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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은 없었다.
"약속의 땅은 없었다." 내용보기
1930년대 극도의 공황에 빠진 미국경제 하에서 땅도 직업도 재산도 가지지 못한 텍사스, 오클라호마, 루이지애나 등지의 하층민들은 따뜻한 기후와 기름진 토지의 켈리포니아를 향해 서부로 서부로 몰려들었다. 서부는 그들에게 구원과 희망의 땅이었으며 가난과 기아와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둘도 없는 안식처가 될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재산가와 지주, 은행과 자본가들에게 모든
"약속의 땅은 없었다." 내용보기
1930년대 극도의 공황에 빠진 미국경제 하에서 땅도 직업도 재산도 가지지 못한 텍사스, 오클라호마, 루이지애나 등지의 하층민들은 따뜻한 기후와 기름진 토지의 켈리포니아를 향해 서부로 서부로 몰려들었다. 서부는 그들에게 구원과 희망의 땅이었으며 가난과 기아와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둘도 없는 안식처가 될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재산가와 지주, 은행과 자본가들에게 모든 것을 빼앗겨 더 이상 잃을 것 조차 없는 그들은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재산을 처분하고 저축을 털어 가족이 이동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중고 트럭을 마련하여 트럭의 네 바퀴에 꿈과 미래를 송두리 째 의지하여 끝이 나지 않을 것만 같이 길게 펼쳐진 도로를 타고 서부를 향해 나아간 것이다. 서부로 가는 길은 단순한 이동경로가 아니었다. 사기당한 중고 자동차는 가격에 비해 터무니 없이 성능이 떨어졌고 잦은 고장은 빈번하게 그들의 앞길을 막았다. 넉넉치 못한 비용 탓에 여행에 지친 가족들이 그늘에서 편하게 쉬거나 주린 배를 채울 수도 없었다. 이동 중에도 끊임 없이 생존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 헤매야 헸지만 어떤 일자리에서도 하루 치의 식량 조차 넉넉하게 장만할 돈을 벌 수 없었다. 트럭은 갈수록 고장이 잦았고 떠날 때 준비한 돈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더 더욱 나쁜 것은 가족 해체의 위기였다. 열악한 여행환경, 불충분한 영양공급과 휴식을 견뎌낼 체력이 부족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일짜김치 사망하여 가족들을 슬픔에 잠기게 했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를 두려워한 작은 아들은 가족을 이탈해버렸으며 사위는 임신한 딸아이를 남겨둔 채 온다간다 말 한마디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남은 가족들간에도 불신과 불만이 싹터 말다툼과 의견 충돌이 잦았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주는 사람들은 많이 가진 부자, 재산가, 기업가나 지주들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면 그날의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우발적인 정당방위로 친구를 죽여 감옥에 갔던 톰이 가석방 중에 만난 전도사, 자동차의 값비싼 부품이 고장났을 때 주인 몰래 싼 가격에 부품을 팔아주고 필요한 공구까지 마련해준 정비공, 가난한 사람들끼리 모여살며 힘겨움을 서로 나누던 국영 캠프 사람들, 식료품과 필수품을 터무니 없이 비싼 값에 팔아 낮에 나눠줬던 품삯을 밤에 걷어들이는 농장주인의 가게에서 근무하는 종업원의 눈물겨운 배려 등은 그들이 세상을 포기할 수 없게 하는 커다란 힘과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스타인벡은 해피엔딩을 갈망하는 독자를 끝내 외면한다. 실제로 일자리를 찾아 노동자들과 함께 대륙을 횡단했던 작가에겐 낭만 조차 사치일 뿐이었던 것 이다. 일거리가 없어 더 이상 국영캠프에서 견딜 수 없었던 가족들은 내일의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시 고물트럭의 무거운 바퀴를 굴려야 했으나 어디에서도 정착하여 안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일자리가 생기면 구름 처럼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임금은 내려가고 일거리는 순식간에 동이 나는 악순환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딸 로저샨의 배는 산달을 향해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이 슬픔과 분노의 소설 속에서 저자는 가난한 자만이 가진 베품의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았고 극한의 상황에서 그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사산아를 낳는 비극을 겪고 비통함에 빠져있던 로저샨이 단 한뼘 조차 마른 자리가 남지 않은 홍수의 물결 속에 모든 걸 잃고 도망치듯 숨어든 창고에서 짚더미에 쓰러져 있는 병자의 배를 신생아의 몫이었어야 할 모유로 채워주기 위해 자신의 가슴을 내미는 모습은 인정을 넘어 성인만이 행할 수 있는 자비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 풍요, 평화, 조화 등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이상적인 나라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는 미국의 넓디 넓은 평원이 불과 70년 전 가난하고 병들고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만 엄연히 존재했던 사실이었고 생명과 생존을 위협했던 노동탄압과 착취 또한 미국의 짧은 역사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국가와 민족, 인종과 종교와 이념을 초월하여 인권과 자유와 평화와 평등이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는 날, 억울하게 희생된 숱한 넋들도 편안히 잠들 수 있지 않을까.

[인상깊은구절]
물살은 둑에 부딪쳐 소용돌이치며 들끓었다. 그때 개울 위쪽에서 무엇인가 무너져내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회중전등 빛이 커다란 목화가 옆으로 쓰러져 가는 광경을 비추었다. 사나이들은 일손을 멈추고 그것을 지켜보았다. 목화의 큰 가지가 몰에 잠기더니 물살에 밀리면서 빙빙돌고 물이 잔뿌리를 후벼파냈다. 나무는 서서히 뿌리가 뽑히고 이어 천천히 물살과 같이 흘러내려가기 시작했다. 지쳐 빠진 사나이들은 입을 헤벌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나무는 유유히 흘러내려갔다.
a******t 2002.05.0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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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분노의 포도 - 어느 오키 가족의 서부 이주기
"[리뷰] 분노의 포도 - 어느 오키 가족의 서부 이주기" 내용보기
이 책은 포도 얘기가 아니다. ‘차인표의 분노 시리즈’가 등장하는 막장 드라마도 아니다. 오히려 극도로 사실적인, 어느 ‘오키’ 가족의 서부 정착기다. 오키는 미국의 동부에 위치한 오클라호마에서 서부로 이주해 온 사람들을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경멸조로 부르는 은어.     이야기의 초반에는 거북이 한 마리의 고속도로 종단기와 조드 일가의 둘째인 톰이 교도소에서 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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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포도 얘기가 아니다. ‘차인표의 분노 시리즈’가 등장하는 막장 드라마도 아니다.

오히려 극도로 사실적인, 어느 ‘오키’ 가족의 서부 정착기다.

오키는 미국의 동부에 위치한 오클라호마에서 서부로 이주해 온 사람들을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경멸조로 부르는 은어.

 

 

이야기의 초반에는 거북이 한 마리의 고속도로 종단기와

조드 일가의 둘째인 톰이 교도소에서 출소해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이 교차한다.
거북이는 어딘가로 향하려는 자기의 본능을 충직하게 따라

갖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트럭들이 쌩쌩 달리는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하는데 무사히 성공한다.

무일푼으로 출소한 톰 또한 히치하이킹까지 감행하며 고향 땅을 밟는다.

 

40여 페이지에 달하는 동안 거북이 얘기만 나오기에

‘분노의 거북이’도 아니고 포도 얘기는 언제쯤에나 나오냔 말이다, 라고 생각하는 찰나

드디어 톰과 거북이는 역사적인 조우를 한다.

자기 몸의 세 배는 족히 되는 차선 분리대를 기어 오르고

달리는 차에 치여 죽을 뻔하면서도 기어이 여기까지 왔건만,

어이없게도 톰의 손아귀에 붙들리고 만다. 어차피 그럴 운명이었을 게다.

톰은 어떤가. 집에만 오면 예전의 실수를 잊고 착실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황량해진 집구석에는 먼지만 가득할 뿐, 가족들은 온데간데 없다.

어이를 넘어 황망스럽기까지 하다.

 

사실인즉, 톰이 교도소에 가 있는 동안 고향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던 것.

기업화의 물결이 별 볼일 없는 촌동네까지 진출한 것이다.

트랙터 한 대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왔기 때문에,

자본의 논리는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소작농들을 가차없이 내쫓도록 명령했다.

대세를 따라 재빠르게 기업의 앞잡이를 자처한 이들은 옛 이웃이었던 그들을 쫓아내 버린다.

점점 더 커지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는 기업의 운명도 기구하다.

어쩌다 이런 촌동네까지 집어 삼키지 못해 안달 복달하게 됐냔 말이다.

 

어찌 됐든 오키들의 서부 대 이동이 시작됐다.

그리고 톰이 잡아챘던 거북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풍요로 가득한 캘리포니아에 도착한다.

비록 찢어지게 가난할지언정 오손도손 온가족이 모여서

착실하게 새출발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기를 조드 일가는 애 닳게 바랐을 것이다,

톰에게 등덜미를 잡히기 직전만 해도 거북이가 그런 희망을 품었듯이.


현실은 가혹했다.

고향에 남아 있었더라면 어떻게든 트랙터 운전기사로라도 취직했을지 모르나,

캘리포니아에서는 빈민촌을 전전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하긴, 이웃을 내몰고 고향을 엉망으로 만들 각오를 할 수 있었더라면,

케이시도 순진한 처녀 따먹으며 전도사 노릇을 잘만 했을 것이었다.

눈 앞에는 지나친 풍작으로 오렌지가 땅에 버려져 썩고 있지만,

조드 일가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게 더 괴로운 일이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의 현실이 ‘오버랩’된다.

언론에서는 성공의 신화가 된 인물들의 사례를 보여주며,

우리 같은 사람도 ‘대박’ 칠 수 있다고 감언이설을 쏟아내기 바쁘다.

잘 빠긴 미끼를 향해 우르르 몰려 가며 서로를 짓밟을 수 밖에 없는 우리가,

일자리 하나 얻어 보겠다고 앞다퉈 아우성치는 오키들과 다른 점을 나는 발견할 수 없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나에게는 필요 없는 오렌지를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고

땅 속에 파묻어 버리는 배짱이 필요하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순진한 아가씨를 강간해야 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웃을 내몰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짓을 벌이고도 안면몰수할 만한 수완이 도통 없다.

그렇기에 더 이상의 캘리포니안 드림도, 코리안 드림도 없다.

 

 

책을 읽으며, 조드가의 식구들이 남일 같지가 않았다.

예전의 확고했던 권력을 잃어버린 아버지,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해내는 어머니,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어딘가로 도피해버리는 큰 아들, 된장녀 딸내미 등등.

 

나는 어떤 인물에 가까울까?

자꾸 어딘가로 숨어 들어가려는 맏아들 노아 같은 인물에 근접할 것이다.

아니, 말만 번지르르한 로저샨의 남편 코니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확실한 건, 톰이나 케이시처럼 깨어있는 인물은 아니란 거다.

물론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치고 폭동을 일으킴으로써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의로운 일이긴 하나,

그렇다고 내가 잘못된 인간형이라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사람을 때려 죽이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딸인 로저샨은 요즘 같은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된장녀’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전문직 남편과 함께 오붓하게 도시 속에서 살고,

주말에는 교외로 드라이브를 가는 모습을 꿈꾸는 그녀는 분명 ‘시대의 된장녀’다.

하지만 책장을 덮으며, 나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주제에

루이비통이니 샤넬이니 하는 것들로 치장한 된장녀들을 더 이상 미워할 수만은 없게 됐다.

뱃가죽이 꺼져 들어가 헐떡이는 낯선 아저씨에게 젖을 물려 줄 수 있는 용기는 나에겐 없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이 책을 읽은 것이 한여름이었던 관계로,

먼지 덮인 호클라호마의 숨이 턱턱 막히는 분위기를 더욱 현실감 있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기습한파가 몰아 닥쳐 손발이 꽁꽁 얼어 붙는 12월 중순에 읽었더라도,

먼지 한 톨까지 놓치지 않은 작가의 집요한 묘사 덕분에 전기 장판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t******g 2010.11.1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운명에 대한 생각
"운명에 대한 생각" 내용보기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운명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내 삶은 내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이 책속의 주인공들이 아무리 자신이 자신의 삶을 고쳐보려고 노력을 해보아도 여러 사회적 배경에 의해 처참하게 묻혀버리고 마는 상황을 통해서 운명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삶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운명에 대한 생각" 내용보기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운명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내 삶은 내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이 책속의 주인공들이 아무리 자신이 자신의 삶을 고쳐보려고 노력을 해보아도 여러 사회적 배경에 의해 처참하게 묻혀버리고 마는 상황을 통해서 운명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자신의 삶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말들을 하곤 하지만 한 인간의 삶에서 그 인간의 상황, 배경 등이 그것을 만들어 나가는데 방해를 하고 있다면 운명이란 존재는 없다라고 단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p*******0 2011.06.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