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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한밤중에는 작은 소리도 굉장히 크게 느껴져요. 워낙 일상 소음에 익숙해져서 의식하지 못하다가 고요한 밤시간에 유독 소리에 민감해지는 것 같아요. 만약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가 지속적으로 계속 들린다면 어떨까요. 소음 공해, 아니 고문처럼 느껴질 것 같아요. 소리는 보이지 않으니까, 누군가에게 들린다는 소리가 나에겐 들리지 않는다면 상대가 청력이 뛰어나거나 혹은 환청을 듣는다고 생각하겠죠. 어느 쪽이든 서로에게 공감할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이네요. 조던 태너힐 작가의 장편소설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들려주네요. 주인공 클레어는 세쿼이아 크레센트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의 전말을 밝히기 위해 이 책을 썼다면서 자신은 희생자도 아니고, 악당도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어요. 문득 영화 <호프>에서 여자 경찰의 대사가 떠올랐네요. "아무리 괴물이라도 이럴 수는 없는 거예요." 이 소설에선 괴물은 등장하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강력한 '소리'가 존재하네요. 어느 날 갑자기 클레어는 아주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함께 있던 남편 폴에게 물었더니 그는 안 들린다고 했어요. 딸 애슐리도 듣지 못했고, 자신이 가르치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소리에 대해 말했다가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네요. 아무도 못 듣는 소리를 혼자만 듣는 것도 황당하지만 한 번 시작된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일상 생활이 어려워졌네요. 특히 밤에는 소리 때문에 잠들 수 없었고 학교 수업도 집중하기가 힘들어진 거예요. 병원에 가도 딱히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괴로워하던 그녀에게 수업을 듣는 학생 카일이 다가와 자신도 똑같이 소리가 들린다면서, 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는 걸 알려주네요. 도대체 소리의 정체는 무엇인지, 왜 특정 사람들에게만 들리는지, 그것이 궁금했는데 점차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면서 클레어의 삶이 흔들리는 과정을 보여주네요. 단지 소리 때문에 이런 혼란과 비극이 벌어진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네요.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이 얼마나 쉽게 음모를 만들어내는가를 확인한 것 같아요.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이상 누구라도 오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솔직히 그 점을 그녀 자신도 잘 알고 있네요.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허점이 아닐까 싶어요. 진실은 늘 멀리, 아득한 곳에 있다는 것. 미스터리한 소음의 정체보다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네요. 클레어가 말하고 싶었던 건 바로... 당신은 어떤가요. "··· 여러분이 완전한 진실을 알고 싶다면, 그런 밈 속의 짧은 문구보다는 더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아직도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은 어떻게 그렇게 작고 무해한 무언가가 내 삶을 통째로 뒤흔들 수 있었냐는 것이다. 어떻게 그 모든 자기 성찰과 초월과 파괴가 거의 감지할 수도 없는 낮은 소리에서 시작될 수 있었는지." (12p) "··· 진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내가 말했다. 의견만 있을 뿐이지. 그는 진실이 존재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과학과 법률에 의해 증명된 객관적 사실이라는 개념도 사실은 최근 발명된 거라고. 우리가 천 년 동안 알고 있었던 것은 예감과 충동과 의견이 전부였어요, 그가 말했다. 그게 우리의 진정한 본성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어요. 이러한 음모론적 사고는 여러 번의 모임 가운데 단 몇 차례만 고개를 내밀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2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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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조던테너힐 #장편소설 #캐나다베스트셀러 #bbc드라마원작소설 #소리를듣는사람들
여러분은 의식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세상은 매일 수천 명의 사람들을 괴롭히며 광기와 절망으로 몰아가는 추적 불가능한 웅웅거림과 윙윙거림으로 가득하다. 나도 이전에는 의식하지 못했다. 전혀 몰랐다. 그것에 영향을 받는 일군의 사람들 중 하나가 되기 전까지는, 그리고 자신이 처한 곤경을 쏟아놓는 사람들, 고통을 이해하는 걸 도와줄 의사나 과학이나 언론에 희망을 잃은 지 오래된 사람들로 가득한 채팅방과 게시판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전 세계적으로 수백 개의 동네가 다양한 지역적 원인으로 인한 소음 공해로 고통받고 있는 것 같았다. 무책임한 산업, 정부 감독의 부재, 엉성한 도시 계획. 다만 아무리 검색을 해도 우리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 중에 나와 같은 소리를 묘사하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p.66 특정한 소리에 귀가 트이면 그 소리에 지배당하는 기분, 느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몇 분 정도 그 소리에만 집중하다보면 일상이 그 소리로 가득해지면서 다른 것에 시선을 돌릴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층간소음, 벽간소음 등 소음이라고 칭하는 소리들은 누군가의 삶을 방해하거나 뒤흔들어놓는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다. 정말 약하고 진동이 울리는 소리가 벽을 타고 들리기 시작했을 때 이 소리에 잠식되어서 소리가 나는 저녁 시간만 되면 예민해졌던 때가 있다. 이 소리를 무시하고 살아가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던 적이 많았다. 조넌 태너힐의 '소리를 듣는 사람들'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소음 때문에 힘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같은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클레어가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듣는 소리를 가족과 공유했으나 클레어는 가족과 공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들리는 소리에 스스로 외롭고 힘겨웠을 것 같다. 가족과 공감할 수 없는 무언가가 생기면, 이를 공감해줄 타인을 찾게 마련이다. 공감이 가능한 타인이 생기면, 타인이 여러 명으로 늘어나면 그들만의 연대가 무한한 힘으로 변화한다. 밑바탕에 굳건한 지지와 공유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공동체가 지역 주민들 혹은 세상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지지를 받지 않게 될 때 생긴다. 흔히 말하는 불필요한 선동 집단, 사이비 집단으로 여겨지는 순간이 찰나이기 때문이다. 한 번 찍힌 낙인은 지우기 쉽지 않다. 클레어도, 클레어의 가족도 다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내가 클레어라면, 나만 들리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그 소리가 들린다는 그들이 얼마나 반갑겠는가. 가족보다 더 한 유대감이 생길 수 밖에 없을 테다. 소리는 일상 내내 계속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삶의 바탕이 비슷한 질감이다'라는 말과 같을 것이다. 클레어의 가족은 클레어를 바라보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공감해줄 수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그 '소리'에 잠식된 클레어를 가족은 대체 어떻게 도와줄 수 있단 말인가. 폴과 애슐리가 클레어에게 건네는 말에 나는 무척 고개를 끄덕였다. 나였어도 클레어를 그렇게 대했을 테다. 어쩌면 세쿼이아 크레센트 모임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리를 듣는 사람들' 말고는 없었을지 모른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소리'에서 벗어난 클레어가 가족 안에 다시 자리잡고 살아가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허무하다고 느낄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은 '소리'에 잠식당하고 같은 '소리'를 듣는 사람들을 만나 그 안에서 그들만의 돔을 만드는 폭발적인 힘을 이야기로 담았다는 데 큰 매력이 있다. '소리를 듣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면 배척하게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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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듣는 사람들》소설의 작가 조던 태니힐은 캐나다 출신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연출가다. 소설가로 먼저 이름을 알린 것이 아니라 극작가와 연출가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린 뒤 소설로 영역을 확장한 작가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믿음과 정체성, 관계, 몸, 그리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같은 문제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은 정말 현실인가, 나와 타인을 구분하는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같은 질문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소리를 듣는 사람들》 역시 이러한 작가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소리’라는 소재를 통해 일부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믿기 어려운 경험 속에서 믿음이 흔들리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이 또 다른 연결과 믿음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소설을 읽으면서 문득 작가가 여성 작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이 섬세하고 작품 곳곳에서 여성의 경험과 사회적 위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품을 다 읽고 작가의 이력을 다시 살펴보면서, 그가 그동안 탐구해온 세계가 이 작품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 역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정상과 비정상, 개인과 집단, 믿음과 의심이 서로 맞물리면서 단순한 미스터리를 넘어서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특히 ‘소리’라는 요소가 사람들을 어떻게 분리시키고, 또 어떻게 묶어내며 갈등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소리’는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 것이 아니다.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들리고, 그들을 점점 무너뜨리는 소리다. 주인공 클레어는 고등학교 교사로 남편 폴과 딸 애슐리와 함께 살아간다. 어느 날부터 그녀에게만 들리기 시작한 낮은 ‘웅—’ 하는 소리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점점 일상을 무너뜨릴 정도로 그녀를 괴롭힌다. 그러던 중 자신과 같은 소리를 듣는 제자 카일을 알게 되면서 클레어는 자신만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강한 연대감을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은 소리의 정체를 찾아 나서지만, 그 과정에서 형성된 관계는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하고 위험한 관계로 받아들여진다. 결국 클레어는 학교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게 되고, 가족들과의 관계 역시 점점 무너진다.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멀어지면서 클레어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간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자신처럼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소리를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며, 함께 소리에 집중하는 ‘튜닝’을 통해 특별한 경험을 공유한다. 그렇게 형성된 공동체 속에서 클레어는 점점 강한 소속감과 연결감을 느끼게 되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보다 자신과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더 깊이 의지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공동체의 중심에는 하워드가 있었다. 처음에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처럼 보였던 그는 점차 공동체 안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구성원들의 믿음을 자신의 방식으로 이끌어간다. 여기에 일부 구성원들이 정부의 감시나 음모를 주장하면서 공동체는 점점 외부 사회와 충돌하기 시작한다. 자신들만의 경험을 공유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공동체의 믿음은 점점 더 강하고 폐쇄적인 형태로 변해간다.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믿음’이라는것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그 경험을 해석해주는 사람이 등장하며, 그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되는 과정은 실제 사회에서 특정한 종교 집단이나 음모론적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과정과도 닮아 있다. 특히 가족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했던 클레어가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 속에서 연대감을 느끼고, 그 안에서 점점 더 깊이 빠져드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처음에는 단순히 ‘나만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는 안도감에서 시작했지만, 그 믿음이 점점 커지면서 오히려 클레어를 현실에서 더 멀어지게 만든다. 결국 자신을 구원해줄 것 같았던 공동체가 또 다른 형태의 고립을 만들어낸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또한 이 작품에서 ‘소리’는 단순한 미스터리적 장치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 곳곳에서는 여성의 경험이나 폭력, 말하지 못하고 드러낼 수 없는 고통과 같은 것들이 ‘소리’와 연결되어 읽힌다. 즉, 이 소설에서 소리는 실제로 들리는 소리인 동시에 사회가 제대로 듣지 못하거나 외면해온 목소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정말 이상한 사람들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들이 듣는 소리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것이 어떤 물리적 원인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경험을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고립이라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경험을 이해받지 못하고 끊임없이 부정당할 때, 그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찾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개인에게만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밀어내면서 결국 고립시키는 사회에도 있는 것일까.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결국 ‘소리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가 듣지 못하는 목소리는 무엇이며, 누군가의 믿음을 어디까지 존중해야 하고 어디서부터 의심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쉽게 ‘이상하다’거나 ‘미쳤다’고 치부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도, 우리가 미처 듣지 못했던 고통의 목소리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목소리를 외면한 자리에 누군가가 ‘나는 당신을 믿는다’고 말하며 다가온다면, 우리는 과연 그 사람을 어디까지 믿게 될까. 책을 덮고 나서도 ‘소리’보다 오히려 믿음과 고립,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의 의미가 오래 남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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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가끔 귀에 진동 소리가 잡힐 때가 있다. 특히, 라디오를 들을 때 그런 순간들이 많았는데 소리를 듣고 휴대 전화를 보면 아무것도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귀가 이상해진 것인지 겁이 났는데 인터넷 글들을 가만히 읽고 있으면 그런 사람들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기계에 익숙해진 세대이기에 환청이 들리는 것인가. 병원을 방문해야 되기는 할 것 같다. 물론, 그게 언제가 될지 잘 모르겠다. 남들은 모르는 소리를 듣는다는 설정의 이 작품은 조던 태너힐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시각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직장에서 근무하다 보니 평범하게 느끼는 무언가의 부재에 대한 내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작가부터 작품까지 모두 초면이지만 비슷한 결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 선택하게 됐다. 오히려 이 내용은 부재보다는 과잉에 가까울 법하다는 느낌도 든다. 이렇게 새로운 작품을 접하는 것 또한 독서의 즐거움이다. 청각의 특별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은 클레어다. 학교 영어 교사로 근무하며, 누가 봐도 행복한 가정의 표본인 듯하다. 그렇게 무탈하게 흘러갈 것 같던 그녀의 일상을 흔들게 된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다. 어느 순간부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남편과 딸은 전혀 못 듣는다. 심지어 그녀를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몰고 가기까지 한다. 우연히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이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임에 참석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허구의 세계를 다루었지만 무대를 바꿔놓고 지금의 이야기라고 해도 충분히 납득이 될 정도의 현실감이 느껴졌다. 지구 반대편에는 클레어처럼 소리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 부분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포인트이기는 하지만, 비교적 편하게 읽기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력보다는 현실감을 더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인상적이었다. 클레어는 카일의 권유로 같은 소리를 듣는 모임에 합류한다. 처음에는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나누는 자리처럼 가벼웠지만, 이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끼어드는 순간부터 모임의 의미가 변질된다. 마치 음모론을 믿고 따르는 신도 집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동안 비슷한 주제를 가진 작품들은 한 명의 개인이 미치는 영향을 주관적으로 보여준 반면, 이 작품은 관찰자의 시각으로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무엇이 인간을 믿게 만드는 걸까. 믿음이 곧 마음의 벽이 되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것은 무섭다. 클레어는 벽 너머의 본질과 가족을 무시한 채 터무니없는 집단의 음모론을 마치 경전 삼아 몰입했다. 결국 파국을 맞게 된 그녀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현재를 되돌아본다. 과연 듣고 싶은 말과 보고 싶은 행동만 보면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어쩌면 크고 작은 음모론은 마음속 하나하나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섬뜩함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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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조던테너힐 #장편소설 #캐나다베스트셀러 #bbc드라마원작소설 #소리를듣는사람들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어느 날부터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낮은 소리를 듣게 된 고등학교 교사 클레어의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냉장고나 환풍기 같은 기계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전원을 끄고 집 안을 뒤져도 소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잠을 자지 못하고 두통과 코피까지 겪지만 남편과 딸, 의사와 동료들은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클레어가 겪는 고통은 결국 소리 자체보다도 자신의 감각과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데서 더 커집니다.
캐나다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조던 태너힐 작가님은 실제로 캐나다 윈저 지역에서 일부 주민들만 들었다고 알려진 정체불명의 소음 ‘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습니다. 희곡으로 캐나다 총독문학상을 두 차례 받은 작가답게 장면의 긴장감과 대화의 리듬이 생생합니다. 클레어가 소리를 찾아 집 안을 헤매거나, 자신과 같은 소리를 듣는 학생 카일을 만나는 장면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극처럼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은 인지하지 못하는 감각을 달리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이 오래 남았습니다. 클레어는 소리를 설명하기 위해 엔진, 비행기, 진동 같은 여러 비유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확히 말해도 상대가 경험하지 못한 감각은 쉽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직장생활을 하며 비슷한 답답함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사소해 보이는 말이나 행동도 같은 일이 반복되면 사람을 조금씩 마모시킵니다. 하지만 그 상황을 직접 겪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하면 “그 정도가 그렇게 힘든 일이냐”는 반응이 돌아오기도 합니다. 문제는 사건 하나가 아니라 누적된 분위기와 반복되는 긴장인데, 그것을 말로 증명해야 하는 순간에는 오히려 제가 예민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클레어가 자신과 같은 소리를 듣는 카일을 만났을 때 느낀 안도감이 이해되었습니다. 문제를 당장 해결한 것도 아니고 소리의 정체를 알아낸 것도 아니지만, “나도 듣는다”는 한마디만으로 클레어는 투명인간에서 다시 존재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여기에서 따뜻한 연대의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습니다.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온라인 게시판과 지역 모임을 통해 서로를 찾아내고, 각자 나름의 설명을 만들어갑니다. 데이먼이 지역 공공장소에 포스터를 붙이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는 장면은, 고립된 개인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문제는 고통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반드시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음모론을 단순히 어리석은 사람들의 믿음으로 조롱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설명을 필요로 하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원합니다. 현실에서 배제된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의미와 소속감을 주는 이야기에 강하게 끌릴 수 있습니다. 공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확신과 결합하면 다른 현실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점이 서늘했습니다.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명쾌하게 판정해주는 소설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진실을 어떻게 선택하고, 누구의 경험을 믿으며, 같은 설명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세계를 만들어가는지를 묻습니다. 결국 이 작품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정체불명의 소리가 아닙니다. 타인의 감각을 너무 쉽게 부정하는 사회와, 믿어주는 사람이 필요해 잘못된 확신에까지 매달리게 되는 인간의 외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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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소리를 듣는 사람들/조던 테너힐 (어느 날부터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아마 독자 여러분은 길게 늘어선 뉴스 카메라 앞에서 발가벗고 소리 지르는 내 모습이 담긴 인터넷 밈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마주친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적나라한 방종의 순간이 GIF로 영원히 박제되어 전 세계의 댓글이나 문자 메시지에 첨부되어 있는 것을. (9쪽)
이 책은 전직 고등학교 영어교사이고 집 근처 도서관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영어 야간 수업을 하고 있으며 가족을 몹시 사랑하는 평범한 주부가 자신이 겪은 ‘세쿼이아 크레센트’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에 관해 책을 쓰는 것으로 기획되었다.
나는 내 주관적인 경험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충실하게 사건을 되살리고자 했다. 여기 적힌 모든 말은 내가 직접 썼다. 대필 작가를 두지 않았다. 내가 그간 쌓아온 사소하거나 일시적인 악명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이 책을 쓴 것도 아니며, 나 자신에게 일종의 면죄부를 주기 위해 쓴 것도 아니다. (11쪽)
주인공은 늘 상황을 이해하려는 방편으로 책을 택했다며, 이 책을 쓴 이유도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방편이었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세쿼이아 크레센트 사건을 마치 자신들이 아는 양 떠벌리거나, 그날의 비극을 심야 토크쇼의 가벼운 웃음거리로 치부해 버리는 것을 더는 참을 수 없었음을…… 어떻게 그렇게 작고 무해한 무언가가, 자신의 삶을 통째로 흔들 수 있었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 웅웅 거리는 낮은 소리는 어느 날 남편 폴과 나란히 누워, 폴은 태블릿으로 <뉴욕 타임스>를 읽고 자신은 『십이야』에 대한 학생들의 에세이에 점수를 매기고 있었을 때 시작되었다고 한다.
며칠 전 고장 난 식기 건조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고장 난 지 꽤 돼서, 지금은 그저 씻은 그릇의 물 빠짐 용도로 사용하는 중이라 전기선도 진작에 끊어버렸는데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혹시 전기선을 그대로 꽂아둔 채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아들에게 봐 달라고 했더니, 원인을 찾지 못하고 그야말로 툭 쳤더니 소리가 멈췄다.
어쨌든 이렇게 소리라는 건 내게도 들리고 다른 이에게도 들리는 건데, 주인공 클레어에게 들리는 소리가 남편 폴이나 딸인 애슐리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시작된 웅웅거리는 소리로 인해 클레어는 잠을 잘 수도 없고, 직장인 학교생활에도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다가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 카일도 자기와 같은 소리를 듣고 있음을 알게 되고, 둘은 서로 의지하며 함께 소리의 근원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딸 애슐리로 인해, 카일의 어머니가 알게 되면서, 스승과 제자는 부적절한 관계로 낙인찍혀 클레어는 학교에서 쫓겨나 직장을 잃게 된다.
넌 범죄자가 아니야 넌 변태가 아니야 넌 사악하지 않아 넌 이기적이지 않아 넌 미치지 않았어 넌 쌍년이 아니야 넌 나쁜 아내가 아니야 넌 네 어머니가 아니야 넌 거울에 비치는 저 지친 여자가 아니야 넌 인간 쓰레기가 아니야 넌 우주의 법칙에 따라 처벌받고 있는 게 아니야 -중략- 넌 카일에게 문자를 보내지 않을 거야 넌 세쿼이아 크레센트에서 열린다는 그 모임에 가지 않을 거야 넌 페이스북을 확인하지 않을 거야 넌 페이스북을 확인하지 않을 거야 넌 페이스북을 확인하지 않을 거야 (112~113쪽)
망설임 끝에 클레어와 카일은 세쿼이아 크레센트에서 열린다는 그 모임에 참석하게 되고, 거기에서 자기들과 같은 사람들을 만나 연대감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들 모두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저자는 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소수의 목소리가,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얼마나 왜곡되고 심지어 범죄 취급까지 당연시되는지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소리의 공명을 따라가면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소수 그룹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소수의 목소리는 그게 오롯이 진실이더라도, 늘 소외되어 수많은 세월을 거쳐야 아주 조금 그 작은 목소리들의 진실이 드러난다. 아무리 개인이 노력해도, 사회적으로 용인된 것들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거기에 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소수를 바라보는 우리의 편견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모르거나 알고 싶지 않은 것은 틀린 게 되는 사회, 21세기라고 해서 다를 게 없다. “조너던 테너힐”의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클레어의 생각을 빌어, 우리들의 보편적 편견과 기득권 세력들의 음모론. 무엇보다도 진실을 향한 클레어의 몸부림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의 모순을 치밀하게 엮었다. 오페라로 제작되어 오슬로, 필라델피아, 시카고 등에서 상연되었고, BBC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니, 영상으로도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그들이 진실을 향해 외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하워드와 조가 말하는 ‘황홀경의 상호 연결’을 향해. 하지만 어쩐지 이러한 쾌락과 탄트라적인 초월성의 측면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 또는 적어도 나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소리’가 가능하게 하죠. 하워드가 대답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채웁니다. 근본적인 수준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249쪽)
혼자 사는 여성이 아니라면, 우리 여성들이 바로 이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두려워하며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완전히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불을 끌 때 뒤에 있는 존재를 느끼는 횟수, 얼핏 곁눈질로 무언가 보여서 휙 돌아보면 빈방인 경우, 침대에 누워 계단의 발소리, 차고 문이 열리는 소리, 밤중에 너무 또렷하게 울려 화들짝 깨어나게 만드는 초인종 소리를 들으며 보내는 시간들. 물론 그래서 나가보면 문 앞에는 아무도 없다. 차고 문은 언제나 닫혀 있다. 집 안과 계단에는 아무도 없고 옆방에 숨어 있는 사람도 없다. (301쪽)
조가 우리를 한 명씩 바라보며 말했다. 우린 모두 여기 모였어요. 모두 앉았습니다. 우리는 매우 과열된 상태입니다만 그 강렬함을 주파수와 연결할 수 있어요. 아시겠죠? 모두가 집중해 주세요. 몸속에 에너지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끌어모으세요. 다른 소음은 사라지게 하세요. ‘소리’를 안으로 기꺼이 받아들이세요. 여러분을 관통하도록 하세요. 여러분을 채우도록 하세요. (352쪽)
나는 구글에 검색했다. 슬픔으로 죽을 수도 있는가? 죽기를 바라면 죽을 수 있는가? 악몽으로 죽을 수 있는가? 우는 일은 칼로리를 소모하는가? 집에서 혼자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시체에서 냄새가 나기까지 얼마나 걸리는가? (362쪽)
엄마만 빼고 빌어먹을 전 세계가 받아들이고 있어. 심지어 엄마의 옛 패거리도. (372쪽)
죽음으로부터, 그리고 몸의 반향으로부터, 그대가 자신을 탐구할 때, 사랑의 꿈이 다가왔던 순간들이 있었다. 이 보편적인 죽음의 축제로부터, 비에 씻긴 저녁 하늘을 맹렬한 불꽃으로 불붙이는 이 극심한 열병으로부터, 언젠가 사랑이 솟아오를 날이 올까? (379쪽)
성 소수자 인권운동가인 작가의 글이라 남다르다. 허구의 힘을 빌려,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자연스레 드러내며 자신의 소신을 이야기한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한여름 밤을, 조던 테너힐이 잊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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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가의 두 번째 책이지만 처음 번역된 책이다. BBC 드라마 원작소설이자 실제 발생했던 소음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책소개를 읽기 전까지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윈저 지역에서 실제 발생했던 것을 몰랐다. 출판사와 문학상과 낯익은 작가들의 추천평이 책을 선택하게 했다. 음모론, 컬트, 믿음, 광기 같은 단어들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책을 받고 읽기 시작하면서 예상과 달라 초반에 고생했다. 내가 예상한 가독성도, 이야기의 시작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고생은 이야기에 집중하고, 이 현실로 인한 갈등이 생기면서 사라졌다. 이 갈등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고, 괜히 ‘나라면?’이란 상상을 하게 했다. 클레어는 고등학교 영어 교사이고 남편 폴과 딸 애슐리와 잘 살고 있었다. 이 삶이 깨어진 것은 어느 날 그녀에게만 들리기 시작한 어떤 소리 때문이다. 웅웅거리고 진동처럼 느껴지는 소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 들린다. 새벽에 집안에서 소리의 원인을 찾다가 집밖으로 나간다. 어디에서 울리는 소리일까? 다른 사람에게도 들릴까? 이른 새벽 전기가 끝어졌고 아내를 찾으러 나온 남편은 듣지 못한다. 이 소리가 24시간 그녀의 귀에 울리고, 코피까지 터진다. 두통이 극심하지만 소리는 크지도 않고 거슬리지도 않는다. 다만 잠을 못 자는 불면증과 그녀를 지속적으로 마모시킨다. 의사들도 이 소리의 원인을 모르고, 단순한 스트레스 등으로 치부할 뿐이다. 혼자만 이런 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했을 때 나타난 학생 카일. 그도 그녀처럼 이 소리를 듣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같은 소리를 듣는 사람을 발견한 두 사람은 순간적으로 강한 친밀감을 느낀다. 여선생과 남학생이 둘이 함께 있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둘은 이 소리의 원인을 찾으려고 마을 근처를 돌아다닌다. 두 사람이 함께 다니는 것을 주변에서 본다면 오해하기 충분하다. 그러다 늦은 밤 카일과 전화하는 것을 딸 얘슐리가 듣는다. 카일이 전화한 이유는 자신들 같은 사람들의 모임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딸이 카일에게 남긴 메시지를 카일의 엄마가 보면서 문제가 커진다. 클레어와 카일만 듣는다고 생각한 소리를 듣는 다른 사람들. 이 사람들의 모임을 주도한 대학 교수 출신 하워드. 여러 명이 모였을 때 하워드가 말한 인간의 가청 범위 밖의 소리 이야기. 나중에 이들이 모여 공명하면서 느끼고 경험하는 것은 왠지 동양적이다. 소리가 공명하면서 그들이 느끼는 강렬한 감각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이런 그들을 사람들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클레어가 듣고 느끼는 감정에 대해 그녀의 가족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망상을 믿고 있다고 말할 때 그녀가 내놓은 반론은 굉장히 반기독교적이다. 이것을 소리를 듣는 사람 중 한 명의 음모론으로 넘어가면 더 이상해진다.
하나의 현상에 대해 서로의 입장이 나누어진다. 분명한 것은 그녀와 몇 사람이 소리를 듣고 힘들어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모인 것도 이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것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사고 범위에서 제단하고 판단한다. 이 때문에 생기는 갈등은 점점 심해지지만 그 바닥에는 가족애가 깔려 있다. 물론 이 가족애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지면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읽으면서 수없이 나의 입장을 정리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클레어도 자신이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남편이나 딸처럼 행동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이 지점을 짚은 부분과 그녀가 실제 경험한 것들이 생각을 복잡하게 한다. 딸 애슐리가 엄마에게 욕하면서 말하는 대목은 끝까지 적응하지 못했다. #조던테너힐 #장편소설 #캐나다베스트셀러 #bbc드라마원작소설 #소리를듣는사람들 #문학동네#리뷰어스클럽 #김산 #리뷰어스클럽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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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보통 사람들보다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 가볍게 부딪혀도 누군가는 가볍게 넘어가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과하게 반응하며 매우 아파한다. 그럴 때 우리의 반응은 무엇인가. 예민한 사람들에게 '그까짓 거 가지고 유난'이라고 핀잔을 하곤 한다. 별 거 아닌 일에 심하게 반응한다며 그들의 예민성을 비웃는다. 일반적이지 않기에 예민함은 보통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BBC드라마 원작소설이기도 한 조던 태너힐의 장편소설 『소리를 듣는 사람들』 또한 그런 예민함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리'에 대한 예민함을 가진 사람들.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그들의 청각적인 예민함은 유난스러움이 되고 그들의 외로움은 광적인 집착으로 매도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간신히 감지할 수 있는, 매우 낮게 반향하는 음조가 있었다. 소리를 듣는 사람들 20p 조용한 밤, 온순한 남편 폴의 사랑스러운 아내이자 축구선수 애슐리의 엄마이자 존경받는 선생님이었던 클레어는 낮게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낮게 들리는 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에서 울리는 낮은 소리는 클레어를 괴롭게 한다. 한밤중에도, 새벽에도 그 소리는 계속된다. 모든 전기를 차단해도 울리는 소리. 그 소리에 남편과 딸은 예민해서 그렇다며 좋게 끝내자고 한다. 하지만 이 소리로 인해 불면증이 생기고 피곤증을 일으키며 수업까지 차질을 일으킨다. 클레어는 혼란스럽다. 오로지 자신만 듣는 이 소리. 과연 자기가 잘못 된 것일까? 왜 분명히 존재하는 이 소리를 다른 사람들은 못 듣는단 말인가? 자신만 듣는 소리이기에 누군가와 의논할 수 없다. 심리치료도 의학치료도 이 소리를 막을 수 없다. 과연 클레어가 잘못인 것일까? 클레어는 이 혼란 속에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카일 또한 똑같은 소음을 듣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으로 같은 소리를 듣는 사람을 만난 클레어는 카일과 함께 소리의 근원을 찾아 다니지만 부적절한 관계로 오해받아 해고되고 남편과 딸에게도 외면받는다. 가족과 일 모두를 잃을 사면초가 신세에 빠진 클레어에게 같은 소리를 듣는 모임을 알게 되며 클레어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모임에 합류한다. 과연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함께 모여서 그들만의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하지만 모두의 생각이 다르듯이 모임의 주관자들과 생각이 다르기도 하고 번민하기도 한다.
모임의 사람들은 각자의 고민을 토로한다. 실성했다고, 병들었다고, 또는 망령이 들었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말한다. 일반 사람들이 쉽게 무시하는 이 작은 소리들이 누군가의 삶을 통째로 흔들 수 있다고. 그러므로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주는 파괴는 감히 상상도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조던 태너힐의 『소리를 듣는 사람들』에서의 이 모임이 어떤 범죄나 또는 미스테리로 이어가길 바라는 사람들에게라면 사실 이 소설은 실망일 수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소음의 정체가 거대한 사회 범죄와 연루되어 있기 바랬던 나의 입장으로서는 모임의 전개 방향이 너무 의외여서 당혹스러웠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미덕이 있다면 소음에 대해 주변의 인정을 억지로 받아내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류에서 이해받지 못한 예민함은 끝까지 이해받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기에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공감하기 쉽다. 그리고 클레어 또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는다. 그것 또한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인다. 어쩌면 작가는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기보다 그저 현실을 담담하게 보여주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따뜻한 연대를 꿈꾸고 사회 정의를 쫓는 소설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예민함과 아픔을 제대로 보아주지 못하는 이 현실을 보여주는 소이라고 이 소설을 말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