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딜쿠샤라는 이름이 서울의 건축물명으로는 너무나 이국적이라 호기심에 펼쳐보았습니다 한데 이야기가 참 서정적이고 우리 근현대사를 잔잔하게 엮어냈더라구요 글도 그림도 따뜻해서 읽고나니 마음에 기운이 난 것 같았어요 어린이 독서모임이나 탐방프로그램에서 활용하면 더 가치있게 쓰일 것 같은 좋은책입니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이 생소하고 의미있는 건축물에 대해 소개하고 또 멋지게 책으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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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은행나무 길에 꼭 가져가고 싶은 그림책을 소개해볼까 해요.
딜쿠샤가 사는 곳은 서울의 한복판, 종로구 행촌동이에요. 앨버튼 재빨리 동생 빌을 불러 3.1 독립 선언서를 전달해 몰래 한국을 빠져나가게 했죠.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
1941년 12월, 미국과 일본 사이에 태평양 전쟁
때문이었고
1945년 8월 15일
1950년에는 남한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었죠. 참 아팠던 우리의 근현대사 ㅠㅠ 1967년 서울에는 이제 고층 빌딩들이 잔뜩 생기고 도로도 점점 많아져서 딜쿠샤는 한강을 보지 못하고 벽과 창문만 가득 보게 돼요. 2006년 어느 겨울날, 쓸쓸한 딜쿠샤에게 누군가 찾아옵니다. 바로 브루스와 그의 아내 조이스, 그리고 딸 제니퍼 가요. (작년 3.1절 타종 행사에도 참여한 앨버트의 손녀딸 제니퍼요.) 2016년 2월 28일, 살아 있다면 브루스가 꼭 아흔일곱 살이 되는 날. 브루스의 생일인 바로 그날 멀리 미국에서 브루스의 딸 제니퍼가 딜쿠샤를 찾아옵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주머니가 있고, 그것은 지난해 세상을 떠난 브루스의 재였죠. 2016년 2월, 서울시와 기획재정부, 문화재청 등은 딜쿠샤를 복원하여 2019년 시민들에게 개방하기로 하였고 2017년 8월 8일, 문화재청은 딜쿠샤를 등록문화재 제687호로 공식 등록하였어요. 그림책 맨 뒷장에는 생전의 앨버트와 메리, 그리고 브루스의 모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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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에 종로가는 버스가 생긴 이후로 종로 나들이를 자주 간답니다. 종로에서 의경 생활을 했던 아빠 덕분에 종로 지리는 잘 알 수 있었지요. 성곽따라 걷기 스탬프 찍기도 도전하여 완주하고, 박물관과 역사관 미술관도 거의 다 둘러 보았고, 북촌, 서촌 마을도 다 둘러보았다 생각했었는데 딜쿠샤란 이름의 집은 정말 생소하였답니다. 게다가 집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가 깊어 더욱 궁금했었더랬죠.
이 책의 주인공은 딜쿠샤란 집이랍니다. 커다란 은행 나무 때문에 은행나무 마을이라는 행촌동이란 이름이 지어진 곳에 있는 집이지요. 권율 장군의 집이 있었던 자리라고도 하는데, 도대체 종로를 자주 다녔다고 왜 당당하게 말하고 다녔었는지 부끄러워지더라고요. 모두모두 생소한 장소였고, 날이 좀 풀리면 반드시 가보리라 다짐해 보았답니다. 딜쿠샤엔 미국인 남편 앨버트 테일러와 영국인 아내 메리 테일러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신혼부부가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산스크리스트어인 딜쿠샤란 이름을 지어주었지요. 그리고 아들 브루스가 태어난 날 한국의 독립 운동과 특별한 운명으로 맺어지게 되었답니다.
책 속의 그림은 3.1 독립 선언서인데, 이 그림이 특별한 운명의 힌트랍니다. 예전엔 그저 남의 일처럼 덤덤했던 역사들에 울컥거림을 느끼게 됩니다. 관심을 갖고 잘 알려고 하는 의지가 있고 없음의 차이겠지요. 전쟁 기념관이나 독립 기념관을 가서 다른 나라 사람들 이름을 보아도 큰 느낌이 없었는데, 본인들과 관련없는 나라의 전쟁에 참전하여 목숨 걸고 싸워주고, 때로는 나라의 독립에 까지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주는 그들의 용기와 도움에 감사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딜쿠샤의 추억을 읽는 내내 그 감사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이러한 역사와 마음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지만 우리 아이들이 조금 더 빨리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알려주는 이러한 책이 있어 더 감사하단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책 말미에 실제 사진을 더해 주어 이 이야기의 진실성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어른이 된 후에 깨닫게 되는 역사 의식이었는데, 이제 초등학생인 아이가 담박에 알아주기를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장의 책들을 자주 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역사의식도 스며들지 않을까 싶어요. 책을 덮고 아이가 인상 깊었던 장면은 기미독립 선언서라고 합니다.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중요한 부분이란 생각이 있었나봐요. 한 때는 한민족임을 자부심 갖고 우리 민족만 중요하다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도움 주고 도움 받는 상황에 대한 감사함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우리 삶에 중요한 가치란 생각이 듭니다. 고궁과 고층 빌딩이 어우러진 종로의 모습은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딜쿠샤처럼 잘 알지 못하거나 잊혀져 가는 옛 것들에 대한 관심과 유지 보수를 위한 노력은 게을리 하지 말아야할 것 같습니다. *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후기입니다. |
![]() 문화재에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아서 알고있는게 썩 많지도 않지만, 딜쿠샤라는 이름이 예뻤고, 문화재라는 사실도 신기해서 관심갔던 그림책 딜쿠샤의 추억 사람, 건축, 역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작가 김세미, 이미진은 딜쿠샤를 보고나서 완전히 빠져들어서 희망의 궁전 딜쿠샤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도 만들고,(딜쿠샤의 뜻은 희망의 궁전, 이상향, 행복이라고 해요)
건물에 대해서 설명하는 형식이 아니라, 딜쿠샤가 잠에 들었다가 깨는 듯한 설정으로 딜쿠샤가 서울을 설명하는 형식이에요. 그래서 아이들이 거부감 없이 보기에 좋은 것 같아요(초등학생은 되어야겠죠?) 행주대첩의 권율장군이 심은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행촌동에 있는 딜쿠샤
큰 은행나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 옆에 집을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딜쿠샤.
서양식 집이지만 한국적인 집.
앨버트는 한국의 독립에 관심이 많아서 기사를 썼대요
들이닥친 일본경찰들은 찾지 못했던것.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은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라고 써있던 3.1독립 선언서!!>
3.1 운동속에 미국인 기자인 앨버트도 함께했고, 전세계 신문에도 실린 3.1 독립선언서
하지만 그건 66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어요
메리는 일본경찰의 감시와 조롱을 견디며 남편을 기다렸고, 식량이 없어서 개 사료로 죽을 쑤어먹기까지 했대요 안타까워한 한국인들이 달걀이나 새 등의 식량을 가져다줬대요.
일본경찰들은 앨버트가 모아놓은 골동품을 가져가버렸고,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 딜쿠샤는 폐허처럼 변해버렸어요
1945년 한국이 독립했고, 제2차 세계 대전도 끝났어요. 일본인들은 딜쿠샤에 있던 물건을 전부 팔아버렸고, 북쪽에서 온 피난민들이 딜쿠샤를 지탱하던 나무를 베어 장작으로 쓰고, 파이프와 전선을 팔아서 필요한 물건을 구했대요.
추방당했던 앨버트는 꼭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했는데, 돌아오기 얼마전 세상을 떠나서 메리가 한국에 묻어주기 위해서 돌아왔던것 피난민들이 딜쿠샤로 들어왔다가 다시 떠나고,
수 많은 건물들이 사라졌지만 살아남은 딜쿠샤는 이름대로 희망을 뜻하는게 맞았나봐요.
딜쿠샤 밑으로 터널이 지나가게되어 법적으로 터널 위에 있는 집은 다시 지을 수 없다는 법 덕분에 허물어지지 않았죠 은행나무잎은 갈수록 적어졌어요
만약 이 글씨가 없었다면, 딜쿠샤가 이렇게 역사적인 집이라는걸 알수 없었겠죠?
2006년, 노인이 되어 돌아온 브루스는 어렴풋하게 기억을 하고 딜쿠샤에 찾아왔어요. 메리를 닮은 손녀와 함께. 그 말대로 한국인들의 안식처가 되어줬던 딜쿠샤
딜쿠샤가 문화재가 되면서 보수가 되어 깔끔해진 딜쿠샤. 하지만 그 안에서 살던 주민들은 떠날 수 밖에 없었죠
2016년 2월 26일. 브루스의 생일이었던 그 날. 브루스의 딸 제니퍼가 와서 브루스의 재를 딜쿠샤에 뿌렸어요.
이름대로 희망의 궁전이 되었던 딜쿠샤. 한국의 근현대사를 담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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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말아야할 집 [딜쿠샤의 추억] 서울시 종록구 행촌동 1번지 아주 특별한 집. 딜쿠샤. 등록문화재 제 687 호 우리가 몰랐던 바로 그곳. 특별하고 고마운 이의 삶이 살아숨쉬는 곳 딜쿠샤가 있습니다.
이 책은 딜쿠샤가 화자가 되어 펼쳐집니다. 딜쿠샤는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 이라는 뜻입니다. 집에다 이렇게 이쁜 이름을 지은 가족들은 누구일까요? 딜쿠샤가 지은이는 바로 앨버트가족이예요. 일제강점기때 미국 AP통신 특파원으로 한국에 거주하게 된 가족이랍니다. 이분은 우리에게도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분이예요. 우리의 실상을 전세계에 알려주신분이거든요. 앨버트의 아들 브루스는 1919년 2월 28일 3.1 운동 하루 전날 한국에서 태어났어요. 세브란스 병원에서 브루스가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더니 간호사들이 앨버트의 아내 메리의 침대에 종이 뭉치를 숨시고 사라졌지요. 일본 경찰들이 이내 닥치고 병원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을수 없었던 그것. 그것이 바로 메리의 침대에 있었답니다. 일본군인이 미국인은 어찌할수 없었던것일까요? 아니면 우리나라의 운이 하늘이 돕고 있었던것일까요? 이것이 바로 3.1 독립선언서였다고 하네요. 앨버트는 동생 빌을 불러 신발 뒤축에 숨겨 한국을 빠져나가게 한후 , 전 세계 신문에 실리게 되었답니다. 그 후로도 오래 딜쿠샤에 살던 앨버트가족. 브루스가 청년이 되어 군대에 가기 위해 딜쿠샤를 떠나게 되고 미국과 일본사이의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면서 앨버트가족은 추방당하게 되지요. 앨버트 가족이 떠난후에도 딜쿠샤는 계속 그 자리에 남았습니다.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세월의 흐름과 함께 딜쿠샤는 살아남았습니다. 전쟁을 겪고 현대화를 겪어내면서 우리 민족을 많이도 품어준 딜쿠샤. 사라지지않고 머물러주어, 포근한 품을 우리들에게 많이 내어주어 감사하네요.
딜쿠샤는 2016년 2월 복원하기로 결정을 하고 2019년 시민들에게 개방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2017년 8월 등록문화재로 등록이 되었지요. 한없는 품을 내어준 그 곳, 우리의 역사와 함께 늘 함께 해주었던 딜쿠샤. 많이 낡고 보살핌받지 못했던 그 곳이 이제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좋습니다. 아픈몸을 말끔이 고쳐내고 언제까지나 그 곳을 지켜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네요. 2019년 그날, 딜쿠샤를 만나러 가기 위한 그날이 손꼽아 기다려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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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번지
아주 특별한 집
딜쿠샤의 추억
등록 문화재 제 687호
서울의 근현대 역사를 모두 지켜본
아흔다섯 살 집
딜쿠샤가 들려주는 사람과 서울 이야기
일제강점기, 8 15광복, 한국전쟁, 개발되는 서울의 모습..
100년이 다 되도록 같은 자리에서 서울을 내려다본
아주 특별한 집 딜쿠샤
문화재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다들 비슷하실것 같아요
저도 궁궐, 탑등만 떠오르네요
딜쿠샤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문화재랍니다
저도 이번에 책을 통해 알게되었어요
딜쿠샤는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을 가진 외국인 테일러가 지어 살았던 집이랍니다
테일러가 지은 집이 어떻게 문화재가 되었을까요?
딜쿠샤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까요?
넘 궁금하더라고요
1917년부터 2016년까지 100년 동안
서울을 바라본 서울을 지켜온 딜쿠샤가 들려주는 이야기랍니다
한국에 정착한 신혼부부 앨버트 테일러, 메리 테일러
메리는 커다란 은행나무 밑에 집을 짓고 싶다고 말해요
앨버트는 은행나무 옆에 집을 지었지요
'건축가가 집을 지어도 하느님이 짓지 않으면 헛되고
파수꾼이 성을 지켜도 하느님이 지키지 않으면 헛되도다'
라는 성경구절을 새겨주었지요
1923년 마침내 딜쿠샤가 완성되었어요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을 뜻하는 이름이랍니다
앨버트와 메리에게는 아들 브루스가 있었어요
앨버트는 한국의 상황과(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점령하고 있었던 시기)
독립에 무척 관심이 많았으며 한국의 독립에 관한
기사를 써 왔지요
일제에 협력하고 일본인보다 더 악랄인 한국인도 있었는데
외국인이 우리의 독립에 관심을 갖고
기사도 썼다고 하니 넘 부끄럽더라고요
브루스는 1919년 2월 28일 3.1운동 하루 전날 태어났으며
게다가 한국의 독립 선언서 위에서
(급하게 메리의 침대 위에 숨기고 감)
태어났답니다
정말 신기한 우연아닌가요?!
앨버트는 독립 선언서를 몰래 숨겨서 병원을 빠져 나갔고
한국인들의 독립 만세 운동을
세계만방에 알렸답니다
3.1독립선언서가 앨버트에 의해 알겨지게 되었는데도
왜 저는 그의 이름을 몰랐을까요?!
이제라도 이렇게 책을 통해 알게되어 다행인것 같아요
브루스는 1940년 어느 날, 군대에 입대하기 위해 집을 떠나야 했어요
"브루스야, 네가 어디를 가더라도
언젠가는 꼭 돌아와야 할 너의 집은 바로 이곳이란다"
집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져 있네요
앨버트는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가
6개월만에 다시 돌아왔지만
브루스에 대한 소식은 들을 수 없었어요
하지만 브루스가 돌아오기 전에 앨버트와 메리는
일본 정부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았어요
아 넘 안타까운 일이네요 ㅠㅠ
1945년 8월 15일
"대한 독립 만세"
독립이 되고 3년 후에 메리만 돌아왔어요
앨버트는 죽고 말았어요
앨버트는 자기의 재를 한국 땅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해요
한국을 정말 사랑한 마음이 느껴지네요
넘 뭉클했어요
그런데 또 전쟁이 일어났어요
1950년 6.25전쟁이요
3년간의 전쟁이 끝났고
폭격으로 무너져 내린 건물들과
페허로 변해버린 서울이 있었지요
딜쿠샤는 운 좋게도 살아남았어요
터널 덕분에 허물어질 위기를 넘긴 딜쿠샤
정말 앨버트가 새긴 구절 덕분일까요?
아님 앨버트가 진심으로 한국을 사랑하고
딜쿠샤를 아끼는 마음때문이었을까요?
서울은 빠르게 변했어요
2006년 두 노인과 금발의 젊은 여자가 왔어요
모자 쓴 노인은 바로 브루스였어요
그의 아내 조이스와 딸 제니퍼와 같이 온거였어요
"어머니는 이 집이 우리 가족의 희망의 궁전이 되길 바랐던 것처럼
오래도록 한국인들의 희망의 안식처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씀하셨지"
넘 감동적이더라고요
많은 위험과 우여곡절 끝에 달쿠샤는 문화재로 지정되었어요
2016년 2월, 서울시와 기획재정부, 문화재청 등은 딜쿠샤를
복원하여 2019년 시민들에게 개방하기로 하였다
2017년 8월 8일 딜쿠샤를 등록문화재 제 687호로 공식 등록하였다
그리고 딸 제니퍼는 브루스의 재를 가지고 와
은행나무 밑동에 뿌리고는 기도했어요
"브루스야, 네가 어디를 가더라도
언젠가는 꼭 돌아와야 할 너의 집은 바로 이곳이란다"
가슴 쿵클하더라고요
찡함이 많이 울려서 한동안 가만히 있었네요
왜 이런 이야기를 그동안은 몰랐을까요?!
우리나라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딜쿠샤가
문화재로 지정되어서 정말 다행인것 같아요
그리고 그 집을 지은 앨버스와 메리 브루스도
잊지 말아야겠어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그 고마운 마음을요
한국과 딜쿠샤를 사랑한 그들 덕분에
우리는 훌륭한 문화재에 대해 알게된것 같아요
딜쿠샤와 그들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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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의 추억 작가 김세미, 이미진 출판 찰리북 제목만 보고 어느 일본 사람의 예전 이야기를 말해주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예상은 정확히 빗나가고 말았네요. 서울시 종루구 행촌동 1번지에 있는 아주 특별한 이 집의 이름이 딜쿠샤라고 해요. 딜쿠샤를 짓고 살았던 사람은 우리 나라 사람이 아닌 외국인 부부였죠.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라는 미국인과 영국인 부부였데요. 부부가 산책을하다 발견한 은행 나무 옆에 집을 지었고 그곳이 그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고 해요. 시간이 흘러 메리는 아기를 갖게 되었고 아기를 낳기 전날은 우리 나라 3.1 운동 바로 전날 이었다고 하네요. 세브란스 병원에서 아이를 낳으려던 메리에게 독립선언문을 감추고 그것을 발견한 앨버트가 동생을 시켜 몰래 한국을 빠져나가 전세계에 알리게 되었다고 해요. 시간을 흐르고 그들의 아들 브루스는 군입대를 위해 집을 떠나야했고 어머니 메리는 브루스에게 네가 어딜가더라도 돌아올 곳은 바로 이곳이라고 이야기 했다는 군요. 전쟁으로 인해 한국을 도왔던 앨버트가 체포되었다 풀려나고 강제 추방을 당하게 되고 이 집 딜쿠샤는 쓸쓸해져 갔지요. 일본군은 딜쿠샤에게 있던 골동품을 훔쳐가기도 하고 점점 낡아만 가고 전쟁으로 피난민들이 딜쿠샤를 이용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다시 모이기 시작하지만 가난한 그들은 딜쿠샤의 망가진 곳들을 고쳐주지는 못했데요. 딜쿠샤는 이제 영영 못볼줄 알았던 메리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은행나무 주변에는 앨버트가 가루가 되어 뿌려졌어요. 그리고도 또 시간이 흘러 브루스와의 마지막 만남을 가지기도 했구요. 딜쿠샤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건물이 올라갈뻔했는데 그 아래로 터널이 뚫리는 바람에 다행히 딜쿠샤는 그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되었데요. 딜쿠샤를 복원해서 2019년 바로 내년에 시민들에게 개방하기로 하였다고 하네요. 등록문화재 제 687호로 등록된 딜쿠샤에 내년에 꼭 한번 다녀오고 싶어졌네요. 그곳의 은행나무 주변을 한바퀴 돌아보고 수고하고 고생했었다 얘기해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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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8·15광복, 한국 전쟁, 개발되는 서울의 모습… 100년이 다 되도록 같은 자리에서 서울을 내려다본 아주 특별한 집, 딜쿠샤 딜쿠샤 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던 내가 「딜쿠샤의 추억」 이 책이 도착하길 기다리던 중 우연히 도서관의 한 책에서 딜쿠샤를 소개하는 글을 보게 되었다. 서울 여행지와 관련된 책이었는데 여름방학 서울여행을 가기전 알았더라면 한번 가봤을 거라는 생각에 몹시 아쉬웠다. 아직 일반인들에게 개방이 되진 않지만 겉모습이라도 볼 수 있었다면 이 책이 좀더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딜쿠샤는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번지에 자리잡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품은 특별한 집이다.1917년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는 산책하던 중 크고 멋진 은행나무를 발견하게 된다. 은행나무 밑에 집을 짓고 싶다는 아내의 말에 앨버트 테일러는 집을 짓기 시작한다. 1923년 마침내 집이 완성되고 메리는 집에 이름을 붙여준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딜쿠샤는 그렇게 완성된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테일러 부부에게는 브루스 라는 아들이 있었다. 메리는 연극배우이자 화가였으며 앨버트는 독립에 관한 기사를 쓰는 기자였다. 그런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브루스는 3.1운동 하루 전날 태어났다. 브루스를 낳고 앨버트를 기다리던 그때 분주해 보이는 간호사들이 병실로 뛰어 들어왔고 메리의 침대에 종이 뭉치를 숨기고 사라진다. 이내 일본 경찰들이 들어와 병원을 샅샅이 뒤지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돌아간다. 앨버트가 병원에 도착해 브루스를 안아 올린 순간 종이 뭉치가 앨버트의 발밑에 떨어지고 그들은 그 종이가 독립 선언서라는 걸 알게된다. 앨버트는 동생을 불러 독립선언서를 몰래 빼돌리게 되고 다음날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만세를 부르게 된다. 전세계 신문에 한국의 3.1 운동에 대한 기사와 독립 선언서가 실릴수 있었던건 앨버트 덕분이었던 것이다. 행복했던 시간이 흘러 브루스가 21살 청년이 되던 1940년 브루스는 군입대를 하기 위해 집을 떠난다. 이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고 독립운동을 도왔던 앨버트를 체포하기 위해 일본 경찰이 들이 닥친다. 메리는 가택 연금 조치가 내려진다. 6개월 후 돌아온 앨버트와 메리는 이제 브루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데 브루스가 돌아오기 전 일본 정부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게 된다. 그렇게 부부는 한국을 떠난다. 주인이 없는 집은 점점 본 모습을 잃어가고 일본인들은 딜쿠샤의 집안에 있던 물건들을 모두 팔아버린 후 그곳을 떠난다. 텅빈 집 알수없는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하고 집은 점점더 본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딜쿠샤는 무려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무사히 살아 남았고, 한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서울의 변화를 바라본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조선도, 남과 북이 싸우던 그 순간도, 독립운동을 하며 만세를 부르러 사람들이 뛰쳐나오는 모습도, 그리고 빠르게 높은 건축물들이 들어서는 모습도 모두 보았다. 사람이었다면 정말 책처럼 이야기를 해줄 듯 하다. 다행히도 딜쿠샤는 복원이 결정 되었고, 2017년 8월 8일 등록문화재 제 687호로 공식 등록되었다. 2019년이 되어야 일반인들에게 개방이 되겠지만 엄청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빨간벽돌집이 오래오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주길 기도한다.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된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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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큐샤의 추억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번지에 위치한 딜큐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으로 딜쿠샤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재에 하나였던 것이다. 우연히 보게된 다큐에서 보게 되면서 관심을 갖게 된 집으로 희망의 궁전 딜쿠샤로 만나게 되었던 집이다.
일제시대에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로 건축사적으로 중요하고, 우리나라에서 볼때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이 살았던 집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딜쿠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찰리북에서 출간된 딜쿠샤의 추억으로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딜쿠샤에 대해서 알아보게 되었다. 그림책에서는 딜쿠샤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 3.1 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 등을 전 세계에 알린 앨버트 테일러와 그의 아내 메리 테일러가 미국으로 추방될 때까지 거준했던 곳으로 1923년 부터 지금까지 약 100년 동안 서울의 근현대사를 보여주고 있는 집인 것이다.
아이들이 그림을 감상하면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림책으로 딜쿠샤의 추억으로 찾아온 딜쿠샤는 다큐로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문화재로 등록 후에 이야기도 더욱 기대되면서 나부터도 딜쿠샤를 통해 역사를 들여다 보게 되는데 그림에서 표현된 딜쿠샤가 창문을 통해 보여준 장면들 그림책에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그때를 떠올려 보게 만들어준다. 인왕산 언덕 높은 곳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는 딜쿠샤가 이제는 고층 건물들에 둘러싸여 갇혀있는 듯한 모습으로 예전에는 제일 좋은 서양식 집이었던 딜쿠샤가 이제는 낡아져서 귀신이 나오는 집이라 불리울 만큼 낡은 집이 되버렸다. 딜쿠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브루스는 여든 일곱 살이 되어버린 할아버지로 돌아왔고, 이제는 새롭게 단장하여 앞으로 얼마 후에는 기념관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할 수 있게 된다고 하니 더욱 더 반가운 일이다. 지금까지 딜쿠샤의 추억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딜쿠샤를 기억한 것 처럼, 이제는 우리가 딜쿠샤를 지켜주게 되기를 바란다. 책에 뒤에는 사진으로 딜쿠샤의 추억을 돌아보게 해주고 있다. 그림이 더욱 돋보이는 그림책으로 글이 조금 많은 편이지만 아이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 책으로 꼭 한 번은 만나보면 좋을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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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의 추억...책 제목만 보고 외국사람인 딜쿠샤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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