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 신춘문예 당선시집 | 편집부 편 | 문학세계사 | 2006-01
![]()
책장 정리를 하다가 오래된 시집을 한 권 읽었다. 세월만 오래 되었을 뿐, 사실은 내가 거의 매일 펼쳐보는 책들 중 하나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새해 첫 날을 뜨겁게 달궜던 <2006 신춘문예 당선시집>은 언제 감상해도 좋다. "강경보의 우주물고기(매일신문), 곽은영의 개기월식(동아일보), 김두안의 거미집(한국일보), 김원경의 만능사 제2호점(중앙일보), 양해기의 서울목공소(경향신문), 이윤설의 불가리아 여인(세계일보), 이윤설의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조선일보), 천종죽의 바뀐 신발(부산일보), 최명란의 내 친구 야간 대리운전사(문화일보), 최호일의 아쿠아리우스(서울신문) 등의 시를 포함하여, 김종훈의 화첩 기행(동아일보), 문수영의 먼 길(중앙일보), 조성문의 주산지 물빛(조선일보), 한분옥의 국립중앙박물관(서울신문) 등의 시집이 실렸다.
신춘문예 시집을 감상하다보면, 어떤 작품은 너무 난해해서 읽기 불편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책장을 미련없이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그런 현상은 신춘문예 당선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감상한 수많은 시집 가운데 난해한 작품이 개입하지 않는 책이 바로 2006 신춘문예 당선시집이다. 그렇다고 신선한 감각이 떨어진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시인의 시세계를 더 새롭고 경이롭게 역설한다.
내가 신춘문예 당선시집을 해마다 꼬박꼬박 구입해서 감상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안에는 어디에서도 쉽게 만날 수 없는 당선자들의 신작시가 무려 세 편씩나 수록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집도 마찬가지이다. 이렇듯 덤으로 읽게 된 시의 맛이 더 달콤할 때가 있다. 이 시집에서 눈여겨 볼 시인은 이윤설이다. 그녀는 "불가리아 여인(세계일보), 이윤설의 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조선일보)" 등 두 개의 신문사에서 당선되어 2관왕을 차지한다. 평생 한 번의 당선도 어렵다는 관문을 거침없이 통과한 그녀의 작품을 감상해보기로 하자.
□ 세계일보 당선작
매일 창 여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지만, 매일 창 여는 순간 일정하게 지나가는 이국의 여인. 자줏빛 붉은 함박꽃 모직코트를 여며 입은 그 몸은 뚱뚱하나 검게 불타는 흑발, 영롱한 흑요석의 눈동자를 불가리아 여인, 이라 칭하기로 하자. 가본 적 없는데도 그 여인 볼 때마다 벽력처럼 외쳐지는 불가리아! 정염의 혀가 이글거리는 태양과 열정이 조합된 발음! 가혹하게 태질하는 칼바람을 움츠려 깊이 찔러넣은 함박 핀 꽃은 불길하게도 피붉어 하염없이 걷고 걸어도 불가리아 여인 하염없이 걷고 걸어도 내 창 앞 그 여인 어쩌다 여기에 와 있는 거죠.
겹쳐진 창문으로 지나가는 그 여인 부풀어 터질 듯 꽃핀 몸, 타오르는 흑요석 눈빛은 생각하겠지, 저 이방의 여인 코리아의 여인 창 속의 갇힌 듯 노랗게 뜬 얼굴 부르쥔 손 왜 내가 지나가는 이 시간마다 일정하게 창을 여는 걸까. 어떤 이끌림이 그녀와 나의 눈동자 속 흑점에 맞추어지고 우리 서로 의아해하며 바라본다 왜 하필 나를 선택한 걸까. 하고많은 사람 중에 불가리아 여인 코리아 여인 우연히 다시 만나다면 스치듯 안녕, 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불길하게도 매일 일정하게.
-이윤설,「불가리아 여인」전문, (본문 78~79)
□ 조선일보 당선작
비린 게 무지하게 먹고팠을 뿐이에요 슬펐거든요. 울면서 마른 나뭇잎 따 먹었죠. 전어튀김처럼 파삭부서졌죠. 사실 나무를 통째 먹기엔 제 입 턱없이 조그마했지만요 앉은 자리에서 나무 한 그루 깨끗이 아작냈죠. 멀리 뻗은 연한 가지는 똑똑 어금니로 끊어 먹고 잎사귀에 몸 말고 잠든 매미 껍질도 이빨 새에 으깨어졌죠. 뿌리째 씹는 순서 앞에서 새알이 터졌나? 머리 위에서 새들이 빙빙 돌면서 짹짹 거렸어요. 한 입에 넣기에 좀 곤란했지만요 닭다리를 생각하면 돼요. 양손에 쥐고 쫘-악 찢는 거죠. 뿌리라는 것들은 닯발 같아서 뼈째 씹어야 해요. 오도독 오도독 물렁뼈처럼 씹을수록 맛이 나죠. 전 단지 살아 잇는 세계로 들어가고팠을 뿐이었어요. 나무 한 그루 다 먹을 줄, 미처 몰랐다구요. 당신은 떠났고 울면서 나무를 씹어 삼키었죠. 섬세한 잎맥만 남기고 갉작이는 애벌레처럼 바람을 햇빛을 흙의 습윤을 잘 발라 먹었어요. 나무의 살집은 아주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죠. 푸른 생선처럼 날것이 비린 나무 냄새. 살아 있는 활어의 저 노호하는 나무 비늘들, 두 손에 흠뻑 적신 나무즙으로 저는 여름내 우는 매미의 눈이 되었어요. 슬프면 비린 게 먹고 싶어져요. 아이 살처럼 몰캉한 나무 뜯어 먹으로 저 숲으로 가요.
-이윤설,「나무 맛있게 먹는 풀코스법」전문, (본문90~91쪽)
-2016. 11. 06. ⓒ 심은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