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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한 편을 나흘만에 연습하여 무대위에 올라 객석을 감전시킨 소프라노, 자유의 여신상만큼 튼실했던 몸매를 일년동안 37kg 감량해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처럼 만든 여자, 표독스러운 성깔로 한평생 어머니를 저주하고 그 어머니와 싸웠던 딸, 무대에서 자신이외 스포트라이트는 물론 방해자라 생각되면 가차없이 밟아버리는 마녀적 기질,이 모든 것이 마리아 칼라스를 지칭한다. 최고의 기량으로 화려한 무대위를 누볐지만 그 내면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콤플렉스 가득한 여자가 들어 있었다. 타고난 목소리가 좋은 것도 아니었고 빼어난 용모도 아니었지만 신념과 의지로 일생동안 노래했고 사랑에 목말라하고 집착하다 무너졌으며 외롭게 죽었다. 예술가란 예술로 승부해야한다. 그런 면에서 칼라스는 전설이 되었지만 마리아란 여자는 불행하게 평생을 살았다. 아름답고 고귀하게 연주하는 가수나 음악가들의 성품이 성스럽고 고상할 거란 착각은 본래부터 하지 않았다.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컨텐츠들은 대체로 독하게 작업하지 않으면 근사한 결과물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예술은 인간의 잔인한 기질이 녹여낸 아름다운 결과이다.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에는 아름다움이나 영롱함이 없다. 대신 거칠게 질러대는 야성적 본능이, 갈라지는 듯한 고음이, 듣다 보면 귀가 찢어질 것 같은 메탈적 성향이 다분하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은 칼라스에 열광하고 박수갈채를 보내며 환호한다.
푸치니의 미완으로 끝난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에서의 칼라스는 그녀의 성향만큼이나 거칠다. 여기서 일반적인 공주의 이미지는 잠시 덮어두자. 이름도 묘한 중국의 공주 투란도트는 성격도 무지막지하고 피보기를 즐겨한다. 막이 오르면 선혈이 낭자한 분위기와 엽기적인 머리통과 해골이 즐비하게 널린 기둥들이 보인다. 생전에 푸치니는 동양을 그리는 동경심이 꽤나 컸나 보다. 음악속에 중국풍의 느낌이 강하다. 한번도 중국에 가보지 않고 음악으로 그 나라를 그릴 수 있는 능력이라니... <나비부인>을 들으면 일본풍의 느낌과 그 본색이 드러나듯이... 선과 악, 인간이 살아가는 기본 철학인 사랑이 이 오페라의 주제인데 화려한 의상과 무대연출로 국내에서도 종종 공연되는 듯 하다.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아리아 <Nessun dorma>는 공주의 답을 찾기 위해 온 북경의 사람들이 몽환적인 불면의 밤을 지새우는데 그 멜로디가 극한의 아름다움과 진한 감동을 주기에 넉넉하다. 실제로는 생사를 다투는 고뇌와 번민의 곡임에도 괜한 아름다움으로 치장하는 주관적 감성의 개입이 불편하고 귀찮기만하다. 음악감상시 가장 피해야 할 사항은 지나친 주관성이다. 어느 정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냉정하게 음악을 들으려는 생각이 없이는 클래식 음악을 오래도록 옆에 두기 힘들다. 같은 음악을 여러 가수의 목소리로 들으면 평가가 다양하게 나온다. 그러면서 그 노래는 누가 제격이다라는 식의 말들을 하게 되는 것이다.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고음의 명쾌함을 보여주었다면 플라시도 도밍고는 음악성있는 곡해석에 점수를 준다. 키리 테 카나와는 부드러움과 명석함을, 미렐라 프레니는 우아함을, 조안 서덜랜드는 듣자마자 뽕가게 만드는 그런 목소리를, 에디타 그루베로바는 벨칸토의 명성을, 거기에 마리아 칼라스는 거칠고 대단한 에너지를 던져주는 소프라노이다.
![]() 마리아 칼라스와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
칼라스 전성기이전에 이름을 날렸던 독일의 소프라노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는 칼라스의 음성을 듣고 그 신선함에 반하여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역을 앞으로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떠오르는 별 칼라스가 완벽하게 해냈기에.... 슈바르츠코프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로젠 카발리에/ 장미의 기사>나 요한 슈트라우스 2세 <프레더마우스 /박쥐>와 같은 독일 오페라에 어울리는 소프라노인데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선의 상징이자 희생양이 되는 <투란도트> 류역에서의 그녀는 말그대로 애처로움보다는 영롱 자체이다. 죽어야 하는데 목소리는 고색창연하기만 하다. <박쥐>에서의 그녀의 목소리는 뮤지컬 느낌마저 든 적이 있어서 혼동스러운 적도 있었다.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투란도트> 초연은 미완의 상태 그대로 공연했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물론 그 다음부터는 제자들의 손으로 꿰맞춘 완성품을 선보였지만 미완의 오페라로 보는 일도 꽤 매력이 있겠다. 요즘은 미완으로 공연하지는 않아서 할 수 없지만.... 일요일 오후 마리아 칼라스와 함께 하다보니 유리창밖으로 저녁놀이 서서히 몰려오는 시간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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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음반은 투란도트 음반 중 가장 엇갈린 평가를 받고있다. 칼라스 에디션으로 나온 "투란도트"는 투란도트역을 맡은 칼라스는 그야말로 냉혹하고 할머니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 잔인한 공주 투란도트에 딱 잘 들어맞는다. 칼라스의 경우 이 전곡반이 나오기전에 음반인 푸치니 아리아집에서도 투란도트의 아리아 "옛날 이 궁전에서"를 듣는이한테 소름끼칠 정도로 훌륭하게 부른적이 있었는데(비록 끝에 고음에서 갈라지는 경향이 있었으나)여기서는 템포는 푸치니아리아집에 비해 원숙해졌다. 아리아부분뿐만 아니라 다른부분에서도 그녀가 정말 투란도트같은 카리스마를 보여준다.(실제로 무대에서 투란도트를 한 적있다.) 그러나 류역의 슈바르츠코프는 좀 미스캐스팅이랄까? 노예이미지에 전혀 안어울린다. 네이버 블로그 "오페라 이야기"의 관리인이신 boccacio님 말씀에 의하면 "로젠카발리어"의 원수부인같은 이미지라고 하셨는데 틀린말은 아닌것 같다. 류가 고문당한 장면을 보라..고통스러워 하는게 아니라 아예 목소리 자체가 지나치게 요염해서..뭐랄까? 본인이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다.(표현을 못하겠다.) 그렇다고 슈바르츠코프를 비난하는것은 아니고 단지 류이미지에 안맞았다는 것이다. 칼라프왕자의 페르난디.. 이 연주처지는(아니 그것보다 더 심하다..직접 들어야 알 수있다.)테너는 이 음반의 완성도를 깎아먹는 요인이 되었다. 다른부분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아무도 잠 못 이루고"(절대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아니다. 그건 잘못된 번역이고 "아무도 잠 못 이루고"가 맞다.)끝에 고음을 제대로 못내기 때문에 듣는이는 그저 한숨만 나온다. 나머지 배역들은 그냥 무난한 편이고 세라핀의 지휘는 대체적으로 만족스럽다. 그러나 세라핀이 이걸 완성했을때 페르난디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정리하자면 세라핀의 지휘와 칼라스의 투란도트만 들으실 분에게는 추천하는편이고 음악의 완성도까지 따지실 분이라면 피하시는게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