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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점점 윤대녕에게 빠져들고 있다. 몇 편의 단편을 만난 것이 전부이지만 아직 접하지 못한 윤대녕의 많은 소설에 대한 기대는 커져만 간다. 단편이 아닌 장편의 긴 호흡, 왠지 모를 자전적 소설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호랑이는 정말 바다로 갔을까. 주인공 영빈이 찾는 호랑이, 내게는 무엇일까? 아니 우리에게는 무엇일까? 어느 날 갑작스레 제주도로 떠난 남자, 영빈과 그의 곁에서 다가가지도 떠나지도 못하는 여자, 해연. 그리고 둘 사이를 이어주는 물고기. 영빈은 무척 냉소적이다. 자신을 열어 보이지도 못하며 겹겹이 자물쇠를 채워두었다. 물론 해연도 그러하다. 집안을 가득 채운 물건들은 그녀가 가진 외로움을 보여준다. 버리지 못하는 습관은 버림받았다 느끼는 자신을 위로하는 일종의 습관이다. 영빈과 해연, 그 둘은 무엇 때문에 서로에게 향하는 마음을 부정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을 둘러싼 죽음의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영빈. 80년대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프락치로 몰린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자살로써 표현한 형, 그 뒤로 점점 멀어진 아버지와의 갈등, 어머니의 죽음, 치매로 남겨진 아버지. 영빈은 아버지와 화해하고 싶었고 형에게도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자신에게 향하는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내고 싶었다.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회의적인 해연. 가정적인 아버지를 배신한 엄마. 바다낚시로 죽음이 되어 돌아온 아버지. 어머니와의 관계회복이라는 숙제를 안고 그녀는 홀로 세상에 남았다. 살아내야 했기에 그녀가 경험해야 했을 뻐아픈 외로움을 아는 이는 오롯이 그녀 자신뿐이리라. 성수대교 붕괴현장에 한 택시를 타고 있었던 함께 죽음을 경험했던 영빈과 해연의 인연은 그 후로 10년 만에 조우로 이어진다. 한 아파트에 사는 가까운 이웃으로 드러나지 않는 마음을 주기도 한다. 제주도로 떠난 영빈은 낚시로 잡아온 물고기에 관한 정보를 해연을 통해 알게 된다. 해연은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항상 함께 낚시를 다녔다. 바다에서 죽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상처는 그대로 바다에 나간 영빈에게 전해진다. 제주도의 바다, 낚시방법, 그리고 요리법, 바다가 말해주는 소리는 책의 전반에 실려있다. 서울과 제주도라는 거리는 가까운듯 먼듯 영빈과 해연, 두 사람의 관계와 같다. 물고기가 빠져나간 다음에야 비로소 주위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사실이다. 푸른 사막처럼 펼쳐진 하늘과 바다. 아직도 산꼭대기에 쌍여있는 지난 겨울의 눈. 하루하루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해녀들. 바다에 떠 있는 낡은 고깃배들. 코발트빛 새벽과 오렌지빛 저녁의 무어라 말할 수 없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들. 비 내리는 아침 바다. 눈 내리는 저녁 바다. 163~164쪽 윤대녕이 그려낸 바다는 이처럼 아름답고 신비하다. 바다라는 공간은 순식간에 죽음을 데려오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그 안에서 존재하는 삶이 빛난다. 잔잔한 바다, 노을이 물드는 바다. 태풍을 몰고오는 바다. 그 속에 잠자는 호랑이를 영빈은 잡을 수 있을까? 영빈에게 있어 호랑이는 자신과의 화해였는지 모른다. 소설적 배경인 제주도와 해연과 영빈사이에 등장하는 히데코라는 일본 여자는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본과의 화해, 역사와의 화해를 암시하고 있다. 용서는 스스로 구하는 겁니다. 타인은 나를 용서해주지 않으니까요. 190쪽 어느 누구도 대신하지 않는 당사자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 용기가 필요한 일. 해연이 용서해야 할 엄마, 영빈이 용서해야 할 자신. 해연과 영빈은 너무나도 닮아있었는지 모른다. 스스로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아서 영혼이 닳아 없어진 사람. 그런데도 침묵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매순간 고통을 느끼며 살아야 하는 그런 사람. 341쪽 누구나 그저 조금씩 외로운 것뿐이야.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을 때도 불안할 때가 있는 것처럼. 이젠 스스로 불안을 잠재우는 수밖에 없어. 안타깝지만 그건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이야. 344쪽 그래서 간절하게 바라면서도 서로를 향해 문을 열지 못했을까. 해연과 영빈을 통해 보여지는 삶은 우리가 때로는 숨기고 싶어하는 우리의 자화상인지 모른다. 나와 닮은 타인을 이해하면서도 너무 닮은 모습에 두려워하기도 하는 우리들의 모습. 제주도와 서울의 두 개의 공간은 이제 서울이라는 하나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해연과 영빈을 둘이 아닌 하나로 이어준 생명으로 인해 해연은 엄마와 화해한다. 이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영빈. 그리고 바다로 떠난 호랑이도 아마 산으로 돌아왔으리라. 윤대녕 스스로도 자신의 그 무엇과 진정한 화해를 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