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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의학의 역사가 사실은 '용기의 역사'였다는 것이다. 몬디노가 교회의 금기를 무릅쓰고 시체를 열었을 때부터, 카할이 스페인이라는 변방에서 홀로 신경세포를 그렸을 때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당대의 권위와 상식을 거스르는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용기의 본질은 대단한 이론을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내 눈으로 직접 보겠다'는, 어찌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다. 몬디노가 남긴 문구 videre ad sensum, 즉 '직접 보고 이해하라'는 말은 그래서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처럼 읽힌다. 베살리우스의 이야기는 그 태도가 어떻게 제도를 뒤엎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조수의 손에서 해부용 메스를 빼앗아 직접 시신을 열었을 때, 중세 내내 분리되어 있던 '읽는 머리'와 '자르는 손'이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묘한 감동을 느꼈다. 새로운 발견은 언제나 새로운 이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권위와 실제 현실 사이의 간극을 누군가 견디지 못하고 메워버릴 때 온다는 사실을 이 장면이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갈레노스의 오류는 1,400년 동안 아무도 몰랐던 게 아니다. 다만 아무도 그것을 확인할 용기, 혹은 확인해도 된다는 허락을 갖지 못했을 뿐이다. 하비의 순환 이론에서는 조금 다른 종류의 용기를 본다. 그는 관찰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심장이 한 시간에 내보내는 혈액의 양을 계산해 갈레노스의 이론이 산술적으로 불가능함을 증명해냈다. "나는 책이 아니라 자연을 해부했다"는 그의 말은, 관찰에 숫자라는 잣대를 더했을 때 비로소 낡은 권위가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비의 계산 자체는 완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의 추론은 훌륭한 실험으로 이어졌다. 과학이란 처음부터 정답을 내는 일이 아니라, 틀릴 수 있는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태도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데카르트와 의리학파를 지나며 이 책은 균형 잡힌 시선을 잃지 않는다. 몸을 기계로, 숫자로 환원하려던 시도는 근육과 혈관을 설명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통증과 감정, 질병의 경과 앞에서는 번번이 한계에 부딪혔다. 산토리오가 30년간 저울 위에서 살았던 집착, 보렐리가 근육을 지렛대로 계산했던 시도는 당대에는 "그래서 환자에게 무엇을 해주면 되느냐"는 냉소적인 질문 앞에 무력했다. 그러나 이 실패들이 결국 오늘날 중환자실의 모니터와 웨어러블 기기로 이어졌다는 서술을 보며, 나는 과학의 실패란 종종 시대를 앞서간 질문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때로는 시점의 문제였던 것이다. 책에서 가장 마음을 무겁게 한 대목은 제멜바이스였다. 그는 손 씻기라는, 지금이라면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 하나로 산모 사망률을 10퍼센트대에서 1~2퍼센트대로 낮췄다. 그러나 그가 얻은 것은 인정이 아니라 해고와 조롱, 그리고 정신병원에서의 죽음이었다. 데이터는 이미 답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의사의 손이 산모를 죽인다니 말도 안 된다"는 자존심이 그 데이터를 가로막았다. 나는 이 장면에서 의과학사가 단순히 발견의 연속이 아니라, 발견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태도에 관한 역사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실이 이긴 것은 진실이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 코흐와 리스터라는 후속 세대가 같은 진실을 다른 방식으로 다시 증명해냈기 때문이었다. 옳은 답이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때로 한 사람의 생애로도 부족하다. 존 스노의 콜레라 지도 역시 인상적이다. 그는 세균의 존재조차 몰랐지만, 지도 위에 환자 수를 표시하는 단순한 방법으로 오염된 펌프 하나를 정확히 짚어냈다. 이는 원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패턴을 정직하게 기록하는 것만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원리에 대한 이해와 문제 해결은 반드시 같은 속도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후자가 전자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는 것을 스노는 몸소 증명했다. 란트슈타이너의 혈액형 발견과 카할의 신경세포 스케치를 나란히 읽으면서는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란트슈타이너는 화려한 실험 대신 응집 여부를 기록한 표만으로 ABO 혈액형이라는 규칙을 찾아냈고, 카할은 과학적 정밀함과 예술적 감각을 동시에 지닌 손으로 신경세포라는 '보이지 않던 세계'를 그려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발견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을 정작 담담하게 받아들였다는 점이 인상 깊다. 위대함은 반드시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느끼는 순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들은 보여준다.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이 있다면, 그것은 권위에서 관찰로, 관찰에서 측정으로, 측정에서 다시 겸손으로 이어지는 순환이다. 파레가 "나는 단지 붕대를 감았을 뿐, 신이 그를 낫게 하셨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의학의 역사에서 가장 크게 전진한 순간들은 언제나 인간이 자연 앞에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순간과 맞닿아 있었다. 갈레노스의 권위를 무너뜨린 것은 더 큰 권위가 아니라, 그저 다시 한번 확인해보겠다는 태도였다. 그리고 그 태도는 지금도 유효하다. 오늘날 인공지능이 방대한 생체 데이터를 분석하고, 재활 로봇이 인간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것 역시, 결국은 "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산토리오와 보렐리의 질문이 형태를 바꾸어 계속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의과학사는 '누가 먼저 의심했는가'의 기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의심은 언제나 대가를 치렀다. 몬디노는 금기를 깨야 했고, 베살리우스는 평생 비난에 시달렸으며, 제멜바이스는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렀다.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손 씻기, 혈액형 검사, 마취와 소독은 모두 누군가 자신의 시대와 불화한 결과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중에도, 언젠가 새로운 몬디노와 제멜바이스가 다시 열어야 할 금기가 남아 있지 않을까. 책이 내게 남긴 질문은 결국 그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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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의과학사 #유임주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비주얼 의과학사. 유임주 지음. 한겨레출판. 2026. _그림으로 읽는 의과학 혁명의 순간들 표지 그림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사람의 등에 관을 대로 귀로 듣는 행위는 딱, 청진기로 사람 몸속의 소리를 듣는 행위와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한번에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이해가 됐다. 아, 이런 식으로 의과학이 발전해왔던 모습들이 그림에 남아있다는 것이구나,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당시의 의과학의 수준과 형태 등을 확인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과학, 의과학의 어려워도 그림은 상대적으로 직관적인 지점이 있으니, 어려운 분야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쉽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책의 내용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책의 컨셉대로 비주얼, 그림이 동반되어 있어 더 흥미로웠다. 부제에서처럼 '의과학 혁명의 순간들'이 있었기에 현재와 같은 의과학의 수준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도 내용을 따라가며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외과적 수술 시 소독의 중요성을 알게 되면서 사망율이 낮아지게 된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던 부분이기도 했지만, 소독약을 시간 맞춰 뿌려지게 했다는 그림 자료는 당시의 장면을 한방에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좋은 자료가 되었다. 전체적인 문맥을 파악한 상태에서 해석하면 히포크라테스가 남긴 원문인 '경구' 제1장 1절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 기회는 빠르게 흘러간다. 실험은 위험하고, 결정은 어렵다. 의사는 자신이 보기에 올바른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환자와 조수와 외적 요소들의 협조를 이끌어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정리하면 짧은 인생 동안 공부할 의술이 많으니 열심히 공부하라는 권학문의 경구라고 할 수 있다.(26쪽) 'Life is short, Art is long'을 당연히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로 알고 있었다. 의학적으로 다르게 해석하게 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고, 이 책이 이 경구에서부터 비롯된 수 있었다는 것도 이해했다. 삶과 의술 간의 관계 속에서 공부하라는 말의 의도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이때 사용된 'Art'가 예술이 아니라 의술일 경우, 결국 예술과 의술은 일정부분 겹쳐지는 공통 부분이 존재한다는 의미로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의 신체를 연구하며 그 신체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가 의학이 되고 예술이 될 수 있었던 것, 이 둘의 영역이 서로 동떨어질 수 없이 같은 결을 가지고 맞물려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의과학사 안에서 어떤 획기적인 사건과 발상, 혁명과 발전이 일어났는지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띄엄띄엄 알고 있었던 상식적인 내용이 망라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다. 의과학과 관련한 지금까지의 온갖 사건들을 한번에 정리해주니, 알고 싶은 부분을 쫓아가 찾아 읽을 수도 있고, 과거에서부터 시간적 흐름에 따라 어떤 과정으로 의학이 현재까지 올 수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도 있다. 단순히 그림을 통해 흥미 위주로만 이야기를 나열하지 않고, 각 단계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과학적 연구와 과정까지 자료와 함께 제시되고 있어 이해가 쉽기도 했다. 물론, 현대로 오면 올수록 이런 의술을 다루고 있는 그림 자료가 많지 않다는 것도 예술적인 면에 있어서는 특징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했다. 과거에는 다양한 당시의 세태나 추구하는 가치관, 특히 의술과 관련한 획기적인 사건이나 상징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꼭 그림을 통해 그 기록을 남겼구나, 싶었는데 현대의 사건들에서는 그런 그림이 함께 제시되지 않고 있었다. 이것도 예술적 특징이기도 하겠다고 생각하니, 이 책은 단순히 의과학사를 다루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회화에 대한 특징도 함께 짐작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하나, 어떤 학문 분야든 대체로 비슷하겠지만 특히 과학, 의과학을 연구하는 이들의 자세와 과정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일생을 통틀어 한 가지 연구에 매달리는 경우가 잦고, 자신의 생 안에서 다 끝나지 못하고 그 다음 세대로 넘어가서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일들도 많았다. 물론 사람의 생명을 다루고 목숨을 담보로 해야하는 일들을 담당하고 있으니 더욱 그 막중한 의무와 무게감을 안고 공부해나갔을 것이라는 것도 짐작이 됐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이 알고자 하는 바를 끝까지 알아내겠다는 집념이 현재의 의학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범접할 수 없는 분야인 것만은 확실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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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겸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 ‘클림트를 사랑하는 해부학자’다. 해부학자의 예리한 시선으로 <클림트를 해부하다>라는 책으로 독자와 만나왔다. 이번 책, <비주얼 의과학사>는 인류가 질병과 싸우며 생명의 신비를 밝혀온 결정적 순간 40개를 150여 점의 시각 자료와 함께 엮어낸 의과학 교양서이다. 단순한 의학 기술의 발전을 넘어 그 뒤에 숨은 의과학자들의 질문과 추론, 치열한 사고 과정을 도판 중심으로 펼쳐낸다. 구성은 총 5장으로 1장에서는 몸을 수치로 번역하려 애썼던 과학자와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베살리우스의 해부도, 하비의 혈액순환론, 청진기와 혈압, 적혈구 등을 다룬다. 2장은 레이우엔훅의 현미경 탐구부터 파스퇴르와 코흐의 세균학 경쟁, 제너의 백신과 항생제 개발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인을 규명한 역사 속 의과학에 대해 서술한다. 3장에서는 몸을 다루는 기술의 시대로서 외과쪽을 다룬다. 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부상자들 덕분에 발전된 기술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뜨거운 기름을 붓거나 무조건 절단하던 시대를 거치며 우연한 발견을 놓치지 않은 몇몇 의사들 덕에 태어난 외과 기술과 마취·소독법의 발전, X-ray와 MRI의 원리를 다룬다. 4장에서는 뇌 신경세포를 그린 카할의 도판, 피니어스 게이지의 뇌 지도, 인슐린의 발견과 비타민의 추적 과정을 통해 생명 조절 시스템을 분석한다. 마지막 5장에서는 세포와 염색체, DNA 이중나선 구조의 해독 및 줄기세포 연구로 이어지는 생명 설계도의 탐구 여정을 밀도 있게 다룬다. 인상적인 것은, 이 책이 의과학사라는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읽다보면 의학을 매개로 예술과 윤리, 그리고 과학자로서의 태도가 어때야 하는지도 읽힌다. 저자에게 의학은 회화와 만나는 지점에서 예술이 된다. 클림트의 그림에 나타난 적혈구 형태나 메치니코프가 현미경 아래에서 본 장면이 그려진 디에고 리베라의 <진정한 태아>, <교차로에 선 사람>이 그렇다. 특히 저자가 존경하는 라몬 이 카할의 인체해부도와 신경세포 스케치에 대해 “그의 스케치는 과학적 기록이자 예술작품이었다. 세포의 가지돌기와 축삭은 하나의 리듬처럼 흘렀고, 그 안에는 형태의 질서와 생명의 아름다움이 공존했다.”(p.307)라고 평가한다. 의학적 관찰이 생명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예술적 행위와 다름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의과학의 진보가 항상 아름다웠던 것만은 아니다. 제너의 천연두 예방접종 실험 대상자였던 제임스 핍스는 제너의 정원사 아들로서 사회적, 경제적 종속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실험이었다. 또 저자는 심장 연구 과정에서 쓰인 수많은 실험동물의 희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과학의 진보가 언제나 윤리적 성찰과 함께 가야 한다”(p.195)는 사실을 일깨운다. 결국 의과학의 혁명은 윤리적 책임감과 집요한 태도에서 나온다. 30년 동안 먹고 마시고 배출한 것을 기록한 산토리오 산토리오, 면역에 대한 연구를 주고받은 메치니코프와 에를리히, 라틴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외과 경험을 남긴 파레, 인슐린을 발견한 밴팅이 그랬다. 저자는 이들의 성과에 대해 “용기가 아니라 실험이었고 직관이 아니라 검증이었으며, 개인의 천재성이 아니라 협력이었다.”(p.264)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의과학사를 통해 “과학의 역사는 천재들의 단선적인 승리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옳은 생각이 받아들여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인내의 기록”(p.9)이라고 말한다. 단지 지식으로서의 과학적 성취를 배우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 해결의 과학적 사고 방식을 익히고자 하는 청소년, 메디컬 지망생, 그리고 문이과적 경계를 넘어 깊이 있는 교양을 쌓고자 하는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 가독성이 좋아 나의 비문학 문해력 실력이 늘었나, 살짝 착각하기에 이르렀으니 과학 특히 의학에 관심있는 중학생이 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주얼의과학사#한겨레출판#유임주#하니포터12기#하니포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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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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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에서 정자와 난자의 형상을 발견한 저자의 이야기는 뭔가 낯설었다. 그림에서 의학을 발견한다고? 라는 의문도 잠시 저자는 역사에 남은 그림을 해부하듯 의학이 발전한 역사를 보여준다. 책은 그림에 담겨 있는 의학의 역사 뿐만 아니라 인류가 무엇을 보기 시작했는가를 기록한 책이다. 정확히는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떻게 바뀌어 왔으며 그것이 의학으로 어떻게 드러났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의학의 혁명은 생각보다 더 단순하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서 변화를 일으켰다. 의학의 발전은 한 사람의 천재가 만들어낸 기적이 아니다. 많은 연구자들의 발견이 차곡차곡 쌓인 끝에 완성된 결과였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의료 기술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질문과 실패, 그리고 끈질긴 검증이 서로 맞물리며 하나의 거대한 톱니바퀴를 이루었기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이 장면은 의학의 역사인 동시에 인간 사회의 역사이기도 하다. 새로운 지식이 발견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기존의 상식을 바꾸는 일이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진실은 증명되는 순간보다 받아들여지는 순간에 비로소 세상을 바꾼다. 갈레노스 시대의 의학은 몸을 직접 볼 수 없었다. 질병은 체액의 불균형으로 설명되었고, 신체는 추측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베살리우스는 직접 인체를 해부하며 수백 년 동안 이어진 권위를 수정했고, 하비는 심장이 혈액을 순환시키는 펌프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레이우엔훅은 작은 렌즈 하나로 인간의 눈이 닿지 못하던 미생물의 세계를 보여 주었고, X선은 몸을 열지 않고도 내부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마침내 DNA 이중나선 구조가 밝혀지면서 의학은 세포를 넘어 생명의 설계도를 읽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도 않았다. 정확하게 치료하기 위해선 정확하게 볼 수 있어야한다. 몸을 제대로 해석하는 건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몸을 해부하고, 세포를 들여다보고, 유전자를 읽기까지의 과정은 치료 기술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발전했다. 제멜바이스는 손 씻기만으로 산욕열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통계로 증명했지만, 동료 의사들은 오히려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들의 손이 환자를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훗날 세균설이 정립된 뒤에야 그의 연구는 재평가되었다. CT와 MRI, 초음파처럼 몸속을 정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에도 의사는 여전히 청진기를 목에 건다. 소리를 듣기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환자와 의사가 가장 가까이 연결되는 순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의학은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의 몸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사람에 의해 그 결을 달리한다. '암브루아즈 파레'의 사례를 보여주며 의사는 생명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몸이 회복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겸손함 또한 다룬다. 책을 덮고 나니 지금까지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전혀 당연하지 않게 보였다. 손을 씻는 일도, 백신도, 마취도, 항생제도, X선도 모두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바쳐 증명해야 했던 질문이었다. 우리는 그 질문들이 남긴 결실 위에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의학을 전공하지 않는 일반 독자에게는 의과학을 이해하는 훌륭한 교양서가 되어준다. 그리고 그 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과학이란 결국 정답을 많이 아는 학문이 아니라 끊임없이 더 정확하게 보려는 태도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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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 이과냐 문과냐, 요즘은 이런 말 안 쓴다면서요? 진짜로? 아무튼, 문이과를 묻는다면 의학은 분명히 이과, 좁은 의미로서의 과학의 영역에 속해있다. 그럼에도 의학은 과학의 한 분과 이상으로 여겨져왔다. 기존 의학사가 위업과 발견의 역사를 말함에 있어 어떤 독보적인 지위 비슷한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고 하기 어렵다. 오래전부터 의학과 의학자, 의료 현장 관계자는 사회 필수 '자원'으로 여겨져왔다. 의학의 발전은 인류 전체의 진보와 동일시되기 마련이다. 현대에 이르러 지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의 첨단이자 일종의 증명으로까지 이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도제식 전승이라는 닫힌 관계를 넘어 탐구함에 있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의문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p.71 측정 도구는 늘어났지만, 그것이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지는 여전히 불확실했다. 객관성은 높아졌지만, 환자가 경험하는 질병의 의미는 숫자 너머에 있었다. (…) 맥박계는 박동의 리듬을 숫자로 환원하지만, 환자가 견디는 밤의 길이까지는 말해주지 않는다. 의학은 그 이후로도 이 침상 곁을 떠나지 못한 채, 숫자로 읽는 몸과 돌봄으로 이해되는 인간 사이를 오가고 있다. p.244 외과의 역사는 기술의 진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환경이 어떻게 과학을 가능하게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감염이 개념화되고, 통증이 통제되었을 때, 외과의 실력은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었다. 칼이 더 날카로워진 것이 아니라, 칼을 쓸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 외과는 결코 혼자 발전하지 않았다. 언제나 축적된 지식들, 그리고 조건을 만들어낸 사람들과 함께 성장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외과는 의학 가운데 가장 대담하면서도 가장 절제된 학문이 되었다. 머리나 머리털이나 자르기는 매한가지였던, 의술과 주술이 뒤섞여 있던 먼 옛날부터 현대의 도전들에 이르기까지, 의학의 역사는 혁명과 전환, 이념 다툼과 집념이 뒤섞인 난장이었다. 체액설부터 이종간 세포배양까지 모든 순간에 당연하게 한발씩 나아간 적이 없다는 사실은 그 역사의 성원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분투하고 지식을 전수하기 위해 애써왔는지 보여주는 증거와도 같다. 해부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생명은 어느날 덜렁, 등장한 신비가 아닌 복잡한 구조와 체계로 맞물린 유기체이자 가능성의 덩어리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 색색의 도판과 바짝 붙어야 겨우 알아볼 복잡한 구조의 그림들, 이어지고 전도되기를 반복하는 이름들에서 발견한 것은 대단한 지식의 자랑이 아닌 열의와 경의의 기록이었다. p.67 체액설이 여전히 의학의 중심에 있던 시대에, 몸무게의 미세한 변화와 보이지 않는 증발을 논하는 그의 연구는 기이하고 실용성이 떨어지는 집착처럼 보였을 것이다. (…) 환자를 치료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 앞에서, 숫자는 아직 설득력이 부족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의 연구는 시대를 앞서 있었다. 측정은 곧 치료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측정 없이는 이후의 의학도 존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p.354 비타민은 단순히 새로운 약의 발견이 아니었다. 19세기에는 질병을 세균이나 독 같은 나쁜 것의 침입으로 이해했다면,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질병은 무언가 필요한 것이 부족할 때도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로써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진작 이렇게 물었어야 했는지 모른다. 의학은 어떻게 발전해왔는가, 를 묻기에 앞서, 의학의 역사는 누구의 이름과 시선으로, 무엇에 도전하고 응전하며 이어져 왔는지 그것을 말하고, 가르쳐야 했던 게 아니냐고. 동시에, 여전히 물어져야 하듯, 의사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의학은 무엇을 위해 발전하고 존속되어야 하는지 또한. 사회가 갈라져 반목한 시간이 길다. 서로를 몽매한 대중과 이기적인 이익집단 따위로 묶어 이해할 수 없게 된 지 오래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의 독자일 '일반 대중'과 미래의 의학-집단이 스스로에게 물을 때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어디쯤을 써내리고 있는가, 이 길은 대체 무엇을 위함인가. 그 끝에서 여전히 서로를 사람으로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p.280 초음파가 청진기를 완전히 밀어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어쩌면 둘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며 공존하게 될 것이다. 환자 곁에서 가장 먼저 사용되는 도구, 판단과 행위가 시작되는 지점, 그 자리는 언제나 의학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만드느냐, 그것이 더 본질적인 질문일지도 모른다. p.432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옳다고 믿었던 것을 끝까지 밀어붙인 사람, 틀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버리지 못 한 사람, 그리고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처음으로 본 사람. (…)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현미경 앞에 앉아 있고, 누군가는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찾고 있으며, 누군가는 오랫동안 붙들어 온 질문의 답에 막 손이 닿으려 하고 있다. 의학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는 그 역사의 중간 어딘가일 뿐이다. *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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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얼마나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있을까? 의학의 진보는 천재의 섬광이 아니라, 평범한 관찰을 끝까지 설명하려는 끈질긴 사고에서 시작되었다. 지금은 '비타민'이라는 말을 너무도 익숙하게 사용하지만, 인류가 이 물질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불과 100년 전이다. 비타민의 발견은 왜 어떤 병은 무언가가 들어와서가 아니라 무언가가 부족해서 생기는 걸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모든 의과학사적 성과와 의미가 큰 혁명의 순간의 출발점에는 하나의 과학적 질문이 있었다. 이 책은 그렇게 과학과 의학의 위대한 발상과 눈부신 성취들을 담았다. 인체를 복부, 흉부, 두부 순으로 해부하는 절차를 제시하며, 해부의 순서와 방법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유럽 최초의 해부 실습 교재 <인체 해부학>은 르네상스의 예술가와 과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예술가이자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이 책을 참고해 자신의 인체 연구를 체계화했다고 하니 말이다. 16세기 중엽에는 젊은 해부학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가 등장하는데, 그는 해부를 다시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과학적 관찰의 행위로 되돌린 인물이다. 혈액의 순환 이론을 통해 생리학의 토대를 바꿔 놓은 윌리엄 하비, 생명을 수학으로 해석했던 데카르트, 17세기 초에 열을 재는 도구로 만들어진 온도계 등 의학사에서 중요한 발견과 발명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생명의 신비와 의학의 난제를 밝히는 경이로운 과정들이 있었기에, 현대 의학의 덕을 우리가 보고 있는 거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재미있는 내용들이 많았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인 <키스>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었다. 수없이 봐온 그림인데도, 그림 속 패턴들이 적혈구의 전형적인 형태와 닮았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기 때문이다. 황금빛 장식 사이로 작은 붉은 원형들이 반복해 나타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원형들은 중심이 옅고 가장자리가 진한 도넛 모양을 하고 있다. 그것을 클림트가 활동하던 시기에 출판된 백과사전에 실린 혈액의 컬러 도판과 비교해보면, 매우 그럴듯한데 덕분에 20세기 초 빈에서는 예술과 의학이 긴밀히 교류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클림트의 그림에 숨겨진 생물학적 도상, 이른바 ‘클림트 코드’를 해석한 저자의 연구는 세계 3대 의학저널인 《JAMA》에 소개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과학 교양서 《클림트를 해부하다》를 펴내기도 했다고 하니 찾아서 읽어 봐야겠다. 이 책이 특히나 흥미로웠던 것은 150여 장의 도판 등 다채로운 시각 자료들이었다. 최고의 명화부터 잡지 표지와 삽화, 사진과 냅킨에 그린 스케치까지 수록해 이미지로 의과학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해준다. 베살리우스가 기획한 근육편 삽화, 하비의 혈액순환 도해, 레이우엔훅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미세 생명체의 스케치, 런던 콜레라 환자 분포 지도, 뇌와 인체의 관계를 다룬 호문쿨루스 모형, ‘구원자’ 페니실린을 담은 전쟁 포스터, 왓슨과 크릭이 세운 DNA 이중나선 모형 등 굉장히 자료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좋았다. 그리고 단순히 의학사를 연대기적으로 정리한 것이 아니라 의과학자들의 질문과 사고 과정에 주목해 수많은 혁신의 순간들 뒤에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풀어내고 있어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결과보다 질문에, 정답보다 그에 이르는 경로를 추적하고 있어 발견과 발명에 이르게 한 사고 과정, 아이디어의 씨앗, 연구자의 태도까지 함께 만날 수 있었다. 의학은 어렵고 차갑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면, 과학사를 색다른 방식으로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