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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좋아하는 화가의 작품을 보러 가기도 하지만 미술관만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에서는 미술 작품과 함께 그 그림을 그린 화가들의 이야기를 저자의 일상과 이야기를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뷔야르는 평범한 일상과 실내 공간을 섬세하게 그린 화가로 집 안이나 가족 특히 어머니, 친구, 조용한 순간에 관심을 가진 화가였다. 뷔야르에게 어머니는 특별한 존재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뷔야르는 어머니와 함께 살며 어머니의 일상과 주변 공간을 집요하게 그렸다. 뷔야르의 그림 속 실내는 거의 언제나 어머니의 방이거나 어머니가 앉아 있던 자리였다. 뷔야르가 그린 실내 장면에서 인물과 공간 사이의 불안과 공생 관계가 나타난다. 강한 인상을 남긴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모습 옆에 갈려 쓴 문구 'very ugly'는 단지 외모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그것은 삶 전체에 새겨진 균열과 고통, 이를 바라보는 인식의 기록이었다.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화가로 자신의 삶과 고통을 예술로 표현한 작가다. 프리다 칼로는 자신이 겪은 몸과 마음의 상처, 사랑, 정체성,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국 화가 존 싱어 사전트는 에드워드 시대를 대표하는 초상화가로, 사람의 얼굴, 표정, 옷감의 질감, 빛의 표현을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게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가까이 보면 대담한 붓 터치인데, 멀리서 보면 피부, 옷, 공간이 매우 사실적으로 보인다. 클로드 모네는 우울증과 건강 문제로 힘든 노년을 보내던 중 지인의 초대로 베네치아에 머물게 된다. 평소 여행을 꺼렸던 모네는 베네치아의 독특한 빛과 풍경은 특별한 영감을 주었고, 짧은 체류 기간 동안 이 도시에 흠뻑 빠져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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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나는 책을 선택하는 그 순간에서 행복함을 느낀다. 눈길이 먼저 가 닿고, 손 끝으로 느껴지는 감촉과 공간이 주는 평온함. 그래서 온라인서점보다 오프라인 서점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런 나에게 순간의 끌림으로 다가온 [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는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 때 마다 숨 가픈 일상에 쉼이 되어주고 위로가 되어주었다. 내 삶의 한 켠을 돌아보듯 나를 어루어만지는 그림과 작가의 글은 마음 한 켠의 감정을 툭 하니 건드리고 끝내 숨겨온 감정을 풀어내며 위로를 건낸다.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위로를 얻는 시간 속에서 '나'다움을 발견한다. 작가님의 두 번째 미술관에 갑니다를 손꼽아 기다려본다. #나를지키고싶을때미술관에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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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장면 하나 대사 하나가 오래 남아 있곤 합니다. 미술도 그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림을 잘 몰라도 오래 바라보게 되거나 생각하기에 이르게 되는 그림이 있고, 그 이유는 설명하지 못해도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이 있습니다. <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는 그런 그림들을 소개하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내가 힘들고 지칠 때 나를 위로해준 것은 무엇인가'를 한번 더 생각해보는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미술관에 많이 가보진 않았지만, 미술관에 가게 되면 어떤 그림 앞에 서있어야만 하는데요. '제가 그림을 볼 때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었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서 앞으로 다시 미술관에 가게된다면 저자처럼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그림은 그리 유명한 사람들의 그림은 아닙니다. 한편으로 그래서 더 호기심이 일기도 했습니다. 각 꼭지마다는 해당 작품에 대한 설명과 화가(예술가)에 대한 삶과 이야기들, 저자의 삶과 경험에 대한 내용이 함께 투영되어 잘 나타나있습니다. 저자는 아이 엄마인데 엄마라는 위치에서의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잘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유명한 작품과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 하나하나의 그림을 통해 우리네 감정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림 에세이입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화가는 프랑스 화가 <조르주 쇠라>였습니다. 점묘법을 완성하기 이전, 초기 인상주의적 접근을 보여주는 <정원사>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참구하고자 했던 쇠라의 관심이 반영되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과 연계된 이야기에서는 저자의 할아버지가 아파트 정원을 퇴직금을 쏟아부으면서 맡게 되면서 이른바 "감나무 할아버지"라고 불리우게 되는데 저자가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만큼 쇠라의 작품 <정원사>도 저에게는 또다른 의미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영화를 제작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제작하다 보면 한 장면만으로도 인물의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림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한 장의 그림 속에 말이나 대사보다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것을 한껏 느꼈습니다. 저는 미술과 예술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책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미술과 예술에 대한 지식보다 '사람 이야기'가 중심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고, 하나씩 드문드문 소개해주는 그림도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그림을 몇가지 단어로 설명하기보다, 그림을 통해서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작품보다 화가가 기억에 남고, 화가보다는 나 자신의 감정을 먼저 한번 더 돌아보게 됩니다. 그전에는 미술관이 그림을 보러 가는 곳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미술관이 때로는 내 마음을 먼저 만나러 가는 곳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그림을 잘 몰라도 괜찮았습니다. 그림보다 먼저 사람의 이야기가 다가왔고, 사람냄새가 더 났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제 마음도 함께 들여다보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이 책은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마음이 조금 지쳐 있는 분, 미술은 막연하게 어렵다고 생각했던 분, 그림보다 사람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에게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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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731 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 오희승 지음, 그래도봄- 그림이 나를 지켜낸 시간들 #협찬도서 260731 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 오희승 지음, 그래도봄 — 그림이 나를 지켜낸 시간들 #협찬도서 아이를 안아주고 있는 둥근 거울 같은 표지를 펼치면 ‘나에게 가족은 ______입니다’라는 문장이 보인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의 그림이 나온다. 책의 내용처럼 따뜻한 핑크의 책이다. 저자는 불문학을 전공한 뒤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엄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의 그림들을 자신의 시선으로 담았다. 미술글쓰기를 해온 저자의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4부로 이루어진 책에서 저자는 ‘지키고 싶은 세계’에서는 엄마로서의 나를, ‘인생이 여름’에서는 육아의 시절을 썼다. 그림 속에 머무는 사랑으로, 나를 채우는 글쓰기로서의 시간으로 채워간다. 이 책은 이 세상의 엄마들에게 바치는 책이 아닐까 싶었다. 엄마이자 이주자로, 아내로, 작가로서의 저자를 보여주고 있다. 제시 윌콕스 스미스의 일러스트를 소개하며, 미술계에서 여성적 내러티브가 저평가되는 부분을 꼬집기도 한다. 곰 세 마리의 노래 가사처럼, 엄마곰은 날씬하다는 아이의 말에 자신의 몸을 다시 보게 되기도 했다. 또한 빌헬름 함메르쇠이의 그림을 통해 자신의 쓸모를 깨닫기도 한다. 소소한 일상 속의 통찰은 28점의 그림으로 이어진다. 돌봄을 하던 엄마였던 저자는 미술 글쓰기로서의 자기 돌봄을 이어갔고, 그 기록이 모여 책이 되었다. 가장 좋았던 그림은 오딜롱 르동의 <다섯 마리의 나비> 였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 중인 <인상주의를 너머> 전시에서 본 오딜롱 르동의 나비 작품이 떠올랐다. 같은 그림은 아니지만, 초기의 어둠과 신비를 간직한 드로잉을 본 기억이 있기에 붉은 바탕 위로 나비들이 날아갈 듯한 이 그림은 더욱 강렬했다. 그림은 또 이렇게 그림으로 이어진다. 한 줄 평, 돌봄의 언어가 된 그림들은 저자의 미술글쓰기가 되고, 미술글쓰기는 자신뿐 아니라 독자의 마음까지 보듬어 주는 책이다. 지카우치 유타의 책 <왜 나의 다정함이 당신을 상처 입힐까> 에서 타인의 소중한 것을 함께 소중히 아끼는 것이 돌봄의 행위라고 했다. 어쩌면 이 책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자소월(自素月), 스스로 뜨는 하얀 달 — 책의 문장으로 현실을 읽습니다 #미술관에갑니다 #오희승지음 #그래도봄출판사 #자기돌봄의글 #미술에세이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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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는 어떤 종류의 돌봄이든 간에 돌봄을 살아낸 시간들을 지나 온 우리들에게 쉼이 되는 그림들을 담아낸 예술 에세이이다. 여기에 담긴 글과 그림들은 회복의 기록이자 따뜻한 위로와 힘이 되어 주기도 할텐데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위대한 예술가들의 그림이 굉장히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이다. 그림의 내용이 일상의 한 모습을 담아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느낌이 드는 것도 있을텐데 이 책의 저자 역시 다양한 이름으로 돌봄이라는 힘겨운 시간을 보내왔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마음이 무너지던 때도 있었다고 한다. 마음이 힘들었던 그 순간들마다 저자는 미술관에 가서 그곳에 전시된 그림을 보면서 회복의 시간을 가졌고 이후 스스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낼 수 있었다고 한다. 미술관을 많이 다녀 본 것은 아니지만 책으로나마 회복과 치유, 위로와 용기를 주는 주제로 담아낸 책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인지 저자가 어떤 마음으로 그림 앞에 마주했을지, 그러한 그림들을 통해 어떻게 위로받고 다시 힘들 낼 수 있었을지 이해가 되기도 한다. 특히나 이 책에 수록된 그림들을 그린 화가들의 생애 속에는 크고 작은 아픔과 상처들이 존재했고 그러한 시간들이 자연스레 자신들의 작품에도 담겨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 책의 저자도, 저자의 이야기를 읽는 독자도 그리고 저자가 담아낸 그림과 그 그림을 그린 예술가 모두가 시대와 세대, 나라를 뛰어넘는 공감의 장을 형성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이유로 책에 담긴 그림들은 일반적인 명작들과는 조금 결을 달리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개인적인 순간을 포착한 듯한 분위기의 그림도 있고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나볼 수도 있는 그림들이 대부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묘하게도 그림 속 홀로 있는 인물이든 둘 이상으로 존재하는 인물이든 그들의 모습에 끌린다는 것이다. 단순히 구도나, 색감,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예술성이 아닌 그림 그 자체에 매료되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건 아마도 그림만큼이나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저자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에 깊은 공감을 느끼는 탓이 아닐까 싶다. 많은 그림들 속 오롯이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그림 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림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를 읽는다면 이 책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로 다가올 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를지키고싶을때미술관에갑니다 #오희승 #그래도봄 #리뷰어스클럽 #에세이 #쉼이되는그림들 #회복의기록 #돌봄을살아낸시간들 #쉼이되어줄다정한그림들 #온전한나로쉼쉬는시간 #책추천 #책 #독서 #도서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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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큰 아이가 10살이니, 엄마가 된 지도 10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라는 단어는 아직도 내 옷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엄마 하면 떠오르는 돌봄과 희생이 내 삶에 완전히 겹쳐지지 않아서다. 아이를 낳으면 자연스레 모성애가 솟아오를 거라는 생각했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서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참 자주 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엄마로 나의 삶과 또 지금까지 엄마로 살고 계신 친정엄마를 자꾸 떠올리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우리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일을 하고 계신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늘 그 모든 걸 다 해내는 슈퍼우먼이었다. 쉬는 엄마를 보는 날은 엄마가 아플 때가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엄마를 떠올리면 늘 바쁜 모습이 먼저 생각난다.
이 책에 저자 역시 엄마이자, 엄마의 모습을 책 속에 많이 투영한 것 같다. 마치 내가 빨래와 청소, 설거지가 마치 엄마만 해야 할 일로 생각하고 살았던 것처럼 저자도 엄마는 집이라는 공간 안에 존재하는 배경 같은 존재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집이 아닌 곳에서 마주한 엄마가 낯설었다고 한다. 왜 나는 엄마는 늘 엄마였다고 생각했을까? 오래전 엄마와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면서, 엄마 역시 문학소녀를 꿈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란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우리 집 한편에는 색이 바랜 문학 전집이 있었다. 글씨가 너무 작았고, 그림도 없이 글자만 가득한 책의 각종 표지만 훑어본 게 전부였었다. 그리고 이사를 하면서 전집은 결국 집을 떠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는 월급을 열심히 모아 전집을 샀다고 했다. 월급을 아끼고 아껴 전집을 샀던 엄마 역시 그때는 가슴 가득 꿈을 꾸며 살았을 텐데, 엄마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면서 좋아했던 것을 다 내려놓았던 것이다. 유일하게 간직했던 전집마저도 딸들의 장난감과 책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었으니 말이다.
책 안에 담긴 여러 그림들을 마주하면서, 나 역시 같은 경험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돌도 되지 않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출근하는 길. 문밖에까지 아이의 우는소리가 들리는데 돌아설 수 없었을 때, 출근하면서 참 많이 울고 또 울었다. '내가 무슨 영화를 보려고, 저 핏덩이를 떼어놓고 돈을 버는 걸까?'를 생각이 출근하는 내내 머리를 짓눌렀다. 그런 나를 보며 아이는 엄마가 마냥 밉지 않았을까? 바쁜 엄마를 보면서 저자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보니, 그때 엄마의 감정이 고스란히 가슴에 들어왔단다. 내 아이 역시 그렇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아이를 안아주고, 아이의 양말을 신겨주고,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넘어질까 봐 뒤에서 한 발 한 발 지켜보며 따라가는 엄마. 그리고 그 안에서 그 눈물과 땀을 먹고 자란 아이. 책을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림들을 마주하면서 내가 놓치고 있던 감정들을 다시금 떠올리게도 되었다. 그렇게 마주한 그림들은 또 다른 위로로 다가왔다. 대단한 명화도 좋지만, 감정을 토닥이는 그림도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그림임에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가슴에 와닿는 깊이가 이렇게나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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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 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돌봄의 무게에 소리 없이 닳아가던 한 사람이 그림과 마주하며 스스로를 지켜낸 다정한 회복의 기록!! 바로 오희승의 [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이다. 한때 미술에 관심이 있어서 전시장을 다니던 때가 있었다. 그림을 보면서 잘 알지 못하기에 공부를 해볼까도 했었다. 뭐든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다 그림책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일반적으로 그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이야기 하는 책이었는데, 작가들과 작품에 얽힌 뒷이야기가 더 재미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기존에 책들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에 담긴 글들은 그림에 대한 어떤 해석을 제시하기보다 그림 앞에 서 있었던 작가 자신의 시간들을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그저 어느 날 스스로를 지키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이 글들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리라고...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동안 자신의 기억과 마주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는 엄마와 주부, 환자라는 무거운 이름 뒤에서 마음이 무너지던 날마다 미술관을 찾아 그림과 마주하며 스스로를 지켜낸 다정한 회복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그려진 28점의 그림 앞에서 위대한 예술가들이 캔버스 위에 남겨둔 인간적인 아픔과 자신의 삶을 정교하게 교차시킨 내밀한 고백이기에 일반 독자들에게도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사실 저자는 말초신경이 서서히 소실되는 유전 질환을 안고 태어났다고 한다. 아이를 낳고서야 자신의 병을 알게 되었고, 발달이 또래보다 느린 아이를 키우며 언어 치료질을 전전했다고. 엄마로서, 주부로서, 환자로서, 한 사람으로서 균형을 잡는 일이 너무 어려워지던 날, 미술관으로 향했던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돌봄의 무게에 소리 없이 닳아가던 한 사람이 그림과 마주하며 스스로를 지켜냈다는 것이 너무도 놀랍고, 그런 시간들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도 대단한 것 같다. 깊은 우울에 빠져 있던 모네, 조카가 고단한 제 삶을 닮을까 두려웠던 고흐, 자신만의 방이 없어 식탁 한구석에서 책을 읽어야 했던 루시 에셀까지!! 그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낸 한 사람의 다정한 회복의 기록을 통해 진정한 제 모습을 탐색하고 자신을 지켜내려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따뜻한 응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p.102 사전트가 포착한 그 순간의 빛처럼, 우리가 지켜주고 싶은 모든 것들도 결국 시간 속에서 변해간다. 아이의 첫걸음, 바닷가에서의 해프닝, 그림 속 아이들의 천진한 모습까지. 그 모든 것이 찰나이기에 더욱 애틋하고, 덧없기에 더욱 간절히 품고 싶어진다. 그 마음이 바로 이 작은 그림을 빛나게 하는 힘일 것이다. p.154 나는 문득 생각한다. 나는 내 곁을 지키는 사람을 얼마나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 역시 나를 들여다보려 애쓰고 있을까. 우리의 파도는 마주키고 있을까, 아니면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걸까. p.195 병원의 조용한 대기실에서 혼자 가만히 들여다본 화집 속의 무한한 세계를 이야기 하고 싶었다. 혼자였던 병원의 대기실에서 내 마음을 붙잡아준 작은 그림 한 장. 만약 그때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면, 내가 발견한 이 작은 위안과 아름다움을 함께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결국 우리가 외로움 속에서 절실히 원하는 것은 이 사소한 발견을 나눌 사람이다. #에세이 #쉼이되는그림들 #회복의기록 #돌봄을살아낸시간들 #나를지키고싶을때미술관에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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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명확히 알지 못한 채 끌렸던 그림들에 다가가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지금의 자신을 비추는 장면들이 숨어 있음을 알게 된 저자가 들려주는 그림 이야기라 공감이 많이 되었다. 자기 자신을 지키러 미술관에 갔었다는 저자의 고백이 엄마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느낌이었다. 아이를 키우고 몸이 불편한 채로 일상을 꾸리고 가족의 시간을 지탱하는 일은 분명 자신이 선택한 삶이었고 그 안에서 보람도 느끼지만, 동시에 자신을 조금씩 닳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는 말은 세상 모든 엄마가 느껴본 감점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라는 역할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던 날이면 미술관으로 향했다는 저자는 미술관에서 굳이 무언가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경험했다. 미술관에서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엉킨 매듭이 천천히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저자의 이야기가 더 공감되었다. 엄마는 언제나 당연히 존재하는 배경과도 같다. 너무나 당연히 내 주변에 있는 존재여서 오히려 그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날 갑작스레 뚜렷하게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가족을 위해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던 엄마가 너무나 가까운 존재였기에 독립된 인물로 인식되지 않다, 제대로 보기 시작하는 순간 오열하지 않도록 엄마에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대부분 자기가 그냥 자란 줄 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밥을 하고 돌아서면 또 밥을 해야 하는 쳇바퀴 같은 일상의 노고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반복되는 수고를 계속해 나가는 것은 먹는 일을 향한 엄마의 마음과 사랑 때문이다. 엄마의 매일 반복되는 사랑과 수고를 너무 당연시 여기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침묵의 화가라 불리는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메르쇠이의 작품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거나 나타나더라도 대부분 뒷모습이다. 인기척 없이 고요하고 차분한 빈 공간에 눈길이 간다. 창을 통해 스며든 햇빛은 실내를 은은하게 밝히며 생기를 불어넣기보다는 침묵과 평온을 가득 머금고 있다. 단순하지만 일상적인 섬세한 감각이 깃들어 있다. 빛과 그림자의 미묘한 경계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공간은 오히려 깊은 정서로 채워진다. 벽면에 길게 드리워진 햇빛과 짙은 그림자에 대비는 이 방의 구조와 시간을 암시하는데, 낮게 드리운 햇살과 긴 그림자가 북유럽의 상대적으로 낮은 태양 구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북유럽은 겨울철에는 태양의 남중고도가 더욱 낮아져 빛이 비스듬하게 들어오고 그림자가 길어지는 특징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서늘함은 화가가 선택한 색감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이 감지하는 계절과 시간의 흐름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주중에는 일하고 오직 주말에만 그림에 몰입했기에 일요화가로 불리는 앙리 루소에게 일요일은 일상을 견디게 하는 도피처이자 안식처였다.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기 때문에 오히려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었던 루소는 여행을 가거나 거주해 본 경험이 없었음에도 환상적이고 이국적인 풍경을 많이 남겼다. 자연사박물관과 파리 식물원을 오가며 정글의 이미지를 상상했고, 루브르와 클뤼니 미술관에서 대가들의 그림을 익혔다. 독학의 기술적 한계였는지, 미학적 지향이 달랐던 것인지 루소는 중세 후기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평면적 구도와 화면을 빽빽하게 채워 놓는 구성 방식을 고수해서 당시 평론가들로부터 원근법도 모르는 유치한 그림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면 오히려 초현실적인 분위기와 신비로움이 깃든 독특한 작품 세계로 평가받지만 말이다. 단조로운 생업과 빠듯한 형편, 사랑하는 가족들의 죽음까지 그의 삶은 늘 고단했지만, 그는 하루 일을 마친 후 음악을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불행한 가정사와 냉담한 평단, 가난까지 삶의 고난이 끊임없이 에워싸면 대부분의 사람은 쉽게 좌절하거나 극심한 정성적, 정신적 고통에 휘말리지만 루소는 이상하리만큼 단단한 자기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혹평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자신에 대한 믿음을 마침내 인정받는 자리까지 이끌었다. 그가 세상의 입장이나 기술적 기술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마침내 자신의 꿈에 닿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삶은 멀리서 보면 단조로워 보일 수 수 있으나 그 안에는 수 없는 파도가 일고 있다. 루소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계를 그려냈다. 환상에 빠지지 않았기에 환상을 그릴 수 있었던 루소는 그 누구보다 꾸준히, 묵묵히, 성실하게 자신의 일상을 살아내었다. 결코 현실을 떠나지 않았기에 누구보다 자유로운 꿈을 꾸었던 루소의 그림이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지치고 힘든 날 문득 자신의 마음을 닮은 장면 하나를 발견하고 위안을 받을 터이니, 미술관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에세이 #쉼이되는그림들 #회복의기록 #돌봄을살아낸시간들 #나를지키고싶을때미술관에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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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는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마음이 먼저 반응한 책이었습니다. 저는 4살 때부터 미술을 전공한 아빠 손에 이끌려 미술관을 다녔고, 집에는 화집이 많아 동화책처럼 화집을 넘기며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무너질 때면 종종 미술관에 갑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도 그림 앞에서는 조금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그런 저에게 제목부터 깊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나를 지키고 싶을 때 미술관에 갑니다’라는 문장은 단순히 예쁜 제목이 아니라, 제 마음속 오래된 습관을 불러내는 문장이었습니다. 책은 총 4개의 PART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PART 1 ‘지키고 싶은 세계’, PART 2 ‘인생의 여름’, PART 3 ‘사랑은 머무는 법을 안다’, PART 4 ‘나를 채우는 미세한 숨결’까지, 각 장마다 작품이 함께 펼쳐집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책이면서 동시에 보는 책입니다. 작품을 어렵게 설명하기보다, 작품 앞에 선 사람의 마음을 따라가게 해주는 점이 좋았습니다. 글을 읽고 있는데 그림이 옆에서 조용히 말을 걸고, 작품을 보고 있는데 문장이 마음 안쪽을 살짝 건드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책이 참 예쁩니다. 표지부터 옆면 컬러까지 시선이 오래 머무는 책이라, 책장에 꽂아두어도 작은 전시 한 조각처럼 느껴집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정말 미술관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책인데 전시 같고, 에세이인데 도슨트 같고, 작품집인데 마음 처방전 같은 책이었습니다. 마음이 무너질 때 꼭 강해져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날은 조용히 그림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나를 지키는 일이 됩니다. 이 책은 그런 시간을 선물해준 책이었습니다. ※ 그래도 봄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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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부러 미술관에 간 적은 많지 않았다. 책은 무척 좋아하면서도 그림은 먼 나라의 일처럼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년전부터 꾸준하게 출간되는 그림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미술관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 출장길에 들렀던 루브르 미술관을 지금 다시 간다면 그 때보다 그림이 내 마음에 더 들어올 것만 같았다.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였기에 남들보다 그림을 보는 시각이나 안목을 틀림없이 다를 것이다. 일단 화가들의 생을 알았을 것이고 그림을 그릴 당시의 상황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바라보는 그림은 확실히 더 마음에 닿지 않았겠는가.
혹시 몸이 불편했던 적이 있었을까. 불편한 몸으로 아이를 키우고 버텨내는 얘기들이 등장한다. 병원 대기실에서 우연히 본 모네의 그림도 물과 꽃이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모네처럼 우울을 앓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아지기 힘든 병을 겪으면서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던 그림들은 화사한 풍경보다는 엄마와 아이, 아직 덜 성숙한 사춘기의 소녀,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지나는 것같은 요염한 여인의 나체였다.
짙푸른 바다위에 떠있는 요트의 그림에서 나는 강한 터치의 강렬함과 삶의 의지같은 것들을 느끼게 된다.
저자 역시 울퉁불퉁한 수면 위에 우뚝 솟은 흰 돛들을 보면서 경쾌함과 시원함을 느꼈다고 한다. 틀에 박힌 일상을 벗어나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의 삶이 아닌 나 자신이 되고 싶은 그런 강렬함이 아니었을까. 길을 잃지 않고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힘찬 돛배같은.
'지나간 것은 결코 다시 돌아 오지 않는다'라는 제목을 보면서 아름다운 나신을 보니 가슴이 살짝 저려온다. 저 정도는 아니었겠지만 나도 아름다웠던 적이 있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스물 셋의 어느 날 충무로를 걷던 나는 '아 지금 이 시간이 나에게 가장 빛나는 시간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완벽한 나신이 아니라 가장 자신있고 젊다는 것만으로도 빛나는 그런 시간임을. 나를 지키고 싶을 때 나는 책을 읽는다. 저자처럼 미술관을 가도 좋다. 그런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인생이 아니겠는가. 나의 삶을 붙들어주고 가만히 안아주는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인생이라 생각한다. 단순한 그림을 넘어서 화가의 인생이, 그 시간들이 겹쳐져 마음 깊숙히 파고드는 시간이 되었다.#리딩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