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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마르크는 열여덟 살의 나이로 제1차 세계대전에 독일군으로 입대한다. 그는 왜 입대했을까? 사실 1차 세계대전을 기록한 사진들 가운데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전쟁 초기 전장으로 나가는 청년들의 표정이었다. 그들은 의기양양할 뿐만 아니라 환하게 웃고 있다. 그들에게 전쟁은 죽음으로의 초대장이 아니라 영웅주의의 발현장이었다. 여름에 시작된 전쟁은 크리스마스 이전에 끝날 거라고 믿었다. 독일군은 프랑스의 파리에서, 프랑스군은 독일 베를린에서 크리스마스 축하 파티를 펼치고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레마르크가 참전했을 때 이미 전쟁은 교착 상태에 빠지고 있었다. 많은 병사들이 참호에서, 포탄을 맞고, 기관총 세례를 받으며 죽어나가고 있었다. ![]()
레마르크는 다섯 차례나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살아남았다. 그의 전쟁에서의 경험은 약 10년 후 첫 작품으로 발표한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 고스란히 담긴다. 그리고 전쟁의 참혹함과 역겨움, 그리고 청년의 고뇌 등을 함께 소설에 담는다. 그는 파울 보이어라는 자신 또래의 병사가 기록한 형식의 소설을 통해 전쟁의 비극성과 비인간성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전쟁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파울 보이머와 학교의 친구들은 학교 선생님의 강력한 권유로 함께 자원입대한다.(이 소설에서 가장 희극적인 장면은, 그렇게 권유한 선생님이 나중에 어리숙한 모습의 신병으로 자신의 제자들에게 골탕을 먹는 장면이다). 프란츠 캠머리히, 알베르트 크로프, 프리드리히 뮐러, 페터 레어가 그들이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타덴, 하이에 베스트후스, 데터링 등을 만난다. 그들은 갈수록 무엇 때문에 전쟁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누가 이 전쟁에 책임이 있는지도 헷갈린다. 만약 이긴다면 자신들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지도 납득하지 못한다. 적인 프랑스군도 그럴 거라고 여긴다. 그럼에도 그들은 적들을 향해 총을 쏘고, 포탄을 날린다. 오로지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살아간다.
그들은 한 사람씩 모두 죽는다. 전쟁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장면이다. 그래서 자신과의 인연이 적은 이들의 죽음은 일상적이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과 사선을 넘나든 전우의 죽음에는 전혀 그럴 수 없다.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죽어간다. 카친스키가 자신의 업힌 등에서 죽어 있는 것을 보고도, 10분 전만 살아서 멀쩡히 전쟁이 끝나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얘기하던 친구가 죽는 모습을 보고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언제나처럼 그대로였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게 전쟁이다.
레마르크는 죽음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누군가는 기록해줘야 하는 것인 양. 그리고 도대체 이 어린 청년들의 죽음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묻듯이... 살아남더라도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란 건 파울의 독백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동료들 가운데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이 소설을 쓰는 화자가 된 파울도 죽는다. 그래서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기록되지 못한다. 다만 1918년 10월 어느 날이라고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소설에서 묘사하지 못한 그 죽음은 더욱 스산하고 슬프다.
“그날은 온 전선에 걸쳐 평온하고 조용했다. 그래서 사령부 보고서에는 ”서부전선 이상없음, 보고할 사항 없음.“이라고 하는 문구가 씌어 있을 뿐이었다.”
파울의 죽음은 전쟁에서 보고할 가치도 없는 것이었을 테지만, 지금 이 작품을 읽는 우리는 전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전쟁. 그것은 절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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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지연 문학적 특성이 신기했다 지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고 전쟁의 참혹함이 더 잘 느껴지는 작가의 이념과 사상이 들어가 있지 않아서 좋았다 반전 소설이라는 자체가 느껴져서 좋았다 사상이 들어갔다면 전쟁 싫어라고 말하려는 게 느껴졌을텐데 수지 전쟁 영화를 원래도 안 좋아하긴 하는 이유가 사건의 변화가 두드러지지않아서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듯해서 이 소설도 같은 얘기를 계속해서 이번에는 얘가 죽고 다음에는 얘가 죽고.. 비슷한 사건들 문학적으로만 봤을 때는 중간에 루즈하다고 느낌 마지막에 끝나는 문장이 임팩트 있었다 주인공이 죽는 결말을 예상을 했는지 지연 제목의 뜻을 알아보다가 먼저 알게 됐긴한데.. 주변인물의 죽음이 더 빨리 다가와서 놀랐다 지윤 주인공이 죽을 것 같긴했는데 오히려 주인공이 죽은 게 더 나았을 현실 너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느꼈으니 수지 죽음 자체가 놀랍진 않았는데 앞에 다른 사람들의 죽음이 자세하게 묘사되었는데 그것 |
| "어느 날 오전중 두 마리의 나비가 우리들의 참호 앞에서 노닐고 있었다. 그놈은 치트론 나비로서 노랑 날개에 빨간 점이 있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런 곳까지 날아왔을까. 이 넓고 넓은 곳엔 식물 하나 없고 꽃도 없다. 이 나비는 어느 해골의 이빨 위헤 앉아 쉬고 있었다. 이와 꼭 같은 것은 새였다. 새로 말하자면 먼 옛날 부터 전쟁에 익숙해져 있었다. 매일 아침 적군과 아군의 중간에서 종달새가 하늘 높이 날았다. 1년 전에는 종달새가 알을 까놓은 것까지도 본 적이 있었다. 종달새의 새끼도 함께 하늘 높이 날았다. " p.139 죽은 해골위에 올라앉은 나비는 죽은자의 넋인지 모르겠다. 적군과 아군 어느 편에서 속하지 않은 새는 자유롭게 날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적과 아로 구분된 이 젊은 전투병들에게 그런 권리와 자유는 없다. 한달전쯤 서부전선이상없다를 읽었다. 간단하게 읽고 느낀점을 써야지 생각했는데 막상 모니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려면 어떤 말로 시작해야할지 막막했다. 왤까? 거창한 글을 쓰고자 하는것도 아닌데 ... 자꾸만 손가락이 막혔다. 그래도 짧게나만 감상을 적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감상을 몇자 적어본다. 맨 위 구절은 주인공 보우만이 참호속에서 휴식을 취할 때 보게된 풍경이다. 보우만은 이 소설의 작가 레마르크의 분신이다. 레마르크는 1차 세계 대전당시 독일군 병사로 참전했다. 몇번의 사선을 오고가는 실제 전투에 참가했던 그는 종전이후 몇년이 지나서야 이 소설을 쓸수 있었다. 전쟁은 전투병이든 일반인든 전쟁에 참가하는 모든이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의 깊이는 각기 다르겠지만 말이다. 보우만은 책 모으는걸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군인이 되어 전쟁에 참가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병들은 첫 전투에서 아무것도 모른체 죽어간다. 운이 좋아 살아 남은 이들은 여러번의 전투 경험을 통해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보우만도 생존 본능과 1년간 같이 지낸 동료들덕에 운 좋게 지금까지 살아남는다. 살아남는다는것과 비례해 보우만은 과거의 자신을 상실해간다. 과거는 이제 그에게 빛바랜 사진일뿐이다. 그건 정지된 순간이며 먼 옛날 이야기일뿐이다. 전쟁에 참가하기이전과 이후의 그는 분리된다. 휴가를 보내는 내내... 자신에게 전방은 어떻냐는 사람들의 질문이 쏟아질때마다 그는 그냥 웃고 간단하게 대답한다. 그 이상 어떻게 설명할까? 그 이상의 설명을 듣고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것인가? 전방에서는 오직 살아남아야한다는 것만 생각하기에 견딜수 있지만, 후방으로 오면 이제 전방에서의 기억들이 떠올라 괴로운데... 이런 심정을 사람들이 과연이해할수 있을까? 보우만의 이런 경험들이 한편의 영화를 보는것 이상으로 이입되어 들어왔다. 서부전선이상없다는 전쟁 영웅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전쟁으로 인해 자신을 사랑하고 싶고 자신이 사는 세계와 자신의 생활을 사랑하고 싶어했던 젊은이들이 자신의 심장을 향해 총을 쏘는 이야기이다. 전쟁으로 인해 현재를 잃어 버린 청년들의 이야기기도 하다. 레마르크는 전쟁으로 파괴된 젊은 세대의 경험담을 충실하게 묘사하므로써 전쟁을 고발한다. 1930년대 서부전선이상없다가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보고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