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리뷰 총점
누가 한 말이 참말일까? [라쇼몽]
"누가 한 말이 참말일까? [라쇼몽]" 내용보기
1. 나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영화를 좋아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느낄 수 있는 온갖 느낌을 영화 속에서 잘 버무려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영화는 어렵게 비비 꼬지 않고 바로 속살을 보여주지만 그 깊이는 보기와 다르게 무척 깊다.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느낌도 단조롭지 않다.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거나 슬프게 하거나 안타깝게 하는 따위의 어느 한쪽 느낌
"누가 한 말이 참말일까? [라쇼몽]" 내용보기

1.

나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영화를 좋아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느낄 수 있는 온갖 느낌을 영화 속에서 잘 버무려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영화는 어렵게 비비 꼬지 않고 바로 속살을 보여주지만 그 깊이는 보기와 다르게 무척 깊다.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느낌도 단조롭지 않다.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거나 슬프게 하거나 안타깝게 하는 따위의 어느 한쪽 느낌만 나타내지 않았다.

흐뭇하면서도 안타까움을 같이 맛보게 하거나, 씁쓸한 느낌과 그나마 낫다는 느낌을 같이 주기도 한다. 

 

웃기고 울리면서도 싸구려 같지 않았다.

정나미가 떨어지고 넌더리가 나도록 하지만 질리거나 물리지는 않는다.

여느 영화처럼 흐뭇하고 좋게 끝맺음을 맺지는 않지만, 가슴 속에서 따뜻한 불씨가 꺼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씁쓸함이나 뒤틀림을 보여주지만 그 속에는 한결같은 따뜻함이 들어있다.

 

그는 영화 속에서 삶을 가볍게 보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겁게 보지도 않았다.

한 편의 영화에서도 때론 가볍게 나아가고 때로는 무겁게 보여준다. 

그가 보여주는 영화는 어떤 것이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아서 좋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쉽게 이럴 것이라고 짐작할 수 없게 한다.

 

<7인의 사무라이>에서 온갖 어려움에도 꿋꿋이 버티고 살아가는 건, 힘이 세고 날랜 칼잡이들이어야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땅을 가꾸고 일구며 사는 여린 농투성이들이다.

<카게무샤>에서도 죽은 다케다 신겐을 가로맡아 죽지 않은 척 하면서 세월을 끌어가는 이만 보였으면 좋은 끝맺음이겠지만, 그 끝은 공들여 키워놓은 싸울무리들을 신겐의 아들이 어이없게 죽게 만들어버린다.

<란>에서도 아버지가 생각한 바람은 그저 바람일 뿐, 생각지 않은 엉뚱한 쪽으로 치닫게 된다.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에서도 나쁜 놈은 쉽게 사라지지도 않고 죄값도 쉽게 받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쁜 놈이 정말 멀쩡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도 아픔을 겪게 되므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1950년에 만든 <라쇼몽 羅生門  Rashomon>도 한 가지 느낌으로 볼 수가 없었다.

말을 하는 이 가운데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만, 아니 모두가 거짓말을 하는지도 모르지만,

세상을 좋게 하려는 작은 움직임은 놓치지 않고 담아놓았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세상과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세상 사람들을 마냥 나무랄 수만은 없었다.

온통 차가운 세상 속에서도 작지만 따뜻한 불씨를 챙겨놓은 감독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2.

절 어귀에 있는 문이지만 반쯤 허물어진 '라쇼몽'의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젓는다.

"모르겠어...난 정말 모르겠어...뭐가 뭔지 도통 모르겠어" 하며 나무꾼(시무라 다카시)이 혼잣말을 하고,

비를 피하려고 처마 밑으로 들어온 다른 사내(우에다 키치지로)가 그 소리를 듣고 말한다.

"뭐가 모르겠다는 거요? 내게 다 털어놓아 봐요...우리 중에 마침 고명한 스님도 한 분 있잖소."

 

곁에 있던 스님(치아키 미노루)마저 고개를 흔든다.

"오늘처럼 무서운 얘기는 처음이오...이 일로 말미암아 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될지도 모르겠소.

그건 도적떼보다도, 돌림병보다도, 굶주림과 불, 싸움보다도 나쁜 일이오..."

 

이들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사흘 앞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칼잡이가 아내를 말에 태우고 야마시나로 가는 큰 길을 지나가다가 벌어진 일이다.

이름난 도적을 만나 아내는 몸을 빼앗기고, 칼잡이 사내는 죽는다.

 

관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캐묻는다.

사로잡혀온 도적 타죠마루(미후네 도시로)가 하는 말과

몸을 빼앗긴 아낙네 마사코(쿄 마치코)가 하는 말,

죽은 칼잡이 사내 타케히로(모리 마사유케)의 넋을 불러낸 무당이 하는 말이 다 다르다.

게다가 관아에 이 일을 알린 나무꾼이 하는 얘기는 이들과 또 다르다.

아낙네가 쓰던 작은 칼에는 값진 돌이 박혀 있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사람이 죽은 것은 틀림없지만, 그가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를 본 사람들이 다 다르게 말을 한다면,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왜 이들은 제가 겪고 본 일을 다르게 말하는 것일까?

 

3.

영화는 먼저 '라쇼몽'에서 세 사람이 앞선 날에 일어난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나눈 이야기를 따라 '숲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아에서 어떤 말들이 나왔는지를 보여준다.

 

길가 큰 나무 아래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가 살살 불던 바람에 눈이 살짝 뜨였던 타죠마루가 먼저 밝힌다.

"얼핏 아낙네를 봤고, 그이는 지나가버렸습니다...내가 선녀를 봤구나 싶었거든요.

순간 그 옆지기를 죽이더라도 그이를 내 것으로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타죠마루는 그 길로 꾀를 내서 칼잡이를 산 속으로 꼬드기고 그 끝에 사로잡아 밧줄로 묶었고,

산 아래에 있던 아낙네마저 제 옆지기를 핑계삼아 숲으로 끌고 갔다는 것.

"칼잡이를 죽이지 않고 아낙네를 내 것으로 만들었지요. 그 때까지도 난 칼잡이를 죽일 생각이 없었어요."

여기까지는 보고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같아 보인다. 그 다음부터는 말하는 이에 따라 다르다.

 

죽은 이는 사내인 칼잡이지만, 살아남아서 아픔을 겪는 이는 몸마저 빼앗겼던 그 아내다.

사내들은 잘난 척하면서 힘없는 아낙네에겐 깨끗하게 살라고 하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험한 꼴을 겪은 아낙네가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이었을까?

감독은 네 가지로 아낙네의 아픈 모습을 나타냈다. 칼잡이를 누가, 어떻게 죽였는지를 밝혀가면서. 

 

4.

관아에서 타죠마루가 칼잡이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밝힌다.

사로잡혀 꼼짝을 못하지만 억울한 듯 온몸을 비틀고 씩씩거리면서 콧김을 내뿜는 타죠마루는 할 말이 많다.

 

타죠마루가 일을 마무리하고 산길을 혼자 내려가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아낙네의 말에 가던 걸음을 멈춘다.

"그냥 가면 내게 죽으란 건가요? 당신이 죽든지, 내 옆지기가 죽든지, 둘 가운데 하나는 죽어야 해요...

두 사내의 몸을 알고 있는 내 부끄러움을 안고 산다는 건, 죽느니만...죽느니만 못해요.

저는...저는...그 한 가지만 부탁할게요. 살아남은 사내와 같이 가겠어요!"

 

타죠마루는 그 말에 무척 놀랐지만, 이내 가슴을 쓸어내리며 칼로 칼잡이가 묶인 밧줄을 끊어버린다.

그 때부터 두 사내는 죽을 둥 살 둥 모르게 칼싸움을 벌인다. 그 끝에 칼잡이가 죽었다는 것.

 

이 대목은 계집 하나를 두고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하는 사내들의 뒤틀린 삶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지아비가 보는 앞에서 다른 사내한테 몸을 빼앗겼지만 기죽지 않고 제 삶을 풀어가려는

아낙네의 씁쓸하고 모진 마음이 더 깊이 와닿았다. 

 

5.

이젠 아낙네 차례다.

타죠마루가 억지로 제 몸을 빼앗은 뒤에 산 아래로 달려가버렸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뒤에 아낙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저는...이제도 옆지기의 눈을 생각하면 핏줄 속의 피가 싸늘해져요. 그의 눈 속에 보이는 건 성남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저를 벌레보듯 낮춰보는 차가운 눈빛이었어요..."

 

견디다 못한 아낙네가 제 칼을 건네며 옆지기에게 말한다.

"자, 죽이세요! 당장 절 죽여주세요!"

그러다가 까무러쳤던 아낙네가 깨어나 둘러봤더니 제 칼이 죽은 옆지기의 가슴에 꽂혀있었다는 것.

 

이 대목을 보면서는 가슴이 아팠다.

"그만해요! 그런 눈으로 절 보지 말아요!" 하며 울부짖는 아낙네의 슬픔과 아픔이 가슴에 꽂혔다.

옆지기의 등 뒤에서 비추는 카메라에는 앞에 바라다보이는 아낙네의 미칠 듯한 얼굴과 외침이 가득 찼다.

옆지기는 아내를 쳐다볼 뿐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지만 그 아내가 부르짖는 말과 모습만으로도

사내와 계집의 사랑과 믿음은 이제 저 멀리 달아났고 깨어져 버렸음을 잘 보여주었다.

싸늘하게 바뀐 옆지기의 눈빛과 그 눈빛에 가슴이 내려앉아버린 아내의 아픔을

이 대목보다 더 잘 나타낼 수는 없을 듯싶었다.

 

6.

죽은 몸이 되어버린 칼잡이의 마음을 어떨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지만, 영화 속에서는 무당의 힘을 빌어 그가 보고 겪은 일을 알려준다.

 

"도적놈은 일을 끝낸 뒤 제 아내를 달래려 애썼습니다...이제 네 몸은 더럽혀졌으니 네 옆지기와 더

있어봐야 뭐 하느냐, 옆지기를 떠나 같이 사는 게 어떻겠느냐, 저는 오로지 그이를 사랑해서 그랬다면서"

꼬드김일지 속마음일지 모르지만, 그 말을 듣고 난 아낙네는 옆지기를 가리키며 타죠마루한테 말한다.

"저 사람을 죽여주세요. 그가 살아있는 한 난 당신과 함께 가지 않겠어요. 저 사내를 죽이세요!"

 

그런데 타죠마루는 같이 떠나려던 아낙네를 쓰러뜨리고는 말한다.

"이 계집을 어찌하면 좋겠는가? 죽일까, 살려줄까? 당신은 고개만 끄덕이시오."

 

놀란 아내는 달아났으며, 그 뒤를 쫓던 타죠마루는 다시 돌아와 밧줄을 끊어주었고,

슬픔에 겨워 흐느끼다가 칼잡이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

 

이 대목은 사랑이 어떤 모습으로 뒤바뀌어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굳세지 못한 사랑 때문에 살기가 싫어진 칼잡이의 모습은 보기에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7.

마지막으로 나무꾼은 제가 본 일을 털어놓는다.

타죠마루가 쓰러진 아낙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싹싹 빌고 있었다면서.

"당신이 나랑 같이 가준다면 뭐든지 할게...그만 울고 대답 좀 해봐! 내 아내가 되겠다고 말해!"

울고 있던 아낙네는 일어나서 "못해요. 나로서는 말할 수 없어요. 계집인 내가 뭘 말할 수 있겠어요."

말하고는 제 옆지기가 묶인 밧줄을 작은 칼로 잘라버린다.

 

두 사내가 이젠 싸워야 하는데, 아낙네의 생각이나 영화를 보는 이의 마음과 다르게 나아간다.

"당신은 어째서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 거지? 난 이런 뻔뻔한 갈보는 없어도 돼요. 당신이 데려가시오." 옆지기는 아내를 남 보는 듯하고, 타죠마루도 마찬가지다. 아낙네를 스쳐 지나갈 뿐이다.

놀란 아낙네가 "잠깐만요" 하며 타죠마루를 붙잡지만 돌아오는 말은 차갑다. "따라오지 마!"

 

생각밖으로 나오는 두 사내한테 아낙네는 미친 듯 웃으면서 소리친다. 너희들은 사내도 아니라며 비웃는다.

이에 놀란 사내들이 다시 칼싸움을 벌이다가 칼잡이 사내가 죽었다는 것.

 

8.

이안 감독의 작품 <라이프 오브 파이 / 파이 이야기>에서는 두 가지 이야기 가운데 어느 것을 고르고 싶으냐고 물었지만, 이 영화는 네 가지 다른 이야기를 펼쳐놓고 당신은 어떻게 바라보고 싶냐고 묻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나누는 말들은 버릴 게 없었다.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사랑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내뱉는 말들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였대요..." 하는데, 그 말에 듣는 사내가 놀라지 않는다.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한다.

"난 또...겨우 사람이 사람 하나 죽인 것 갖고...이 라쇼몽의 꼭대기에선 적어도 연고 없는 대여섯 주검을

누구든 찾아낼 수 있을 텐데..."

 

나무꾼이 먼저 소리친다. "거짓말이야! 모두 거짓말이야! 타죠마루의 얘기도, 아낙네 얘기도"

곁에서 듣던 사내도 덧붙인다.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야. 대개의 경우 우린 스스로에게도 바르질 못해"

 

이들의 말을 듣던 스님은 달리 말한다. 마치 감독이 영화를 보는 이한테 하고 싶은 말인 듯이.

"그럴지도 모르지요. 약한 것이 사람이기에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스스로에게조차도"

 

요즈음 우리네 영화나 할리우드 영화에 자주, 질퍽하게 나오는 욕 따위를 들으며 느끼는 아쉬움은

저 멀리 사라져갔다. 곰삭은 말들과 딱 들어맞는 연기가 어우러져 88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몰랐다.

 

있었던 일을 제 나름으로 말하는 네 사람의 연기는 누가 더 낫다고 보기 어려웠다.

도적 노릇의 미후네 도시로는 물고기가 살아 펄떡이듯 어디로 튈지 모를 아슬아슬함을 보여주었고,

칼잡이 사내를 맡은 모리 마사유케도 센 힘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겪는 아픔을 슬프게 나타냈다.

 

나로서는 힘없는 아낙네를 맡은 쿄 마치코가 그리 잘난 얼굴은 아니지만 두드러져 보였다.

제 옆지기는 묶여 있고 도적이 제 몸을 훔치려할 때, 작은 칼로 죽을 힘을 다해 맞서지만 어쩌지 못하는

아픔을 드러낼 때는 나도 답답하고 가슴이 아팠다.

"아흐흐흑...으흑...아흐흐흑..." 울부짖는 소리가 보는 내 가슴을 망치로 치는 듯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눈을 돌리는 그 옆지기의 무너지는 가슴도 보기에 안타까웠다.

 

칼잡이와 타죠마루가 칼을 들고 싸우는 모습도 보기에 좋았다. 두 차례 나오는데 다른 모습이었다.

타죠마루가 제 생각을 밝히는 대목에서는 제대로 된 칼싸움을 볼 수 있었다. 칼싸움 영화가 따로 없을 만큼.

그런데 마지막으로 나무꾼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180도 달랐다.

사내들이 계집의 비웃는 소리에 놀라서 덜덜 떨면서 서로를 두려워하면서 칼을 잡아 휘둘렀다.

이 때의 칼싸움은 이제껏 볼 수 없는 것으로, 하고 싶지 않지만 할 수밖에 없는 칼싸움을 보여주었다.

 

9.

이 영화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쓴 단편 소설인 '라쇼몽'과 '숲속에서'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다듬어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 뒤에 깔리는 가락은 뜻밖에도 라벨의 '볼레로'였다. 영화와 잘 어울렸다.

 

카메라에 담은 모습은 여느 영화보다 나았다.

관아에서는 마치 앞에서 벼슬아치가 묻는 듯이 앞을 보고 앉은 도적이나 칼잡이, 아낙네가 말했다.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앞을 보고 말하는 것만 들으면 누가 물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칼잡이와 그 아내가 서로의 마음을 나타날 때도 카메라는 따로 얼굴에 나타난 생각을 잡아 보여준다.

말을 하지 않아도 이 사람은 이렇게 억울하게 생각하는구나, 저 사람은 차갑게 내치고 있구나를

카메라가 잡은 모습만으로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배우들은 물 흐르듯 연기하고, 그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카메라가 매끄럽게 찍었으며, 

이를 자르고 붙여서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게 만들었으니, 별은 망설이지 않고 다섯을 준다.

 

이 영화 <라쇼몽>과 <이키루 生きる Living / 살다> <어느 멋진 일요일 素睛らしき日曜日 Wonderful

Sunday>이 같이 들어 있는 이 묶음 디뷔디는 석 장짜리다.

나온 지 쉰 해가 넘게 지난 오래된 흑백 영화이지만 화면이나 소리는 나쁘지 않았다.

덤으로는 예고편과 감독에 대한 소개가 있을 뿐이다.

이 영화만 따로 잘 나오도록 한 디뷔디가 있으면 따로 사는 게 좋을 듯하다.

b******g 2013.12.25. 신고 공감 1 댓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