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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재연구의 일환으로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수필의 원전을 찾아 보았다. 정채봉의 '별명을 찾아서' 는 중학교 1학년 1학기 천재교육(박영목) 교과서에 실려 있다. ---------------------- 작가의 어린 시절 별명으로 '지각대장'이 있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지각을 자주 했기 때문이다. 시골이라 학교까지 통학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한다. 집에서는 늦지 않도록 밥을 일찍 해주었으나 작가는 매일 지각을 했다. 그 이유가 재미있다. 작가는 어린 시절에 학교에 가면서 산지사방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장다리꽃도 보고, 남의 텃밭에 가서 죽순을 보면서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으며, 게구멍 앞에서 민들레꽃을 들고 서있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게가 꽃을 쫓아서 뛰어나올 것 같다."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한동안 매일 작가를 데리고 함께 학교에 다녔다는 것이다. 그밖에 '오줌싸개'와 '꿈쟁이'란 별명을 갖게 된 사연도 소개되고 있다. 작가가 '꿈쟁이'란 별명을 갖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수평선 너머에 가보았다. 거기에 갔더니 흰 구름네 집이 있는데, 할머니 버선본처럼 여러가지 모야의 구름본이 있다. 산봉우리 구름본, 조개구름 구름본 등을 보고 구름들을 만들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하늘을 돌고 온 구름들을 빨고 있는데, 아무리 헹구어도 구정물이 계속 나왔다."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었는데, 그것은 현실이 아니라 꿈의 내용이었다. 그로 인해 꿈쟁이란 별명을 얻게 된 것이다. 작가는 현실과 꿈을 혼동할 정도로 꿈많은 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그래서 성장한 후 동화작가가 된 것일까? 이 글을 배우는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를 생각해 보았다. "나도 정채봉 씨처럼 꿈을 꾸어야겠다."라고 생각할까? 최소한 이것만은 확실하다. 교사인 나는 교단에서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이런 꿈을 꾸는 작가의 순진한 모습이 아름답지 않느냐고 할 것이다. 너희들도 이런 꿈을 간직하면서 성장하라는 말을 덧붙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말 그런 꿈을 꾸는 학생이 되어도 곤란할 것 같다. 이 험한 세상에서 저런 꿈만 꾸면서 살다가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이런 꿈을 꾸면서도 남에게 당하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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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잊혀져가는 어휘나 풍경을 떠오르게 합니다. 가을 햇볕이 드는 아침에 마당을 쓸고 마루와 토방 위에 고추를 널다. 봉숭아며 채송화며 분꽃이며 과꽃 씨앗도 받아서 부채 위에 고루 펴서 마룻가에 놓다. 문이란 문은 모두 열어젖힌 채 목침을 베고 무심히 누워 있자니 음매애 하는 소 울음소리가 한가로이 들린다. 손등에 앉아 있는 파리는 꼼짝도 않고. 아, 도회지의 병폐를 알겠다. 이 넉넉함이 없는 것이다. 왜 그리 몸도 마음도 쏘다녀야 하는지······. 지금은 찬물 한 사발에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 노을 속에 아련히 검정 고무신을 신고 뛰놀던 날이 떠오른다. 운동화 한 켤레에 환호하던 명절 때도. 첫 구두에 구둣주걱을 대고 발을 집어넣던 조금은 수줍은 때도 있었지. 그러더니 댓돌 위에 놓여 있던 할아버지 흰 고무신에 외경의 눈을 건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내가 마침내 흰 고무신을 산 것이다. 죽을 때는 맨발로 간다던가. 바람이 부는 날은 벚꽃이 흡사 눈송이처럼 날렸었다. 우리는 별일이 없는데도 벚꽃을 맞으려고 괜히 달려 다녔었고 동네 개들 또한 어린 우리들을 쫓아다녔었다. 어찌나 벚꽃잎이 많이 떨어지는지 아주머니가 이고 가는 조개 바구니는 꽃바구니처럼 되었고 아저씨가 지고 가는 두엄 바지게도 꽃 바지게인 양 하였다. 우리 고향에는 이런 어리숙한 미안이 배어 있다. 콩밭의 김을 매는 아낙네들에게 ‘어매, 그 바람에 애기 서겄네’ 하고 탄성을 지르게 하는 신비한 바라도 있다. 그리고 안개보다도 미세한 이내가 배어 있고 실비보다도 가는 는개가 배어 있고 달빛보다도 엷은 물그리메가 배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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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봉 작가의 작품은 언제 보아도 정감 있어 좋습니다.
`고향 소리`에서 고향친구의 풋풋함을^^,
깊어가는 밤에 고향을 지키고 사는 친구한테 전화을 하였다. 그런데, 친구의 정겨운 목소리 너머로 아득히 개 짖는 소리가 들려, 내가 참 오랜만에 들으니 고향의 개 짖는 소리조차도 듣기 좋다고 하였다. 그러더니 지난 늦가을 어느날 밤, 고향친구가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들어 보라잉`하고, `또르륵 또르륵`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이 얼마나 고마운 선물인가. 섣달 그믐날 밤, TV로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려 하는데, 고향의 이 친구가 전화를 걸어 왔다.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려 한다 하였더니, 술을 한잔 하였는지, `염병허네. 첫닭이 울어야 새벽이 온다 말이여. 자. 나가 우리 동네 첫닭이 우는 소릴 전화로 들려줄 턴께. 그 소리로 새해를 멋들어지게 열으란 말이여` 그 말도 옳겠다 싶어, 잠자리에 누어 눈을 떠보니 창이 훤하게 밝아 있지 않은가. 한마디해 줄까 하다가 1월1일 아침이라서 참았다. 그런데 초이튿날 꼭두새벽에 전화벨이 울려서 받았더니 고향 친구가 `미안타잉. 염병헐. 술이 병이다. 일어나 본께 해가 엉덩이에 떠부렸지 뭐냐. 시방 닭이 멋지게 운다. 이 소리로 유감 있으문 풀어 부러라.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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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물과 영물 무엇이 미물이고 무엇이 영물인지 알다가도 모를 때가 많단 말이야. 바닷가 바위틈에 사는 강구라는 벌레가 있거든. 이 녀석들은 태풍이 오기 전날, 이미 알고 뭍으로 피난을 가 버려. - 정채봉의《스무 살 어머니》중에서 - * 사람을 만물의 영장이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미물만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이 미물한테 겸손히 배워야 합니다. 미물이 영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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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고,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도 달라서인지 흔히 '마음그릇'이라고 하는 것도 다 다른 듯 하다. 정채봉 작가의 글을 읽고 있으면, 수수한 듯 마음넓은 듯, 그러면서 사람의 마음을 잔잔히 녹여내는 멋이 있다.
'스무 살 어머니'. 갓 들어온 신입사원의 나이가 20살인 것을 듣고 열일곱에 시집와서 열여덟에 작가를 낳고 꽃다운 스무살에 이 세상살이를 마친 어머니가 생각난다(p.70).
어머니의 고유한 냄새는 사람마다 느끼기에 다르겠지만, 작가는 '바닷바람이 묻어오는 해송 타는 내음'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 표현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바닷바람'까지는 이해된다. 그런데, '해송 타는 내음'. 소나무 태우는 거, 산에서 병충해 걸렸거나 할 때 아니면 볼 기회가 없다. 게다가 도시삶에서 해송은 찾아볼 수 없으니, 대충 약간의 소금기가 묻어나는 소나무 타는 냄새 정도로 이해할 밖에. 그런데, 그 느낌이 참 좋다. 자신의 엄마를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엄마'라고 마흔이 넘어 불러보면서 제일 전날 밤 어머님께 드리는 글을 쓴다.
그리고, 다른 글들은 살면서 보고 경험하고 느꼈던 일들을 그렸다. 언제나처럼 좋다. 봄을 묘사한 글을 전해주는데, "비닐 장판의 촉감도 부드러워진 이 화창한 봄날...(중략)...두엄 더미를 기어가는 지렁이조차도 사랑스럽다(p.141)."라고 한 부분은 그 기발한 생각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흔히 알고 있는 진달래 피고 개나리 피고, 벚꽃이 반기는...이 아니라서.^^
단순한 감정의 정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시간, 나의 삶을 심각하지 않지만 성찰하게 한다. "자기의 시간의 속도는 자신의 나이에 2를 곱하면 나온다는 것. 그러니까 스무살인 사람은 20*2=40, 곧 시속 40킬로미터이나, 쉰 살은 50*2=100, 말하자면 시속 1백 킬로미터이니, 같은 시간이라도 엄청난 차이의 속도감이라 아니할 수 없다(p.184)."를 전제로 지인의 문병 후의 느낌, "내 안에보다도 바깥에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해 오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 숱한 바쁜 일들! 그것이 과연 나의 나를 위한 진정한 나의 시간이었던가?(p.185)" 나도 많이 생각했다.
"당신의 지금 이 시간은 어떤 시간인가?(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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