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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읽는 가장 좋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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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를 읽는 가장 좋은 방법 1. 논어를 읽는다. 2. 나이를 먹는다. 처음으로 논어를 읽은 지 어느덧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논어를 읽을 때마다 읽는 당시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새로운 구절들이 눈에 들어오는 경험을 한다. 7년의 시간동안 열일곱의 소년은 스물넷의 청년이 되었고, 열일곱의 소년이 막힘없이 읽어 내려갔던 구절에서 스물넷의 청년은 여러 번 멈춰 서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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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를 읽는 가장 좋은 방법

1. 논어를 읽는다.

2. 나이를 먹는다.


처음으로 논어를 읽은 지 어느덧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논어를 읽을 때마다 읽는 당시의 상황과 처지에 따라 새로운 구절들이 눈에 들어오는 경험을 한다. 7년의 시간동안 열일곱의 소년은 스물넷의 청년이 되었고, 열일곱의 소년이 막힘없이 읽어 내려갔던 구절에서 스물넷의 청년은 여러 번 멈춰 서서 생각에 잠겼다.

 이번에 논어를 읽으면서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고, 마음속에 새겨두기로 한 구절은 다음의 두 구절이다.


 공자: 자신에게 벼슬이 없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그 벼슬을 할 만한 자격을 갖추기를 걱정하라.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은 것을 근심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알아줄 만한 자격을 갖추도록 노력하라.

 子曰,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 「里仁」

 자왈, “불환무위, 환소이립. 불환막기지, 구위가지야.” - 「이인」(pp.140~141)


 공자: 사람이 멀리 내다보는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이에서 근심할 일이 생긴다.

 子曰, “人無遠慮, 必有近憂.” - 「衛靈公」

 자왈, “인무원려, 필유근우.” - 「위령공」(p.291)


소위 ‘고전’이라고 하는 책들을 읽다보면 도무지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경험을 하곤 한다. 그렇지만 논어는 오히려 그 반대이다. 논어는 너무 술술 읽혀버려서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면, 책장은 한참이나 넘어가있고 분명 뭔가 읽기는 읽었는데 무얼 읽었는지는 도대체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이 두고 수시로 부담 없이 펼쳐볼 수 있는 논어가 필요하다. 그런데 시중에 출판되는 대부분의 논어는 너무 두껍고 무거워서, 책꽂이에 꽂아두고는 꺼내어 볼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그리고 읽기 좋으라고 편집되어 나온 다른 논어는 편집과 번역이 너무 제각각이어서 논어를 읽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좋다. 1부의 해제는 간략하지만 부실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2부에는 논어의 본문을 우리말 번역과 원문, 독음을 읽기 좋게 나란히 붙여놓았다. 해설을 최소화하면서도 우리말 번역이 우리말답게 자연스러워서 의미전달에는 거의 지장이 없다. 한자 원문을 더듬더듬 읽어보면서 문장의 의미를 곱씹어보기도 하고 나름의 해석을 시도하다보면 너무 빨리 읽어버리는 것도 조금은 막을 수 있다.


논어를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이 ‘논어를 읽고, 나이를 먹는다.’인 이유는 그만큼 논어의 가르침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좋은 지침이 되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읽은 것들을 실제의 삶에서 실천하고, 삶의 경험은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새로운 눈을 열어준다. 이러한 읽기와 삶의 변증법을 가능케 하는 책을 우리는 고전이라고 부른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 걸음씩 논어를 읽어나가야겠다.

p******g 2011.04.26.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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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쓰여진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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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논어'라고 하면 그 어떤 책보다 잘 알고 있는 책이다. 구절구절들이 많은 곳에 인용되기도 하고 '사람의 도리'는 이러이러하다라고 어른들로부터 들어 익힌 것들도 많은 부분 논어의 구절들이다. 하지만 정작 '논어'를 차근차근 읽어본 이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이 책을 통해 논어를 제대로 접했으니까 말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공자왈~'하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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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논어'라고 하면 그 어떤 책보다 잘 알고 있는 책이다. 구절구절들이 많은 곳에 인용되기도 하고 '사람의 도리'는 이러이러하다라고 어른들로부터 들어 익힌 것들도 많은 부분 논어의 구절들이다. 하지만 정작 '논어'를 차근차근 읽어본 이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이 책을 통해 논어를 제대로 접했으니까 말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공자왈~'하며 시작하지 않는다. 공자의 당시 생활, 그가 살았던 시대의 상황 등 주변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논어'라는 책이 어떻게 쓰여지고 엮어졌는지 쉽게 쓰여져 있다. 그 다음 장에 '논어'의 내용을 쉽고 편하게 읽도록 정리하였다. 번역문은 지금 현재 우리가 흔히 읽는 책들처럼 편하게 쉽게 번역하여 쓰여졌고, 번역문 아래 한자의 독음을 달아 원문을 첨부했다. 독음을 달아준 탓에 '공자왈~, 맹자왈~'하며 내가 마치 옛선비가 되어 논어를 읽는 듯한 재미도 살짝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는 좀더 여러시각으로 논어를 읽을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생각에 부합하여 관련서를 첨부하여 주었다.

20세기 중국의 문화대혁명 당시, 유교는 나라를 망친 주범으로, 낡은 봉건사상으로 지목되어 탄압받고 배척당하기도 했다. 공자의 석상을 깨부수고 유교경전을 불태우는 등 과격하게 배격했었다. 중국 뿐만 아니라 유교를 숭상했던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도 현대사회로 발달하면서 유교는 그저 낡은 봉건사상으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면서 중국은 그들이 배척했던 공자를 다시 국가적인 차원에서 부활시키고 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YES마니아 : 골드 n*******4 2009.05.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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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에 매우 편했던 논어 그런데 증참은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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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주 걸리기는 했지만 어제 마지막 페이지를 마저 읽을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그 만큼 읽기에 부담이 덜했던 것이다. 우선 論語의 문장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 놓는데 그치지 않고 <論語集注>의 해석을 부가하여 본래 논어 문장을 구체적으로 풀이하여 옮겨 놓았다. 그래서 쭉 읽어 갈수 있었다. 다음으로 번역문 아래에 원문과 그 독음을 덧붙여 놓아 원문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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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걸리기는 했지만 어제 마지막 페이지를 마저 읽을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그 만큼 읽기에 부담이 덜했던 것이다. 우선 論語의 문장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 놓는데 그치지 않고論語集注의 해석을 부가하여 본래 논어 문장을 구체적으로 풀이하여 옮겨 놓았다. 그래서 쭉 읽어 갈수 있었다. 다음으로 번역문 아래에 원문과 그 독음을 덧붙여 놓아 원문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게 하고, 독음을 달아 두어 한자를 읽는 것에 대한 부담을 덜어 주었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꺼내 들었던 번역본들이 우리말로 옮겼음에도 한문투의 語彙 옛스런 문장들 탓에 그 우리말 번역을 읽는 것 자체에서도 시간차를 극복해야 하는 것에 반해 이번에 읽은 이 번역은 지금 우리가 쓰는 말과 문장에 가능한 가깝다는 점도 내가 버스로 오고 가며 이 책에 쉽게 손이 갈 수 있었던 큰 이유일 것이다.

 

 

번역자도 말하였고, 논어를 접해 본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 있듯이 논어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그리고 읽는 사람마다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바도 서로 다르다. 번역서로서 이 책 또한 이것이 ‘”얼마나 충실한 번역인가?” 하는 질문을 받게 됨은 당연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눈에 띄게 어색한 번역은 없다. 제례나 묘사된 풍속에 대한 설명들도 번역문에 함께 녹여 옮겨 두었기 때문에 굳이다시 주석을 보기 위해 시선을 옮기거나 책장을 뒤적이지 않아도 되도록 자연스럽고 쉽게 잘 옮며겨 졌다고 생각한다. 다만 증삼曾參을 증참으로 읽어 표기한 것은 분명한 실수라 할 것이며, 공자와 제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다른 제자들은 모두 이름을 기준으로 옮겼는데 증삼은 증자로 표기한 등의 실수가 있다. 증삼을 증참으로 표기한 것은 교정보는 사람의 실수였을까?

 

 

PS>대학에서 관련 전공하는 사람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

 

2012.03.20

자만하지 말자 !!

 

달리기>에 대한 서적을 검색하다 내가 이글을 썼다는 것을 발견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여기에는 공자의 제자 曾參의 이름을 '삼'으로 읽을지, '참'으로 읽을지에 대해 위 책에서 참으로 읽은 것은 실수라고 단언했는데....

 參은 <삼>이나 <참>으로 읽는게 모두 가능하다. <삼>으로 읽는 것으로 배웠고, 그리 읽어 왔기 때문에 <참>으로 읽은 것은 오류라고 썼다. 허나....

다른 블로그에서 이름짓기에 관련한 다음과 같은 글을 보았다.

 

... 전략...

왕부지는 공자 제자들의 이름과 자를 들면서 옛사람들이 이름 짓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예를들어 단목사(子貢)의 경우는 자가 공(貢)이고 이름이 사(賜)이다. 공은 바친다는 뜻이고 사는 내려준다는 뜻이니 자와 이름이 대칭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 복상(子夏)은 자가 하(夏)이고 이름이 상(商)이다. 모두 중국고대의 나라 이름을 딴 것이다. 왕부지식으로 미루어보니 몇가지 의심이 풀린다. 曾參의 경우 증삼으로 읽어야 할지 증참으로 읽어야 할지 헷갈린다. 參은 ‘삼’으로도 읽고 ‘참’으로도 읽으니 말이다. 그런데 ‘참’으로 읽는 것이 옳은 듯하다. 왜냐하면 증참의 자는 자여(子輿)이고 輿는 수레라는 뜻이다. 따라서 수레를 끄는 곁말을 뜻하는 참마(驂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맹자의 이름이 軻이고 자가 子車인 것처럼 말이다. 軻는 수레의 굴대이다. 두 사람 모두 수레와 관련된 이름과 자를 가진 것이다.(하지만 나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증삼이라고 읽는 걸 그건 틀렸으니 증참이라고 바꿔 읽어야 한다고 굳이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증삼이 본래 증참이냐 아니냐와 지금 우리가 그렇게 읽어야 하느냐는 문제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해서이다. 그래서 나도 다른데서는 그냥 증삼이라고 읽는다.)

... 후략...

[출처] 잉어와 미꾸라지 - 이름 이야기 |작성자 신갈나무

 

습관에 길들여져 별 생각없이 단언했고.

이 보다 <삼>으로 읽는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위 인용글에서 보면 이름이 생겨난 유래나 의미 관계를 따져 보고 있다.

결국 <참>이라 읽었다해도 실수라고 할 수는 없다는 거다. 혹시 이 책에 관계된 분들이 이글을 보셨다면 "이런 무식한..."이라고 한번 뇌까리시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주시기 바란다.  

c*****o 2008.10.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