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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UX를 유난히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좋아한다기보다 참지를 못한다. 앱이나 웹에서 서비스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거나, 원하는 걸 도무지 찾을 수 없거나, 엉망인 UI를 마주하면 그 즉시 욕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이런 류의 책을 보면 일단 손이 간다.
브런치에 글을 자주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습관이 하나 생긴다. 브런치북으로 뽑힌 책은 일단 믿고 본다는 습관. 『사용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세요』(정그린 지음)는 제13회 브런치북 종합 부문 대상작이다.

1. Reading Users — 우리는 읽지 않는다, 스캔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챕터는 역시 1장이다. "텍스트는 콘텐츠가 아닌 가장 기초적인 인터페이스"라는 소제목부터가 그렇다. 버튼, 오류 메시지, 안내 문구까지 서비스의 모든 접점이 결국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지적, 아무리 화려한 아이콘과 매끄러운 모션이 있어도 사용자가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순간에는 결국 '문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디자인 도구를 오래 만져본 사람일수록 뜨끔한 대목이다. 텍스트를 스타일의 영역, 트렌디한 폰트나 세련된 색상 조합 정도의 '시각적 재료'로만 다루는 순간 화면은 예뻐 보일지 몰라도 정작 사용자의 행동을 유도해야 하는 지점에서는 제 역할을 못 하게 된다는 문장도 곱씹게 된다.
'의도를 전달하고 행동을 유도하는 타이포그래피'는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고 까다로운 설계 작업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타이포그래피는 결국 장식이 아니라 정보 위계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걸, 이 책은 계속 다른 각도에서 되풀이해서 말해준다.

이어지는 내용이 "우리는 텍스트를 읽지 않는다, 스캔한다"다. 1999년 제록스 파크의 피터 피롤리와 스튜어트 카드가 정립한 정보 사냥(information foraging) 이론을 끌어와, 사용자가 최소한의 인지적 노력으로 최대한의 정보를 얻으려 한다는 점을 설명한다. 이 스캐닝 흐름을 지도로 그려낸 게 F패턴과 Z패턴이다. 저자는 두 패턴의 차이를 이렇게 정리한다.
F패턴이 사용자가 주도적으로 정보를 찾아내게 돕는다면, Z패턴은 설계자가 의도한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만드는 데 효과적이죠.
F패턴은 뉴스 기사나 블로그, 검색 결과처럼 정보 밀도가 높은 콘텐츠에서 나타나는, 갈수록 짧아지는 가로선의 움직임이고 Z패턴은 설계자가 시선을 의도적으로 배치한 콘텐츠에서 나타나는 대각선 흐름이다. 이 구분을 알고 나면 블로그 글의 첫 문단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 스티커 상세페이지의 정보를 어느 순서로 놓아야 하는지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실제로 40여 개 채널을 운영하며 매번 '어디에 눈길이 먼저 갈까'를 감으로 판단해왔는데, 이렇게 디테일한 부분까지 설명해 주는게 감동이었다. 특히 내가 몰랐던 8pt 그리드 시스템도!

2. Hurried Users & Anxious Users — 우리를 조급하게 만든 건 우리가 아니다2장의 문을 여는 문장은 도발적이다. 설명서가 필요한 제품은 이미 고장난 것이나 다름없다. — 일론 머스크
그리고 저자는 곧바로 이 조급함을 개인의 성격 문제로 돌리지 않는다. "아, 급하다니까요! 결정 좀 빨리빨리 합시다"라는 소제목 아래, 전자레인지 알람이 채 울리기도 전에 문을 열어버리는 습관을 예로 들며 이것이 개인 특성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인터페이스를 대하는 보편적인 감각이라고 짚는다. 유튜브 광고의 '5초 뒤 건너뛰기' 버튼처럼, 다음에 눌러야 할 지점에 이미 손가락을 올려둔 채 살아간다는 묘사가 뼈아프다.
우리가 이토록 조급해진 까닭은 기술의 진보가 우리의 기대치를 극단적인 즉각성에 맞춰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조급함을 저자는 다시 두 갈래로 나눈다. 하나는 손실 회피가 낳은 '강제적 조급함', 다른 하나는 인색한 인내심이 낳은 '자발적 조급함'이다. 전자의 대표 사례로 보여주는 아고다와 에어비앤비 화면이 특히 예리하다. "선택하신 날짜는 다른 여행객들도 선호하는 날짜입니다", "이 숙소는 보통 예약이 가득 차 있습니다" 같은 문구는 결핍을 자극해 결정을 재촉하는 동시에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회적 증거로도 작동한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여러 예약 서비스를 쓰면서 이 문구들에 이유 없이 마음이 급해졌던 게 우연이 아니었다는 걸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3. Joyful Users — 보상이 아니라 기대가 사람을 붙잡는다
뇌과학적으로 도파민은 보상을 받을 때보다 '보상을 받기 직전'에 더 강력하게 폭발합니다.
많은 설계자가 "미션을 완료했으니 예쁜 배지를 줄게"라며 보상 자체에만 집중하지만, 실제로 사용자를 붙드는 힘은 보상을 손에 쥐기 직전의 긴장감과 갈망이라는 것.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가변적 보상(variable rewards) 전략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보상은 초기 습관 형성에는 유리하지만 금방 해지고, "이번엔 뭐가 나올까"라는 불확실성이 개입해야 뇌가 무섭게 각성한다는 것.
이 개념은 뒤에 나오는 무한 스크롤 설계와도 정확히 맞물린다. 콘텐츠의 마지막을 없애고 정보를 무한정 볼 수 있게 만드는 구조의 핵심이 '이 다음에 더 좋은 것이 나올지도 몰라'라는 기대감 자극에 있다는 지적, 그리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이 "사용자가 멈출 수 있는 지점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라는 문장은 서비스를 설계하는 사람뿐 아니라 콘텐츠를 매일 소비하고 만드는 사람 모두에게 뜨끔한 대목이다. 일반적인 웹사이트는 페이지가 끝나면 로딩이나 화면 전환이라는 '숨 고르는 순간'을 준다는 대비도 인상적이었다.

4. Aesthetic-Oriented Users & Global Users — 심미성·접근성·현지화
책의 후반부는 다시 제목으로 돌아온다. UX 라이팅 챕터에서는 "온 세상의 앱들이 토스처럼 말하기 시작했다"는 재치 있는 소제목 아래, 애플과 토스를 UX 라이팅의 양대 산맥으로 세운다. "피피티는 애플 말투로, 서비스는 토스 말투로"라는 디자이너들 사이의 농담을 인용하면서도, 이 라이팅 원칙을 무작정 따라 하는 건 위험하다고 선을 긋는다.
심미적 사용성 효과(aesthetic-usability effect), 즉 디자인이 아름다우면 약간의 사용성 저하가 있어도 사용자가 이를 너그럽게 이해하거나 심지어 자신의 실수로 돌리는 경향을 후광 효과(halo effect)로 설명한다. 시각적으로 정돈되고 완성도 높은 인터페이스를 보면 사용자는 기능이나 구조까지도 잘 설계되어 있을 거라 무의식적으로 추정한다는 것. 예쁜 게 사치가 아니라 전략이라는 이 장의 제목 자체가 결론이다.

접근성 챕터는 이 책 전체에서 가장 태도가 바뀌는 지점이다. "장벽 앞의 사람들, 불완전한 조건까지 고려하라"는 소제목 아래, '건강하고 완벽한 2030 사용자'라는 환상을 걷어내야 한다고 못 박는다. 전맹 유저뿐 아니라 저시력자, 색약·색맹인 사람들, 그리고 나이가 들며 수정체가 노랗게 변하는 황화 현상을 겪는 이들까지 포함해서 설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 그동안 스티커나 인쇄물을 만들면서 색 대비를 미적인 기준으로만 판단했었는데, 이 챕터는 그 판단 기준에 접근성이라는 축을 하나 더 얹어준다.

이 책이 브런치북 대상을 받은 이유는 단순히 UX 이론을 정리해서가 아니라, 개념 하나하나를 실제 화면 캡처와 나란히 붙여 '이론이 아니라 지금 내 손안의 앱 이야기'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인 것 같다. 정보 사냥 이론, 손실 회피, 가변적 보상, 후광 효과 같은 심리학·행동경제학 용어들이 페이지마다 아고다, 에어비앤비, 애플, 토스, 이케아의 실제 화면과 짝을 이루며 등장하니 읽는 내내 '아, 나도 저 문구에 낚였었지'하고 돌아봤다.
무엇보다 이 책이 다른 UX 서적과 다르다고 느낀 지점은, 사용자를 하나의 완결된 인격이 아니라 열다섯 개의 얼굴로 쪼개서 보여준다는 것이다. 나 역시 어떤 서비스에서는 조급한 사용자였다가, 다른 서비스에서는 심미성부터 따지는 사용자가 되고, 또 어떤 순간에는 손실 회피에 흔들리는 불안한 사용자가 된다. 표지 문구처럼 "당신의 서비스에는 몇 명의 불청객이 살고 있나요?"라는 질문은 결국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에게만 향하는 게 아니라, 매일 수많은 서비스를 오가며 사는 우리 모두에게 향하는 질문이었다.
디자인 원칙만 나열했다면 이렇게까지 마음이 가지 않았을 것 같다. 이 책이 좋았던 진짜 이유는, UI를 다루면서도 결국 사람의 심리를 함께 다룬다는 데 있다. 엉망인 UI를 보면 참지 못하고 욕부터 나오던 나에게, 이 책은 그 짜증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짜증을 만들지 않으려면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열다섯 가지 얼굴로 촘촘하게 짚어줬다.
제목만 보면 당연한 말 같지만, 그 당연함 아래 얼마나 정교한 설계가 깔려 있는지를 이 책만큼 촘촘하게 풀어낸 책은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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