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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를 움직인 기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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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재 교수는 《한국인의 기원》에서 한국인의 조상은 기후 난민과 가깝다고 했다. 기후적 요인이 서남아시아로부터 출발하여 순다랜드와 아무르강에 이르렀다, 중국의 랴오허에서 문명을 이룬 집단을 한반도로 이동시켰다고 했다. 그는 이를 고고학적 증거뿐만 아니라 여러 과학적 증거를 통해 추론하고 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기후 변화가 다시 인구의 이동을 추동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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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재 교수는 《한국인의 기원》에서 한국인의 조상은 기후 난민과 가깝다고 했다. 기후적 요인이 서남아시아로부터 출발하여 순다랜드와 아무르강에 이르렀다, 중국의 랴오허에서 문명을 이룬 집단을 한반도로 이동시켰다고 했다. 그는 이를 고고학적 증거뿐만 아니라 여러 과학적 증거를 통해 추론하고 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기후 변화가 다시 인구의 이동을 추동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한반도에 정착한 ’한국인‘의 역사에 미친 기후의 역할을 조명하고 있다. 물론 그의 시선은 고조선의 성립부터 시작하고 있고, 고구려의 이야기도 매우 상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을뿐더러,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의 역사와 기후의 관계를 아울러서 보고 있기도 하다.


고조선의 성립은 《한국인의 기원》에서 한 이야기의 연장선상이고, 고구려 장수왕의 평양 천도를 기후 위기에 대응 측면에서 본 것도 이미 읽었던 내용이다. 이후의 이야기들이 새로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고려의 경우, 고려의 융성이 중세 온난기와 정확히 일치한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이나, 이후의 내리막이 그 중세 온난기가 막을 내림으로써 시작되었다. 조선과 관련해서는 그 시대가 대체로 소빙기와 많이 걸쳐져 있기 때문에 고난의 역사와 많이 연관되어 있다. 특히 대기근이 빈말했던 조선 후기, 특히 순조 시기가 그랬다. 반면 영조 시대의 부흥이 한반도를 비롯한 전 세계적 기온 상승, 강수량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은 임금을 비롯한 지도자의 능력이나 품성이 국가의 부침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박정재 교수는 여기에 하나의 반례를 들고 있다. 바로 정조다. 정조는 영조 이후 태양의 흑점이 줄어들고, 화산 폭발이 늘어나는 시기, 즉 기후가 정권을 돕지 않는 시기의 임금이었다. 그럼에도 정조의 시기는 다른 임금의 시기와는 다른 대응을 했고, 대체로 융성한 국가를 이루었다. 그와 비슷하게 중국 청나라의 강희제도 마찬가지다. 그의 시대 역시 소빙기로서 기후의 혜택을 볼 수 없었지만 청은 물론 중국 역사에서도 가장 안정된 국가를 유지하면서 성군으로 일컬어진다(대기근으로 국가 존립의 근본마저 흔들리는 조선에 쌀을 원조하기도 했다). 이를 보면 기후는 한 국가와 시대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으며, 인간의 자유의지로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에 국가의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보여준다.


이러한 기후의 힘과 이에 대한 대응의 관계를 보면서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지구온난화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여러 데이터를 보면 엘리뇨의 영향, 세차 운동의 영향, 열대수렴대의 이동 등으로 바다 온도가 변하고 이로 인해 70년마다 대기근이 찾아온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그건 이미 인류세라고 하는 현 시점에서는 이미 초월한 상태다. 자연의 영향을 넘어서 인류가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인 것이다. 그만큼 불확실성이 커진 시대이기도 하다(”인류는 모든 방면에서 예측이 어려운 불확실성의 시대로 진입하는 중이다.“, 268쪽).


여기에 지리학자 박정재는 역사학에 길을 묻고 있다.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 재레드 다이어몬드의 《총, 균, 쇠》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아울러 디페시 차크라바르티의 성과와 한계도 논의하면서 빅히스토리, 딥히토리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역사학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딥히스토리를 꺼린다. 그러나 박정재 교수는 인류세라는 새로운 도전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대강이라도 감을 잡기 위해서는 ”과거 속에서 드러나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과 패턴을 읽어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무궁한 역사학의 잠재력을 미래 도전에 이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역사학의 잘못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장 앞에 윈스턴 처칠의 연설의 문구를 인용하고 있다. ”더 멀리 되돌아볼수록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

YES마니아 : 로얄 n*****m 2026.08.1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