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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에 김응종교수가 쓴 관용의 역사란 책을 봤었는데 그 분이 번역한 다른 책이 나왔다. 앞의 책이 사상적으로 기독교 문화권에서 관용의 역사를 추적한 책이라면 후자는 실질적인 생활에 면을 더 주목한다. 이 책의 기본 컨셉은 계몽주의적 철학 아이디어가 종교적 관용의 확산을 가져왔다는 단선적 역사관을 극복하려는 것이다. 사실 종교적 관용은 일관되게 확산되지 않았고 상승과 수축을 거듭했으며 종교적 관용이 정착된 것도 계몽주의적 사고 때문이 아니라 갈등을 피하려는 실존적이고 실용적인 공존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장한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단선적 진보 역사관에 도전하며 역사를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준다는 점이다. 관용의 정신은 때때로 크게 후퇴하였고 계몽주의적 사고이 확산은 식자층에 제한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다만 몇 가지 점에서 비판을 해보고자 한다. 우선 실용적 공존에서 톨레랑스가 나온다는 그의 메인테마. 톨레랑스는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반면 그가 말한 실용적 인정은 단순히 물리적 충돌을 피하고자 하는 실용적 공존의 자세이다. 그의 논리대라면 다른 종파간 결혼, 한 예배당을 다른 종파끼리 공유하기 등의 현상이 증가하면서 상호작용이 증가하고 여기서 점차 관용의 정신이 나오고 이것이 이런 관습들을 더욱 강화시켜 관용의 상승작용이 일어난다. 그러나 종파간 결혼은 17세기 초반에 급격히 증가했다가 중후반에는 급감한다. 이 시기 프랑스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 낭트칙령을 철회하기도 하였고 종교적 관용이 후퇴한 시기였다. 30년 전쟁 직후, 유럽 기독교인들은 종교적 관용을 공공선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임시적이고 실용적인 생존의 법칙이라 생각하였다. 즉, 시간이 지나서 다른 종파의 힘이 약해지거나 상황이 바뀌면 이것 역시 뒤집힐 수 있었다. 다른종파간 상호작용과 공존이 똘레랑스를 가져오는 데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을지 모르나 아이디어나 사상의 뒷받침 없는 공존이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두 번째, 이 책은 종교적 관용이 확대된 결정적 이유로 18-9세기 자유주의 신학과 중산층과의 연대, 결합이 존재한다는 결정적 사실을 무시한다. 그 이전의 신교도 신학자들은 자기와 다른 성경해석을 이단시하며 소위 올바른 신학을 세우려 노력했다면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해석에서 이성의 역할과 시대의 변화를 투입할 것을 주장했다. 텍스트 그 자체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해석해야한다는 주장은 상대의 해석에도 관용할 것으로 이어진다. 자유주의 신학은 진화론 등 과학발전에 개방적 태도를 보였고 이는 중산층과의 결합으로 이어지며 관용적 태도를 확산시켰다. 반대로 20세기 초반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근본주의 신학관은 자유주의에 반대해 성경을 글자그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자하나하나가 다 하나님의 뜻이니 그냥 따라라) 이 시기 미국 남부의 여러 주에서 진화론을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금지시켰고 이를 가르쳤던 생물교사에 유죄를 선고한 일도 벌어졌다 (Scopes 재판, 혹은 테네시주 대 스콥스 판결). 여담으로 미국드라마 웨스트윙에서 대통령 바틀렛이 근본주의자들을 공격하는 장면이 시즌1에 나온다. "그럼 일요일에도 일하자고 하는 비서실장을 돌로 쳐 죽여야하나? 우리딸도 노예로 팔아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