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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불륜의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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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8부로 구성된 소설을 1~4부, 5~8부 두 차례로 나누어 그 감상을 남겨두기로 한다. 다만, 이 감상에서는 안나 카레니나의 불륜과 가정으로부터의 해방에 이르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농촌 귀족 레빈으로 대변되고 있는 당대 농업 경영의 환경적 변화 - 농노제에서 소작제, 자유농에 의한 지분제 및 새로운 토지 소유주의 등장 등 - 와 사회주의 이념의 태동, 죽음과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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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로 구성된 소설을 1~4, 5~8부 두 차례로 나누어 그 감상을 남겨두기로 한다. 다만, 이 감상에서는 안나 카레니나의 불륜과 가정으로부터의 해방에 이르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농촌 귀족 레빈으로 대변되고 있는 당대 농업 경영의 환경적 변화 - 농노제에서 소작제, 자유농에 의한 지분제 및 새로운 토지 소유주의 등장 등 - 와 사회주의 이념의 태동, 죽음과 관련한 인간 존재의 구원의 문제는 차() 회의 감상으로 미루어둔다.)


 

19세기 불륜의 탐사 - 안나 카레니나 vs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 카레닌

 

이 작품 속 인물들의 사유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19세기 중엽 러시아의 시대상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1850년대의 러시아는 정치, 경제,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사회적 전환기에 휩쓸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소설에는 이러한 전환기에 야기되는 가치관, 이념, 제도와 체제의 혼란이 등장인물들의 삶의 실체적 모습에 투영되어 구현되고 있는 까닭이다. 귀족 중심 사회의 점진적 쇠퇴, 여성 지위에 대한 인식의 변화, 전근대적 농노제에서 자유농의 부상,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의 태동 등 당대의 분위기가 작품의 저변에 흐르며, 이러한 변화를 맞이하는 인간들의 고통과 환희를 사랑과 증오, 유대와 혐오의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습이 다들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이 작품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진부하다 할 만큼 평이한 소설의 첫 문장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불행한 가정의 저마다 다른 이유를 탐사하는 것이 이 작품의 중요한 한 축이기 때문일 것이다. 불행하다고 느끼는 동기는 분명 다르다. 인간의 인지 능력, 지식의 축적 정도에서부터 취향이나 추구하는 삶의 가치에 대한 다양성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일 것이다. 도입부는 오블론스키로 불리는 스테판 아르카지치의 외도로 위기에 내몰린 가정을 다루고 있다. 아내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돌리)는 이혼을 결심하지만 시누이 안나 카레니나의 위로와 중재로 이 가정의 균열은 봉합되고 위태로운 안정상태로 이어진다.

 

이에 대해 작가 톨스토이가 남자의 외도에 관대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이 점은 시대성을 넘어서지 못한 톨스토이의 한계라고 정리하는 것으로 족하겠다. 다만, 톨스토이의 변명은 안나의 입을 빌려 올케 돌리를 설득하는 다음의 문장 이라 할 것이다. 안나는 오빠 오블론스키의 입장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부정한 짓을 할지언정 자기의 가정이나 아내는 신성한 것으로 여기고. ...

그런 사람들은 그런 류의 여자들을 경멸하고 있기 때문에

가정에 대해선 관여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에요.

그런 남자들은 가정과 그런 여자들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선을 긋고 있는 거예.(118)”

 

그러면서 안나는 돌리에게 묻는다. ‘마음속에 오빠에 대한 사랑이 있는지, 오빠를 용서할 만큼의 사랑이 남아 있다면 오빠를 용서해줘요라고. 또한 오빠가 벌인 일은 그의 진심이 아니기에 자신이라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용서하겠다고 선언한다. 이것을 톨스토이의 남자의 외도에 대한 변명으로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안나의 이 남성 관점의 변론은 자신이 불륜의 당사자가 되었을 때 완벽하게 그 반대의 언어를 말한다.  즉 이 말을 뒤집으면 외도가 진심이라면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사(情事)를 나눈 후 연인 브론스키를 향해 안나는 이젠 모든 것이 끝장이에요. 저에겐 당신밖에 없어요. 그걸 잊지 말아 주세요(239).”라며, 돌리를 향해 말했던 가족의 신성성을 묻어버린다. 그녀에게 이미 남편도 아들도 없다. 오직 육체적 욕망을 채워주는, 물론 안나는 이것을 사랑이라 부르긴 하지만 브론스키만이 있다. 남편으로부터 용서 받을 수 없는 진심이기에 이 말은 그녀 가정의 파탄에 중대한 의미를 지닐 수 밖에 없다. .

 

사실 이 감상을 쓰고자 한 이유는 불륜을 정당화하는 심리의 탐사를 해보려는 의도이기에 명망 높은 페테르스부르크의 고위 관료인 알렉세이 카레닌과 여덟 살의 아들을 둔 어머니인 그의 아내 안나 카레니나사이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감정적 갈등과 고통의 본질을 들여다보려 한다. 물론 시대의 윤리와 문화적, 관습적 양식의 차이로 인해 오늘의 현실과는 다르지만 인간의 심리적 본질만큼에서는 그 해석을 현재화하는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안나의 세계엔 이미 남편도 아이도 없다. 안나가 브론스키에게 남편에게 모든 걸 밝히고 둘이 떠나겠다고 말할 경우 남편의 반응을 추정하는 다음의 말은 이미 돌리에게 오블론스키를 용서할 만큼의 사랑이 있느냐고 물어본 것과 극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그이는 정치가다운 태도로 분명하고 정확하게 말하겠지요. 나를 이대로 내버려 둘 수 없으니까 모든 방법을 동원해 스캔들을 없애겠다고 말예요. ...그이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이니까요. 그것도 무서운 기계예요. 특히 화가 날 때에는.(301)” 구조적 당위성에 의해 작동되는 기계에 비유되고, 여기에 사악함을 덧씌운다. 이 말에는 남편에 대한 일말의 연민도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의 기만적 행위에 대한 성찰 또한 존재치 않다는 점이다.

 

브론스키와 그의 사촌인 남성 편력으로 소문난 베트시 공작부인을 만나기 위해 몸단장을 하던 안나에게 남편이 도착하자 그녀의 거짓 영혼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하필 이런 때에 온담, 자고 가는 것은 아니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여보, 오늘 밤은 주무시고 가시겠지요?”, “이제부터 우리 같이 가기로 해요.(323)”라는 기만적 언어를 발설한다. 알렉세이 카레닌은 이러한 기만적 언행을 감지하지 못하는 맹추가 아니다. 아마 총 8부작인 소설에서 브론스키가 말과 함께 넘어지는 경마 대회 장면은 이 불륜 이야기의 가장 결정적 장면이라 할 것이다. 귀족들과 고위 관료들의 시선이 빼곡한 곳에서 홀로 걱정의 탄성을 부르짖으며 주저앉는 안나의 행위는 어떤 확정된 상황을 예정한다.

 

이미 귀족 사회에 퍼진 안나와 브론스키의 불륜관계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이 행위는 이를 목격한 남편 알렉세이 카레닌의 명예는 물론 그의 정치적 삶에 보이지 않는 영향을 공식화한 사건이랄 수 있다. 카레닌은 무능한 경쟁상대에게 그의 차지가 될 고위직을 빼앗기는 결과가 초래되기도 한다. 카레닌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속칭 오쟁이 진 남자의 누추함이라는 낙인이 폭넓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랄 수 있다.

 

안나라는 여인의 정말의 속셈은 무엇일까? 정부(情夫) 브론스키와 함께하는, 자기 욕망을 언제든 성취할 수 있는 독립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면서도 카레닌 부인이라는 명예의 자리를 놓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들 세료자에 대한 보호자로서 어머니인 자신의 사랑을 놓을 수 없다고 변명하지만 이것은 단지 자기기만이다. 자신이 카레닌을 벗어나고자 은연히 암시했을 때 브론스키가 보호자가 되겠다고 확신을 주었다면 그와 단 둘이 떠나려했음을 상기하는 장면처럼 그녀에게 아들은 자기 신분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브론스키가 경마대회에 참여하고 있을 때는 이미 안나가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기에 하필 이런 때에 왔다며 남편의 방문을 혐오하면서도 남편의 건강을 말하며 위선을 떨던 여인은 가히 불륜이라는 가증스런 욕망 덩어리라 해도 부족할 듯싶다.

 

경마장에서의 공개적인 불륜의 확신을 주는 행위에 대한 남편의 완곡한 경고성 발언이 주어지자 이에 즉각적으로 혐오와 조롱의 언사를 행하며, 급기야 자신의 부정을 남편에게 고백한다. 아니 선언한다고 해야 옳은 표현이 될 것 같다. 너는 나의 브론스키와의 관계, 그에 대한 사랑에 대해 어떠한 간섭이나 요구도 하지 말라는 적대의 언어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여인은 지속하여 이율배반적인 언행을 보이는데, 브론스키와의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는 혼인의 구속에 몸부림치며, 남편으로부터의 해방을 갈구하면서도, 귀족 사회에 자신의 불륜이라는 추함이 공식화되는 것은 수용치 않으려는 것이다. 이는 남편의 공식적인 승인, 카레닌의 아무런 보복도 가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불륜을 정상화하고 싶은 욕망이다.

 

카레닌의 입장을 보자. 그는 부정을 선언하듯이 통고한 안나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사를 밝힌다. 세상 사람들이 이 소문을 모르고 있는 한, 나의 명성이 더럽혀지지 않는 한 난 모른 체할 작정이요.... 당신 스스로가 당신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행동을 할 경우엔 나는 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에 적합한 방법을 강구할 것이오.(498)” 불륜의 사실이 세상에 직접 사실로서 공식화되기 전까지는 표면적 관계를 손상시키지 말아달라는 주문이다. 그리고 부연한다. 당신은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더라도 정숙한 아내로서의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을 것이오....식사는 집에서 하지 않을 것이오.(499)”

 

카레닌은 불륜 이전의 아내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를 기계라고 멸시하는 것은 정부에 매몰된 여인이 으레 갖게 되는 증오의 언어이지 이것이 카레닌을 설명하는 언어가 될 수는 없다. 그는 고위 정치 관료다. 자신의 정치적 과업에서 성취를 얻어내고자 하는 전형적인 인물이랄 수 있다. 안나는 그가 사랑이란 애초에 가지고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설명과 함께, 오빠 오블론스키의 입을 빌려 스무 살 연상의 남자와 결혼한 것이 애초에 잘못된 것이었다는 언급이 있다.

 

그러니까 이 두 사람의 결혼 성사에는 남자가 이미 쌓아놓은 고위 정치 관료라는 명망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월이 지나고 나니까, 사랑이라는 낭만적 관계, 육체적 욕망의 실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고 보니 사랑이 사회적 지위가 제공하는 안락과 명망보다 소중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늙은 남자와의 결혼관계를 무용화 시키겠다는 주장을 하는 여자에게 남자가 지켜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카레닌은 중요 지역 정책 실행과 관련하여 적대적인 경쟁자들과의 정치적 싸움으로 곤혹을 겪는 와중에 아내의 불륜이 몰고 올 자신의 명예와 유무형 관계의 훼손, 내면적으로는 배신에 대한 고통으로 괴로워한다. 그는 마침내 이혼을 결심하고, 모스크바로 고뇌어린 짧은 여행을 도모하지만, 안나로부터 죽음의 고통에 처해있으니 페테르스부르크의 집으로 돌아와 달라는 전보를 받게 된다. 안나의 전갈 내용에 대해 반신반의하며 아내의 죽음이 도래하여 마침내 이 고통스러운 위협의 상황이 끝나기를 기대한다. 안나라는 여인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브론스키의 아이를 낳으며 산욕열로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게 되자 남편을 간곡히 찾았다는 것과, 도착한 남편에게 브론스키와의 만남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겠다며 구구절절 용서를 빌며 참회하는 장면이다. 이것은 남편을 향한 또 한 번의 기만으로 드러난다.

 

안나에 대한 증오로 가득했던 카레닌은 이러한 안나의 변화에 대해 연민과 용서의 마음으로 전환하여 극진한 간호와 함께 부부로서의 정상적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건강을 회복하자 안나는 남편과의 마주침 자체를 불쾌함, 혐오스러움으로 인식하며 한 집에서 산다는 것 자체의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죽음만이 이 상태로부터의 구원이라며 오빠 오블론스키에게 하소연한다.

 

여동생을 위해 오블론스키는 카레닌에게 안나를 해방시켜줄 것을 완곡하게 부탁하고, 카레닌은 결국 안나와의 이혼을 승낙한다. 그러나 안나는 이혼을 선택하지 않는데, 자신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으며 브론스키와의 결합만을 욕망했기 때문이랄 수 있다. 안나는 아들과 남편을 저버리고 브론스키와 갓 낳은 딸과 해외로 떠나버린다. 안나는 그녀 자신의 이익을 완전하게 성취한 것이다. 고위관료 아내의 신분과 귀족의 평판도 잃어버리지 않고 욕망의 대상인 연인 브론스키를 마음껏 만끽하는 자유를 얻은 것이다. 카레닌과의 결혼은 실수였다고 부르짖으며 세상이 불륜이라 칭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안나의 이 성취가 과연 행복의 지속적인 관계가 될 수 있을지.

 

독립된 인간이 될 권리, 이게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구속된 것(603)”이 당대의 여성이라 주장하는 페스초프라는 인물이 오블론스키의 저택 만찬에서 하는 말은 시대성이 내포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제약을 넘어서는 것의 어려움에 대한 지적일 것이다. 안나의 행위를 이러한 시대성의 돌파라 해석해야 할까? 나는 아니라고 이해한다. 결혼을 절대적이고 신성불가침의 파괴할 수 없는 제도라 하는 것이 아니라, 카레닌과 이룩한 가정을 일방적으로 파괴하는 안나의  배신 행위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위선이 어닐까?

 

당시 러시아의 이혼 법은 이혼 후에 여성은 정부(情婦)는 될 수 있었으나 정식 혼인관계를 새로이 얻을 수 없었으며, 귀족 사회의 관습 또한 불륜의 당사자인 귀족은 그 세계에서 더 이상 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지성을 갖춘 귀족 여성인 안나가 이러한 법적, 관습적 현실을 알지 못했다고 할 수 없다. 충분한 지적 이해 속에서 안나는 불륜을 선택했으며, 이를 배우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그로부터 자신의 욕망을 위한 이해, 즉 불륜에 대한 완전한 방임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라 여겨진다. 물론 카레닌은 안나의 삶의 복귀를 위해 합법적 남편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내려놓는다. 기다렸다는 듯이 여인은 욕망의 대상과 함께 날아가버린다. 끊임없이 자기 구속의 명분으로 삼던 아들 세료자까지 버려두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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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캐릭터 - 레빈 in th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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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습관은 - 요즘엔 더욱 집중력이 떨어진지라 동시에 두세권의 책을 읽는다. 요즘에는 역사서와 고전소설을 함께 읽고 있다. 아무 약속도 방문객도 예상되지 않는 날엔 종일 집중해서 역사서를 읽고, 집중도 안되고 내 맘이 번잡한 날엔 고전을 집어들고 인물 하나하나와 친해지며 작가가 고민하고 얻은 그의 사상을 흡수하는 것이다.   요즘 읽는 고전은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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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습관은 - 요즘엔 더욱 집중력이 떨어진지라

동시에 두세권의 책을 읽는다.

요즘에는 역사서와 고전소설을 함께 읽고 있다.

아무 약속도 방문객도 예상되지 않는 날엔

종일 집중해서 역사서를 읽고,

집중도 안되고 내 맘이 번잡한 날엔

고전을 집어들고 인물 하나하나와 친해지며

작가가 고민하고 얻은 그의 사상을 흡수하는 것이다.

 

요즘 읽는 고전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이다.

로맨스 소설로 흔히 불륜으로 인해 나락에 빠진 주인공 안나를

떠올리기 마련이겠지만, 읽어본 사람은

레빈이라는 인물에 푹 빠지게 되리라 생각한다.

학창시절 부터 닥치는 대로 문학소설을 읽었지만

20대 중반 이후 부터는

그 비탄하고 허무적인 시각으로 그린 고전도 읽지 않게 되었고,

요즘엔 그 중 도스토예프스케, 톨스토이의 작품과 같이

작가의 진정한 신앙과 고뇌깊은 믿음을 쏟아낸 글을 찾게 되었다.

아직 책의 중반부에 있지만 <안나 카레리나>를 읽음으로

내가 기대하는 부부의 모습에 색을 더하고 있다.

 

'안나'라는 인물은 매력적이고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열정없는 결혼생활에 다가온 뜨거운 애정에 운명을 맡기게 되고

그 정부인 젊은 군인 장교의 아이까지 낳게 된다.

남편 '카레닌'은 명예와 일에 대한 성취감을 긍지로 삼는 인물로

20년 차이의 부인의 섬세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처지가 명예롭지 못한 것이 되지 않도록

이성적 의지로 부인의 부정을 참아내는 인물이다.

안나-카레닌 부부 관계에서

부부간의 진정한 교류와 열정적인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유혹에 빠지고 부부관계가 깨지기 쉬우며

인간적인 힘으로 인내하고 상황을 이성적으로 처신하는 것이

오히려 감성에는 돌이킬 수 없는 혐오감과

공감되지 않는 사이를 만드는 걸 볼 수 있었다.

카레닌에게 종교적 가르침은 교육적이고 사회적인 영향력이지

진정한 자기 성찰과 깊은 믿음에서 나온 신앙이 아니라 생각된다.

아내의 부정으로 인해 이혼이나 용서의 문제에 있어

기독교 사회에 따라 관습적인 사고에 따를 뿐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고 따르는 모습은 찾을 수 없다.

그의 강한 이성적인 의지로 기독교적 관습을 따르려는 행동은

아내 안나에게 오히려 반감과 교감 없는 상대로 여겨지게 된다.

 

반면 '레빈'은 당시 귀족 사회의 관행인

'부재지주' -자기 영지를 떠나 도시에 사는 지주- 를 따르지 않고

자기 영지를 지키며 농민과 노동의 귀중함을 사랑하는 청년이다.

섬세하고 남에게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깊은 성찰로 얻은 길을 따르고자 하여

하나님의 존재에 의심을 품었으나

구원과 영원에 대해 고민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인물이다.

낮은 자존감으로 '키티'와 결혼에 대해 어려움을 겪으나

깊은 신앙심을 가진 그녀와 혼인하게 된다.

키티는 두 남자 사이에서 자신의 감정을 확신하지 못하여

처음엔 레빈을 거절하고 그 후회에 병을 얻어 외국에 요양을 간다.

그 때에 키티는 자신이 따르는 신앙심에

순동하는 행동 - 봉사- 이 필요하며

그 행동이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에 대한 사려깊은 배려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 안나-카레닌과 키티-레빈 부부를 보면서

부부가 진심으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교감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이해와 사랑은 각자의 신앙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소설의 첫 시작에서

안나는 카레닌의 어감을 '비웃는 말투'로 묘사하고 있으며

카레닌도 예의 바르지만 사무적인 태도로 아내를 대한다.

20년의 나이차도 있겠지만

사교계와 화려한 사회적 지위에 젖어든 삶에

자신의 속사람에 대한 성찰은 없다.

그러나 레빈은 농촌영지에서

사회적으로 약자인 농민들과 마주 대하며,

키티는 외국 요양지에서

도움이 필요한 병자와 그 가족들과 교류하며

자기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여 그 답을 신앙에서 찾게 된다.

 

아직 책을 끝내지 않았지만

내가 사랑하고 닮고 싶은 부부는 어떤 모습인지 과히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모두들 서점으로 가서 톨스토이와 만나시길.

i*****e 2010.12.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