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童話, 同化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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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童話)는 아이들이 읽는 이야기이다. 정말 그런가? 그런 줄 알았으나 나 같은 성인에게는 비타민이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더군다나 북한 동화를 접해보지 못한 나에게는 ‘광복 60년 동안 가장 빛나는 남북한 창작 동화’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초등학교 시절, 아니 국민학교 시절에 반공 포스터나 스크랩을 해본 적이 있는 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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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화(童話)는 아이들이 읽는 이야기이다. 정말 그런가? 그런 줄 알았으나 나 같은 성인에게는 비타민이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더군다나 북한 동화를 접해보지 못한 나에게는 ‘광복 60년 동안 가장 빛나는 남북한 창작 동화’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초등학교 시절, 아니 국민학교 시절에 반공 포스터나 스크랩을 해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북한 동화’라는 말 자체가 당혹스럽다. 북한에는 동화라는 게 없겠거니 여겼나보다. 두음법칙이 적용 안 된, 사이시옷이 없는, 게다가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낱말은 거짓말 조금 보태 낯선 외국어를 맞닥뜨린 기분이다. 기실 제주도 방언보다는 훨씬 가까운데 말이다. 내 머리 한구석에 한민족 두 나라로 저장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이러한 나의 생각을 바로 잡아 주었기 때문에 이 글을 쓴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이야기는 배풍의 ‘되돌아온 오리’이다. 안데르센 동화를 읽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기자기하였다. 호기심 많은 오리 줄배기와 알락이는 아침 체조를 뚜꺼먹고(이유 없이 빼먹고) 널판자(널빤지)를 타면서 새내물(시냇물)을 유람한다. 까마귀 흉내를 내다, 왜가리 소리 따라하다 마침 만난 물오리 떼와 실컷 놀면서 집에 갈 생각은 하지 못한다. 겨울이 닥치자 그제서야 집 생각이 난 줄배기와 알락이는 며칠 동안 굶주리며 어렵사리 집에 도착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간 배우지 못한 집 나간 오리는 노래를 엉망으로 부르고 자기네보다 어린 오리들한테 달리기도 지고 만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한밤중에 나와 맹훈련을 한다. 그래서 자기의 자리를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어린이 책은 무엇보다 재미가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미가 있어야 책을 들게 되고, 책을 자주 들어야 독서습관이 생긴다. 이런 면에서 배풍의 동화는 손색없다. 더불어 교훈성까지 갖추고 있다. 배움의 중요성과 이를 놓쳤을 때의 어려움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배움을 인정하지 않는 무리에 대한 비판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아 아쉽다.

  ‘여러분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새들은 서로 생김새가 다르고 먹이도 다르듯이 말도 자기네 말을 하며 산답니다.’ 김형운의 ‘말 배우는 밀화부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되돌아온 오리’처럼 우화 형식이라면 모든 동물들이 말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줄배기가 개구리에게 나무 토막 타고 어디 가냐고 물었던 것처럼.

  종(種)이 다르면 말도 다르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고정관념에 빠진 것일까. 아니다. 읽는 내가 그렇다. 우화라면 의당 그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 이야기는 소재부터 새롭다.

  어린 밀화부리는 다른 언어에 관심이 많다. 쇠찌르레기, 접동새 말을 연습하는 밀화부리가 엄마는 못마땅하다. 엄마의 꾸중에도 다른 새들의 말 배우는 것을 그만두지 않는다. 어느날 엄마는 접동새에게 부탁할 일이 생기자 까마귀에게 통역을 부탁한다. 까마귀는 밀화부리와 접동새 사이에서 엉터리 통역을 해 주며 이득을 챙기려 하지만 밀화부리의 접동새 말 실력으로 까마귀의 속임수가 백일하에 드러나고 만다.

  ‘네가 정말 장하구나. 네가 다른 새들의 말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알도 다 잃어버리고 마감(마지막)엔 더 큰 일을 당할 뻔했구나. 남의 말을 배우는 것도 자기 동산을 위한 일이라는 걸 나도 이젠 알게 되었다.’ 엄마는 다른 새의 말을 할 줄 아는 밀화부리를 자랑스러워하게 된다. 앞 이야기 ‘되돌아온 오리’와 상반된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눈에 묻혔던 꾀꼴새(원도홍 동화)’나 ‘기러기(황민 동화)’는 흡사한 구조로 서술하고 있다. 꾀꼴새는 남쪽으로, 기러기는 북쪽으로 머나먼 여행을 해야 한다. 순조로운 여행길이었다면 이야기가 될 수 없다. 반드시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꾀꼴새의 여동생이 덜컥 앓아눕게 되어 약초를 구해야 한다. 약초가 많이 나는 백약산은 하필이면 추운 북쪽에 있다. 여동생 일만으로도 급한데 도중에 밸이 꼬인 까치를, 새매와 싸우다 물어뜯긴 꿩을, 커다란 우박에 맞아 몸져누운 딱따구리를 만나게 된다. 이를 무심히 지나칠 수 없었던 꾀꼴새는 안타깝게 동생만 구하지 못하고 죽을 지경에 이르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꾀꼴새 남매는 목숨을 건진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몇 날 몇 밤을 자지도 못한 채 드넓은 바다를 건너야 하는 기러기 떼. 갈매 기러기가 지쳐 비행을, 아니 삶을 놓으려는 순간 딜띠 기러기는 자기의 꼬리를 내민다. 이윽고는 등을 내민다. 친구까지 죽음으로 내몰 수 없었던 갈매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친구의 간곡한 부탁에 한사코 사양하던 갈매는 어쩔 수 없이 등에 업힌다. 얼마 가지 않아 두 배의 체중을 견딜 수 없었던 딜띠는 날갯짓이 불가능하여 자꾸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내려간다. 갈매도 달띠를 도우려 하지만 기운이 빠져 도리가 없다. 둘이서 꼭 껴안은 채 바다의 거대한 입에 빠지려 한다. 서로를 끔찍이 아끼는 사랑 덕분이었을까. 떨어진 곳은 바다가 아니라 땅이었다.

  두 이야기는 이성이 아니라 감성으로 읽어야 한다. 어떠한 메시지를 찾는 것보다는 타인을 배려하고 희생하는 커다란 사랑으로 읽어야 한다.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이데올로기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사랑이다.

  이 외에도 새 이야기는 많다. 김대승의 ‘클락새 오누이’, 허원길의 ‘딱따구리의 빨간 모자’ 등이 더 실려 있다. 북한 동화작가들이 새에 대한 남다른 시선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새는 ‘자유’를 상징한다. 어렸을 때부터 새의 날개를 동경했다. 그래서인지 꿈속에서는 날개를 가질 수 있었다. 지구 밖까지 날아오를 듯이 힘찬 날갯짓을 하였다. 아무리 높은 산이라도 내게는 문제없었다. 위에서 바라보는 강산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북한 작가들에게도 새는 자유의 이음동의어였을 거라고 단정해본다. 자유를 갈망하는 작가들이 작품으로 표출한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새는 ‘희망’이 된다. 오랜 비행을 마치고 바라보는 붉게 동트는 하늘같은 희망. 자유를 넘어선 희망! 그 희망은 무엇일까.

  나는 감히 ‘통일’이라고 말한다. 남북한이 하나가 되는 간절한 바람이 숨겨져 있다.


  고교 시절 사회 교과서에서 파블로 피카소의 ‘케르니카’를 보았다. 스페인내란 당시 독일에 의해 무참히 폭격당했던 그의 고향 게르니카의 참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죽은 아이를 안은 젊은 엄마의 절규와 날뛰는 말의 울음소리가 섞여 폭포수처럼 쏟아져서 오래 곱씹을 수 있었다.

  피카소가 한국전쟁을 모티브로 작업을 했는지는 몰랐다. 그의 ‘한국에서의 학살’은 한국전쟁의 처참함을 전세계에 알린 작품이다. 로봇처럼 차가운 금속으로 만들어졌을 것 같은 미군이 겨눈 총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아녀자다. 아이들 뒤로 숨기려는 아낙, 아기를 꼭 껴안은 채 울고 있는 노파, 두 눈을 감은 임신한 여인, 가슴을 가린 수줍은 소녀, ‘게르니카’의 말처럼 날뛰는 아이, 아무 것도 모른 채 흙장난하는 아이…….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되돌릴 순 없다. 다시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한 최선책은 바로 통일이다. 하나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베를린장벽이 순식간에 무너지진 않았다. 활발한 교류가 필요하다. 몇 해 전 북한 소설가 홍석중의 ‘황진이’가 만해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이슈가 되었다. 이와 같은 일이 이슈가 될 수 없는 날이 온다면 통일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선 것이다.

  ‘남북한 명작 동화’도 밑거름이 될 것이다. 아동문학의 활발한 교류로 남한의 어린이가 수업시간에 북한 동화를 읽는다면, 북한에서도 남한 동화를 읽는다면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한층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리원우의 ‘작아지지 않는 연필’은 대다수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 남한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이야기이다. 생활동화라는 점에서 아이들이 더욱 공감할 수 있다.

  주인공 용이는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기는, 공부 좋아하는 아이가 몇이나 될까. 그리고 용이는 연필을 아낄 줄 모른다. 연필쯤이야, 흔하고 흔한 게 연필인데. 이렇게 넘어갈 수는 없다. 공부 안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도 물건을 아끼지 않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아이들에게는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는 것이다. 꿈속에 나타나 늘 새것만 좋아하는 용이를 혼내 주는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은 물건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동화를 읽지 못하고 성장한 나는 가끔씩 영양이 부실한 아이가 되어 비칠거린다. 동화는 어린이에게만 필요한 책이 아니다. 동화는 동심으로 읽히므로 성인이 책을 펼치는 순간은 동심이 될 수 있다.

  나에게 동심을 선물한 이 책이 고맙다. 오랜만에 즐기는 유쾌한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통일에 대한 시각을 바로 잡아 주었음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한 뼘은 더 큰 것 같다. 그렇다. 책을 통해 사람은 성장한다.

  ‘광복 60년 동안 가장 빛나는 남북한 명작 동화’와 같은 책이 자주 출간된다면 통일은 결코 험난한 산길은 아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a*****4 2008.05.0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