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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드러났고 진실에 가까이 갔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진실은 너무나 쉽게 다른 이야기로 바뀌어버렸다. 벨로디 대위는 한 건설업자의 살인사건을 추적하면서 그 배후에 있는 마피아와 정치권의 연결고리까지 찾아낸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알리바이가 받아들여지고, 결국 사건은 치정사건으로 덮여버린다. 사람을 죽이는 것도 모자라 그 사람이 왜 죽었는지, 그 이유까지 바꾸어버리는 힘. 무서운 힘이다.
그럼에도 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꾸 눈이 갔다. 진실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고, 경찰 앞에서 벌벌 떨며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너무 비굴한 것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거대한 힘 앞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나라면 달랐을까.
진실을 말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로인해 죽을 수도 있다.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사라지고, 정보를 흘린 사람은 결국 죽었다. 정작 자신을 보호해야 할 국가와 제도는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다. 그런 사회에서 침묵은 비겁함일까 생존을 위한 선택일까.
돈 마리아노가 사람을 ‘인간’, ‘반쪽 인간’, ‘작은 인간’, ‘꽥꽥이’ 등으로 나누며 비굴한 사람들을 경멸하는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자신을 잡으려는 수사 책임자임에도 상대가 누구든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벨로디를 그는 ‘인간’이라고 인정한다. 돈 마리아노와 벨로디는 모두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한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벨로디는 자신의 신념 때문에 자신이 위험해지고, 돈 마리아노는 자신의 신념 때문에 타인을 위험에 빠뜨린다. 더구나 돈 마리아노는 사람들이 비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바로 그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을 다시 비굴하다며 경멸한다. 그의 ‘인간다움’에는 결국 타인에 대한 책임이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맥락에서 파리니에두의 행동도 마음에 남는다. 그는 정의로운 사람도, 용감한 사람도 아니다. 경찰과 마피아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꽥꽥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죽음의 공포 앞에서 그는 결국 진실을 남긴다. 그렇다면 정말 누가 인간이고 누가 비겁한 사람일까.
결말조차 우울한 이 소설 앞에서, ‘나는 희망해야 할까, 체념해야 할까.’ 결국 진실이 언제나 승리하는 것도 아니고, 정의로운 사람이 언제나 이기는 것도 아니며 때로는 거짓이 진실보다 훨씬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진실을 찾는다. 그래서 이 소설이 말하는 희망은 승리를 향한 희망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희망인지도 모르겠다.
책 속 문장처럼 우물 위에서는 해와 달이 비치지만 진실은 우물 밑바닥에 있다. 우물 위에 보이는 것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 밑바닥의 진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피아와 권력은 진실을 덮었지만 진실 자체를 없애지는 못했다. 벨로디는 그것을 보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말했으며, 이제는 독자인 나도 알고 있으니 말이다. 이기지 못했다고 해서 진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는 그것이 이 우울한 소설이 마지막에 남겨놓은 아주 작은 희망이라고 믿고 싶다. #세계문학전집 485 이탈리아 #올빼미의낮 #레오나르도샤샤
#고전읽기 50번째 #2026지나지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