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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보는 길] 짙푸른 순수와 항시 움직이는 바다를 닮게 하소서
"[눈을 감고 보는 길] 짙푸른 순수와 항시 움직이는 바다를 닮게 하소서" 내용보기
동화 작가 정채봉의 ‘생각하는 동화’ 시리즈를 한 권씩 구입하면서 읽다가 우연히 그의 에세이집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전하는 아름다운 동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인간 정채봉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커지기 시작한 시기에 만난 책이라 무지 반갑습니다.   <눈을 감고 보는 길>을 읽으면서 틈틈이 블로그의 ‘향기나는 글’ 게시판에 올렸는데 그때 소개했던 이야기도 리
"[눈을 감고 보는 길] 짙푸른 순수와 항시 움직이는 바다를 닮게 하소서" 내용보기

동화 작가 정채봉의 생각하는 동화시리즈를 한 권씩 구입하면서 읽다가 우연히 그의 에세이집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전하는 아름다운 동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인간 정채봉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커지기 시작한 시기에 만난 책이라 무지 반갑습니다.

 

눈을 감고 보는 길을 읽으면서 틈틈이 블로그의 향기나는 글게시판에 올렸는데 그때 소개했던 이야기도 리뷰에 담겨 있습니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긴, 좋은 글을 공유할 수 있는 블로그와 같은 공간이 있어서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럼, 그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눈을 감고 보는 길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이 깊은 밤에도 아래 길가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얀 옷을 입은 여인네들을 발견한 나는 그곳이 이 병원의 영안실인 것을 알았습니다.

 

건물의 위층에서는 산 사람들이 신음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고 아래 지하실에서는 죽은 이들이 침묵한 채로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생과 사의 갈림길도 지척인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입원 전날 밤 나는 가족들을 모아 놓고서 당부했습니다. 당분간 병원에 나타나지 말아 달라고. 왜냐하면 함께 슬퍼만 하다가는 견디어 낼 내 힘이 너무 일찍 소진되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입원해서는 입원실 문에 면회 사절이라는 패찰을 내걸었으나 다짜고짜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다음과 같은 고지문을 만들기도 하였지요.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시는 분들은 갑자기 들은 소식이어서 궁금하여 물어보는 것이겠지만, 답하는 저로서는 매번 같은 말을 반복하게 되어 피곤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것은 예가 아니겠습니다만 서로가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그동안의 경과를 적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중략)

 

부랴부랴 입원을 해서 수술을 할 것인지, 다른 방법으로 치료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지금 각종 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12월부터는 검사 결과에 따른 치료가 본격화될 것이므로 그때는 정말 오시지 않는 것이 저를 도와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회복기에 들어가면 스스럼없이 만나 뵙도록 하겠습니다. 거듭 감사드리고 앞으로의 저의 투병을 위해 제 고향 바다와 같은 푸른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은 나에게 고향 바다와 같은 푸른 기도에 대해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나의 작은 바람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MRI 촬영을 할 때였습니다. 나는 며칠 동안 불면에, 각종 망상에 시달리고 있었습다. 나는 제발 망상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던 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동공 안에 들어가 있는 잠시 동안에 고향의 여름 콩밭 언덕에 내가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다는 푸른 물결로 만조였고, 콩밭 또한 푸른 잎새로 만조였습니다. 그 푸른 세상에서 나는 그녀를 생각하며 눈물을 지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내 기사가 들어와서 조셨어요하고 물어서 쑥쓰러웠는데 조금 전 꿈에 그녀가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눈 감고 보는 얼굴이었지만.

 

나는 침대에 돌아와서 새벽을 맞는 오늘의 나의 기도를 적어 넣었습니다.

 

주님.

아직도 태초의 기운을 지니고 있는 바다를 내게 허락하소서. 짙푸른 순수가 얼굴인 바다의 단순성을 본받게 하시고 파도 노래 밖에는 들어있는 것이 없는 바다의 가슴을 닮게 하소서.

 

홍수가 들어도 넘치지 않는 겸손과 가뭄이 들어도 부족함 없는 여유를 알게 하시고 항시 움직임으로 썩지 않는 생명 또한 배우게 하소서.

 

 

책의 제목과 일치하는 글이라 더욱 유심히 읽은 이야기입니다.

간암 진단을 받고, 병실에 입원하게 된 저자. MIR 촬영 때, 동공 안에서 고향을 만난 그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물결을 간접적으로 느껴봅니다. 바다의 푸른 세상에서 한없이 평화로워지는 그. 그의 기도가 하늘에 닿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마음 밭의 풍경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는 것, 그 가운데 하나를 말해 보라면 나는 마음을 들겠다. 마음으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죄를 짓기도 하고, 마음으로 울기도 하지 않는가.

 

우리가 고향을 그리워하고 못 잊어하는 것도 몸이 태어나서 자란 곳이어서기도 하겠지만, 마음이 처음으로 나온 곳이 다름 아닌 그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근거가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하겠다.

 

가슴을 부풀게 하기도 하고, 아프게 하기도 한 아슴한 영상이 도저히 잊을래야 잊을 수 없게 간직되어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고향을 찾아간다는 것은 처음의 마음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나는 우리집에서 아래 영구네 집까지의 1백 미터 남짓되는 골목길이 별나게도 그립다. 여름과 가을이면 양쪽 언덕 위의 나무들로 하여 잎새들의 터널이던 골목. 봄이면 민들레꽃이 하늘의 금 단추인 양 다문다문 피어나던 흙 길. 때로는 쇠똥이 펑퍼짐하게 뉘어져 있기도 하고, 간혹 화사한 능구렁이가 쉬엄쉬엄 들고나던 돌담이여…….

 

고향의 그 골목길이야말로 기다림의 씨앗을, 그리움의 씨앗을, 아득함의 씨앗을 내 여백의 마음에 파종시켰던 첫 작물 밭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다.

 

고향을 떠나던 날, 뒤돌아보게 하고 뒤돌아보게 하던 그 무엇이 지금에도 그 골목 어디엔가 숨어 있지 않을까.

 

 

마음 밭이라는 말이 예뻐서 계속 보게 되는 글입니다. ‘고향 골목길로 시작한 마음은 어릴 때 살던 집과 그곳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게도 하지요. 어릴 적 집 마당에 있던 그네, 학교 종소리가 들릴만큼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던 초등학교,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게 만들던 나의 첫 자전거.

 

일요일 아침이면 부지런히 우리를 깨우시고 우리의 모습을 사진 찍으시던 아버지,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하고 매일 노래를 부르시면서 아침 준비를 해 주시던 어머니도 생각납니다. 그의 이야기가 만들어 내는 마법에 금세 빠져들지요.

 

동심의 양식

지난가을, 대구 가는 열차 안에서였다. 옆 자리에 앉은 젊은 여성이 말을 붙여왔다. “어디 가세요?”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인생 저잣거리 이야기까지 주고받게 되었다. 무슨 화제 끝엔가 행복이란 단어가 이끌려 나왔는데 그녀는 단호히 돈 없는 행복이란 빛 좋은 개살구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당장 얼마나 있으면 행복할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녀는 잠시 차장 밖을 바라보고 있더니 5천만 원이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어떤 이유에서 5천만 원이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인지 그때 그것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정가 5천 원인 오규원 동시집을 읽는 중에 점점 행복해졌다. 그것은 햇살 따사로운 날, 꽃그늘까지도 환한 벚꽃 나무 밑에서 바람이 흘려주는 벚꽃비를 맞고 있는 것 같은 아슴한 감동이었다.

 

나는 시인의 이런 마음에 있어서 인류가 구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천금을 주고도 바꾸기 어려운 마음이 아닌가. 그러기에 나는 오늘치 동심의 양식으로 오 시인의 동시 그다음 오늘이 할 일은을 추가한다.

 

씨앗은 씨방에

넣어 보관하고

 

나뭇가지 사이에 걸려 있는 바람은

잔디 위에 내려놓고

 

밤에 볼 꿈은

새벽 2시쯤에 놓아 두고

 

그다음 오늘이 할 일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기는 일이다

 

가을은 가을 텃밭에

묻어 놓고

 

구름은 말려서

하늘 높이 올려놓고

 

몇 송이 코스모스를

길가에 계속 피게 해 놓고

 

그다음 오늘이 할 일은

 

다가오는 겨울이

섭섭하지 않도록

 

하루 한 걸음씩 하루 한 걸음씩

마중 가는 일이다.

 

 

작가가 소개해 주는 세 편의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를 옮겼습니다. 오규원 시인의 시심이 제 마음을 맑게 해 주고 미소를 만들어냅니다. 동시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분위기에 젖어서 감탄사를 연발하게 되지요. ‘다가오는 겨울하루 한 걸음씩 마중가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오늘 제가 해야 할 일도 확인해봅니다.

 

사랑은 더 큰 사랑을 낳는다

나는 문득 우리들 가슴속의 사랑 샘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마다 제각각 사랑의 샘이 있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은 특별하여 사랑의 샘이 특별히 크고, 어떤 사람은 특별하지 못하며 사랑의 샘이 유별나게 작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처음 내려 보낼 적에 신이 주신 사랑 샘은 같은 크기의 같은 원천이었을 것이다. 다만 쓰고 안 쓰고에 따라 사랑의 샘이 말라 버린 사람도 있고, 사랑의 샘물이 철철 넘쳐 흐르는 사람도 있다.

 

나는 믿는다. 이는 우리가 어린 날에 보았던 고향의 샘을 돌이켜보면 된다. 샘이 크다고 해서 샘물이 많이 나오는 것도, 샘이 작다고 해서 샘물이 적게 나오는 것도 아니지 않았던가.

 

그 사람에게는 세 친구가 있었다. 그중에서 그는 첫 번째 친구한테 온갖 정열을 다 바쳤다. 그는 때로 첫 번째 친구를 위해 이 세상의 삶을 산다고 할 정도였다. 물론 그는 두 번째 친구도 지극히 사랑했다. 두 번째 친구를 위해 첫 번째 친구를 위한다고 하였으나 공들임으로 말하면 두 번째 친구한테 덜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세 번째 친구에 대해선 마음 자락이 훨씬 못 미쳤다. 그저 생각의 범주에나 드는 친구일 뿐 솔직히 마지못해 찾는 것이 이 세 번째 친구였다.

 

그런데 어느 날 왕의 사자가 이 사람한테 와서 왕의 부름을 전했다. 이 부름은 절체절명이어서 거절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는 기가 죽어서 친구 셋에게 동행이 되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런데 그가 그동안 온갖 정성을 다 바쳐 온 첫 번째 친구가 무정하게도 돌아서 버리는 것이 아닌가.

 

몇 걸음이라도 같이 가줄 수 없겠는가?” 하고 그가 사정사정하였으나 첫 번째 친구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 친구는 고개를 저으며 안되었네만 성안까지는 곤란하네라고 말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가 가장 소홀히 한 세 번째 친구가 내가 자네와 끝까지 동행하겠네하며 나섰다.

 

그렇다면 이 세 친구는 누구인가 

첫 번째 친구는 재산이다. 모든 정성을 다 쏟았지만 자신이 죽을 때는 한 걸음도 따라오지 않는다. 그리고 두 번째 친구는 가족과 친척이다. 공동묘지까지는 따라오지만 거기서 돌아간다.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세 번째 친구, 그는 사랑과 선행이다. 마지못해 행한 것까지도, 죽음 이후에까지도 동행한다. 그의 이름으로.

 

 

세 친구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작가의 말에 놀라면서, 다시 한번 천천히 이야기를 읽어봅니다. 단순히 친구라고만 생각했는데 여기에 재산, 가족과 친척, 사랑과 선행이라는 개념을 넣어 보니 우리 인생에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사랑과 선행이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 하면 그로 인해 우리가 많이 성장하고, 두텁게 자리를 잡은 그들이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정채봉 작가의 책을 만날 수 있고, 그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하루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이기에 그가 전하는 많은 이야기들 중에 몇 가지만을 추리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선하여 정리한 내용들이니 많은 분들이 그의 책을 좋아하게 되고, 만나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s********0 2020.10.31. 신고 공감 9 댓글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