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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전경린 책을 읽고 그녀의 문장에 감탄을 하고 있을 때 즈음에 지인이 소설가 오정희의 산문집 '내 마음의 무늬'를 내게 건냈다. 작가 전경린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그녀의 글은 소설 미학의 전범을 따라 배울 수 있는 '교과서'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서.... 비록 문학에 지대한 관심이 있지는 않지만, 요즘엔 작가들이 표현하는 그 사유의 언어에 감탄을 하고 있는터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소설이 아니라 산문집이어서 더 편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가볍게 읽어볼 작정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일상이 그대로 숨쉬는 산문집이면서도 따라갈 수 없는 사유의 깊이가 담겨져 있는 책이었다. 각 꼭지마다 다른 소재로 시작되는 단편적인 글임에도 불구하고 담담한 일상에 관한 관찰들이 놀라운 수준이었다. 단어와 문장과 행간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음이,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음이 가열차게 전해져 오는 글이어서 나에겐 버겁기까지 했다. 읽는 내내 두둥실 꿈꾸듯 글자 위를 표류하고 있는 느낌, 미경험자처럼 행간의 의미를 깊숙히 파고들지 못하는 답답한 느낌이었다. 소설가와 주부의 간극을 유지하며 가식 없이 솔직한 내면을 문장으로 토해내기 위해 외롭고 고단한 사투를 벌였을 작가의 그 고뇌를 감히 내가 공감했다고 이해했다고 쉽게 말할 수 없게 만들 정도였다. 문장을 쓰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고 있는 고귀한 작가임을 여실히 깨닫게 해주는 글이었다.
"책이란 우리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기 위한 도끼가 되어야 한다"라는 카프카의 글은 제 기억에도 남아 있던 것입니다. 그것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직업을 가진 우리 모두의 꿈이겠지요. 거짓 위안과 거짓 희망이 아닌, 진정으로 우리를 비탄에 빠지게 하고 슬퍼하게 하며 그것을 통해 일으켜 세우게 하는 힘을 문학을 통해 구현하고 싶다는 것은 아무리 세월과 함께 타협하고 자신의 꿈을 낮춰가는 중에도 날카로운 가시처럼 불씨처럼 아프게 남아 있는 초발심이겠지요.(p. 116)
두 작가님들의 산문집을 딱 한 권씩 읽고 감히 이런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외람되지만, 오정희 작가님의 연륜과 깊이에 비하면 소설가 전경린은 사유하지만 가볍고 뒷심이 약한 방황하는 청소년기 같은 느낌이었다. 마음 속의 무늬를 아직도 헤아리고 있는 오정희 작가님은 연륜과 경험에 안주하지 않고, 끝까지 진실한 표현을 위해 방황하는 싸움을 해낼 저력있는 작가의 모습이었다. 고통의 흔적과 깊이, 그것을 감내하는 정신력이 연륜에 의해 쌓인 내공에 따라 역시 다르긴 한가보다. 나도 내심 이런 글 한 번 써보는 것이 소원이지만, 이렇게 치열한 내면의 싸움을 지독히 해내며 세월을 버틸 자신이 없는 걸 보니 역시 보통 사람이 맞긴 하다.
무엇이 그리도 저를 견딜 수 없게 하는가, 한밤중의 도깨비놀음을 멈출 수 없게 하는가, 삶에 대한 저항인가, 필사적인 수락인가, 내 안의 불 지피기인가, 생에 대한 정열인가 사랑인가라고 자주 자문합니다.(p.120)
한국인이 해외에서 최초로 독일 문학상 리베라투르상을 수상한 오정희 작가님의 일상에 호기심이 생긴다면 한 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산문집은 아니지만, 그 시간은 전혀 아깝진 않을 것이다. 문장이 대체로 길지만, 곰곰이 씹다보면 설명할 수 없는 대단함과 단단함이 그리고 한결같은 깊이를 경험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아~ 감탄이다'란 말이 절로 그것도 자주 나올 것이다.
문학작품들과 소원하게 지냈던 시기에 우연처럼 접한 오정희 작가님의 글, 그것은 나에게 귀중한 선물이었다. 이 행운을 이어서 가보려고 거창한 계획 하나를 세웠다. 독일 문학상을 수상한 '새'부터 출발하여 그녀의 작품들을 차례차례 만나볼 예정이다. 분명 읽다가 내가 먼저 쉬 지쳐버릴테지만, 그녀에 대해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딱 그런 정의를 내릴 수 있을 때까지 한 번 달려볼 생각이다. 거장들이 살아 숨쉬는 클래식으로 뇌를 깨우고, 상쾌한 공기가 피부를 긴장시키는 아침 조깅처럼 스피드는 여유롭지만 천천히 변하는 경치들을 충분히 음미하듯이 그렇게 다다갈 것이다. 힘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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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정희씨 글을 제가 10년전에 "동경"을 읽고서 머리한대를 얻어맞듯이 작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었다. 일상사에서 그로데스크한면을 잡아내는 글솜씨에 매혹되었기에 이번 산문집이 나왔을때 반가운 마음에 책을 구입하게 됐다. 하지만 별로다 란 말밖에.. 여타 다른 책들과 다를것도 없고.. 그리고 쓸데없는 장식적인 글들이 왜이리 많은지..마음한구석에 탁 하니 와닿는 문장하나 발견하지 못했으니, 맘에 와닿은다면 여러번 곱씹어서 읽었을 책을 너무 지루해서 대충 읽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너무 기대를 한걸까? 오정희씨의 일기장같은 이 책보다는 그전 소설들이 훨씬 가치있게 느껴지니 아무래도 오정희씨는 소설을 쓰시는게 훨씬 가치를 높이시는 길이라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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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참 좋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이다.
쉼 없이 책을 읽어 오면서, 가슴으로 밀려오는 느낌을 가진 책들은 많지 않다.
성공학 서적이나 실용서를 주로 읽다보니 가슴에 차 오르기보다는 머리를 채우는 일
이 많았다.
한 편으론 논리와 이성이 발달해서 감사함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머리은 있으되
가슴은 메마른 사람이 되어 안타까움을 주기도 했다.
가뭄에 땅이 메마르듯이, 푸석푸석한 마음을 이슬비라도 적시려는 마음으로 책을 들
었다.
소설이나 문학은 내 관심 밖에 있었다. 읽으려고 해도 진도가 더디 나갔다.
그래서 문학이란 것이 내게는 너무 먼 당신처럼 보였다.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마음의 정서에 그림을 그려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다.
글이란 것이 머리로 이해되는 것보다 마음으로 다가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가 ''집''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히 비바람과 추위와 더위를 막고, 숙식을 해
결하는 실제적 구조물만이 아닌 정서적 공간의 의미를 갖는다. 사람과 함께 숨 쉬는
곳, 그래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은 백년을 버티지만, 사람의 훈기가 없는 집은 아무
리 튼튼히 지은 것이라도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폐가가 되어버린다고 하지 않던가."
나이 드는 일, 귀로, 시간의 얼굴... 잔잔하면서 마음에 흔적은 남기고 있다.
이제 문학이란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독서의 영역에서 조금씩 그 범위를 넗혀가야겠다.
''문학과 생활''이란 장을 통해서 글을 쓰게 된 동기와 과정을 말하고 있는 부분들이 의
미있게 다가왔다. 나도 글을 쓰고 싶고. 책을 쓰고 싶기 때문이다. 가출했을 때에 배
운 문학인식의 기본 틀과 문학자의 삶, 그리고 문학과 생활의 균형을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점들에 밑줄을 그어 놓았다. 공감과 함께 내가 가야 할 길일지도 모르기 때문
이다.
소설가 오정희라는 분이 얼마나 유명한 분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좋은 글을 읽게 해
준 부분에 대하여 감사를 드린다. [인상깊은구절] 그 책은 제가 작가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불투명한 환상을 벗겨주고, 인간에 대한 끈질긴 흥미와 탐구의 중요성, 사물의 이면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가져야 한다 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편견과 감상을 배결할 것, 착실하게 인생을 보고 또 전체 를 볼 것, 많이 쓰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것, 개인적인 입장에서 세계를 볼 줄 아는 개성,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보편성을 가져야 하며 무엇보다도 인 간 존재라는 이 기괴한 사건에 깊이 참여할 것 등을 가르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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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
밖에서는 어제부터 비가 내린다. 자주 읽는 자기계발서는 잠시 두고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 이 책을 집어들었다. 이 세상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평범한 인생살이도 정말 아름답고 의미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문학에 문외한인 나는 오정희씨를 이 책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방학인데도 계절수업을 듣느라 집에 못 가고 있는데...
이 책의 앞 부분에서 우리 어머니의 모습과 할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체결하지 못한 계약이나 돈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시간을 못 보낸 것이나 좀 더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고 한다.
현재에 충실한 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후회하지 않도록 사랑하는 가족들과 따뜻함을 더 나누고 싶다.
사랑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지금 당장 이다!!!!
나의 생각
종합 선물 세트처럼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역할에 따른 작가의 태도와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겨울답게 집 밖은 정말 추운데 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정말 따뜻해졌다.
며칠 전에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느낀 건데 나 자신을 성숙하게 하고 성장하게 하는 것은 수학 공식이나 학과 공부를 더 하는 것이 아니고 좋은 문학 작품이나 예술 작품을 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학이라는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고 일생을 한 우물만 파신 모습도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오정희씨가 건강하셔서 계속 좋은 작품 써 주시면 좋겠다.
다른 작품들도 이번 방학을 이용해서 읽어보려 한다. [인상깊은구절] p22 일본의 작가 소노 아야코는 “교도소에서 출소하는 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조용히 맞이하며 목욕을 하게 해주고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주는 것, 그것이 부모이고 가정” 이라고 말한다. ................ 덧붙이자면 집은 우리가 등 뒤에 쳐놓은 배수진이고 적진에서의 퇴로이며 우리를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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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주가 너무 지치고 힘들면 에세이를 봅니다.
다른 사람들의 일상이나 관심사를 제 3자의 시각에서 관찰하는 과정이 제겐 힐링의 과정입니다.
이 책은 저자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담담하고 차분한 문체 덕분인지 저자의 일상에서 '나'를 발견하게 되는 과정까지 더해져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다른사람의 일상과 생각을 발견하고 또 공감하게 되는 과정을 좋아하신다면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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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 3시. 넓은 창 바로 앞에 자리잡은 리틀초이 책상에 앉아, 읽다. 오후 8시반 읽기를 마치다.
작가의 생활속 이야기와 글쓰기의 어려움, 생활과 글쓰기를 병행하며 겪었던 일들을 잔잔하게 써내려간 글이 진솔하고 편안하게 읽혔다.
창밖에는 어둠이 가득하다.
낮의 밝음에 점점 어둠이 스며들고 그 농도가 책의 글씨를 가늠하는 것으로 보여지던 저물녘. 해 저물녘이면 주체할 수 없는 쓸쓸함이 느껴진다던 작가의 마음이 곧 내 마음과 같아서. 게다가 이 책을 읽던 무렵이 또한 그러한 때여서 그랬는지 빛과 어두움, 인생의 저뭄, 혼자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다.
책을 읽는 동안 아들에 대한 생각 또한 불쑥불쑥 넘나들길래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여전히 아들 책상에 앉아 아들이 쓰던 노트에 긴 편지를 쓰다. 아직 옮긴 곳 주소도 몰라 언제 보내게 될 지도 모르는 편지를 썼다.
편지를 쓰고 나니 9시 반. 저녁밥. 그러고 보니 저녁밥을 먹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 배가 고프지 않으니 저녁밥은 생략한다. 저녁밥을 챙겨줘야 할 가족이 없다 보니 나 먹기 싫으면 그만이라 참으로 간편하다. 이 책에서 작가는 저녁밥 짓기 싫어 울고 싶었던 적이 있었노라 고백했는데. 내게도 저녁밥 짓기 싫었던 어느 시기가 있었기에 웃으면서 공감할 수 있었다. 피곤해진 몸으로 퇴근을 하면. 집에 들어서자마자 옷 갈아입고 준비해야 하는 가족들 저녁. 한 시간 정도 주방에 서서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다 보면 다리에 온통 피곤이 쏠리던 시간. 저녁을 먹고 난 후 느른해질 대로 느른해진 몸으로. 잔뜩 쌓여있는 그릇들을 설거지해야 하는 일은 정말이지 손하나 까딱 하기 싫은 가사노동이었는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저녁까지 학교급식으로 먹게 되고), 남편은 주말에나 내려오는 직장으로 가게 되면서 나는 그 가사노동에서 놓여나게 되었다. 요즘에는. 내가 피곤하고 힘들었던 그 때에는 모른 척하며 주방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던 남편이 내게 맛있는 음식 해 주겠다며 즐거운 마음으로 주방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 기억속의 저녁밥 짓던 풍경이 아쉬움으로 남기도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했던 기억보다는 마지못해 했던 기억이 더 크게 남아서인지 그 밥과 그 반찬을 먹었던 가족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현관문 한번 열지 않고 지냈던 하루. 혼자 맞이하던 하루, 그 낮과 밤의 교차. 시간의 무게. 다음 주말이면 만나게 될 장난끼 가득한 남편이 있고 씩씩해진 모습으로 돌아올 아들이 있는, 오늘같이 한시적인 시간의 무게야 너끈히 견딜수 있지만. 문득. 돌아올 가족이 없는 시간속을 나 혼자 헤매게 될 수도 있을텐데. 만약 그런 시간이 내게 엄습한다면. 나는 그 어마어마한 시간의 무게를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한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하다. 그건 아직 생각만으로도 무섭도록 쓸쓸한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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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글을 쓴 저자에게서는 연륜에서 나오는 여유로움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느낄 수 있어서 감동적이다. 작가 오정희가 꽤 길었던 공백을 깨고 선보였던 <내 마음의 무늬>는 그녀의 글쓰기가 행복을 담고 있다고 말해주어 고마웠다. 삶의 소소한 주제들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때로는 창작의 고통이라 일컬어도 좋을 것을 가볍게 넘기기도 하며 작가로 살아온 세월을 담담하게 엮은 책. 책장 한 켠에 꽂아두었다가 지금은 시간이 흘러 종이색이 바랬다. 그 만큼 나이가 든 나는, 처음 책을 읽었을 때와는 다른 감성으로 페이지를 넘길 수 있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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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내용 정리>> 산문집을 읽고 제일 마음에 와 닿았던 내용이 소제목 ‘귀로’이다. ‘귀로’라는 단어는 현실적으로는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서 우리가 떠나온 곳, 마침내 돌아가야 할 어떤 곳, 낙원, 걱정 근심이 없고 삶의 간난신고와 슬픔이 없는 본향으로 가는 길이라는 종교적 의미로까지 폭넓게 쓰이고 있다. 그래서 낳은 곳을 향해 목숨을 걸고 수만 킬로미터의 바닷길을 헤엄쳐 돌아가는 물고기의 모천회귀나 산과 바다를 건너 수만 리 창공을 날아가는 새들의 비행이 단순히 유전자 속에 각인된 본능이라거나 지구 자기장의 영향이라는 학설을 넘어서 많은상징성과 문학적 형상화를 이루는 것이리라. <<느낀점>> 오정희님의 산문집. 딱히 오정희님의 책은 솔직히 한 권도 읽어본적이 없다. 한국문학 50년 최고의 작품 에 3개의 작품(<유년의 뜰> <동경> <저녁의 게임>)을 올려놓은 독보적 작가임에도...아마도 여성이 쓴 소설은 싫어하는 까닭일게다...이것도 고쳐야하는 습관중 하나다. 그래도 예전에는 산문집이나 에세이 등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폼으로 많이 가지고 다니기도 했지만. 오정희님의 산문집 ‘내 마음의 무늬’는 진솔한 삶과 함께 나이들어간다는 것과 나의 인생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하는 묘한 기운이 있다. 아주 사소한 부분을 세밀히 표현한 것을 읽으면서 어쩜 이렇게 이쁜 표현을 나타낼 수 있을까 하는 감탄과 함께.... [인상깊은구절] 마흔 살이란 앞만 보고 달려온 걸음 앞의 커다란 걸림돌이다. 설혹 잘못 들어선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도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있다는 것, 인생의 성패는 이미 판가름 난 것이 아닌가라는 성급한 판단에 초조해지기도 하고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이제야 확연히 보이는가 하면 여념 없이 살아온 날들에의 반성과 검토, 게다가 한 인간으로서의 내가 무엇이며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실존적인 물음 앞에 피할 도리 없이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앞에 복병처럼 기다리고 있는 질병과 외로움과 종내 어느 날엔가 틀림없이 맞게 될 죽음 - 낯익고 친근한 모든 것과의 이별 - 역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40대가 되면 찾아올 거라고 기대했던 평화도 안도감도 앎도 없이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린 듯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럽다. (39쪽) 글쓰기란 결국 빤히 보이는 자기 한계, 재능 없음, 포기하고 싶은 유혹과의 싸움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한숨을 내쉬지만 그래도 이제야 아주 조금씩 소설 속으로 배밀이하여 들어가는 모양이 보인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지만 그래도 굼뜬 벌레들이 맨몸으로 땅을 기며 낸 흔적이 미미하게 남았다. (154쪽) 어느 민족이든 그 나라의 언어로만 표현되는 독특한 맛이 있고 어느 작가이든 자신의 모국어가 갖는 다양하고 풍부한 구사법, 섬헤함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 민족의 언어는 그 민족의 토양과 정서와 전통과 의식의 산물이다. 그러기에 문학이란 바로 모국어에의 충실성이라는 극단적인 정의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언어는 흐르는 물과 같아 사회와 세태의 변천에 따라 변화하며 없어지거나 새로이 생겨나기도 한다. 따라서 생활과 정서와 풍습이 다르고 언어의 구조조차 다른 외국어로 옮길 때 태생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반역자들은 번역은 반역 이라거나 시의 경우,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말로 그 어려움을 토로하곤 한다. (20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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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이에 관한 책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출판되는 이 시점에 작가의 글은 글쓰기가 절대 만만한 작업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한다. 당연하지 않는가. 소위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직업병이란 단순히 손목-어깨-허리에 국한된 것이 아닐 것이다. 어려서부터 글쓰기로 두각을 나타내고 평생을 글쓰기에 투신하여 다른 작가들의 교과서 노릇을 하였던 저자 역시도 글쓰기가 ‘고통’임을 호소한다. 플롯 없이 그저 내키는 대로 써대는 것이 대단한 양 칭송되는 세태에 반하여 작가는 한줄한줄 고심하여 다듬은 흔적이 역력한 문장들을 내보이고 있다. 직업 작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써야할 무언가가 너무도 많고 또 쉽게도 써버리는 우리에게 주는 엄숙한 경고의 메시지인 듯도 싶다.
예전처럼 여성작가에 대해 ‘여류’소설가, ‘여류’시인 이라는 수식어를 다는 일은 이제 많지 않지만, 여인으로서 생활인과 작가라는 두 가지 삶을 잘 영위하기란 얼마나 녹록치 않은지도 작가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결혼 생활과 작가로서의 삶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많은 작가지망생들에게 해결책은 아닐지언정 선배의 진심어린 충고가 필요하다면 오정희 작가만큼 적절한 이가 또 있을까. 그 자신 또한 둘 사이에서 엄청난 갈등을 겪고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문에서 ‘글쓰기의 즐거움! 행복! 황홀!’ 을 외치고 있으니. 작가는 천상 글쟁이인가보다. [인상깊은구절] p.132 …. 궁리가 서지 않는다. 볼펜을 놓고 뚫어지게 바라보는 노트의, 희고 텅 빈 공간이 한없이 확장된다. 한자도 쓰지 못했는데 벌써 여덟 시를 지나 아홉 시가 다 되어간다. … 어느새 열시가 넘었다. 책상 위에는 여전히 텅 빈 백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생각은 원점에서 조금도 진전되지 않는다. p.183 일상의 덫은 그리도 튼튼하고 완강하여 어디에도 소설이라는 허구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지요. … 어렵게 어렵게 한단어, 한 문장씩을 써갈 때의 고독감과 충만한 존재감 또한 그와는 다른,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행복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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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의 가슴에 작은 돌을 던져 나이 먹고 품안의 자식들을 모두 떠난 뒤 쓸쓸함
의 파장을 느끼도록 만들며 시작을 했다.
외롭고 쓸쓸하고 답답했다.
나도 나이를 먹나?
이 책은 오 정희씨가 가정주부이며, 작가로 살아가는 인생과 고뇌와 열정을 담담하
게 써 놓은 책이다.
이 책 속에는 임박한 원고 마감 날짜를 남겨놓고 “도둑맞는 것처럼 날짜가 빈다.”라
는 표현을 쓰며 작가로서의 고뇌도 느껴지고, 작가로서 이름을 놓을 수 없는 끈임 없
는 열정도 느껴진다. 가끔 글이 써지지 않을 때 밥을 지어야 할 시간임을 핑계로 글에
서 놓여난 것을 불안하게(?) 안도하기도 하고 가정과 글쓰기중 하나만을 택해야 한다
면 당연히 가정을 택하겠노라며 가정의 소중함 지켜가려 노력한다.
평소 산문집은 별로 즐겨 읽지 않는 편이라 외롭고 쓸쓸하고 답답했는지 모르겠다.
문학을 그저 ‘좋다.’ 라는 생각으로 읽어서 그런지 작가도 말하지만 이야기가 선명하
고 해결점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글이 좋지 내면의 묘사에 치중되어 평범한 단어에 시
적과 상상력, 의미를 담은 글들은 한 번에 끝을 내가 어려워 자주 접하기를 꺼려한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뒤 앞으로는 종종 산문집이나 에세이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
이 들었다. 은유법으로 묘사된 글속에서 직설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맛을 느껴보고 싶
다. [인상깊은구절] 마흔 살이란 앞만 보고 달려온 걸음 앞의 커다란 걸림돌이다. 설혹 잘못 들어선 길이 라는 것을 깨달아도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있다는 것, 인생의 성패는 이미 판 가름 난 것이 아닌가라는 성급한 판단에 초조해지기도 하고 잘못 끼워진 첫 단추가 이제야 확연히 보이는가 하면 여념 없이 살아온 날들에의 반성과 검토, 게다가 한 인 간으로서의 내가 무엇이며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실존적인 물음 앞에 피할 도리 없 이 맞서야하기 때문이다. -p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