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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을 보면서 이 표현을 보면 생각이 든다. ‘안 쓰는 사람’에서 변화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존재로서의 나. 읽다 보면, 옮기고 싶고, 옮기다 보면, 쓰고 싶고, 쓰다 보면, 나누고 싶어진다. 이런 흐름을 갖도록,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돕는 내용이 담긴 책을 오늘 읽은 것이었다.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문장을 쓰고 싶은데 안 써지는, ‘쓰는 사람’을 욕망하는 독자를 위한 저자의 솔루션이 가득 담긴 책. 저자는 일상을 이야기하는 에세이스트다. 다른 작가들도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그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고 순간을 포착하고 진실되게 써 내려가는 사람이다. 이와 반대로 루틴적인 일상을 지겨워하는 독자와 나는 올바른 모습인가. 꿈이 이루어지길 바란다면, 가만히 멈춰 있는 신호등이 아니라 움직여야 한다. 날마다 꾸준히 해야 한다. 일도 열심히 하고 글도 열심히 읽고 쓰고. 부디,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꿈꾸고 남기고 나눌 수 있는 존재, ‘쓰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저자는 그 길을 무척이나 최선으로 보여주었다. 어떻게 했나면, 책을 읽어보시면 된다 ^^ 그럼 전 20000. ‘읽는 사람’이 남겨봄.
#왜쓰냐고묻는그리스도인에게 #조명신 #샘솟는기쁨 #신앙을일깨우는글의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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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혼을 갈아 넣는다’고 할 정도로 녹록지 않은 작업이다. 작가들이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쓴 글을 수없이 고쳐쓰기를 반복한다니 그야말로 글이라는 게 쉽게 써지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냥 끄적끄적하며 쓴 글들도 책으로 출판하는 것을 보면 누구에게는 글쓰기가 버거운 일이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그냥 즐거운 놀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 쓰냐고 묻는 그리스도인에게》라는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느낌은 저자가 글 쓰기를 매우 힘들어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평생 글 쓰는 법을 배우지 않은 저자가, 어느 날 문득 누구보다 더 바쁘게 살고 있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찾는 그런 시간 속에서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있고, 영혼이 가출 직전인 목회 속에서 붙잡은 것이 글쓰기였다. 살기 위해서 쓰기 시작한 글, 잘 쓰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으려고 붙든 것이 글쓰기였다는 말에 많은 공감이 된다.
저자의 글은 진솔하다. 오래도록 자신과의 싸움을 기록한 것이라 많은 공감이 간다. 누구나 “왜”라는 질문 앞에 오래 서 있으면, 답을 얻게 된다. 저자는 그 ‘왜’라는 물음 앞에 이렇게 답해 준다. 무엇보다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조급했는지, 왜 그렇게 인정받고 싶었는지, 왜 그렇게 쉽게 상처받고 흔들렸는지를 글 앞에서 들키곤 했다는 고백은 읽는 내내 마음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저자의 글쓰기는 대로는 회개였고, 때로는 위로였고, 때로는 기도였다. 좋은 글보다 먼저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 시작한 글쓰기는 읽고, 묵상하고, 쓰고, 다시 고쳐 쓰는 반복을 통해 글이 저자를 다듬었고, 다듬어진 저자가 다시 글을 쓰는 순환으로 이어진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것은 저자의 숨김없는 토함이다. 자신의 상처와 후회까지도 끄집어내어 보여주는 것이다. ‘자꾸 후회하는 진짜 이유’에서 읽던 걸음을 멈추었다. 습관에 관한 이야기다. 어찌 나와 이렇게 비슷할까? 라는 생각에 멈추어서 다시금 곱씹었다. 상황이 비슷한 게 아니라 습관의 성향을 말하는 것이다. 저자는 글쓰기가 막막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여기서 저자는 과거의 일로 먼저 글을 써보라고 조언한다. 과거의 기억, 주눅 들었던 순간, 창피했던 흑역사, 위로받았던 말과 고마웠던 경험. 이 모든 것이 글감이 된다는 것이다.
이 책을 글쓰기의 기술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 “왜 쓰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아니 “왜 써야 하느냐?”라는 질문으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게 다리를 놓아주는 책이다. 그러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렵지만 또한 어렵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오늘부터 시작한다면 좋은 결과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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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신 저의 『왜 쓰냐고 묻는 그리스도인에게』를 읽고 글을 쓴다는 것! 나 자신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제일 중요한 수단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솔직히 글을 써보지 않으면 잘 알지 못할 것이다. 한 줄의 글이나 한 문장의 글의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나 자신이 생각하고 실제로 겪으며 함께 했던 것을 글로 나타내야 하기 때문에 나 자신을 깊숙이 들여다보며 많은 끄집어 내야만 가능한 일이다. 나 자신을 가장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것은 바로 글쓰기라 말할 수 있다. 글은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진솔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담는 시간이다. 따라서 이런 글쓰기 시간을 매일매일 꾸준히 갖는다는 것은 최고의 자신 정화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특히나 새벽 시간이랄지 일정 시간을 정하여 책을 읽으며 글쓰기 시간을 통하여 나름의 내 생각을 정리하며, 나름의 목표하는 분야에 대하여 글쓰기에 도전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글쓰기는 절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른 모든 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글쓰기가 그런 것 같다. 나 자신도 벌써 인생 2막에 들어선지도 오래 되었다. 남들이 이야기하는 바에 의하면 그저 편하게 생활하면 될 것인데... 왜 고생을 사서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걱정을 많이 해준다. 그것은 나이가 있는데에도 많은 것을 시도하는데 있다. 늦깍이 공부에도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이버대학 온라인 공부에도, 글쓰기에도 참여하여 블로그에 서평쓰기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매일 아침 인사로 짧은 글로서 하루를 열게 하는 활동을 부지런히 행하고 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부지런히 참여하고 있다. 만약 이렇게라도 행하지 않는다면 당장은 지내기가 편할지 모르지만 나의 뇌는 퇴화되고, 글쓰기 능력도 멈추어지고, 생각 능력도 저하될 수밖에 없을건데 그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이런 작업을 하면서 여러 가지로 부족한 면을 발견하곤 한다. 바로 이런 좋은 책을 만날 때이다. 나 자신의 멘토처럼 다가오면서 새롭게 마음의 울림으로 전해와 나에게 더 강하게 버틸 힘을 채워주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저자는 글을 쓴다고 했을 때 무슨 글쓰기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저자는 신앙과 삶을 이어주는 글쓰기를 안내하며, 때때로 전할 수 없었던 생각과 마음이 글이 되어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쓰기의 과정은 치유와 회복의 여정이었으며, 상처와 실패, 부끄러운 기억까지 새롭게 해석되었다. 쓰지 않을 수 없었던 믿음의 고백과 내적 성찰이 진솔하게 담겨 있어 더욱 더 감동적이다. 글쓰기를 막막하게 느끼는 이들에게 묵상하는 글쓰기를 안내하는 이 책은 새벽에 그리고 늦은 밤에 길어 올린 문장의 온기였다. 미처 몰랐던 ‘나 자신’을 발견하고, 어떻게 삶이 변화되는지 보여준다. 매일 하나님과의 대화였고 동행이었다. 저자는 이를 특별한 재능이라고 한정하지 않으며,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임을 강조한다. 바로 그래서 나 자신도 저자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인생 2막의 글쓰기에 더욱 더 자신감을 갖고서 도전하겠다는 다짐을 말이다. 특히나 새벽시간에 성경과 묵상도 적극 활용하면서 좋은 글쓰기에 열심하여 나만의 책을 만들어 보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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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도 매일 성경을 읽고 글을 쓰기는 하는데 엄마가 진짜 매일 글을 쓰고 시를 쓰신다. 아빠도 시를 쓰신다. 이 책을 보고 가족들이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배워야 할 것 같다. 저자 조명신은 청년 시절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저자는, 오늘도 교회가 희망하는 복음에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은 태도를 본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좋은 믿음과 좋은 태도가 함께 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 동신교회를 거쳐 현재 포항제일교회 공동체 목사로 있으며, 낮에는 사역에 헌신하고, 이른 새벽과 늦은 밤에는 글을 쓰고 있다. 하루하루 애정하는 글쓰기를 통해 믿음과 삶을 연결하고, ‘기도하는 문장’을 통해 독자를 만나는 오늘을 꿈꾼다. 저자는 세 아들의 아버지이자, 일상의 의미를 찾아 기록하는 에세이스트로서 10년 넘게 매주 에세이를 읽으며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을 모아 왔다. 그 문장들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기록하며, 위에서 떨어지는 말이 아니라 옆에서 들려주는 말이 되길 희망한다. 저서는 《흔들려도, 다시, 오늘》 《태도, 믿음을 말한다》《성품이 좋은 사람》이 있으며, 《왜 쓰냐고 묻는 그리스도인에게》를 통해 글쓰기를 신앙의 실천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글쓰기는 결코 무거운 숙제도, 먼 미래에나 도달할 수 있는 아득한 목표점도 아니다.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소수에게만 열려 있는 좁은 문은 더더욱 아니다. 저자는 거창한 준비를 하느라 망설이는 대신, 지금 바로 펜을 들고 일상에서 글감을 찾아보라고 친절하게 권한다. 그 조언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귀한 보화가 이미 자신 안에, 그리고 자신이 지나온 평범한 경험들 가운데 숨겨져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 보화들은 그 자체로 부끄러워 꽁꽁 감추고 싶었던 일일수도 있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흠집들조차 진지한 성찰과 마주할 때 아름다운 글감이 될 수 있음을 이 책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렇게 발견한 아름다움은 종이 위에 적힌 글에만 머물지 않는다. 글을 쓰는 과정은 본인 자신에게 빛을 주어 자신의 고유함과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며, 치유와 성장을 가져다준다. 무엇보다 글쓰기는 자꾸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혼자 걷는 길은 두렵고 외롭다. 정말 이 길이 맞을까? 이런 의심과도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주위에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나마 덜 외롭다. 저자가 간혹 넌지시 글을 쓴다는 걸 알릴 때면 왜 그런 일에 시간을 낭비하느냐, 잠도 부족한 마당에 새벽부터 무슨 글쓰기냐는 말을 들었다. 한심하다는 눈빛은 글쓰기에 의심을 더했다. 그때마다 여기서 포기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흔들렸다. 하마터면 정말로 그만둘 뻔했다. 그런데 용케 순간을 넘겼다. 하지만 그냥 다음 새벽에 또 책상앞에 묵묵히 앉았을 뿐이다. 저자는 그저 하루만 더 써보자는 마음으로 버텼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 전에, 먼저 새벽에 책상 앞에 앉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제 글쓰기는 커피만큼 없으면 안 되는 것이 되었다. 문해력은 책을 읽고 파악하는 능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먹고사는 것도 바빠 죽겠는데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고 말한다. 사람들은 책을 읽어도 바뀌는 건 없더라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신앙생활하느라 숨 돌릴 새도 없는데 어떻게 책까지 읽느냐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성경만 읽으면 되지 무슨 책까지 읽느냐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책을 읽는다고 지금 당장 눈에 뛸 만한 변화가 나타나는 건 아니다. 다만 책을 통해 얻고 깨달은 내용이 서서히 온몸에 스며들면 시간이 지날수록 크고 작은 변화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미미한 변화라 시시하게 여길 수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 이전보다 문제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능력이 업그레이드된다는 사실이다. ‘책을 통과하고 나온 몸은 이전의 몸이 아니다. 책속에 녹아 있는 다양한 사유를 관통한 몸이며 자신을 어제와 다른 곳으로 이끌고 갈 수 있는 몸이다.’ 《책 쓰기는 애쓰기다》의 저자 유영만 교수의 말이다. 문해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과 다름없다. 진짜 문해력은 고득점이 아니라 문제 해결 능력으로 나타나야 한다. 문해력을 높이는 데 글쓰기만 한 게 없다. 글쓰기를 하려면 책을 가까이하게 되고, 소화한 내용만큼 글에도 그대로 반영되니 말이다. 문해력이 떨어지면 문맥과 상황 파악하는 데만 어려움을 겪는 게 아니다. IQ와 EQ까지 뒷걸음친다. 그러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를 키우게 된다. 글쓰기는 떨어진 문해력을 들어 올리는 지렛대요, IQ와 EQ를 함께 끌어올리는 도르래와 같다. 이것이 책을 읽는 데만 그치지 않고 글쓰기를 하면 좋은 이유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의 자신을 비교해 봐도 그 차이가 느껴진다. 저자는 한때는 글을 쓰는 작가는 따로 있다고 믿었다. 그런 부류의 사람은 자신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고 여겼다. 그런데 어느 날 글을 쓰고 있었고, 어느 날에는 작가라고 불리게 되었다. 작가는 삶과 경험을 글로 나누는 사람이다. 더구나 목회자라면 한 단계 다른 영역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을 넘어 말씀과 삶을 연결하는 성찰을 기록하고 깨달음을 나누어야 한다. 그러나 작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되어 가는 사람이다. 저자 역시 그렇게 빚어진 사람이다. 저자도 누구의 글을 흉내 내려 하지 않았다. 글쓰기를 만만하게 시작한 덕분이었다. 만만하게 시작했지만 만만치 않은 날은 수없이 많았다. 저자는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매일 현관문을 나서서 걷다보면 어느새 근력이 생기듯, 글쓰기도 매일 조금씩 쓰다 보니 글력이 붙었다. 작은 조각 같은 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이 되어 있었다. 우리에게는 걷기처럼 그냥 쓰는 일만 남았다. 쓰다 멈춰도 크게 손해 보는 것도 없다. 인생을 망치는 부작용도 없다. 한 사람이 하나의 역사라고 했다. 우리 안에는 이미 엄청난 양의 이야기가 소장돼 있다. 우리는 걸어 다니는 도서관이다. 다만 꺼내서 펼쳐 읽지 않을 뿐이다. 책이 없어서 못 읽는 게 아니듯,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쓸 이야기가 없어서 못쓰는 게 아니다. 꺼내서 쓰지 않기 때문에 못 쓸 뿐이다. 직접 글을 쓰다 보니 달랐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이 수두룩했다. 개인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 누군가를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한다는 걸, 저자도 글로 풀어내면서 확인하고 있다. 저자의 책을 읽으니까 하루에 글을 조금씩 써야 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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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가 일흔을 넘기고 나니 세상의 많은 일이 덧없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내 안에 쌓인 수많은 기억과 생각들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인생의 의미를 반추하고, 내가 속한 공동체와 이웃들에게 전하고 싶은 가치들을 글로 옮기는 작업은 이제 내 삶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그러던 중 마주한 조명신 목사의 <왜 쓰냐고 묻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단순히 ‘글쓰기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었다. 왜 우리가 이 나이에도, 그리고 이 시대에도 끊임없이 글을 써야 하는지 그 영적이고 본질적인 이유를 일깨워주는 묵직한 이정표였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의 글쓰기를 ‘신앙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자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로 정의한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졌다. 오랜 세월 교회를 출석하고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막상 내 신앙의 깊이와 삶의 질곡 속에서 만난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기록해 둔 적이 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저자의 말대로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에 머물러 있는 추상적인 믿음을 구체적인 문장으로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그것은 나 자신을 정직하게 마주하는 성찰의 시간이며, 내 삶에 간섭하셨던 신의 손길을 확증하는 거룩한 노동이다.
특히 책에서 강조하는 ‘일상의 기록’에 대한 부분은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젊은 시절에는 거창하고 대단한 업적이나 지식을 남겨야만 가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 속에서 신앙적 의미를 발견하고 이를 기록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역설한다. 텃밭을 가꾸며 느끼는 생명의 신비, 이웃과 나누는 작은 정, 나이 들어감에 따라 겪는 육체의 쇠락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영적인 성숙 등 우리 삶의 모든 조각이 글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은 큰 위로가 되었다. 노년의 일상은 결코 멈추어 있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오랜 세월 축적된 지혜가 일상의 작은 순간마다 빛을 발하는 황금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글쓰기가 개인의 묵상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과 소통하며 공동체를 세우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내가 속한 지역 사회와 이웃들을 떠올렸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세대 간의 단절과 갈등, 이기주의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삭막한 세상 속에서 노년의 기독교 문해자가 담담하게 써 내려간 삶의 성찰과 따뜻한 시선은,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고 공동체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조용한 마중물이 될 수 있다. 법과 절차, 효율성만 강조되는 세상에 온기와 배려가 담긴 문장으로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늙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이자 사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글을 쓰고 싶지만 망설이는 이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건네면서도, 동시에 날카로운 통찰을 잃지 않는다. 현란한 수식어나 자기를 과시하기 위한 글쓰기를 경계하고, 오직 진실함과 겸손함으로 독자 앞에 서야 함을 강조한다.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의를 드러내거나 타인을 훈계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데, 저자의 매서운 권면은 내 글쓰기 태도를 잡아주는 좋은 경종이 되었다.
인생이라는 긴 여정의 황혼녘에 서서 이 책을 읽은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책장을 덮으며, 다시금 펜을 쥐는 손에 힘을 주게 된다. 내가 살아낸 세월의 무게만큼, 그리고 내 안에 흐르는 신앙의 깊이만큼 성실하게 기록해 나갈 것이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정직하고 따뜻한 글로 내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 그리하여 다음 세대와 이웃들에게 작은 징검다리가 되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왜 쓰냐’고 묻는 이 세상에 내가 삶으로 던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대답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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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냐고 묻는 그리스도인에게》 조명신지음 #샘솟는기쁨 나를 가장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것은 책을 읽으며 감상문을 쓰는거다. 책을 읽고 감상문을 쓰며 내 생각을 정리한 지도 어느덧 7년이 되어 간다. 감상문을 쓰는 시간은 단순히 기록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 마음을 마주하고 다듬는 시간이다. 특히 어둑한 밤의 고요 속에서 쓰는 글은 하루를 버틸 힘을 채워주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내 주변이나 SNS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많다. 저자는 글을 쓴다고 했을 때 무슨 글쓰기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을 멈추게 하는 것은 타인의 말보다 스스로 만들어낸 두려움일 때가 많다. 가장 오래 붙잡고 읽었던 문장도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나를 멈추게 한 건 그들의 말이 아니라 지레 겁을 먹은 나 자신이었다." 나 역시 누가 틀렸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혼자 작아질 때가 많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실패를 먼저 상상하며 뒷걸음질 치기도 한다. 그래서 이 문장은 지금의 나에게 더욱 크게 다가왔다. 지레 겁먹지 말고 한 걸음 내딛으라는 응원처럼 들렸다. 책을 읽으며 또 하나 마음에 남은 것은 기회에 대한 태도였다.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는 일단 붙잡아 보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보고 아니라면 내려놓으면 된다. 하지만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내 길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마침 나도 다시 시작하는 일이 있다. 지금이 아니면 또 미루게 될 것 같아 용기를 내어 첫발을 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이야기가 더욱 현실적인 위로가 되었다. 저자의 글은 차분하면서도 명료하다. 담담한 문장 속에 삶을 꿰뚫는 통찰이 있어 자연스럽게 필사하게 된다. 말에는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듯 글에도 사람을 일으키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저자에게 글쓰기가 치유이자 삶을 충전하는 통로였다면, 나에게는 아직 감상문이 그런 역할을 한다. 책을 읽고 그 안에 내 생각과 경험을 덧붙여 쓰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이 조금씩 정리된다. 난중에는 내 이야기를 하고싶은 날도 오겠지하면서. 이 책은 글쓰기 기술을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자신을 어떻게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를 함께 고민하게 하는 책이었다. 나 역시 언젠가는 감상문을 넘어 나 자신의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 그 시작도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지레 겁먹지 않고 오늘 한 줄을 써 내려가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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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글의 힘을 연관지어 사색해보고자 하는 마음을 이 책 <왜 쓰냐고 묻는 그리스도인에게>를 통해서 이루어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신앙을 일깨우는 글의 힘'을 알려주겠다는 목차처럼, 그만큼 신앙심을 가지고 글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지극히 자극하고 묵상하는 글쓰기에 대해 안내해준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신앙심과 자신의 삶을 연관지어 글쓰기를 실천해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안내해주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글로 표현함으로써 큰 위로와 공감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찬란한 경험을 하도록 해주는 것도 무척이나 마음을 흐뭇하게 하기에 더 열심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보고 배우게 되는 책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 시도하지 않았을 때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는데, 자기 자신에게 큰 힐링과 치유의 시간을 가져다주며 힘든 마음에 따뜻한 회복의 기회를 선사한다는 것도 알아차릴 수 있어서 마음이 행복해진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아차리고 어떤 변화를 이루어낼지에 대해 스스로 충분히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가는 것은 물론, 그로 인한 삶의 변화와 성장의 모습까지도 알아차리고 감사해하도록 안내하는 책이 되어 주기에 충분하다. 특별히 잘 쓰는 것을 강조하지 않고 누구나 쓸 수 있다는 격려의 손길을 던져주는 것은 물론이고, 그저 쓰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며 다양한 기억들을 써내려가보고 그로 인한 신앙적 고백의 성찰의 순간을 맞이하도록 도와주기에 충분하니 더 만족감이 크다. 글쓰기는 그야말로 가장 깊은 사색을 하며 자신을 바라볼 수 있고 치유와 성찰의 기쁨을 누리도록 도와주는 활동임을 깨우치고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진 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내용들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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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는 제목처럼 글쓰기를 잘하기 위한 방법이나 글감을 찾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단순한 글쓰기 안내서가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끄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저자가 글쓰기를 특별한 기술이나 재능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거창하게 준비할 필요 없이 지금 바로 펜을 들고 평범한 일상에서 글감을 찾으라고 권한다. 나 역시 글을 쓰려면 특별한 경험이나 좋은 글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살아가는 하루의 작은 사건과 그때 느낀 감정도 충분히 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저자가 글쓰기를 ‘브레이크’라고 표현한 부분이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아가면서 정작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한다. 글을 쓰기 위해 잠시 멈추면 오늘 내가 왜 기뻤는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왜 상처받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결국 글쓰기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글을 쓰면서 자신의 조급함과 인정받고 싶은 마음, 쉽게 상처받고 흔들리는 모습을 발견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글쓰기는 나를 꾸미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머문다.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감추지 않고 마주하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길을 발견하게 된다.
책에서는 글쓰기를 시작하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여러 도서를 중간 중간에 소개하고 있는데 단순히 책의 제목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와 삶의 성찰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소개해 주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책을 읽으며 글쓰기를 공부하면 좋을지 참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덮으며 ‘왜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이제 글을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보기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보고, 내 삶을 보고, 그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위해 쓰는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글쓰기의 기술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살아가는 자세를 가르쳐 주었다. 앞으로 나도 잘 쓰려고 애쓰기보다 하루의 삶을 천천히 돌아보고,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기록해 보고 싶다. 평범한 나의 삶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의미와 빛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며, 글 한 줄 한 줄을 나와 하나님이 함께 걸어온 신앙의 흔적으로 남기고 싶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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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글을 쓰는 이유와 목적이 다른 것 같으면서도 상당히 비슷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보다 더 자신의 삶을 성찰해서 더 나은 길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이요, 자신의 경험과 삶을 통해서 또 다른 누군가에서 어떤 의미나 메시지를 나누는 것이요,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에 또 다른 새로운 자양분을 삼고자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어찌 보면 정말 좋은 선순환을 일으키는 일이 글쓰기 임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가? 그래서 원하는 목표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가는 또 별개의 문제처럼 느껴진다. 이번에 읽게 된 책 [왜 쓰냐고 묻는 그리스도인에게, 조명신 지음]은 이러한 고민과 질문을 가진 비슷한 연배나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과 또 자신이 처해진 위치에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도전을 준다고 하겠다. 물론 저자의 표현처럼 에세이 이기에 어떤 강력한 표현이나 신학적인 문구들을 기대했다면 다소 아쉬울 수도 있겠다. 나 역시 신앙을 일캐우는 글의 힘이라는 멘트로 인해서 성경이나 아님 보다 더 많은 분량(?)의 신앙적 이야기를 살짝 기대한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왜 글쓰기를 시작해서 어떤 열매들을 거두고 경험했는지를 잔잔하면서도 솔직히 이야기해줌으로써 비슷한 고민과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글쓰기 삶을 위한 도전 부분에서는 정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첫 번째 PART1 부분이 바로 왜 글쓰기를 했는지 그래서 어떤 유익한 점이 있었는지를 잘 이야기해준다. 저자 자신도 목회자로서 엄청 많은 사역의 분량과 업무량, 세 자녀를 키우는 부모 등등의 입장에서 정말 자신이 무너지지 않기 위한 처철한 싸움 가운데 글쓰기를 선택했는데 매일 매일의 그 시간 들을 통해 자신의 삶에 어떤 유익됨이 있었는지 어떻게 자신이 더 성숙하고 성장하며 세워질 수 있었는지를 중간 중감 자신의 신앙 묵상과 더불어 우리에게 편안하게 들려준다. 이후 나머지 PART 2, 3, 4 에서는 글쓰기에 도전받은 독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얀 도화지에 글을 써내려 가야 할지 저자만의 방법과 인싸이트를 한 가득 풀어 놓는다. 어떤 어려운 방법적인 스킬들이 아닌 보다 실전에서 바로 활용가능한 실전팁들이다. 예를 들어 글감의 소재가 막막할 때 자신의 과거 일이나 주눅 들었던 일, 창피한 일, 고마웠던 일, 환대, 여행 경험 등 얼마든지 우리가 한번 쯤 이상 경험했을 일상을 소재들을 잘 일러준다. 글쓰기의 재능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 미래를 위해서 다가갈 것을,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글쓰기의 꿀팁들도 하나 하나 소개한다. 잘쓰기 보다 그냥 쓰기 시작해서 빌드업과 좋은 질문, 관찰, 필사,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기 까지 저자 나름의 글쓰기의 시간 들이 오래 담긴 인싸이트가 정말 소중하다 생각되는 장이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결과물은 쉽게 생각하면서 막상 자신이 해보려면 안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글쓰기 영역이 그런 것 같은데 이번 이 책을 통해 글쓰기를 위한 동기 부여부분에서 특히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생각 된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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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형 AI를 사용하면 몇 개의 키워드만으로도 긴 글을 금방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다. 이렇게 읽은 책마다 애써 리뷰를 쓰고 있으면서도, 문득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요새는 읽으면서도 가끔은 의심이 되곤 한다. 이게 정말 사람이 쓴 글인지. 이런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은, 그걸 모아 책으로 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책의 1부에서 저자는 글을 쓰는 일이 주는 유익에 대해 이런저런 내용들을 풀어놓는다. 새벽에 글을 쓰는 시간은 “텅 빈 마음의 곳간을 두둑하게 채우는 시간”이었다든지, “글쓰기만한 자기계발도 없다”든지, 글을 쓰며 자신의 말과 생각을 필터링하게 된다든지 하는 내용들이다. 2부에서는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몇 가지 요령들이 제시된다. 경험했던 일들 가운데 다양한 것들을 글로 옮겨보라는 식이다. 뭔가 대단한 것을 쓰려고 하지 말고, 그저 일상 속의 일들을, 편안하게 써보라는 것. 3부에서는 글을 써 보라는 격려를, 4부에서는 좀 더 실제적인 글쓰기 팁을 담았다.
사실 책에 나오는 설명들은 개인적인 요소인 경우도 다분하고(누군가는 새벽에 일어나서 뭔가를 하는 게 굉장히 어려울 수도 있다), 모두에게 비슷한 수준으로 유익이 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글쓰기라는 작업은 (그냥 일기장에 끄적이는 수준 너머를 보고 하는 거라면)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역사 이래로 글쓰기라는 기술은 단 한 번도 ‘모두’의 일이 된 적이 없으니까. 개인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유익, 혹은 이유가 책에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즐거움”이다. 책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것도 즐거우니까 하는 거다(누가 인정해주지도 않는 리뷰를 1500개씩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이 즐거움은 일단 써봐야 알 수 있는 거니까, 한 번쯤은 글을 써 보는 걸 추천한다. 다만 그게 영 즐겁지 않다면 또 다른 걸 찾아 나서도 괜찮다. 말했지만, 글쓰기는 모든 사람에게 맞는 작업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은 대체로 공감이 된다. 아무래도 글 옆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을 만났다 싶기 때문인 것 같다. 조만간 책을 하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더더욱 책의 권고가 격려로 들리기도 할 듯하다. 한 번 써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