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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를 추구하는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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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울림은 작가가 쓴 3권의 책 중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책이다. 작가는 최고를 지향한다. 각양각색의 수필집이 나오고 좋은 책을 만들려고 애쓰지만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책은 표지부터 색다르다. 편마다 상단에 올린 그림은 고급스럽다. 그림의 위치 또한 황금분할의 균형을 유지한다. 그림과 글의 대비 또한 난삽스럽거나 복잡성을 유발하기 십상인 것을 일목요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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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과 울림은 작가가 쓴 3권의 책 중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 책이다. 작가는 최고를 지향한다. 각양각색의 수필집이 나오고 좋은 책을 만들려고 애쓰지만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책은 표지부터 색다르다. 편마다 상단에 올린 그림은 고급스럽다. 그림의 위치 또한 황금분할의 균형을 유지한다. 그림과 글의 대비 또한 난삽스럽거나 복잡성을 유발하기 십상인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정돈을 잊지 않았다. 작가는 같은 언어, 식상한 언어의 반복 사용을 거부한다. ‘혼자 또는 스스로’를 ‘Self''로 ‘너와 나’를 ‘You & I’로, ‘말, 수필 또는 수필을 말 한다’를 ‘Say, Essay’로 ‘영화’를 ‘Film’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중간 제목으로 치장한다. 수필가는 언제나 새로워야 한다. 다른 수필가와 다른 수필과 차별화를 추구해야 한다. 작가는 그 선두주자이다. 수필은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오늘 쓴 글이 어제보다 좋아야하고, 지금 쓴 글이 좀 전에 쓴 글보다 좋아야 한다. 따라서 언제나 수필은 살아서 꿈틀거리게 해야 한다. ‘풍선이 날아간 후’ 자연인으로의 회귀를 갈망한다. 열망, 갈망, 욕망의 풍선을 따라 앞뒤 재어볼 틈도 없이 우리는 달리고 있다. 작가는 그 풍선의 실체를 비대한 청수사(寺) 본당 신(神)의 상(像)에서 본다. 욕망의 풍선들을 놓쳤을 때 생(生)의 소리를 듣는다. 작가가 말하는 또 한 손의 우산은 무엇일까. 돈? ‘……언젠가 놓아버리고 빗물에 속살까지 젖어, 자유로운 두 손으로 빗물을 받아 마시고 싶다.’ 그리고 자유를 목 놓아 부른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족쇄에서의 해방을 갈구하는 글이다. 짧지만 오래 생각하게 한다. ‘에세이 모노드라마’ 수필 쓰기의 치열함이다. 텅 빈 모니터 위에 작가는 글을 쓴다. 얼음 무대 위에서 햄릿을 연출하는 배우를 연상하며 팽팽한 글, 영혼을 몽땅 쏟아 붓는 한 편의 수필을 완성하기까지의 숨 가쁜 순간들을 들추어낸다. 글이 완성되었지만 객석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발표된 글을 읽는 독자들의 열화 같은 박수소리는 간과한 것은 아닌지. 꼭 무대여야 할 필요는 없다. 수필은 읽히는 힘으로 무대의 박수 소리보다 더 길다. ‘조용히 그 곳에’ 마그리트는 ‘마지막 외침’에서 한 개의 잎을 그린다. 그리고 그 잎 안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그린다. 작가는 한 수 더 떠 열매를 그리고 열매 속에 튼실한 그리고 거대한 과수(果樹) 한 그루 그린다. 누구의 그림이 더 클까.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프로그램은 보잘 것 없는 한 개의 씨앗, 풀무질 하는 노동, 화분 밑 작은 돌조각…… 시장 밑바닥에서 힘겹게 싸구려 푼돈을 모으는 필부필부들이다. 흔히 위정자 들이나 선거철 정치가들이 시장바닥 뒤적이며 “……이런 분들이 있어 이 나라가 어쩌구저쩌구”하는 미사려구와 질이 다르다. 수필은 우리의 감각을 고도로 고급화 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제자리에 앉은 사람은 아름답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휴먼 스케치’ 루이지 피란델로의 ‘아무 것도 아니면서 십만 명인 어떤 사람’을 떠 올리게 하는 수필이다.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자기의 코가 비뚤어진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왜 그런 사실을 왜 몰랐을까 고민하다 급기야 아이덴티티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결과는 자기가 만났던 십만 명의 사람들의 잔상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아내와 이혼하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렇게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각성한다. 어느 수필가의 수필은 이렇게 끝난다. ‘내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스친 사람들이 십만 명쯤 될까. 십만 명의 생각 속에 작은 잔상의 파편들. 그게 나다. 그러나 몽땅 그러모아 이리저리 짜깁기를 해도 내가 아니며, 나 또한 나를 모르니,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루이지 피란델로, 어떤 수필가, 그리고 작가가 찾는 실체는……? Jesus@Heaven.God ‘부루스 올 마이티’ 세상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 졌다(창세기). 작가는 아담의 언어를 찾는다. 아담이 사물을 보고 말하면 말은 사물의 이름이 된다. 바벨탑이후 아담의 언어는 파괴되고 인간들은 파괴된 파편을 찾는다. 파편의 조각들. 미메스 - 흉내가 아닌 사물의 자체 되기, 또는 닮기. 그 행위의 몫이 시인들이다. 수필 또한 시인이 아니겠는가. 작가는 미메스의 노고를 즐기고 있다. 살리에리는 신에게 재능을 주지 않았음에 반항하지만 작가는 어둔 밤바다에 달빛 주심을 감사한다. 작가는 다양한 글쓰기를 추구한다. 몇 년 전 내 기행문 쓰기의 방법을 완전히 뒤집어 놓은 책이 ‘삶, 지금은 상영 중’이었다. ‘Film'' - 영화 에세이는 내용이나 줄거리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느낌, 울림만 슬적 슬적 던져 놓는다. 요는 영화는 비디오테이프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줄거리나 내용은 영화 소개서, 여행의 도정은 여행안내서 만으로도 충분하다. 기존의 감상문, 기행문으로 어찌 수필이라 말할 수 있겠느냐. 흔히 자기의 이야기, 또는 성찰, 감성, 감각들을 잃어버린 도식화된 글이 어찌 수필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겠느냐는 쿠데타 이다.
x*****k 2006.01.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