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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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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인터넷 사이트에 비평이 올라와 있지만 YES24에는 아직 평이 없어서 씁니다. 안경환 교수가 쓴 이 책은 평전이라고 부를 가치가 있는 책인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자료조사도 부족하고 대부분 다른 책에서 출처조차 밝히지 않고 쓴 이 책을 보면 과연 대한민국에 저작권이란 존재하는가? 대학에서 도대체 논문쓰기의 기본인 인용방식을 가르치긴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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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인터넷 사이트에 비평이 올라와 있지만 YES24에는 아직 평이 없어서 씁니다. 안경환 교수가 쓴 이 책은 평전이라고 부를 가치가 있는 책인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자료조사도 부족하고 대부분 다른 책에서 출처조차 밝히지 않고 쓴 이 책을 보면 과연 대한민국에 저작권이란 존재하는가? 대학에서 도대체 논문쓰기의 기본인 인용방식을 가르치긴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하긴 아직도 대한민국 학계에는 통일된 주석 인용 방식이 없긴 합니다. 미국 법학계가 ''BLUE BOOK''이라는 두꺼운 주석 인용 방식 책자를 내는 것과는 비교도 안됩니다. 이 정도 잡문을 책이라고 펴내는 것은 진보적인 법학자로 알려진 자신의 명성에 흠집내는 일입니다.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장도 하셨던 분이 인권변호사로 가장 유명한 조영래 님을 이렇게 밖에 이해하고, 이정도 밖에 쓰지 못하는 것도 아쉽습니다. 조영래 님이 아닌 안경환 교수 자신과 서울법대 이야기가 주를 이루어서 누구의 평전인지 초점이 맞지 않습니다. 절대 사서 보실 책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영래 변호사가 직접 쓰신 <전태일 평전>이나 조영래추모사업회에서 발간한 〈조영래 변호사 변론 선집〉 <진실의 불꽃> 등을 읽고 보시길 권합니다.

[인상깊은구절]
허명(虛名)이 실명(實名)을 능가하는 사람은 단명(短命)한다. 이른바 ''잘나가는'' 사람에 이만큼 경종이 되는 경구는 드물다. 대학의 수석 입학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엄청나다.
b*******7 2006.03.20. 신고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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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평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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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평전. 나는 이 책이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내가 조영래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순전히 전태일평전을 읽으면서이다. 바로 전태일평전을 쓴 사람, 그 사람이 조영래라는 사람임을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토록 훌륭한 기록을 남긴 사람! 나는 그를 위대한 사람이라 평하고 싶다.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기록되어지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다. 우리의 찬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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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평전. 나는 이 책이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내가 조영래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순전히 전태일평전을 읽으면서이다. 바로 전태일평전을 쓴 사람, 그 사람이 조영래라는 사람임을 알게 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토록 훌륭한 기록을 남긴 사람! 나는 그를 위대한 사람이라 평하고 싶다.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기록되어지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다. 우리의 찬란한 문화유산이기도 한 기록문화, 나는 이것이 자랑스럽고 또 이토록 기록으로 남기는 많은 사람들을 존경한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많은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다. 근현대사에 있어서는 진실된 기록이 숨겨지거나 남겨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한 원인은 물질문명이 정신문명을 따라가지 못하는 원인은 아닌가 한다. 그만큼 풍족한 물질문명은 우리의 정신을 피폐해지도록 갈아먹는다. 정보화의 홍수속에 요즘 한창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멀티미디어가 아닐까 한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생긴 것이다. 이토록 인터넷문화가 확산되면서 화려하고 음악이 흐르고 멋드러진 그림이 새겨지는 등의 사이트들이 선호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멀티미디어를 바탕으로 한 인터넷 문화는 우리의 지성을 갈아먹는다. 바로 우리의 머리를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눈과 귀 등의 감각기관을 자극함으로써 생기는 현상이다. 마치 바보상자 텔레비젼과 같이...

 

한 시대를 살다간 지성인 조영래! 그는 우리사회의 최고의 지성인이며 엘리트이면서도 엘리트리즘에 젖어있지 않았던 사람이였다. 서울법대에 수석합격(전체수석)하여 명예와 부를 움켜쥘 수 있었음에도 그는 그러하지 않았다. 그리고 항상 시민들곁에 있었다. 그는 6.3학생운동을 주도했고 또 민청학련에 연류되면서 정부당국에 의해 6년간의 수배생활과 1년간의 수감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사법연수원을 거쳐 변호사가 된 사람이다. 엘리트코스를 밟아왔고 최고의 화려함속에서 살아갈 수 있었겠지만 그는 양심적 법률인이였고, 소신과 신념을 확고히 가진 지성인이였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그는 국민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늘 시민과 함께 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하에 국민이 핍박받고 시민의식이 형성되기전에 "시민"이란 단어를 처음 끌어낸 사람도 바로 조영래라고 책은 소개하고 있다. "시민공익법률사무소" 그가 변호사로서
법률사무소를 열었을때 지은 이름이다.  그가 늘 시민과 함께 하였고 그의 변론은 소외받고 있는 대중들과 함께 했다는 점이다.


망원동 수재사건, 여성 조기정년제 사건, 부천서 성고문 사건, 보도지침 사건, 상봉동 진폐증 환자 사건, 한겨레신문 압수수색 취소청구 사건, 김근태 고문 사건 등등의 많은 사건들을 다루었고 창조적 변론을 통하여 진정으로 그가 소외된 대중을 위하여 많은 일을 했던 사람임을 여실히 알수 있게 한다. 또한 그가 군사정권속에서 수많은 고초와 싸워왔고 그 후에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고심했던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이책은 조영래라는 인물에 촛점이 맞추어 있지 못하다. 그래서 조영래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이 책을 읽고자 한다면 실망을 많이 할 것 같다. 그만큼 책에서는 조영래에 대해서 비켜나가고 있다.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당사자인 권인숙 교수는 이 책을 "평전의 형식을 갖추지 못한 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만큼 조영래에 대해서 다루지 못했다.

 

하지만 조영래에 대하여 빗겨나가고 있는 반면 이승만 정부에서부터 군사정권 시대와 그 이후 민주화를 이룩한 90년대 초반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 시대는 우리시대에 격동의 세월이였고 우여곡절과 민중들이 질곡과 같은 삶을 살았던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한 세월속에서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이 책에 나타나 있다. 4.19혁명과 6.3학생운동, 민청학련 사건, 10월 유신헌법, 최종길교수 의문사 사건, 사카린 밀수사건, 김지하 사건 그리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모태가 된 정법회에 이르기까지 우리시대의 아픔을 들려 주려하고 있고 민주화가 무엇인지를 말하려 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많은 인물들이 나타난다. 그러한 인물들에 대하여 세세하게 알기는 부족하기는 하지만 사건의 인물과 배경을 알아가는데는 어느정도 참고는 될 듯 하다. 이부영, 김근태, 천정배, 이철, 이상수, 이병린, 윤종현, 박종철, 김지하, 유인태, 박원순, 이신범, 장일순, 지학순, 이소선, 민종덕, 최정인, 노무현, 최종길, 장기표, 이한열, 김수환, 손학규, 백낙청, 박노해 문익환, 함석헌 등등등... (이러한 과거의 민주인사들중에는 지금 관료로 들어가 과거 자신의 기억을 송두리째 잊어버리고 민주지사, 노동지사 탄압에 앞장서고 있는 변심한 인권운동가, 반지성인, 가짜 지성인들도 있음을 볼때 안타깝다.)

 

조영래는 43세의 나이에 폐암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어느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 시대 지성사회의 죽음이라고 비쳐질 수 있다.  그만큼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민주인사, 지성인들의 목소리는 힘을 잃어가고 있고 시대의 변화속에 파묻혀 버렸다. 글의 내용상 가슴에 새기고 픈 글도 대목대목 볼 수 있었다. 조영래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많은 면을 알지 못하여 아쉽지만 그 반면 다른 면을 알 수 있었고 또한 뜻깊은 책이 될 것 같다.

 

l*****2 2008.04.2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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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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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아름다운 열정 조영래 평전   1947년 대구에서 태어나 1970년 전태일 분신과 함께 삶의 행로가 극적으로 전환되어   전태일 평전의 숨은 작가였고 70년대와 80년대 대한민국 민주화와 함께한   살아있는 전설 인권변호사 조영래 선생은 1990년 12월 폐암으로   이제는 신화가 되신분이다.   스무살 무렵 고등학교때 인근 대학에서 날아오던 매케한 최루탄의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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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아름다운 열정 조영래 평전

 

1947년 대구에서 태어나 1970년 전태일 분신과 함께 삶의 행로가 극적으로 전환되어

 

전태일 평전의 숨은 작가였고 70년대와 80년대 대한민국 민주화와 함께한

 

살아있는 전설 인권변호사 조영래 선생은 1990년 12월 폐암으로

 

이제는 신화가 되신분이다.

 

스무살 무렵 고등학교때 인근 대학에서 날아오던 매케한 최루탄의 냄새가

 

민주화의 상징처럼 머리에 각인되어있던 나에게

 

전태일 평전 -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이라는 책한권을 만났다.

 

청계천 에서 옷을 만들던 어린 노동자의 분신으로 세상은 또한번 진보했다.

 

 

지금 이름만 대면 익숙한 정치인들 대부분이 그시절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열정으로 군사독재에 저항하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된다.

 

 

얼마전 열반에 드신 법정스님을 비롯해 그시절 대부분의 민주투사들의

 

이름이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함께 등장하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 순간이 그와 함께했다.

 

 

서울대 수석입학과 무서운 집중력으로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시대에 앞선 환경과 인권문제를 삶의 화두로 삼아 치열하게 살다간 한사람

 

진한 담배연기와 함께 사람을 위해 정신의 날을 세웠던 멋진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켰다.

 

 

공공도서관의 책을 보면서

 

화려한 낙서에 놀라움과 더불어 기가막힘을 경험한다.

 

도대체 책을 읽는 이유가 뭘까? 생각이 변하지 않고 행동이 변하지 않는 책읽기가 무슨의미인가?

 

읽는 내내 신경을 거스르는 밑줄들...

 

아무생각없이 공공의 재산에 상처를 내고 길거리에 휴지를 버리고, 침뱉고, 담배피우고

 

 공공 장소에서 남을 의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행동들...

 

만권의 책을 읽으면 뭐하겠는가?

 

공공의 의미를 모르는 고학력 사회의 자화상...

 

e*****a 2010.03.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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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법학의 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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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평전'은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는데, 나중에 시간 나면 읽으려니 하고 집에 두었던 것을 아내가 먼저 읽은 후 나에게 권했던 책이다.책을 읽기 전에는 어느'인권변호사'에 대한 미화와 업적에 대한 찬사가 주를 이룬 그저 그런 책이려니 생각했었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서 나의 선입견은 점점 무너졌다. '조영래' 개인이 법률이라는 도구를 통해 이뤄 놓은 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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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평전'은 지인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는데, 나중에 시간 나면 읽으려니 하고 집에 두었던 것을 아내가 먼저 읽은 후 나에게 권했던 책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어느'인권변호사'에 대한 미화와 업적에 대한 찬사가 주를 이룬 그저 그런 책이려니 생각했었지만, 막상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서 나의 선입견은 점점 무너졌다.

'조영래' 개인이 법률이라는 도구를 통해 이뤄 놓은 숱한 기념비적 업적들
 - 전태일 분신 자살, 권인숙 성고문 사건, 망원동 수재민 소송 등 - 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가히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만 하다고 하겠다.
어찌 보면 개인적인 문제일 수도 있었던 사건들 속에서, 독재로 치닫는 공권력의 횡포와 사회의 불평등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포착해내고 이슈화하여,
역사의 고비고비에서 변혁의 불씨를 지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조영래 개인의 업적이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정리되고 재평가 되어 왔기
때문에 새삼스레 재론할 여지는 없겠지만, 이를 평전이라는 형식으로 새롭게
엮어 낸 안경환 교수의 작업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조영래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알려져서 새로울 것도 없고, 평전이라는 것이
잘해야 본전인 실속 없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조영래가 '전태일 평전'을 통해 그랬던 것 처럼, 안경환은 조영래라는 개인의
삶과 죽음을 통해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가 경험해야 했던 아픈 시대에 관한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흔히 '법률 전문가'라 불리우는 분들의 역할에 대해서도 나지막하지만
강하게 질책하고 있다.
그의 문장은 적당히 의무감으로 공간을 채워 나가지 않는다.
때로는 판결문 같은 정확함으로 시대의 논점들을 정리하면서, 더러는 감성적인 詩語들로 적절히 버무리기도 하면서 흡인력을 높여 나간다.
이 한 권의 평전을 읽으면서 문학과 법학의 접점을 보는 듯 하다. 

j****e 2008.01.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