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나에게 샤르트르라는 인물은 참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에 영향을 받은 실존주의자이자, 당대의 최고 지성인 시몬 드 보부와르와의 계약결혼까지 그의 사상과 그의 삶은 나에게 참 많은 영향을 끼쳤었다. 특히나 그의 실존주의는 루드비히 비트켄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와 함께 20대에 막 들어선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책 중의 하나였다.
이러한 사르트르가 그의 이름을 가장 먼저 널리 알리게 된 장편소설이 바로 [구토]이다. 부빌이라는 프랑스의 작은 도시에 머물며 롤르봉이라는 18세기의 인물에 대한 책을 집필하고자 하는 주인공 앙투안 로캉탱. 그는 간간히 이유 모를 구토 증세를 느낀다. 세상을 참을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의 존재를 참을 수 없어서, 나의 경계를 침범하는 타인을 참을 수 없어서, 그리고 로캉탱 그 자신의 존재를 참을 수 없어서 말이다. 그가 일하는 곳에 종종 와서 자신의 지식을 쌓고자 서재에 쌓여있는 책들을 A부터 순서대로 읽어대는 독학자. 단지 관찰자의 입장에서 그를 바라보던 로캉탱을 오히려 그 독학자는 마치 구원자인양 숭배하지만 로캉탱은 그와의 관계를 지속하면 할수록 그 특유의 구토를 참지 못한다. 왜 인간은 이런 식일까. 왜 이 독학자는 쓸모없는 것들을 중요하다고 생각할까. 왜 이 세상은 뒤틀려 있을까 하는 의문을 남기며 말이다. 그가 열렬하게 사랑했던 안니와의 만남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을 하지만 그녀를 잡지는 않으며 불타는 감정을 갖지만 그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안니를 만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파리까지 달려가지만 정작 안니를 만난 로캉탱은 피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언어들만 늘어놓을 뿐 그 이상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안니와의 헤어짐 이후 로캉탱은 롤르봉의 전기를 쓰는 것을 접는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 전기가 아닌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다. 부빌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장소로 떠나면서 말이다.
샤르트르는 인간의 존재라는 것을 다른 사물의 존재와 다른 것으로 보았다. 샤르트르는 인간의 삶 그 자체는 내재하는 의미 그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 존재 자체로 의미를 가져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로캉탱이 삶에 구토를 느끼는 이유일 것이다. 의미가 있어야만 하는데 그 의미를 찾아야만 하는데 자신의 존재는 빈껍데기 뿐인걸 느끼며 그 상실감이 세상에 대한 그리고 타인에 대한 구토로서 발현되는게 아닐까 한다. 그래서 로캉탱은 샤르트르의 분신이며 우리 젊은 날의 투영이 되는 것 아닐까. 無는 有와 다르나 또한 같다. 텅 빈 내면의 존재에서 존재하는 有로 되는 그 과정은 나를 나로써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다. 쉽지만 또한 어려운 그 과정을 나는 제대로 해쳐나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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