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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는 상징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독자로하여금 책을 두 번 세 번 읽도록 만든다’고 했던 카뮈의 평론이 나에게 적잖은 위로감을 주었던게 기억이 난다. 나 뿐만 아니라 까뮈처럼 똑똑하다는 사람들도 카프카의 이야기를 여러번에 걸쳐서야 이해하는구나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었다. 책은 자꾸 은밀한 의식의 흐름을 좆게 했다. 작가가 무얼 말하려 하는지 꾸준히 찾게 만들었다. 그러나 기다림의 끝엔 아무것도 없었다. 작품은 미완성인채로 끝나고 말았다. k가 성안으로 결코 들어갈 수 없듯이, 카프카가 글을 끝맺지 못했듯이, 우리의 인생도 무언가 있을 것 같아 다들 헤메고 버둥거리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아니라는, 아무것도 아닌 인생을 깨닫게 했다. 희망으로 살지만 남는 것은 기다림일뿐 진정한 것이란 없는 그런 것이 인생인지 모른다. 베케토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었을 때와 같이 내 마음은 공감했고 또 너무나 절망적이고.. 허무했다. 그러나 난 그러한 부조리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고자 오늘도 버둥거리고 있다. 이것은 비단 나에게뿐 아니라 우리모두에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은 부조리의 바다가 아닐 수 없다. [인상깊은구절] 그는 또 앞으로 걸어나갔다. 길은 길다랗게 뻗어있었다. 마을의 큰 길은 성이 있는 산으로 통해 있지 않았다. 성이 있는 산에 가까이 접근 하는 하면서 짖궂게 구부러 지곤 했다.어쨋든 성에서 멀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도무지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결국에는 이 이 성으로 구부러져 들어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K는 줄기차게 걸어갔다. 이런 희망이나마 품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