔펑은 안락함이 있는 결혼을 했지만 사랑으로 가득찬 결혼은 아니다. 그러나 작가는 열렬한 사랑이 있는 결혼만이 바람직한 결혼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남은 감정'으로 하는 결혼이라도, 그를 통해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이 현실적인 결혼 방법이라고 한다. 물론 외롭고 공허하다. 그러나 그녀가 소설 속에서 이야기하듯이, 마치 무언가를 잃어버린 거처럼.번화함, 노함, 난처함, 그것이 바로 삶이다. 이 책은 20세기 초 중국사회만의 결혼지침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삶은 항상 외롭고 공허하다. 열렬한 감정보다 남은 감정으로 결혼을 하는 것도 결혼을 하는 현실적인 방법 아닐까. |
![]() [경성지련]은 중국 근대 격동기 여성들의 삶을 묘사하고 있는 장아이링(1920-1995)의 대표적인 중단편소설집이다. 1943년부터 1945년까지의 대표작 7편을 수록하고 있다. <남은 감정(留情)>은 60대의 미찡야오(米晶堯) 선생과 30대의 상하이 여인 춘위둔펑(淳于敦鳳)의 결혼생활을 그리고 있다. <난새의 경사(鴻鸞禧)>는 아들 러우다루(婁大陸)와 취위칭(邱玉清)의 결혼식을 배경으로 러우샤오보(婁囂伯)의 아내 러우 부인이 자신의 결혼생활을 돌이켜보는 이야기다. <붉은 장미와 흰 장미(紅玫瑰與白玫瑰)>는 퉁전바오(佟振保)의 아내 멍옌리(孟煙鸝)와 정부 왕쟈오루이(王嬌蕊)와 얽힌 이야기다. <기다림(等)>은 지압사 팡쑹링(龐松齡)의 진료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아샤오의 슬픔(桂花蒸 阿小悲秋)>은 골드 선생의 집에서 가정부 일을 하는 쑤저우 여자 딩아샤오(丁阿小)의 평범한 일상을 그린다. <황금 족쇄(金鎖記)>는 골결핵을 앓는 지앙 씨댁 둘째 아들에게 출가한 가난한 기름집 딸 차오치챠오(曹七巧)의 한많은 생을 다룬 이야기다. <경성지련(傾城之戀)>은 동남아의 돈 많은 화교 판류위앤(范柳原)과 결혼한 바이류슈(白流蘇)의 이야기다.
장아이링은 루쉰과 라오서와 함께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의 실력을 지닌 작가다. 그러나 작가가 실력이 있다는 점과 작가에 대한 독자들의 호감도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장아이링의 소설과 산문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그녀의 화려하고 기구한 삶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그녀의 평전은 즐겨 읽는 편이다.
사실 사랑과 결혼 그리고 광기의 축적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장아이링의 소설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과 오늘날의 아침 드라마와도 닮은 구석이 있다. <경성지련>에서 류위앤과 류슈의 대화는 제인 오스틴의 남녀 주인공들의 대화를 떠올리게 만들고, <황금 족쇄>는 아침 드라마의 막장 스타일에 가장 부합하는 이야기로, 차오치챠오의 한맺힌 히스테리가 자녀들을 향해 폭발한다.
평범한 소시민적 삶 속에서 얼핏 비범한 일면을 보려는 저자의 노력은 오히려 이야기에 처량한 우수의 분위기와 씁슬한 허무감을 더할 뿐이다. 남녀간의 미묘한 관계를 저자만의 스타일리쉬한 문체로 묘사하는데, 섬세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낭만적 분위기나 환상적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장아이링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무료하고 공허한 삶을 보내고, 고독하고 이기적이다. 문체상의 특색이라면 경물에 대한 시각적, 후각적 심상에 대한 탁월한 묘사를 꼽을 수 있다.
"빗줄기가 많이 줄어들더니 점차 멈추었다. 거리는 강을 이루었고, 한 줄로 늘어선 가로등이 발사되어 사라져버린 백금의 화살촉 같이 물결 속을 비추고 있었다. 차가 지나가자 '쏴악쏴악'하고 하얀 물방울 꽃이 드리워져 공작의 꼬리처럼 활짝 펴지더니 가로등 그림자를 덮어버렸다. 하얀 공작새 병풍 속에서 점점 찬란한 별빛이 발산되고 공작새의 꼬리는 점점 길어지고 엷어졌다. 차가 지나가자 여전히 남아 있던 백금의 화살촉은 어두운 강물 위로 발사되어 사라져 버렸다. 발사되자마자 사라져 버렸다."(138-9쪽)
"욕조 옆에서 허리를 굽혔더니 아찔하게 더웠다. 입과 코 사이에서 자극적인 땀 냄새가 풍겼고 머리 위에서 땀이 흘러 내려 손을 들어 닦아야 했다. 날이 더운 것은 알지만 그래도 이상했다. 그녀가 낮게 쭈그리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싸우친은 검게 그을린 그녀의 저고리 위에서 위로 뭉실 솟아오르는 땀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마치 수박을 가른 신선한 비린내 같았다."(18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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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색계를 보고 너무 감동을 받아 혹시나 단편집 속에 들어있지 않을까 해서 구입한 책. 물론 색계는 없었다. 하지만 쓸쓸하고 비련에 찬인생을 살았던 작가 장아이링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소설속에 행복해지는 주인공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그저 사랑했고 쓸쓸하고 힘들게 노년을 맞는다. 자전적인 느낌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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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전쟁의 깊고 치밀한 행간, 장애령의 세계
“4주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라고 매주 신구 선생은 엄숙하게 선언하지만 4주 후의 그는 결코 같은 에피소드를 다루지 않는다. 매일 밤 드라마넷에서는 새롭고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천변만화하는 “사랑과 전쟁” 이 방송된다. 요새는 소재고갈의 차원에서 너무 자극적인 소재를 남발하고 있다고 옴부즈맨은 불평하지만, 웬걸, “사랑과 전쟁”은 진정한 드라마계의 화수분이다. 하지만 단선적이다. 그들의 심리는 단지 눈썹을 찌그러뜨리는 인상, 너무 뒤늦게 다가온 로맨스(라고 자기는 쓰고 남들은 “불륜”이라고 읽는다)에 부나비처럼 뛰어드는 몸짓, “저는 더 이상 못살겠습니다” 라면서 정장을 하고 앉아 단호하게 선언하는 문장 정도로만 묘사된다. 만약에 사랑과 결혼, 그리고 전쟁의 행간을 읽고 싶다면, 장애령의 책을 펼쳐 보면 된다.
학부시절 막 중국에 갔다와서 난 중국어라면 뭐든지 자신있다고 큰소리를 치면서 들었던 수업이 있었다. 너무 어려운 커리큘럼 예고를 하자마자 수강인원이 거의 폐강위기까지 갔었던-_- 수업이 바로 “중국여성문학의 이해” 였나 하는 수업이었는데, 일단 한국의 근현대 여류작가들 소설을 읽고 발제를 하고, 그리고 중국어로 된 원서로 중국의 근현대 여류작가들의 소설을 번역을 해와서 거기서 연관 발제를 하는 거였다(정말 학부 맞냐..;;) 그때 그 선생이 극찬을 하면서 다루었던 작가가 바로 장애령이었는데, 우리가 여행중에 개봉한 “색,계(色,戒)”의 작가였다는 건 뒤늦게 와서야 알았다. 그때 나는 “황금 족쇄(金鎖記)” 를 번역했었고(지금 생각하면 그런 빡센 수업에 대해 불만도 없이 번역을 밤새 한 게 놀랍다. 상당한 분량의 단편인데도) “마녀가 된 한 여자의 삶”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발제를 했었다. 5년이 넘은 기억이다.
장애령의 삶은 그 자체가 드라마다. 청말 대신 이홍장의 외증손녀로 태어났고, 봉건적 아버지와 그를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 유학을 떠난 현대여성 어머니의 사이에서 방황했으며, 그녀를 감금한 아버지 집을 탈출해 런던대 입학시험에 수석을 하고, 결혼한 남편은 항전 후 홀로 도망쳤으며, 문화 반동으로 중국에서는 왕따를 당해 미국으로 떠났고, 거기서 극작가 라이허와 결혼, 사별했고, 소설 활동을 계속했지만 LA의 아파트에서 사망한지 일주일이 넘는 시체로 발견되었다. 사망 전에는 “문화 한간(汗奸 - 망할년, 정도로 보면 될까?)” 이라고 중국 문단의 욕을 처먹었지만 사망 후에는 노신과 더불어 손꼽는 현대작가로 부상했다. 이른바 상처뿐인 영광인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장애령의 소설집 “경성지련”에는 사랑과 결혼에 대한 깊고 치밀한, 냉담하고 스마트한 시선이 가득하다. 장애령의 아버지는 봉건적 지식인으로, 1세대 신여성 어머니와 결혼했지만 축첩과 아편을 일삼고 계모의 말에 홀라당 홀라당 잘도 넘어가서 장애령을 구박하는 루저였고, 어머니는 탈주를 위해 유럽으로 떠났지만 장애령은 그런 그녀의 삶에서도 자신의 롤모델을 만들지 못했던 것 같다. 장애령은 인형의 집을 뛰쳐나간 “노라” 에 대해서도 오히려 부정적이었다고 하니까. 장애령은 한 기고문에서 함부로 집을 뛰쳐나가지 말라고, 오히려 가부장제의 허점을 이용해서 경제권을 챙기고 집을 지키라고 했다고 한다. 다툼이 있으면 분연히 일어나되 절대로 집 밖으로 나가지 말고 2층으로 올라갔다가 “밥 먹으라” 고 부르면 내려가라고 했단다(ㅋㅋ 이 얼마나 또이또이한가, 남성 문인들이 노라들을 찬양할 때 그녀는 노라에게 진정한 현실론을 가르쳤다). 그래서 그녀의 주인공들은 봉건적인 결혼 제도 속에서 자신을 지킨다. 자기만의 방법으로 견고한 성채를 쌓아가고, 그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서 실리를 챙긴다. 그런 면에서 장애령의 소설은 “사랑과 전쟁” 까지 가지 않고도 충분히 그 사이의 있을 법한 사건들을 다룬다.
“남은 감정(留情)”의 여주인공 둔펑은 '결혼이 뒤엉킨‘ 여인이다. 그러나 그녀의 삶의 방식은 남들이 뭐라던 상관없다. 친척 아주머니는 집안의 골동품들을 주섬주섬 팔아 돈푼을 마련하고, 친척 언니는 그냥 되는대로 이사람 저사람을 마작판에 끌어들이며 생각없이 불륜을 저지르지만, 그녀는 다르다. ’오직 둔펑 그녀만이 결혼이라는 모험을 통해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손 안으로 들어갔다‘. 스물 세 살 연상의 둔하고 못생긴 남편(사실은 전처가 죽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같이 사는 거기 때문에 그녀는 말하자면 첩실인 셈이다) 미 선생을 바라볼 때마다 그녀는 “남자로서라면 결혼하지 않았다” 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그녀에게 재력을 보장해 주고, 이 풍진 세상에 든든한 보험인 셈이다. 대단한 사랑이나 열렬한 연애 감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왜냐면, ’이 세상에 태어나 만신창이가 되지 않는 감정은 없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썩 맘에 안 드는 결혼이지만 집에 돌아갈 때는 ’우체국 앞을 지날 때 그에게 잉꼬에 대해 말하는 것을 잊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결혼은 그 정도의 남은 감정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 거라고, 장애령은 둔펑의 입을 빌려서 차갑게 말한다.
개인적으로 “경성지련” 소설집에서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영화로도 개봉했다고 하는데 워낙 옛날 영화인 듯. 남성 보편의 “열정적인 정부(情婦)와 순결한 아내”의 로망을 다룬 내용이다. 전자는 붉은 장미, 후자는 흰 장미이다. ‘붉은 장미를 취해 오래 오래 지나면 붉은 것은 벽 위의 모기 피처럼 변해버리지만, 흰 것은 여전히 침대 위의 밝은 달빛으로 남아 있다. 흰 장미를 취하면 흰 것은 곧 옷 위에 묻은 밥풀처럼 되지만 붉은 것은 도리어 마음 속의 진주 모래알 같은 반점이 된다’
주인공 진바오는 ‘시종일관 정연하고 모든 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중국의 현대적 인물’ 이지만 그 역시 이와 같은 로망을 정연하게 살아내는 인물이다. 결혼 전에 만난 유부녀 쟈오루이(외국 물을 먹은 화교 여성으로 그려진다)와 격정적인 불륜을 저지르다가, 자신이 사회적으로 쌓아 놓은 모든 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전형적인 중국 여자이자 순종적 아내의 대표브랜드 같은 옌리와 결혼한다. 나는 여기서 김영하의 “거울에 대한 명상” 이 생각났다(이 소설은 영화 “주홍글씨”의 원작이 됐다). 요염하고 격정적인 정부와 순결한 아내를 두고 만족하고 있던 남자는 자동차 트렁크라는 갇힌 공간에서 사실은 “정부와 아내가 동성애관계” 라는 치명적인 진실에 맞닥뜨린다. 그리고 그는 단단하고 깊은 트렁크 안에서 조용히, 혼란스럽게 죽어간다(영화에선 한석규가 피칠갑을 하고 살아서 나왔지만). 김영하가 파격적인 결말로 남자를 케이오시켰다면 장애령은 보다 더 개연성 있는 결말을 선택한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뜨거운 추억 속의 정부는 세상사에 찌든 아줌마가 되어 재혼해 있고, 믿었던 순종적인 아내는 반푼도 안돼보이는 재봉사와 바람이 난다. 남자가 케이오되는 것은 같다. 결말은 다소 희망적(누구에게?)이라지만 붉은 장미도, 흰 장미도, 그냥 다 시들어갈 뿐이라고 장애령은 말한다.
거의 “겨울새” 의 싸이코패스 어머님이 떠오르는 이 소설의 주인공 캐릭터는 정말로 독특하다. 기름집의 활달한 딸내미로 태어났다가 불구자 대갓집 남편에게 시집와서 스스로 마녀가 되어버리고 마는 한 여자의 이야기인데, 소설을 읽다 보면 “겨울새” 의 그분도 사실은 이렇게 황금족쇄로 스스로를 꽁꽁 매고 사셨던 건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감정이입이 들기까지 한다(그나저나 쪼다 아드님은 재혼을 하셔서 잘 사시나). 지속적으로 속고 이용당한다고 느낀 그녀는 결국 아무도 믿지 않고, 자기의 자식들마저 그 파괴적이고 음울한 성채로 끌어들인다.
‘삼십 년간 그녀는 황금 족쇄를 차고 있었다. 그녀는 묵직한 족쇄를 사용해 몇 사람을 죽였고, 죽이지 않으면 인생을 망쳐버렸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딸이 그녀를 증오하고, 그녀의 시집 사람들이 그녀를 미워하고, 그녀의 친정 사람들이 그녀를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삼십 년 전의 달빛은 이미 사그라졌고 삼십 년 전의 사람도 죽었다. 그러나 삼십 년 전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날 수 없다.’ 어쩌면 장애령은 알았던 것 같다. 단순히 제도의 문제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제도가 많은 것을 달라지게 할 수는 있지만, 제도가 바뀐다고 해서 족쇄를 풀어낼 만한 맞춤한 열쇠가 모두의 손에 주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지금도 그 족쇄의 이야기(金鎖記)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서로를 괴롭히고, 죽기 살기로 머리를 잡으며, 이혼을 그 열쇠로 여기며 열심히 가정법원을 드나든다. 하지만 과연 그 족쇄는 풀릴 것인가? 사랑과 전쟁은 이번 주에도 어김없이 방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