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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다보면 건강해지는 게 가장 좋다. 좋지만 문제가 되기도 하는 게(...) 친구들이 내 걸음걸이를 따라잡지를 못하며 무지 짜증낸다는 점이다.
특히 여름에는 덥다고 곧바로 나를 피해 커피숍으로 들어가버리는데 더 걷고 싶은 나는 커피숍 앞 길가에 우두커니 남아버리는데, 나는 더 걷고 싶다고 생각하는지라 왠지 쓸쓸해진다;; 근데 내가 20대 초반에 서울에 살 때도 날 따라서 열심히 걷던 친구가 그 다음날 다리가 저려서 일어나질 못하던 때도 있었으니 이건 내 힘이 원래부터 넘치는 게 문제일까, 아님 남들도 이럴 거라 지레 생각해버리는 게 문제일까. 아무튼 오늘도 친구 한 명이 결국 길가에 나자빠졌는데;;; 내가 일어나라고 열심히 두들겨주고만 있던 찰나 햇빛으로 잘잘 끓는 도로에서 공사일을 하고 계시던 인부 분이 자기 몫의 생수를 주시더라. 나도 친구도 아무 말 없이 금방 그 자리를 떠났다. 나도 무안했지만 친구도 아마 무안했겠지. 무더운 여름 날 차가운 생수 한 병의 위로. 남의 아픔을 보고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아차리며 그것을 바로 주는 마음. 나는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위로를 줬으며 주고 있을까. 주기는 커녕 부담만 더 주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8월호가 아직 안 나와서 저번 호들을 보고 있다. 봄이라서 그런지 7월호보다는 대체적으로 순한 이야기들이 나와서 더위로 인해 솟구치던 짜증이 한풀 꺾였다.
머리 다친 사람을 빼고는 결코 잘 먹고 잘 생활하는 것에만 만족할 수 없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자꾸 자신이 가지 못한 길이 생각나니까, 괜히 그
길을 자식에게 가라고 강요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자신은 충분히 행복하다고 계속 세뇌하고. 하지만 그 세뇌에도 한계가 있으니 나중엔 또 방황하게
되고. 그러나 좀 방황한들 어떠랴. 사람은 모두가 부조리한 존재인 것이다.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그저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 성공하여 우연히
나온 생명일 뿐, 대단하기는 하지만 어떤 특별한 의미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기쁨을 느끼지 못하진 않는다.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그러다 어떨 땐 길가에 핀 무궁화가 너무 이뻐 보이고. 막걸리 이야기도 많이 하시던데 뭔가 노는 법을 제대로 아시는 듯한
사람들의 잔치 이야기가 인상에 강했다.
어느 날 아침, 누군가 귀에 대고 멜로디를 들려주고 갔다는 시와 님의 글도 인상적이었다. 요새 내가 직장스릴러물 꿈을 꾸는데(...) 워낙 별의별 일을 회사에서 겪고 나니 어떤 사건이 나던 아무렇지 않게 대처하려고 한다는 걸 이 책의 글을 보고 깨달았다.
참고로 이전에는 판타지물 꿈을 자주 꿨었는데 스토리가 내가 봐도 너무 엉터리라서 실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간혹 스토리도 탄탄하고
반전도 너무 탁월해서 내 꿈에 내가 감탄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땐 '이걸 소설로 적으면 틀림없이 대박이 날 것'을 의심치 않고 일어나서
펜을 집어든다. 그러나 100% 눈을 뜨면 잊어버리고 만다.
요새는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걸러내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욕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차라리 육시럴이라고 해봤자, 직접 육시를 낼 것도 아니고 상대방도 '어떻게 그런 끔찍한 말을 할 수 있어!'라고 진지하게 대응하는 경우도 별로 없으니, 욕이 낫지 않을까.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건 결국 나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결국 내가 욱해서 먼저 주먹이 나가면 상대도 욱해서 주먹이 나가고, 결국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겠지. 다만 그 사람에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말자고 진지하게 말을 해주는 게 낫겠다. 그러나 만일 남자가 여자에게 성적 희롱을 하는 것처럼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아라. 그러면 상습범이 아닌 이상은 스스로 그만두고 물러나게 된다. 같은 인간이니까, 일단 얼굴을 마주보면 그 사람이 어떤 고통을 느끼는지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힘들고 열받아도 손을 잡고, 그 사람을 쳐다보며 그 사람을 생각해 주어라. 자신만 위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남을 탓하며 자신의 언행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성공하지 못한다. 돈을 많이 벌어도 되는 게 없지. 항상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 끼고 싶어하지만, 그러려면 이전에 해왔던 일들을 반성하고 고치는 과정이 필요한데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다며 생략해 버린다. 결국 모두에게 버림받고 구박당한다. 거리에서 옛날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다시 볼까봐 벌벌 떨며 다니고.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농산촌에서 자라는 아이들 1명당 무조건 최소 월 50만 원씩은 지급해야 경우 농산촌 멸망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 사람이 있었다. 농산어촌에 대한 투자는 시설 지원이나 사업 지원 방식에서 젊은 사람 살리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1. 나이가 어떠느냐에 따라 그게 아이보다는 부모의 손으로 가서 부동산 땅값 올리기에 쓰일 공산이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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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민중들도 학생으로 바라보고 계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글과 그림 2017년 7월호를 보다
김훈의 공터에서를 보고 보수층 노인들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데서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그들을 전혀 연민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이
보수층으로서 누릴 호사를 다 누렸기 때문에 지금 세대와 미래 세대는 대부분 가난에 시달릴 것이다. 선생님들(혹은 선생님같이 행동하는 인간들)에게
힘든 일이 있었다고 말을 해 보라. 이들은 "왜 나한테 그런 걸 이야기하죠? 여긴 그런 걸 말할 자리가 아니잖아. 상담해달라는 거야 뭐야?"라는
대답(?)을 할 것이다. 오늘 실제로 교사 직업에 있는 인간에게 그런 소릴 들었다. 상담거리로 생각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선 예수님이 한 좋은 말이
있는데,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것은 네 말이다."
그런데 '나무와 냇물과 바람과 구름들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자지도 깨지도 않습니다 물론 숨 죽일 수도 없죠'라고 댓글로
지적한(?) 사람이 있었다. 내가 시적 표현이니 그렇게 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하니 'ㅋㅋㅋ 죄송합니다 공돌이라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공돌이는 인간도 아니고 나아가 생명체도 아닌 걸까? 인간의 특성은 다른 것도 자신의 속성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다소 자기중심적인 면에 있다.
공돌이는 인간을 넘어 공돌이라는 자신들의 종류를 만드는 듯하다. 고양이와 강아지가 처음 만날 때 싸우는 이유도 서로 자신들과 똑같이 바디랭귀지를
쓸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는 금방 친해진다. 왜냐하면 마주 보면서 금방 상대의 언어를 알아듣기 때문이다. 공돌이나 이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다보면, 이들은 자신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문과생들이 못 알아듣는 걸 꽤 자랑스러워 한다. 그 말을 쓰면 사회에서 혜택을 얻기
때문에 악의 없이 하는 행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게 심해진다면, 이번엔 그들이 문과생(?)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실제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런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 각자의 경험은 너무나 다양한데 남들과 대화를 할 기회, 특히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경험을 한 사람과 대면할 기회가 없는 것이다. SNS에서는 보통 얼굴을 보지 못하니 말을 생각없이 막 쓰게 되고, 내
타입이 아니면 바로 내 글을 읽지 못하게 하거나 이 사람 글을 못 보게 교묘히 설정해 놓으면 된다. 지금은 그닥 티가 나지 않지만, 언젠가는
이게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번질지 모른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마도 이는 잘 아는 이웃들끼리 일상에서 서로 맞닥뜨릴 수가 없는 서울 도심에서부터
퍼지리라.
본문의 아름다움을 깨뜨리는 글이라 죄송하지만
우리나라 만화 중에서도 라온이 주인공이고 제목도 라온인 책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영챔프에서 그렸었습니다. 보다 말았는데 새삼 재탕해보고 싶네요. 사실 올린 이유는 따로 있지만 비밀입니다 ㅎㅎ P.S 추가로 이야기하자면 국가 시스템에 저항하여 담배를 길가에 그냥 버리자는 이야기가 이 잡지에 나온다. 말인즉슨 국가의 횡포를 겁내지 말아야지 청소부들이 늘어나는 걸 겁내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내 주위에도 홍콩에서 이와 똑같은 걸 배웠다는 사람이 있었다.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려 하니 홍콩의 직원이 '그렇게 착실히 버리면 청소부가 할 일이 없지 않느냐'며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크게 화를 내며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면 그걸 지나다닐 때 보면서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느냐'라고 했었고 <버리다>라는 책 서평에도 그렇게 썼었다. 그런데 선생님들이 쓰는 잡지에서 이런 글이 나오다니... 나는 생각해보면 정의로움과 윤리에 민감하고 공중도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보는 편이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서 사고를 좀 더 유연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공중도덕을 지키는 게 잘못되었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기업이 로봇을 앞세워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세상이 되고 있는 이상, 쓸데없는 것과 인간이 흥미로워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쓰레기가 많아짐으로써 바다가 있는 마을이 좀 더 부유해졌다는 해외기사를 본 적도 있는 듯하다. 쓰레기란 무엇이고 어떻게 다뤄야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