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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을유문화사 #을유문화사_서평단 #알코올과예술가 혼술하면서 읽을 수 있는 가벼운 글일까 했는데, 생각보다 전문적이었던 책. 가볍고 유머러스한 책은 아니지만,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다. 술이 언급되거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 작중 주인공이나 작가가 술을 좋아하는 경우가 정말 다양하게 나와있다. 외국 저자의 책이다보니, 예시로 나온 작가 중 우리가 아는 유명한 작가도 많지만, 몰랐던 작가의 소설도 많아서 새로운 작품을 알아가는 소소한 즐거움도 있었다. 이 책에서 소개된 작품 중에는 무거운 내용의 소설도 많이 등장한다. 저자는 줄거리를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는데, 파격적인 줄거리의 소설이 많았다. 술에 의존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어떤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한 편의 유익한 논문 읽듯이 읽게 되어 더 좋았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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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문학사를 뒤흔든 작가들이 알코올을 곁에 두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왜 하필 술이었는지에 대해 파헤친 시도는 드물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렉상드르 라크루아는 『알코올과 예술가』 에서 이 지점에 주목한다. 그는 예술가들이 기울인 술잔 속에서 취기 이상의 무언가를 읽어내며, 알코올이 과연 창작을 피워내는 불꽃이었는지 그들의 영혼을 파먹는 독이었는지 고찰한다. 어느 예술가에게 술은 창작을 위한 일시적 자극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억눌린 욕망과 충동을 표출하게 하는 도구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삶을 무너뜨리는 중독이었다. 책은 예술가의 음주를 하나의 현상으로 묶지 않고, 크게 수면 시간 이외의 시간 내내 알코올을 섭취하는 ‘상습성 음주‘, 특별한 기회에만 술을 마시는 ’간헐성 음주‘, 술에 손대기를 거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금주’로 나누어 설명한다. 술은 예술가에게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경계를 넘기 위한 도구’로 기능했다. 책에 따르면 알코올은 일상의 이성과 규범에 갇혀 있던 정신을 일시적으로 풀어주어 감각을 극대화한다. 그래서 취기는 때로 예술가에게 일종의 해방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정상적인 의식으로는 닿을 수 없는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 자신의 이성을 잠시 내려놓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술은 예술과 닮아 있다. 예술 역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와 질서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술과 예술 모두 기존의 질서에서 잠시 벗어나게 한다는 점에서 ‘위반’의 성격을 갖는다. 술은 현실을 잊게 하는 물질인 동시에 현실을 다르게 바라보게 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하지만 술이 예술가의 창작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쉽게 예술가의 자기파괴를 낭만화하게 될지 모른다.실제로 이 책이 다루는 예술가들 가운데에는 술을 통해 창작의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뿐 아니라, 결국 술 때문에 자신의 삶과 창작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존재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술이 예술을 만들었는가’가 아닐까. 오히려 술을 통해 예술가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무엇을 욕망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술은 외로움을 잠시 잊게 할 수도 있고, 현실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도 있으며, 자신 안에 있는 욕망을 마주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 주던 술이 어느 순간부터 창작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되고, 필요한 조건은 곧 의존이 된다면, 술은 창작의 동반자가 아니라 창작을 가로막는 존재가 된다. 처음에는 자신을 다른 세계로 데려가던 술이 어느 순간부터는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문이 되는 것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리가 예술가의 자기파괴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평범한 사람이 술에 빠지면 우리는 그것을 중독이라고 부르면서도, 예술가의 중독에는 쉽게 ‘천재성’이나 ‘예술적 광기’라는 낭만적인 의미를 덧붙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망가진 관계와 잃어버린 시간, 창작할 수 없었던 날들은 작품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알코올과 예술가』는 결국 술에 관한 책이면서 예술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예술에 고통이 필요하다고 믿게 되면 술과 자기파괴마저 창작의 조건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술이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술이 예술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예술가들이 술을 통해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 했고, 무엇을 마주하려 했는가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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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간혹이라도 술을 찾지 않는 사람을 보기 쉽지 않다. 그만큼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음주라는 행위가 마냥 죄처럼 여겨져야 하는 백해무익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 그날의 스트레스를 치킨과 맥주 한잔으로, ‘캬’ 소리로 날려 보내고, 내지 못했던 용기를 내어 말을 꺼내기도, 행동하기도, 떠나보내기도 한다. 물론 즐거운 일을 더 즐겁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축하의 의미, 선물의 의미로 자신이 좋아하는 술을 꺼내서 자기 자신과 건배를 하기도 하니까. ⠀ #알코올과예술가(#알렉상드르라크루아 지음 #을유문화사 출판)은 술과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 삶? 같은 예술가들의 삶을, 작품을 들여다본다. 이 책은 음주라는 행위를 세 가지로 나누어 구분하고 있다. 항상 술을 마시는 중독의 상태, 가끔 술을 마시는 간헐적 음주, 그리고 중독에서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것으로 이어지는 금주. ⠀ 아예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중독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상태를 넣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예술과 술을 결합하면 생각하지 못했던 영감을 얻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시도하기를 주저하던 것을 실행에 옮기는 용기가 생기는 것을 생각했었다. ⠀ 책 속 음주의 효과도 비슷했지만 <알코올과 예술가>에서는 위에서 말한 음주의 상태에 따라 음주가 가져오는 효과가 달랐다. ⠀ 중독적 상태에서는 오히려 음주의 효과가 숙취의 상태에서 찾아왔다. 적당한 음주 상태의 흥분과 즐거움을 넘어 오히려 차분해지고, 그리하여 평소에 주렁주렁 들고 다니던 것들을 비로소 내려놓고 마침내 예술을 만들기 위해 글과, 그림과 마주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폭음 뒤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 반까지 무조건 그림을 그렸다. 망가진 몸과 정신의 ‘재활’로 예술을 대한다. 숙취로 벙벙한 손의 감각만 의지하지 않고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 자신을 뛰어넘는다. 그렇게 역설적으로 음주 후 숙취에서 삶에 대한 의지와 탐욕을 뿜어냈다. ⠀ 간헐적 음주가 내가 예상했던 효과들을 야기한다. 세상에서 자신에게 바라는 것으로부터 해방되어 스스로 검열하는 것을 멈춘다. 그로 인한 몸과 마음의 자유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해낸다. ⠀ 하지만 이렇게 구분해 놓은 음주들도 결국에는 경계가 모호해진다. 간헐적이더라도 의존도가 증가하면 횟수가 자연스럽게 증가하고, 상습적 음주로 나아가는 경우가 파다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된 금주의 길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은 몹시 힘들다. 술에 의존했던 사람들에게 술이 없다는 것은 인생이 한순간에 가장 어둡고 낮은 곳에 내다 꽂히는 끝없는 우울감을 선사한다. 이 상태에서는 살기 위해 예술을 붙드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에서도 망가진 몸과 마음 때문에 온전한 창작이 불가능하고, 애초에 예술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알다시피 그렇게 다시 음주를 하는 악순환이 많이 일어나기도 하고. ⠀ 여러 예술가들의 삶과 그 삶 속에, 그들의 혈관에 흐르고 있는 알코올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그들의 작품보다 낯설지 않다. 오히려 친근하다. 하나하나 이미 알거나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들의 예술적 언어보다 한 인간의 삶과 술은 이미 우리가 친숙하게 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그들의 작품보다 더 큰 생각거리를 준다.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 된다. 나는 어떤 경우에 술을 찾던가. 술을 어느 정도의 빈도로, 한 번에 얼마의 양을 마시는지. 그리고 왜 마시는지. 이런 것들을 스스로에게 물으며 그 답을 찾아가는 것이 삶이며, 나만의 방식으로 견뎌내고 이겨내는 것이 예술이다. 그렇게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자 한 걸음 나아간 예술가가 된다. 낯선 이의 이야기에서 그보다 더 낯선 나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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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최근 알코올과 중독에 관심이 생겨 을유문화사 『알코올과 예술가』를 읽었습니다. 술은 문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비트 세대만 해도 술은 그들의 반항에 동반자 역할을 했죠. 이 책은 작가와 작품, 시대를 분석하며 “왜 문학은 술을 필요로 했는가”를 추적합니다. 누군가는 기존 질서를 지우기 위해, 누군가는 환경적 요인으로 술을 찾지만, 그 빈도와 깊이는 결국 작가의 몫입니다. 특히 술이 집필 과정에 어떻게 개입했는지 구체적으로 다룬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창작이 균열에서 시작된다고 믿어 술이 걸작의 길을 열어준다고만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어떤 작가에게는 중독이 오히려 가능성을 말려 죽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술은 문학에 균열을 냈고, 그 균열이 때로는 걸작을, 때로는 침묵을 남겼죠. 이 책은 그 영향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인정하면서도, 음주를 부추기거나 중독을 미화하는 책은 아닙니다. 창작에 관심 있는 분, 알코올이 문학사에 남긴 흔적이 궁금한 분께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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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함께 술을 마셔야 비로소 친해진다는 말이 있다. 평상시 사회적 체면이나 이미지 때문에 적당한 거리감을 가진 인간관계일지라도 함께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긴장감이 해소되고 취기로 기분이 좋아지며 속마음을 편하게 터놓게 되는 것이다. 적당한 양의 음주는 기분을 좋게 하고, 긴장감을 완화시켜 준다. 하지만 그 선을 넘어서면 감정적이 되어 서로 싸움이 붙기도 하고, 때로 음주 운전이나 사건·사고에 휘말리거나 죽음에 이르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예술과 알코올을 겹쳐서 바라볼 때면 창작의 영감이 된다는 이유로 이를 긍정적인 측면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알코올과 예술, 특히 술과 문학은 오랜 동반자처럼 함께 해왔다. 알코올은 여러 작품에 안식처를 제공했고, 위로나 절망을 안기며 작가의 삶을 지배했다. 때로는 취기가 영감을 불러일으켜 걸작을 낳게 하거나 작가의 작업 방식을 바꿨고, 어떤 때에는 저자의 죽음을 앞당기며 무수한 걸작의 탄생을 가로막았을지 모른다. 알렉상드르 라크루아의 《알코올과 예술가》는 음주와 금주를 넘나들었던 여러 시대,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통해 창작의 촉매이자 중독과 파멸의 원인이 된 알코올의 양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술과 예술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다고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고전 텍스트에서 술은 맛있는 음식이나 관능과 나란히 묘사되어 왔다. 하지만 19세기부터 취기는 신체의 균형과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하고 불안한 경험으로 변모했다. 이중 작가 보들레르는 특히 중요한 전환점으로 제시된다. 이전의 문학사에서 술꾼은 대체로 어리석거나 악한 인물로 그려졌지만, 보들레르는 술꾼의 심리와 내면을 탐구함으로써 이런 상투성을 깨뜨리는 역할을 했다. 이는 술이 예술가의 생활 양식뿐 아니라 소설의 형식과 문학적 인식에도 영향을 준 사례로 손꼽히기도 한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의식을 살피고 스스로를 알고자 애쓰기 마련인데, 작가는 술에 취했을 때야말로 자기 내면에 침잠해 의지할 만한 감흥이나 믿음을 찾아 무한히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의식 탐험의 길잡이 역할을 한 취기는 작게에게는 특히 이성의 억압을 벗어던지고 기꺼이 글을 쓰게 하는 강력한 촉매제로서 기능했을 것이다. 책은 술에 기대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 예술가들을 단순한 일탈 사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창작 방식과 작품 세계가 알코올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취기를 동력으로 삼은 예술가들, 알코올의 기능과 예술에 미친 영향력을 간헐성 음주, 상습성 음주로 구분해 알코올의 다면성을 깊이 있게 살핀다.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작가와 그 일화는 알코올이 예술가들의 창작에 개입하는 방식이 각자에게 얼마나 달랐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하루에 6리터의 포도주를 마시며 《죽음의 병》을 집필했다고 한다. 그는 만취 상태에서 자신이 완전히 해체되는 끔찍한 추락의 과정을 느꼈다고 했지만, 그 작품은 사랑하지 못하는 인간의 실존적인 결핍을 파고드는 걸작으로 평가받았다. 이 밖에도 술 마신 다음날 오전에 그림을 그린 프랜시스 베이컨, 글을 쓰려는 이들에게 취한 흥분 상태로 책상에 앉을 것을 권한 잭 케루악 등 만취와 고통을 예술로 빚어낸 예술가들을 통해 자유로워지기 위한 수단, 예술의 동력이 된 알코올을 만날 수 있었다. 이에 반하는 또 다른 축은 금주와 회복의 문제로, 예술적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알코올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다룬다. 중독과 금주의 반복은 삶의 파괴로 이어진다. 하지만 예술가라서 용인될 수 있다는 태도는 되려 술을 미화하거나 질병을 가볍게 보는 태도로 오해될 수 있다는 것. 오히려 술이 인간의 의식을 분열되고 와해된 것처럼 느끼게 하기 때문에, 기존의 도덕적인 질서를 흔들어 놓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이 관점에서의 술은 창작을 돕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정신과 삶을 동시에 뒤흔드는 불안정한 힘으로 작용한다. 흔히들 알고 있는 알코올 중독의 폐해처럼, 술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해소되지 않는 갈증을 유발하며 자살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금주자를 단순히 술을 끊은 사람이 아니라 창작 활동과 삶을 지속하기 위해 중독의 습관과 싸운 인물로 다뤄지는데, 그래서 책은 예술가와 술의 관계를 실제 삶의 고통과 선택의 문제로 끌어온다. 술이 예술적인 성취를 이뤄낸 사례뿐 아니라 오히려 이것이 독이 된 사례,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지키기 위해 술로부터 돌아서려 했던 이들의 투쟁을 통해 알코올을 예술적 이미지로만 소비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엿볼 수 있기도 했다. 오늘날의 알코올은 예술적 영감이나 반항의 상징으로만 해석되지는 않는다. 현대에는 술보다 더 강력한 환각제의 등장, 그리고 사회적인 인식 변화 속에서 술은 예술적인 신비보다는 중독이나 질병, 금주와 금단의 문제로 더 자주 이해되는 편이다. 책의 접근 역시 그런 흐름 속에서 옛 예술가들의 취기와 장작 이야기를 다시 읽고 해석하게 만들지만, 긍정 혹은 부정 등 한쪽으로 미화하지는 않는다. 술에 기대어 나온 작품을 존중하되, 그 뒤에 남은 파괴와 고통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며 마냥 오해하기 쉬운 술과 예술에 대한 해석에 나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예술가의 걸작을 술의 효과로만 설명하지 않고, 알코올이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얼마나 복잡하게 망가뜨리고 재구성했는지, 인간의 무의식과 창조성, 자기 파괴의 본능을 깊이 있게 해부하며 술과 인간, 그리고 예술 사이의 숨은 맥락을 파헤치고자 하는 책의 통찰을 통해 수많은 예술가들의 내면을 엿볼 수 있었다. 왜 예술가들은 술을 찾는가, 혹은 엄청난 절제로 예술에 임하는가 궁금하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이 책이 그 호기심을 해결시켜 주었다. 예술가들의 작품을 해설하는 데 있어 인간의 취기와 욕망을 겹쳐 바라본 책의 시선이 어렵기도 했지만, 평상시 전혀 술을 입에 대지 않는 나에게 술을 찾는 이유, 술과 예술의 접점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 기회가 된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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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는 서평단 활동을 통해 제공 받은 도서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을유문화사 #을유문화사_서평단 #알코올과예술가 그러니 기슭에 머문 채 부스케의 상처와 피스제럴드와 라우리의 알코올 증독, 니체와 아르토의 광기에 대해 말할 것인가? 그렇게 해서 그 방면의 전문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이 빠져들지는 말고 경험 삼아 상처를 늘릴 정도로만 살짝 알코올 중독자가 되거나 미쳐 보거나, 게릴라처럼, 조금은 자살하듯, 자포자기 해 볼 텐가? 어느 쪽에 서건 모든 게 슬퍼 보인다. — 질 들뢰즈 책의 서두에 들어가기도 전에 적힌 문장이다. 예술가라는 종자는 유독 외부 자극에 취약하다. 늘어나는 작업량과 다가오는 마감일, 혹은 풀리지 않는 작품의 꼬투리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리기도 십상이다. 동시에 그들은 스트레스를 풀 줄 모른다. 오롯이 스스로 감내하며 자기 파괴적 히스테릭을 부리며 작품을 남기거나 죽어간다. 예술가들이 손대는 그나마의 일탈 중 하나가 바로 술이겠다. 나 또한 술을 즐기는 편이다. 글을 쓰든, 친구를 만나든 한 번씩은 술을 걸쳐야 직성이 풀린다. 해당 책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술을 마셔야 하루를 맺는 것 같은 예술가의 사례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작가는 술통에 빠진 예술가(작가 위주다)들을 관측한다. 오래간 알코올을 즐기거나 그 이상을 취하며 문학 속에 녹여낸 철학적, 정신 이론적인 측면에서 풀어나간다. 1부는 ‘상습성 음주와 금주’로 매일 같이 술을 마시며 새로운 작품이나 생활을 낳는 예술가, 또한 그 과정을 끊어내는 예술가. 2부는 ‘간헐적 음주와 충동적 행동’으로 도리어 이따금의 폭음으로 인해 스스로와 주변을 무너뜨리는 예술가. 3부는 ‘상습성 음주와 자기 파괴’ 1부처럼 계속 술을 마시나 인생 자체에 취해 자신을 내던지는 예술가를 보여주고 있다. 뒤르켐이 쓴 충격적인 한 문장은 알코올 중독자를 주제로 쓴 건 아니지만 알코올 중독자의 성향을 완벽하게 요약하는 문장이다. “해소되지 않는 갈증은 영원히 되풀이 되는 자살이다.” —145p 알만한 작가들의 인용을 통해 술에 절어버린 문학을 간접 경험한다. 예술가들은 취함을 통해 무의식 상태(혹은 오히려 완전한 의식 상태)에 돌입하고 자아를 각성한다. 파멸하기도 한다. 그들 역시 알고 있으나 멈추지 못한다. 내가 술을 먹는 것이 아닌 술이 나를 먹는다는 말과도 다를 것 없다. 술의 씁쓸함과 섬찟함을 곱씹고, 또한 그 파멸을 이겨내 구원받기도 한다. 술에 의해 드러나는 개인의 내밀한 욕망 분출도 볼 수 있으나 이는 현대에 와서 과거만큼의 힘을 받지 못한다. 알코올 중독은 현대 의학을 통해 치료받아야 하는 병이 되었다. 신비로움을 잃고 추잡스러움의 한 축이 되어버렸다. 어느 만큼 취할지 가늠하는 것은 불필요한 짓이라고 저자마저 이야기 하고 있다. 이미 과거의 예술가들은 술 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오갔으며 결론적으로 지나친 음주는 좋을 게 없다. ‘술에 빠지는 건 미래 없는 선택(176p)’이 되어 버린다. 가장 중요한 사실 역시 제대로 명시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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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과 예술가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술을 즐기는 예술가들의 일화를 흥미롭게 소개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오래전 과제를 위해 밤새 술을 마시며 그림을 그렸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문학과 철학, 정신분석학을 넘나들며 작가와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19세기 전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알코올이 미치는 영향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술을 오랜 시간 마셔야 하거나 혹은 극단적으로 금욕에 가까운 상태로 글을 써야했던 작가들도 있었다. 그런 대목들을 밑줄 치며 읽다 보니 다음 내용이 기대되면서도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었다. 덕분에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분량임에도 완독하는 데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무엇보다 지나친 음주가 인간을 파괴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문학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술을 이야기해 왔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내게는 유익한 충격이었달까. 현대 작가는 매몰된 기억과 문장들이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게 해야 한다. 그는 연료 부족으로 기관이 정지된 상태라면 신을 향해 돌아서서 기도를 올리기보다는 새 술병을 딸 것이다. 61쪽 저자는 여러 시대의 작품을 통해 술이 단순히 인간을 망가뜨리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절망과 욕망, 반항과 자기파괴를 드러내는 매개였음을 보여준다. 어떤 작품은 술이 초래하는 비극을 경고하기 위해 쓰였고, 또 어떤 작품에서는 사회와 현실에 저항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 선택하는 마지막 반항의 방식으로 술이 등장한다. 저자가 설명하듯 19세기 문학에서 술은 인간의 혈기와 열정을 폭발시키는 불처럼 묘사된다. 반면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술은 오히려 인간을 차갑게 만들고, 삶의 의지마저 잠식하는 냉기의 이미지로 변한다. 술꾼은 점차 '알코올 중독자'라는 존재로 바뀌고, 사회 역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변화시킨다. 지금 우리가 알코올 중독을 질병과 치료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 역시 이러한 변화의 연장선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흐름을 보들레르, 케루악, 랭보, 베이컨, 뒤라스 등과 같은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 그리고 들뢰즈와 야스퍼스, 프로이트와 뒤르켐의 철학과 사상을 연결하는 과정이 정말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들의 작품과 생애를 읽으며 찾아본 책들이 절판 상태일 때 찾아오는 허무와 아쉬움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렇다. 알코올이 간절해졌다. 작품을 해설하는 데 그치지 않고 문학과 철학이 서로를 비추며 인간의 취기와 욕망을 분석하는 과정 자체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작가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만나게 되고, 철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추상적인 개념들이 문학 작품 속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뒤르켐이 쓴 충격적인 한 문장은 알코올 중독자를 주제로 쓴 건 아니지만 알코올 중독자의 성향을 완벽하게 요약하는 문장이다. “해소되지 않는 갈증은 영원이 되풀이되는 자살이다.” 145쪽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긴 세월 ‘취한 자’들의 세상이었던 문학과 예술은 현대에 이르러 환각제의 등장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 속에서 그 신비와 반항의 가치를 잃어버렸다. 이제 술은 예술적 영감의 상징이라기보다 중독과 질병, 그리고 금주와 금단 사이에서 오간다. ‘문체가 무엇보다 하나의 육체 속에 담긴 무엇임을 인정(37쪽)’ 해야 한다면 아마도 나는 술에 대해서는 그저 모든 일을 마치고 마시는 한 잔의 맥주의 시원함을 표현하는 데에 그칠 것이다. 저자가 말한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책은 빈 껍데기처럼 공허(178쪽)’ 할 것이란 말은 그런 점에서 지나친 겸손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이 책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이해하게 했고, 밑줄을 긋게 만들었던 수많은 문장들처럼 이전에는 단지 혐오하거나 외면했던 인물들을 다른 시선으로 읽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은 다른 독자들은 어떤 문장에 밑줄을 그었을지 궁금해진다. #알코올과예술가 #알렉상드르라크루아 #을유문화사 #작가 #문학사 @euly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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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술. 자욱한 연기 속 술잔을 기울이며 고통을 감내하는 작가의 이미지는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질문을 막는다. 이 책은 그 익숙함을 비집고 들어간다. 예술가는 정말 술이 있어야 썼을까,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걸까. 라크루아는 이 관계를 낭만화하지도, 손쉽게 단죄하지도 않은 채 들여다본다. 뒤라스는 하루 6리터의 포도주 속에서 자신이 완전히 해체되는 추락을 겪으며 역설적으로 의지를 확인했고, 베이컨은 매일의 숙취를 오히려 자유로워지기 위한 조건으로 삼았다. 여기까지는 매혹적이다. 문제는 저자가 그 매혹의 끝을 끝까지 따라간다는 데 있다. 상습성 음주를 ‘지연된 자살’이라 부르는 순간, 낭만은 서늘하게 식는다. 술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선뜻 한쪽으로 결론 내리기가 어렵다. 자기를 해체해야만 닿는 자유가 있다면, 그 자유는 축복일까 형벌일까. 취해서 쓴 게 아니라 쓰기 위해 취해야 했던 사람들. 그 절박함 앞에서 나는 걸작이라는 단어를 예전처럼 가볍게 느끼지 못하게 됐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술을 마시며 읽고 ‘취해서 쓴 리뷰’ 입니다.✍️ 하여, 평소보다 비문, 오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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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현대 작품에서 술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이러한 사태의 원인과 의미를 밝히는 게 이 책의 목적이라 말하며 시작하는 책. 생각했던 것보다 진중하고 고찰적인 글이었다. 알코올에 잔뜩 취해 담배 연기를 뿜어대며 삶에 대한 애증을 낱낱이 파헤쳐 온 예술가들의 이미지란 누구나 떠올리기 쉬운 예술적 이미지의 하나다. 알코올은 예술가들에게 반드시 필요한가? 일반인보다 예술가에겐 좀 더 관대하고 포용적인 느낌을 주는 알코올은 그간 예술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책은 그어떤 명확한 해답없이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유명 예술가들의 일화와 그들에게 알코올이 각각 어떤 의미였는지를 담담하게 조명한다. 어떤 예술가들에겐 자기 파괴의 수단이자 회피의 도구였고, 또 어떤 예술가들에겐 자신의 깊은 감정을 증폭시키는 신비로운 열정으로써 술을 이용하기도 했다. 술을 내리 이용하던 예술가에게도, 술에 빠져 사는 예술가를 바라보는 대중들에게도 술이 주는 신비로운 마력이 통하던 때가 있었음을 확인했지만 과연 현대에까지 그 마력이 통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는 작가의 말처럼 시대가 변했고, 시대 속에서 술이 예술에게 끼치는 영향 역시 변한다. 그 결과는 결코 허무하다거나 당연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그저 술이 예술에, 그리고 예술가에게 끼친 막강했던 시절을 담담히 훑고 지나온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한 세기의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알코올과의 관련성에 초점을 맞춰 탐구한 글이라 색다른 지적 쾌감을 주기도 했다. 글의 한 장면, 그림의 일부분을 '이런 시선으로도 바라볼 수 있겠구나' 깨닫기도 한 시간.
#알렉상드르라크루아 #알코올과예술가 #을유문화사 @eulyo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