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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영국인들이 E.M.포스터에게 '위대한'이라는 헌사를 바쳤는지, 그리고 미국의 문학계가 어찌하여 자국의 내노라하는 작가들을 제쳐두고 E.M.포스터의 이름을 딴 文學賞을 제정하였는지를 확인케 해주는 감동스러운 작품이다. 마거릿과 헬렌이라는 자매를 중심축으로 하여 주변의 인물들이 엮어가는 삶과 사랑, 사회적 인습과 도덕, 변화하는 사회상에 대한 고찰과 탐색, 바람직한 발전과 그에 수반하는 계층간의 갈등, 영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냉철한 사색과 고민 등이 용광로속에서 용해되듯 섬세한 필치로 그려져 있다. 기실 많지도 않은 주요 등장인물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임은 물론, 그들간에 대각선으로 얽히고 설키면서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의 전개는 한마디로 흥미를 넘어선 아름다움과 생각의 실마리를 던져주기에 충분하다. 이 <하워즈 엔드>를 마지막으로 포스터의 장편 여섯 작품 모두를 읽은 셈인데, 작가의 자평대로 최고의 작품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대중적 인기와 평단의 찬사를 동시에 받은 <인도로 가는 길> 역시 뛰어난 작품임에는 틀림없지만, 힌두교에 대한 사변적 소개가 많은 분량을 차지하면서 재미난 책읽기를 일견 방해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이 <하워즈 엔드>는 군더더기 하나 없을 정도로 매끄럽게 읽힌다. 물론 포스터의 장기인 비유와 상징, 고대신화 및 고전에서 차용하는 넘겨짚기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에 만만하게 대할 내용은 아니지만, 스토리 자체가 워낙 인간적이며 현실태이기에 짜릿한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의 대개의 작품들이 '해피엔딩'으로 마감하고 있고 <하워즈 엔드> 역시 희망적 관점에서 마무리되고 있음은 작가가 현실에 대한 깊은 염려를 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리라. 좋은 작품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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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고향, 하워즈 엔드
포스터의 소설, 「하워즈 엔드」는 독일계 부친과 영국계 모친 사이에서 태어나 자란 중산층 인텔리 슐레겔 가의 두 자매(마가렛과 헬렌)와, 교양이 없고 세속적인 영국 자본가 집단의 대표 윌콕스 일가(헨리)가 갈등과 고난 끝에 조화를 이루어가는 이야기이다.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관념적인 이상과 지적인 호기심, 그리고 모친에게서 물려받은 조용한 기품과 부드러운 품성, 풍요로운 경제적 토대 아래서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온 교양과 풍부한 예술적 감성의 소유자인 마가렛 슐레겔과, 19세기의 산업혁명의 회오리 속에서 자본 축적을 최우선적인 삶의 목표로 하여 살아온 극히 세속적인, 혹은 타산적인 기업가 헨리 윌콕스는,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나 이질적이다. 지금껏 서로 살아온 주위 환경은 물론, 주변 사람들, 그리고 삶의 아주 미묘한 부분을 대하는 시각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본질적으로 다른 타입이라 결코 합치될 수 있을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말 서로 다른 위치에 서있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도, 감싸안을 수도 없는 것일까. 포스터의 소설「하워즈 엔드」은 바로 그 가능성에 대해 고찰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적어도 포스터는 아무리 공통점이나 유사점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볼 수도 없는 사람들이라 해도, 연결할 수 있는 어떠한 계기만 있다면 서로 섞일 수 있으리라 믿은 듯 하다. 소설의 첫장을 열면 적혀 있는 '단지 연결만 할 수 있다면…' 이란 구절은, 그의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낸 한 마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다른 이들을 어떤 방법으로 서로 연결할 것인가? 바로 그 키워드가 되는 것이「하워즈 엔드」다. 런던에서 시원하게 뻗은 노스 컨트리 가도를 타고 서너 시간을 달리면 나오는 조용한 도시, 하트퍼드 주. 차갑지만 더할 나위 없이 신선한 공기와 엷게 드리워진 분홍빛 안개가 새벽빛이 되어 생명을 일깨우는 이 하트퍼드 주를, 포스터는 다른 어떤 곳보다도 영국이 조용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 곳이라고 묘사한다. 꿈처럼 고요하고 아름다운 이 하트퍼드 주에서도 유독 순박하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작은 마을 힐튼, 보다 엄밀히 말한다면 이 마을 한 편에 위치해 있는 자그마한 집 「하워즈 엔드」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소설은, 여행길에 만난 윌콕스 부부의 초청을 받아 마가렛의 누이인 헬렌이 이 하워즈 엔드에 머무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언니보다 한층 더 자유롭고 명랑 쾌활한 성품을 지닌 헬렌은 이 소박하고 한적한 마을의 공기에, 이 자그마한 집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에 단박에 빠져 버리고 만다. 짧은 복도형 현관 끝에 윗층과 바로 연결되는 자그마한 계단의 독특한 배치에서부터, 예기치 못한 손님이 방문해 오면 금방 복작복작거리고 마는 이 작은 집 안에 있는 9개의 방 하나 하나에 있는 유리창들, 그리고 집 앞 바로 앞에 위치해 있는 거대한 느릅나무의 시원한 그늘에 이르기까지, 헬렌은 그야말로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해 버리고 만다. 그곳에 머물렀던 일주일 남짓의 기억은 이후에도 줄곧 헬렌의 마음 속에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영상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하워즈 엔드가 갖고 있는 독특한 생명력과 아름다움은 헬렌에게 그랬듯이, 그녀의 언니인 마가렛의 마음 속에도 깊이 스며든다. 헬렌의 폴에 대한 풋사랑과 파국. 마가렛과 헨리의 약혼과 헨리의의 과거로 인한 배신감과 실망, 파혼 위기. 재결합. 헬렌의 레너드에 대한 동정심과 방황 그리고 헬렌의 출산. 그 무수한 갈등과 아픔 속에서도 그들이 진정으로 화해하고 함께 살아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사이에 하워즈 엔드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곳은, 손도 못댈 정도로 추하고 악한 것들은 죽이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기억과 가치만 살려내는 장소다. 빈 집으로 남아 있어도 오히려 그 넘칠 듯한 생명력으로, 외려 그곳에 살았던 이들보다도 더 생생히 살아있었던 집. 어쩌면 이들이 이곳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진정한 의미에서의 화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기나긴 방황 끝에 돌아온 헬렌이 하워즈 엔드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던 "우리는 이집이 우리 집 같은 느낌이 드니까. 우리 집이라는 것을 아는 거야." 말처럼 그들에게 이곳은 돌아가고 싶은, 혹은 돌아가야만 하는 마음의 고향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워즈 엔드는 이 글을 읽는 내내 나에게도, 그 푸르름으로, 싱그러움으로, 따사로움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아름다운 장소였다. 포스터가 창조해 낸 이 집의 청량한 공기와 온화한 햇살, 깨끗한 물, 그리고 신선한 바람은, 한 인간이 그려낼 수 있는 가장 큰 아름다운 고향으로 내 안에 고이 간직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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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포스터의 소설은, 뭐랄까. 뻔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전형적이고 사회비판적이면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외치고 있다. 말하고 나니 그리 좋은 평이라고 생각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작품에서 배어나오는 그러한 느낌을 몹시 좋아한다. 그리고 이 <하워즈 엔드>야말로, 그러한 느낌을 가장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작품이다. <인도로 가는 길>과 함께 그의 대표작인 이 <하워즈 엔드>는 그 이름값을 해내며 재미 또한 잃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인도로 가는 길>은 진도가 나가지 않아 힘들게 읽었던 걸 생각하면 나는 <인도로 가는 길>보다는 <하워즈 엔드>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포스터의 작품은 역시 <모리스>다.)
포스터의 소설에서 종종 등장하는. 이상과 현실, 절대로 조화될 수 없는 그 어떤 것들의 대립이 등장한다. 그리고 포스터는 성실하고 촘촘하게 이 둘을 엮어내어 조화시켜 보인다. 소설의 서문에는 특이하게도 '단지 연결만 한다면......'이라는 한 문장이 쓰여 있다. 소설을 써내려 가는 동안, 그것이 그의 숙제였음이 틀림없다. 이질적인 둘을 잘 연결시켜 하나로 완성해보이는 것, 대립을 와해시키고 화합하는 것. 포스터는 그것을 흥미롭고 깔끔하게 완성해보였다. 그것이 쉬운 길은 아니었을 것이 눈에 보인다. 작가에게 쉬운 길이 독자에게는 흥미를 잃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안다. 그의 노고를 치하하며,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를 다시금 생각하며 한숨짓는다.
소설 뿐만 아니라 현실도, 단지 연결로써 화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