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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예전에 비해 모든 것이 매우 편리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참 좋아졌다’는 생각과 함께 그런 편리함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작은 불편함에도 쉽게 짜증이 난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한다. 솔직히 육체적인 편안함은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조금이라도 힘든 과정은 피하고 싶고, 무언가를 열심히 노력해서 얻기보다는 더 쉽고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 싶다.
이번에 읽은 『노력의 종말』은 바로 그런 현대인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책이다. 저자는 편리함과 안락함 뒤에 숨어버린 우리에게 노력의 의미를 잃어버릴 때 결국 잃게 되는 것은 단순한 성취가 아니라 인간다움 자체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책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왠지 나 자신에게 던지는 경고처럼 느껴졌고, 스스로 익숙해진 나태함과 안이함을 돌아보며, 새로운 동기부여 계기를 얻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과거, 삶은 노동으로 이뤄져 있었다. 모든 삶이 노동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오늘날 노동은 삶의 극히 일부분으로 밀려났고, 우리는 그마저도 어떻게든 최소화하려고 힘쓴다. 나쁜 변화는 아니라고 쉽게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동의 종말이라는 화두에 묻혀, 정작 함께 찾아오는 또 다른 거대한 소멸을 간과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바로 노력의 종말이다. P89 이 책의 저자인 올리비에 바보(Olivier Babeau)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경제학자이자 사회비평가로서 파리 제8학교와 보르도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며 경영 전략과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책을 읽기 전에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면서, 처음에는 경제학자가 왜 ‘노력’에 관한 책을 썼을까?라는 단순한 생각도 들었지만, 경제학이 인간의 행동과 선택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노력하는 삶이 왜 인간다움을 지키는 중요한 가치인지를 생각하며 책을 읽어보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며, 인간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고 그 노력이 문명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공동체에 속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 역시 노력의 결과임을 설명하며, 노력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질적인 가치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과 풍요로운 환경은 사람들을 점점 더 편리함과 즉각적인 만족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도전 정신과 책임감을 약화시키고, 결국 노력의 의미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노력은 멋진 경력, 더 유익한 즐거움, 건강한 몸 같은 더 높은 목표에 이르는 수단으로서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은 우리 존재 자체의 소명이기도 하다. 꿀벌이 꽃을 찾아 꿀을 모으고, 바로 그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듯, 인간 역시 노력할 때에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노력이 아니면 남는 것은 죽음뿐이다. P288
책을 읽으며 노력과 게으름을 단순히 개인의 성격이나 의지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던 내 생각이 너무 단순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한 문명이 오히려 인간을 점점 더 게으르게 만들고, 스스로 노력하려는 자발성과 의지력을 조금씩 약화시키고 있다는 저자의 설명은 너무나 인상 깊었다. 책을 덮고 나니 나 역시 편리함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힘든 일은 쉽게 피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노력'이라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지켜 나가기 위해 누구에게나 필요한 삶의 태도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그동안 나는 ‘효율성’과 ‘편리함’이 곧 인류 진보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도의 기술 발전은 인간을 편리하게 만들어 주고는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신체 능력 저하와 더불어 문제 해결 능력과 생각의 힘을 통째로 녹슬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땀 흘려 고민하고 성취하는 과정에서 얻는 진정한 기쁨을 잃어버린 자리에 찾아오는 것은 행복감이 아니라 우울감과 허무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세상은 우리에게 더 편하고 쉽게 살아가는 방법을 끊임없이 권하지만, 진정한 인간다운 존엄성과 성취감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이 책은 일깨워 준다. 편리함에 익숙해져 작은 어려움과 인내조차 버거워진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특히 노력과 성장이 단순히 개인의 의지 문제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있던 노력의 의미와, 스스로 성장해 가는 기쁨을 발견하도록 이끌어 주는 좋은 책인 것 같다.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노력의종말 #우리세대는어떻게노력의의미를잃게되었는가 #올리비에바보 #이나래 #더웨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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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의 원제는 '게으름의 시대(The age of Laziness)'으로 저자는 프랑스의 사회 비평가이자 경제학자이다. 책을 읽으며 계속 밑줄을 긋고 있음을 깨달았다. 공감 되는 부분이 많았다. 예리하게 사회현상을 짚어낸 저자의 식견에 감탄했다. 94 페이지를 읽으며 충격을 받았다. 다소 길지만 그 대목을 인용한다. 94페이지. 2024년 소셜 미디어를 강타한 트렌드 중 하나는 단연 '베드 로팅 Bed rotting'이다. 말 그대로 '침대에서 썩기 '라는 뜻이다. 원칙은 간단하다. 가능한 한 오래 침대에서 나오지 않으면 된다. 침대에서 뭘 할까? 아무것도 안 한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손가락만 까딱해 SNS 콘텐츠를 영혼 없이 휙휙 넘겨대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좋아하는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게 전부다. 천국이 따로 없다. 바야흐로 게으름을 권하는 시대적 명령이 갈 데까지 간 셈이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가만히 빈둥거리는 꼴이 흡사 산송장이나 번데기가 따로 없다. 이 괴상한 라이프스타일은 필연적으로 운동 부족과 스크린 중독을 동반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뜨끔했다. 저자가 나를 관찰하고 쓴 글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나의 경우는 '침대에서 썩기'를 원해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불가피했다. 전에는 잠자는 시간 외에는 눕지 않았다. 그 원칙을 고수한 덕분에 침대에 누우면 5분 이내에 잠들었다. 달리기, 자전거 타기, 팔굽혀펴기는 내가 즐기는 운동이었다.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는 비상사태가 아니면 이용하지 않았다. 가급적이면 계단을 이용했고 가능하면 뛰어서 올랐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틈새 운동을 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왜 게으름의 극한까지 치닫는 생활을 한 달 넘게 하게 되었을까. 꼬리뼈 골절로 전치 6주의 진단이 내려졌다. 운동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뼈가 도로 붙기 위해서는 앉아 있어도 서있어도 안된다. 곧 통증이 생긴다. 몸이 보내는 경고신호다. 최대한 옆으로 누워서 골절부위에 가하는 하중을 줄여야 했다. 그렇게 나는 식사준비와 식사, 설겆이하는 시간 외에는 침대에 누워서 지내야 했다. 하지만 하릴없이 뼈가 붙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의외로 지루하지 않았다. 한달이 금방 지나갔다. 더불어 스마트폰 사용시간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드라마 정주행을 하지 않아도 손에서 폰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애쓰고 최선을 다하는 노력하는 삶에서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몸의 편안함이 나를 파고 들었다.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뼈의 유합이 유선인 것이다. 우리는 SNS상에 노출된 타인을 관찰한다. 기술의 발달 덕분이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기는 너무나 쉽다. 끊임 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한다. 타인의 성공은 즉각적이고 쉽게 얻어진 것 같다. 내가 뭔가를 이루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말이다. 뛰어난 외모, 경제적 성공,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타고날 때부터 손에 쥐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그들이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의 발 밑에도 이르지 못할 거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들의 성공의 이면에 감춰진 실패와 고통을 우리는 알 수 없다. 이번 생에서는 글렀다며 침대에서 썩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선택하기보다 의욕과 열정을 잃고서 게으름에 몸을 내맡긴 채 흘러가게 내버려 둔다. 선택을 위한 고민 마저도 귀찮기에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의 추천을 따른다. 미래에는, 어쩌면 조만간 인공지능이 대부분의 직업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한다. 최초의 방직기, 자동차가 등장했던 시기에도 그런 우려가 있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불의 사용, 인쇄술, 컴퓨터의 사용은 비약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인공지능의 보편화는 이들 세 가지가 인류에 미친 영향을 몇 십 배 능가하는 파급 효과를 가져올 지도 모른다. 힘들게 학습할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암기는 커녕 사고과정 자체가 불필요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근대까지도 인류는 생존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해야 했다. 혼자서는 생존이 불가능했기에 사회의 규칙에 자신을 끼워 맞춰야 했다. 순응하는 것만이 무리에서 배척당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었다. 편하게 놀고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왕이나 귀족도 마찬가지였다. 사교활동을 제대로 해내야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인상적인 부분은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아이에서 성인으로 인정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극한의 신체적인 상황을 극복한 자만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게으름이 정복하지 못한 나라들의 사례를 제시했다. 한국과 중국이라는 것이다. 사실일까? 우리는 아직 부지런히 노력을 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일까. 지하철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않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계단보다는 에스컬레이터로 향한다. 우리는 무엇을 하더라도 빠른 결과를 얻고 싶다. 사업이 대박나서 부자가 되고, 내는 책마다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고, 하는 운동마다 금방 최정상급에 오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무엇이든 쉽게 얻은 것은 그 소중함을 느끼기 힘들다. 목표를 정하고 힘들게 나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취감을 느낀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더라도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서 경험하고 성장할 수 있다. 운동을 한 뒤 근육통이 있더라도 체력이 향상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제 침대에서 썩기를 그만 두어야 한다. 다시 팔굽혀 펴기를 한 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겠다. 느리더라도, 힘들더라도 다시 노력해야 한다. 내가 흘리는 땀과 눈물을 통해서 성장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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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종말’은 우리가 만든 편리함이 사용자의 ‘노력의 근육’을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 개인과 사회의 역동성을 잠식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책이에요. 핵심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기술적 편의성이 개인의 사고·인내·신체 활동을 대체하면서 ‘집단적 게으름’이 확산되고 있고, 플랫폼 자본주의와 알고리즘은 반복적 보상과 즉각적 만족을 설계해 의존을 강화합니다. 저자는 수고와 난관 극복이 자아 형성의 핵심이며, 장애물이 없는 삶은 무기력과 허무로 이어진다고 강조합니다. 더 나아가 이런 현상이 장기화될 경우 민주주의와 지적 문명의 기반마저 약화될 수 있다는 사회적 위험도 경고합니다. 마케터 관점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제품 철학을 재검토하게 되더군요. ‘편리함’만을 목표로 삼을 경우 사용자의 능동적 사고와 성장을 박탈할 수 있으므로, 편리함과 함께 ‘성장성’·‘학습성’을 설계 가치로 포함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윤리적 알고리즘 측면에서 추천과 자동화가 사용자의 결정을 완전히 대체하지 않도록 선택의 여지와 난이도 조절 기능을 제공하는 것도 고려되어야 할 것 같아요! 캠페인 메시지도 ‘편리함’ 중심에서 ‘성장에 기여하는 도구’로 재정의하고, 사용자 간 협력과 서포트를 강화하는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이런 접근을 통해 사용자의 능동성을 회복시켜 장기적 참여와 충성도를 높이고, 브랜드의 신뢰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면서 플랫폼의 지속 가능성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술은 삶을 편리하게 만드는 동시에 인간의 능력을 퇴화시킬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닙니다. 이제 많은 기업이 편리함을 제공하는 동시에 사용자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마케팅과 상품기획 담당자라면 이 책에서 큰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추천드려요! "우리는 몽테스키외가 말한 ‘인간다움이 요구하는 사소한 것들’의 달콤함에 스스로를 내던진 채, 정작 자유를 행사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잃어가고 있다." - 본문 중에서 - ※더웨이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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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올리비에 바보(Olivier Babeau)의 책을 읽으며, 나는 이상하게도 반박하고 싶은 마음보다 먼저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가 지적하는 "노력의 상실"이라는 진단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하루하루의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스크롤 한 번으로 웃음을 얻고, 알고리즘이 골라주는 영상으로 시간을 채우고, 선택이 어려우면 후기와 별점에 판단을 맡기는 삶. 그것이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채은 불편할 만큼 명료하게 보여준다. 바보가 인류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강조하는 것은 단순하다. 인간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노력 없이 살아본 적이 없다는 것. 생존을 위해서든, 공동체 안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든, 인간은 언제나 무언가를 감내해야 했다. 그런데 기술 문명은 그 오래된 방정식을 깨뜨렸다. 사냥 없이 포만감을 얻고, 구애 없이 쾌락을 얻고, 공동체의 의례를 거치지 않고도 소속감을 흉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 보상들이 가짜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뇌가 애초에 "노력 후에 오는 보상"이라는 회로로 설계되어 있었다는 데 있다. 노력 없는 보상은 뇌에게는 낯선 신호이고, 그 낯선 신호에 반복적으로 노출된 우리는 서서히 노력할 이유 자체를 망각해간다. 내 스스로의 소비 습관을 떠올렸다. 무언가를 사기 전에 후기를 열 개쯤 읽고, 인플루언서의 추천을 확인하고서야 지갑을 연다. 겉보기엔 신중한 소비처럼 보이지만, 실은 스스로 판단하는 수고를 남에게 떠넘기는 행위에 가깝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했듯, 누군가에게 영향받는다는 것은 그에게 자신의 영혼을 내어주는 일이다. 나는 내 취향, 내 기준, 내 실패의 경험을 통해 스스로 판단하는 법을 얼마나 잃어버렸는가. 선택지가 무한히 늘어난 시대에, 역설적으로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는 근육을 잃어가고 있다. 이 진단이 개인의 습관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글은 이것이 사회 전체의 현상임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준다. 학업을 쉽게 포기하는 학생들, 하향 평준화된 학교 교육, 예의와 인내심의 퇴조, 감정과 즉흥적 반응이 이성적 숙고를 대체해버린 공적 담론. 그리고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물질적 풍요가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르렀음에도 젊은 세대의 행복감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는 통계였다. 안전과 행복이 반비례한다는 이 역설은,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온 "발전이 곧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에 균열을 낸다. 여기에 인공지능이 더해지면 문제는 한층 복잡해진다. 학생이 제출한 과제가 더 이상 그 학생의 사유의 산물이 아니게 되는 순간, 우리는 무엇을 교육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나 역시 글을 쓰거나 정보를 찾을 때 도구의 도움을 받는 일이 잦아졌다. 도구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그 편리함에 기대어 스스로 고민하는 과정을 통째로 건너뛰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결과물은 얻되 그 과정에서 마땅히 형성되었어야 할 사고력과 인내심을 잃게 될 것이다. 프루스트처럼 평생을 관찰하고 고쳐 쓰는 대신, 완성된 답을 즉시 손에 쥐는 세대가 과연 무엇을 스스로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바보의 논의가 단순한 세대 비판이나 향수 어린 "옛날이 좋았다"는 이야기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에 안도했다. 그는 분명히 말한다. 과거가 더 나았던 것이 아니다. 노예제, 신분의 굴레, 짧은 수명, 끝없는 육체노동 속에서 살던 이들의 삶을 우리는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문제는 "예전으로 돌아가자"가 아니라, 노력과 보상 사이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어떻게 의식적으로 되살릴 것인가에 있다. 저자의 주장에 대해 두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다. 하나는 태도의 문제다. 노력을 찬양하는 것이 노력하지 않는 이들을 단죄하는 일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노력이라는 단어 자체를 꺼리게 되었다. 그러나 노력을 인정한다는 것은 남을 심판하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하는 일이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는 과정에는 분명 운과 시대적 조건이 작용한다. 하지만 그 운을 붙잡을 준비, 즉 스스로를 갈고닦는 일만큼은 오롯이 우리 몫으로 남아 있다. 복권을 사지 않고는 당첨을 바랄 수 없듯이,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는 기회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방향의 문제다. 노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방향 없는 노력은 소진으로 끝난다. 그래서 이 글들이 공통적으로 짚는 지점, 즉 자신만의 열정과 규율, 스스로 세운 목표에서 노력의 동기를 찾아야 한다는 조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나에게 노력이란 결국 "지금의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의 거리를 메우는 행위다. 그 거리를 인정하고 견디는 일이야말로, 즉각적인 만족으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경험을 만들어낸다. 글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정말로 "애써서" 이룬 것이 있었는가. 아니면 대부분의 시간을 손쉬운 자극과 편리한 대체물로 채우며 흘려보냈는가. 솔직히 답하기 부끄러운 질문이었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 안 어딘가에 노력의 감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게으름의 시대"라는 진단은 무섭지만, 동시에 하나의 초대장이기도 하다. 편리함을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라, 편리함에 잠식되지 않을 나만의 영역을 지키자는 초대. 하루에 단 한 시간만이라도 스크롤 대신 책을, 즉답 대신 스스로의 사유를 선택하는 일. 그 작은 저항에서부터, 잃어버렸던 노력의 감각은 다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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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클럽리뷰 작가 소개 올리비에 바보 경제학자, 사회 비평가 저서 새로운 디지털 혼란 폭군 디지털 책의 시작이 강렬하다.
내 딸 아테나에게 넌 무엇이든 할 수 있단다. 단, 게으름만큼은 절대 안 돼. 쉬운 거, 편한 것만 최고로 여기는 요즘 아이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문장으로 느꼈다. 올리비에 바보의 나이와 딸의 나이가 궁금해서 검색해 봤다. 올리비에 바보는 1976년생, 아테나는 2024년생이다. 십 대일까 아님 조금 더 어릴까란 나의 예상과는 크게 다르다. 하긴 조기 교육이 중요하지. 저자가 생각하는 인생의 모든 조언 귀결지는 바로 이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해라. 다만 젖 먹던 힘까지 짜내야 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점점 편하고 익숙한 것만 쫓는 현재의 나에게도 필요한 조언이다. 그렇다면 노력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하' 수긍하면서 적었다. 느낌적으로 알고 있던 걸 글로 써보면 확실히 다르다. 손으로 쓰고 눈으로 읽고 머리로 생각하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탓이다. 영어 공부, 운동, 자격증 공부 등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으나 지속이 안 되었던 이유가 설명되었다. 들고 있어야 하는 무거운 짐이고 몸 전체에 강한 충격을 주는 도끼질이고 지친 다리로 새로운 한 걸음을 기어이 내디뎌야 하는 것과 같은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바바 사회 '바바 오 럼'의 유래 럼주에 적힌 바바 케이크 이가 다 빠진 나이 든 왕을 위해 처음 만들어졌다. 우리 모두는 이빨 빠진 왕이 되었다. 모든 것이 즉각적인 만족을 주어야 하고 입안에서 바로 사르르 녹아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코스트코에서 음료수 사면서 남편과 이 이야기를 했었다. 아이들이 음료수를 좋아하는 이유가 씹기도 귀찮아서라고.. 어릴 적에는 과일을 그리도 좋아하더니 이제 음료수에 확 밀려버렸다. 달고 맛나도 과일은 포크를 들어야 하고 씹어야 하니까.. 우리는 즉각적인 즐거움을 만나지 못하면 바로 포기해버리는 바바 사회를 살고 있다.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겪고 있다. 이미지가 글과 긴 시간을 죽인다. 더는 읽지 않고 본다. 무엇을? 스크린을 읽기는 노력이다. 읽기는 눈뿐 아니라 머리가 같이 돌아간다.
모든 것을 영상으로 제공하면 학습은 느려지고, 침묵의 감각은 사라지며, 깊이 있는 분석을 방해한다. 사람은 수동적으로 변하고, 표현은 필연적으로 획일화된다. p231 보는 것은 수동적이라 편하다. 편하기만 해도 좋을 텐데 시간을 흔적도 없이 훔쳐 간다. 21세기의 진짜 문제 로봇과 AI의 시대 인간을 어디에 써먹을 수 있을까, 무슨 쓸모가 있을까? 효능감을 잃어버린 것에서 비롯된 거대한 우울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직업이라는 동력을 잃고 난 뒤 우리는 어떻게 노력을 지켜낼 수 있을까? 노력은 존재 자체의 소명 인간은 노력할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노력이 아니면 남는 것은 죽음뿐이다. 쓸모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한다. 할 일이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주는 에너지를 안다. 그 에너지로 오늘을 살고 또 내일을 기약한다. 지금 나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성장하기 위해서 어떤 분야에 노력을 쏟아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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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달하면서 손가락 몇 번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모르는 것은 검색 한 번으로 빠르게 답을 얻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세상은 날로 편리해졌지만 역설적이게도 작은 불편함조차 감내하기 어려워지거나 손쉬운 자극 뒤에 찾아오는 왠지 모를 무기력함을 느끼는 순간이 많아졌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올리비에 바보가 쓴 노력의 종말은 바로 이러한 현대 사회의 단면을 정면으로 짚어내는 책이다. 작가는 기술적 편의와 안락함이 개인의 사고나 인내, 신체 활동을 대체하면서 사회 전반에 집단적 게으름이 퍼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책에서 작가는 노력을 단순히 성과를 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자아를 완성해 가는 본질적인 과정으로 정의한다. 삶에서 장애물과 애쓰는 과정이 사라질 때 인간이 잃는 것은 단순한 성취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삶을 밀고 나가는 인간다움 자체라는 분석이 인상 깊다. 효율성과 편리함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환경에서 즉각적인 만족과 알고리즘에 익숙해질수록, 정작 스스로 고민하고 땀 흘리는 수고를 피하게 되며 문제 해결 능력과 판단하는 근육도 서서히 퇴화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성취감과 삶의 존엄성은 조금 번거롭고 오래 걸리더라도 직접 마찰을 겪어내며 무언가를 끝까지 완수할 때 찾아온다. 이 책은 단순히 열심히 살라는 지루한 조언을 넘어, 우리가 왜 힘들어도 스스로 노력하는 태도를 지켜내야 하는지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시선에서 명확한 이유를 제시한다. 편리함에 길들여져 일상의 무기력이나 허무함을 느끼고 있거나, 스스로 생각하는 힘과 삶의 주도권을 다시 회복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는 도서이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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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을 읽는 듯 시원했고, 비유와 인용은 다채로웠다. 번역된 글이었지만 국어영역의 비문학을 읽는듯 매끄러웠다.
노력을 들이는 일에 낮은 가치를 부여하는 태도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보통은 '귀찮다'라고 표현한다. 나에게 '귀찮다'라는 말은 '짜증난다'와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신의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할 때, 혹은 그 감정을 표현하는 어휘가 부족할 때 사람들은 '짜증난다'라는 말을 쓰는데, '귀찮다'도 맥락을 같이 하는 뜻이 아닐까? 그래서그런지 사람들이 귀찮다는 말을 할 때마다 나는 그 진짜 속뜻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곤 했다. '몸이 피곤하다', '들이는 시간에 비해 얻는 결과가 적다', '하는 방법을 모른다' 등등. 그 중 하나는 '내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때로는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에너지를 들이기 싫다'였다. 이 관점은 사실 인생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저자와 나는 뜻이 같았다.
책 노력의 종말은 노력을 들이지 않는 현 세대(특히, MZ세대)의 태도를 꼬집는다. 과거, 인류는 광활하고 웅장하며 포악한 대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노력을 들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시기였다. 시간이 흘러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살아남기 위해 규범과 문화를 따르는 노력을 했어야했다. 문명이 발달하고 산업화가 되며 노동보다는 쾌락을 추구하게 되었고, 특히 IT기기 발달로 인한 스크린타임 증가와 도파민 중독은 사유와 행동을 멈추게 했다. 노력의 가치폄하, 사회격차, 평등주의 추구, 부의 재분배, 피해자가 더 관심받는 세상은 저자가 또 다른 눈으로 본 노력이 사라지게 된 이유였다. 어떤 부분에서는 예민한 주제라 이 부분은 책을 통해 확인해보는 것이 좋겠다.
AI만 추앙할 것이 아니다. 경각심을 가지고,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인류를 위해, 안주하는 우울감 속에서 벗어나 노력하는 나 그리고 우리가 되어야한다. '노력의 종말'을 통해 찝찝한 줄 알았던 내 마음이 확실히 찝찝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영리한 분이 쓰신, 잘 쓰인 글을 찾고 있다면, 또 사회 현상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고민할 필요없이 일독하길 권한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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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력의 종말 - 우리 세대는 어떻게 노력의 의미를 잃게 되었는가> 올리비에 바보, 더웨이브 🛋️ '노력'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참 쉽게 피로하게 만든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이 말은 개인이 처한 구조적 조건과 불평등은 지워버린 채, 성공하지 못한 이유를 오롯이 성실하지 못한 개인 탓으로 돌리는 편리한 잣대로 쉽게 쓰여 왔다. 그렇기에 『노력의 종말』이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살짝 경계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원제인 『L'ère de la flemme』, 즉 '게으름의 시대'라는 제목을 확인한 순간, 저자가 현대 문명의 어떤 지점을 겨누고 있는지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사상가인 올리비에 바보는 인간의 역사를 생존하고, 공동체에 소속되고,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온 고투의 과정으로 본다. 그러나 기술과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면서 과거에는 상당한 공을 들여야 했던 수고들이 거짓말처럼 하나씩 사라졌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음식을 조리하지 않아도 손쉽게 끼니를 해결하고, 길을 외우지 않아도 지도가 목적지로 안내하며, 두꺼운 책을 읽지 않아도 몇 분짜리 요약 영상으로 대강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질문을 오랫동안 가슴에 품고 번민하기보다 AI에게 물어 몇 초 만에 그럴듯한 답을 얻어내는 일도 자연스럽다. 문명의 장대한 발전사처럼 보이는 이 현상들 너머로 저자는 편리함이라는 유혹에 길들여진 인간이 애쓰는 능력 그 자체를 상실해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 책에서 특히 돋보이는 대목은 단순 노역(Labor)과 주체적인 노력(Effort)을 명확히 구분하는 시선이었다. 불필요하고 고단한 노동에서 인간을 해방한 것은 문명이 이뤄낸 명백한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손빨래를 고집해야 성실한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며, 단지 불편함을 참아냈다는 사실만으로 삶이 숭고해지는 것은 아니다. 진짜 본질은 그렇게 확보한 자유를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일 것이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몰입하고, 잘되지 않는 동작을 끈질기게 반복하며, 관계의 부딪힘을 무릅쓰고 타인과 연결을 이어가는 일에는 여전히 고단한 수고가 요구된다. 기계가 인간의 고된 수고를 대신해 주는 시대일수록, 어떤 불편함과 마찰만큼은 끝까지 스스로 감당해 낼 것인지 선택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진다고 책은 말한다. 🪫 물론 저자의 진단을 온전히 수용하기 어려운 지점도 존재한다. 청년 세대의 무기력이나 변화된 노동관을 게으름이라는 단편적인 프레임으로 묶어버리는 몇몇 대목은 다소 경솔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늘날의 무기력은 노력을 게을리해서라기보다는 아무리 애써도 정당한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구조적 좌절을 반복 학습한 결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미덕으로 포장되던 희생과 참을성을 더 이상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정당한 거부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와 맞지 않아 정당하게 멈추는 것과, 어려움을 버텨내는 감각 자체가 마비되어 포기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게 봐야 한다. 🛋️ 기술이 대신해 주어도 상관없는 수고가 있는 반면, 아무리 효율적인 대안이 생겨도 내 몸과 마음으로 직접 마찰을 겪어내야만 완전히 내 것이 되는 경험이 있다. 한 권의 책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느리게 읽어 내고 답이 잘 나오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한동안 조급함 없이 헤매보는 일 같은 것들이 아마 그런 것들일 것이다. 편리함을 포기하고 과거의 불편함으로 회귀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삶에서 모든 마찰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과연 축복이기만 한가에 대해서는 깊이 의심해 볼 일이다. 가끔은 조금 오래 걸리고, 귀찮고, 잘 되지 않는 일을 내 힘으로 끝까지 완수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 어쩌면 미래에 우리가 기울여야 할 노력은 내 삶을 내가 직접 살아내고 있다는 주도권을 지켜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 이 책은 싸이프레스(@cypress_book)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노력의종말 #올리비에바보 #더웨이브 #서평단 #북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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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철저한 노력파다. 타고난 재능을 떠나, 무슨 일이 주어지든 기한 안에 결과를 만들어 냈고, 원하는 목표를 위해 밤을 새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몸은 피곤하고 정신은 몽롱했지만, 일을 완수했다는 성취감은 삶의 활력이자 큰 기쁨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노력이라는 감각을 잃어버렸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예전처럼 한 가지에 깊이 몰입하지 못한다. 분명 바쁘게 살고 있는데도 성과는 예전같지 않았다.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하루를 보내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도 들었다. 그때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 책이 올리비에 바보의 『노력의 종말』이다.
이 책은 "열심히 살아라"를 말하는 일반적인 자기계발서가 아니다. 인간은 왜 노력하는 존재인지, 왜 현대 사회에서는 노력의 가치가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지를 그럼에도 우리는 왜 노력해야 하는지 역사와 철학, 진화론, 심리학, 뇌과학을 넘나들며 흥미롭게 풀어낸다. '노력'이라는 한 편의 대하드라마를 읽는 듯 하다. 인간은 원래 노력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라고 한다. 하루 약 15km를 걸을 수 있으며 치타보다 빠르지는 못하지만 끈질기게 먹잇감을 추적했고, 생존을 위해 버티고 협력했다.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노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 수많은 시간이 문명을 만들었다. 피라미드도, 대성당도, 예술과 과학도, 오늘 우리가 누리는 편리한 세상도 결국 누군가의 끈질긴 노력 위에 세워졌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필요한 정보는 검색 몇 번이면 얻을 수 있고, 음식은 앱으로 주문하면 금세 도착한다. 기술은 우리의 수고를 대신하고, 효율은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 어느새 우리는 노력에서 오는 기쁨보다 숏츠같은 즉각적인 즐거움에 더 익숙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노력해야 먹고 살 수 있었던 시대에서 모든 것이 넉넉한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노력할 이유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은 무엇일까? 나는 노력은 나다워지기 위한 투쟁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본능과 열망사이,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한 걸음 내딛는 시간, 그 시간이 바로 노력이다. 책을 덮고 나니 노력의 감각을 잃어버린 나에게 묻는다. 지금의 나는,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가? #노력의종말 #올리비에바보 #쾌락의종말 #번아웃 #서평 본 글은 싸이프레스 더웨이브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정성을 다해 읽고 진심을 담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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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처음에는 AI와 기술의 발전으로 ‘노력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는 내용을 담은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은 노력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노력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기술이 많은 일을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중요한 것은 오래 일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배우고, 어떤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 AI는 결과를 빠르게 만들어 줄 수 있지만, 질문을 던지고 의미를 만드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마지막에 “우리가 진정 원한다면, 노력의 종말이라는 역사는 결코 쓰이지 않을 것이다.“라는 문장이 오래 남았다. 노력의 형태는 변할 수 있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한 노력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깊게 와닿았다. 《노력의 종말》은 노력을 부정하는 책이 아니라,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노력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리뷰어클럽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