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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 동화는 무엇이었을까. 아직도 '아기 사슴 밤비'의 그림이 생각난다. 우리시대의 동화들은 두 분류였다. 전래동화 혹은 이솝우화가 그것이다. 어릴 적 나는 전례동화를 읽었다기보다는 들었다. 지금 이솝우화나 탈무드가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어린 시절 기억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랍의 피라고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한국인이지만 아라비안나이트가 홍길동만큼이나 친근하다.
그렇다. 나의 어린 시절 전례동화는 시시하거나 무서웠고 이솝우화나 탈무드는 착각을 하게 했다. 거짓말하는 소년에 나오는 넓은 벌판에 모여있는 양떼의 그림을 보면서 조금만 크면 그런 곳을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기사슴 밤비의 그림을 보면서 사슴은 모두 두발로 깡충깡충 뛰어 다니는 줄만 알았다. 나는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는데 탈무드에서 현자는 태양을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글귀를 보고 뚫어져라 해를 보는 버릇이 원인이라 생각된다. (아직도 그 그림, 그 페이지가 생각난다)
이런 착각은 아직 이해력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줄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굉장한 실망감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우수창작동화를 읽으면서 희망을 보았다. 아이들이 우리의 것을 더 친근하고 현대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유난히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이야기에 많이 나오는 도깨비, 할머니, 할아버지 등의 한정된 레퍼토리를 여러 방향으로 진행시키는 노력이 보였다.
훈장도깨비
이 동화의 수준은 상당하다. 마치 불교의 선문답을 푸는 것 같은 경건함이 배어 나온다. 주지스님과 동자승, 그리고 도깨비 방망이를 대신하는 목탁. (목탁구멍은 배워서 남 주는 자비의 상징이 아닐까) 아이들이 가장 많이 저지르는 범죄인 진실위조죄(거짓말)와 현금날조죄(도둑질)를 우화 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결말이 재미있다. 독자에게 질문을 남기며 훈장도깨비는 귀를 기울이고 있다.
도깨비라는 캐릭터와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교훈을 담은 우화, 동물들이 사람을 비난하는 우화는 그리 창의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거짓말을 민들레 홀씨와 비교하여 강한 깨우침을 주고 있는 것, 아주 이상하게 생긴 것이 달팽이였다는 것, 시간이 중요하다는 점과 결말의 형식은 신선하다. 이 동화는 마치 젠 스타일의 식사를 하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먹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도대체 왜 주인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주었을까하는 그런 달콤한 고민을 하는 듯하다.
"사람한테 시간이 왜 중요한 거예요?"
"달팽이가 어째서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아이들은 무어라고 답할까. 최근에 인상적인 광고를 봤다. '한글나라' 학습지 광고인데 두 살부터 한글을 시키라고 설득하고 있다. 한글이 트여야 창의력이 트인다는 것이 컨셉이다. 꼬마아이가 봄에 하얗게 핀 목련을 '팝콘'과 연관시키고 선인장 묘사를 읽고 '아빠수염'을 떠올린다. 영어만 중요하다 할게 아니라 한글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광고였다. 그런 아이들은 위 질문에도 멋있게 답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람한테 시간이 왜 중요할까.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대답이 쉽게 나오질 않는다. 집안에 몇 개씩 되는 시계와 피부처럼 달라붙은 손목시계들이 시간의 중요성을 역설시켜 준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아주 다르게 사용할 수 있고 결과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 모든 비밀은 시간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언제나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다보면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시간은 계속 한 방향으로만 돈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흘러가 버리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인다고 하지 않는가. 시간은 미래를 향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만들고 추억을 만들고 후회를 만들기 때문에 중요하다. 달팽이는 어째서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걸까. 혹시 시계방향 무늬의 자기 집을 시간의 집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이 베스트 비소설 부문에 오르자 '느림'에 관련된 책들이 선을 보였었다. 얼마나 사람들이 빠르게 살아야한다는 것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느리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저항감이 큰 일인가.
이 책의 '이상한 달리기'에서도 보았듯이 아직 몇 년 살지 않은 아이조차 느리게 무엇을 한다는 것에 상당한 저항감을 느낀다. 이제 빠르게 무엇을 해내었다고 해서 시간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고는 회의감만 들게 한다. 어느 누구도 인생을 100미터 달리기에 비유하지 않는다. 물론 일등으로 들어온 사람이 상을 받지만 이등 삼등, 꼴등까지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마라톤밖에 없기 때문이다.
달팽이는 느리다. 꿈이 없어서 목적이 없어서 느린 걸까. 패닉의 노래 중에 바다로 가는 달팽이도 역시 느리다. 깜찍이 소다에 사진기 앞을 지나가는 달팽이도 느리다. 빠르게 걷다보면 다리를 삘 수도 있고 흔히 말하듯이 주위풍경을 지나칠 수도 있다. 조급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심호흡을 권한다. 사람의 모든 것이 '숨'에서 시작된다. 시간은 이 '숨' 즉 호흡을 다스린다는 면에서 중요하며 달팽이는 느리지만 제대로 숨을 쉰다는 것에서 시간을 가졌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동화지만 나만한 수준이 읽어도 좋을만한 글들이 많았다. 아름답고 이쁜 것들만 보여주는 디즈니식 동화에만 익숙해 있었는데 상당히 충격적이고 심오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보며 아이가 되고 싶다.
부록> 한마디씩...
비극적 결말로 날 놀라게 한 '꿈 도둑' 아프리카의 섬뜩한 피 빛 먹이사슬을 못생긴 하이에나로 그리고 있는 '태양이 떠오르는 그 너머로' 얼마 전에 다시 읽은 '우동 한 그릇'보다 더 감동적인 '백 번째 손님' 우울한 환경 속의 꿋꿋한 아이 '구두 닦는 소녀' 전쟁(6.25)과 관련된 '소년병과 들국화', '옥수수'.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슬픔을 담은 '주인 없는 옷' 왕따에게 희망을 주는 '나는 그냥 나야' 동화에 탈주범이 나와 엽기로 흐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희망과 우려를 둘 다 준 '탈주범과 이발사' 너무나 재미있게 읽은 동전이야기 ' 동전의 여행' [인상깊은구절] "거짓말은 꽃씨를 심는 거와 같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열매를 더욱 멀리 날아가 사방에 퍼진다. 악독한 씨앗을 거두려 해도 거둘 수도 없어." 그제야 거짓말 도깨비는 훈장 도깨비 앞에 무릎을 꿇었어.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 후, 거짓말 도깨비는 참말 도깨비가 되었단다. |
| 요즘 동화를읽다 보면 내용도 떨어지는 것 같고, 너무 시류에만 부합하는 책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우수 창작동화20' 시리즈는 언제나 실망을 주지 않는 책 중 하나이다. 한 해의 동화 중에 좋은 것들만 추려 뽑은 '우수 창작동화20' 시리즈는 동화의 깊이를 새삼 알게 해 준다. 얼마전 단행본으로도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 남미영 선생님의 '소년병과 들국화'는 특히나 남북이 대치해 있는 지금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보다 많은 어린이들이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 글쎄, 내년부터 나오는 '우수 창작동화20' 시리즈는 조금 더 투자를 해서 그림도 칼라로 하는 등 형식에서 보다 대중성을 확보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