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인스 워드의 방한을 계기로 많은 정치인들이 혼혈인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고질적인 남초 현상과 기타 다른 요인이 결합하여 외국인과 결혼하는 이들이 늘고 있으며, 2020년에는 새로이 태어나는 3명 중 1명이 혼혈일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하지만 워드는 워드일 뿐, 대개의 혼혈인은 그를 환대하는 분위기에 그다지 희망을 걸지 않는다. 다니엘 헤니나 데니스 오 등이 브라운관을 연일 뜨겁게 달군다 하여도 그것이 혼혈인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것처럼, 한 개인에 대한 관심이 혼혈인 집단 전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진 못하니 말이다. 차별 받는 것이 어디 혼혈인 뿐이겠는가. 땅이 좁다 하여 모든 이들이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남성과 여성처럼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선택할 수 없는 갈림길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욱 큰 차이는 다름 아닌 우리 사회에 만들어낸 장벽이다. 월드컵을 계기로 레드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많은 언론이 떠들었지만, 여전히 노동자의 목소리는 색깔론으로 포장하기 좋은 소재일 뿐이다.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정만을 ‘정상’의 범주로 취급하는 분위기는 부모의 사망 혹은 재혼 등으로 인해 발생한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을 향한 차별로 이어진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이 땅을 밟은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좌절시키는 것 역시 장벽의 힘이다. 피부가 우리보다 하얗지 않으면 그리고 영어를 하지 못하면 마치 열등한 족속마냥 무시하고 부려먹는 심보를 누가 우리에게 심어주었단 말인가. 세계화를 부르짖으면서 정작 다양성을 끌어안지 못하는 사회, 그것을 두고 세계화라 말하는 것이 우습다. 차라리 다국적 기업에 의한 경제적 예속만을 뜻하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것이 ‘세계화’라는 단어를 부끄럽지 않게 하는 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폐쇄적이다. 페이지마다 곱게 수놓은 얼굴들은 분명 사람이었다. 휠체어를 타고 있건, 종종 보곤 하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이의 모습을 하고 있건, 그들의 가슴에서도 심장은 뛰고 있다. 아이를 많이 낳으라 말은 하면서 정작 장애를 갖고 태어나는 이들에 대해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는 국가, 부모의 개인적인 의지만이 그들에겐 희망이다. 그래도 그들은 나은 편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숨쉬는 그 순간만은 영원히 자기 편일 사람들이 있으니까.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살아가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세상은 차가움 그 자체이다. 많이 먹어도 배가 고프다고, 집에 가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거 같다고 토로하는 한 여성에게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정신질환도 사랑을 갈구하는 그녀의 영혼만은 잠재우지 못했다. 우리에게 행복하게 살고픈 욕구가 있다면 다른 이들 역시 그와 같은 욕구를 지녔다. 우리가 행하는 차별은 단순한 무시가 아니라 인간을 인간 아닌 것으로 바라보는 행위가 아닐까. 매스미디어는 연일 화려함을 창조하다 못해 가슴 속 어딘가 상처를 지닌 이들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포장을 감행한다. 많은 이들에게 눈물을 쏟게 했던 모 프로그램의 외국인 노동자 가족상봉이나 시각 장애인 각막 이식 수술, 입양인들의 친부모와의 만남 등을 우리는 기억한다. 우리와 다를지라도 그들 역시 인간임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방송을 택했다 할지라도, 그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 텔레비전 속 인물은 수혜자일 뿐이다. 근본을 건드리지 못하는 해결책은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가슴 아파’하면 그만인 사회 이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 사진 속 인물들은 말이 없다. ‘꽃’이라고 말하기엔 그들의 표정에 서린 두려움이 너무도 컸다. 세상은 아직 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어쩌면 내 안에도 그런 세상을 구성하는 인자가 하나 혹은 그 이상 들어있는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