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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황혼의 길목에 서서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인생이란 결국 저마다의 깊은 바다를 항해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시퍼런 파도가 휘몰아치는 수면 위도 위태롭지만, 아무런 빛도 들지 않는 칠흑 같은 심해 속에서 오직 자신의 이성과 침묵에 의지해 길을 찾아야 하는 삶의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강흠, 서정훈 부자(父子)가 함께 써 내려간 <잠항(潛航)>은 표면적으로는 영화 속 잠수함의 세계와 실제 심해 작전의 진실을 다룬 흥미로운 교양서다. <붉은 10월>이나 <특전 U보트> 같은 익숙한 영화들을 길잡이 삼아 소나 운용이나 잠항 전술의 허구와 실체를 명쾌하게 짚어낸다. 하지만 일흔을 넘긴 늙은 독자의 눈에 정작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것은 군사적 지식이나 화려한 전술이 아니었다. 그 수평선 아래 묵묵히 깔려 있는 ‘극단의 리더십’과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책임의 유산’이었다.
잠수함은 외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고립무원의 공간이다. 통신조차 자유롭지 못하고, 한번 판단을 그르치면 승조원 전원의 생명이 바닷 속에 매장되는 극단적인 전장이다. 이 책은 바다 깊은 곳에서 함장이 짊어져야 하는 고독과 무게를 담담하게 전한다.
저자들은 스크린 뒤에 숨겨진 진짜 잠수함의 세계를 통해, 리더란 소리를 지르고 위세를 부리는 존재가 아니라 극심한 위기 속에서도 침착하게 방향을 잡고 공동체의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이어야 함을 일깨운다. 살면서 수많은 조직을 경험하고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맡아온 입장에서, 리더십의 본질은 결국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견뎌내는 책임감’에 있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잠수함이 ‘침묵의 암살자’로 불리지만, 그 침묵이 결국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치열한 절제라는 대목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소리를 내지 않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그 음습한 공간에서 승조원들이 나누는 신뢰와 팀워크는, 갈등과 소음이 넘쳐나는 우리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 책이 지닌 가장 독보적인 매력은 저자들의 특별한 인연에 있다. 대한민국 잠수함 전력의 기틀을 다진 아버지(서강흠)와, 그 뒤를 이어 현역 장보고급 잠수함 함장으로 바다를 지키는 아들(서정훈)이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건넨다. 할아버지부터 이어져 온 3대 해사 동문이자 대한민국 해군 역사상 최초의 부자 잠수함 함장이라는 기록은 단순히 가문의 영광을 넘어선다.
한 사람은 지나온 역사가 되어 지혜를 나누고, 다른 한 사람은 현재의 현장에서 그 역사를 실시간으로 이어간다. 같은 영화를 보며 아버지가 겪었던 옛 작전의 회고와 아들이 전하는 요즘 심해의 생생함이 어우러지는 대목은, 마치 잘 여문 고목 아래 어린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장엄한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나이가 들수록 후대에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데, 이들 부자가 보여준 대화는 기성세대가 청년 세대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유산의 형태였다.
우리는 수면 위 평화로운 바다만을 보며 살아가지만, 그 평화 밑바닥에는 빛도 닿지 않는 깊은 바다에서 청춘을 바치는 이름 없는 승조원들이 있다. 좁은 침상과 제한된 산소 속에서도 오직 사명감 하나로 견뎌내는 그들의 삶을 읽으며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잠항>은 단순한 군사·영화 해설서를 넘어, 고독한 결단의 무게를 아는 이들에게 건네는 묵직한 위로이자 인문학적 성찰이다. 살면서 겪는 온갖 풍파 속에서 자신의 배를 어찌 조타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특히 인생의 무게를 깊이 이해하는 또래의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침묵 속에서도 묵묵히 항해를 이어가는 그 모든 고독한 영혼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