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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페이지도 안 되는 <자기만의 방>을 20년 만에 읽었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사실이다. 1996년에 '예문'에서 나온 황토색 표지의 <자기만의 방>을 구입해 읽었는데 당시 '의식을 흐름'을 따라가기 어려워 끝까지 읽지 못했는지, 아니면 활자만 읽은 건지 내용이 도무지 기억에 없다. 어쩌면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게 망각의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른다. 왜 버지니아 울프가 선구적인 페미니스트인지 궁금해 이번에 다시 읽고 확인했으니 나는 이 책을 20년 만에 읽은 셈이다.
이 책은 저자가 1928년에 두 곳의 여자대학에서 '여성과 픽션'에 대해 강연한 내용을 기초로 하고 있다. 책 속에서 저자는 여성이 글을 쓰며 살기 위해서는 잠글 수 있는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의 수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지은 지 수백 년 된 가상의 명문 남자대학의 화려한 오찬 음식과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대학의 평범한 정찬 음식을 비교하며 어머니로부터 대물림된 여성의 가난이 여성의 정신을 빈곤하게 만들어왔다고 말한다. "저녁식사를 잘 하지 못하면 사색을 잘할 수 없고 사랑도 잘할 수 없으며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쇠고기와 프룬을 먹고는 등뼈의 램프에 불이 켜지지 않습니다."
저자는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의견이 저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여성의 열등함을 주장한 한 남성 교수의 글에서 분노가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 부자들이 자신의 돈을 노린다고 생각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노하듯 남성 교수는 여성의 열등함을 강조하고 분노함으로써 남성 자신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건 아닌지 의심한다. 실제로 역사의 기록을 찾아보면 집안에 갇혀 자라고 억눌려 살아온 여성들이 다수의 남성들에게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어 왔으며 남성의 우월함을 확대해 인식시키는 거울로 존재해왔다고 비판한다. "거울의 환영은 활력을 충전시키고 신경조직을 자극하기 때문에 더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왜 여성들 중엔 셰익스피어만큼 뛰어난 문학가가 없을까. 저자는 16세기 영국에서 여성 셰익스피어가 탄생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만일 셰익스피어만큼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 누이가 있었더라도 어릴 때부터 가사일을 해야했으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부모의 강요에 의한 결혼을 거부해 집을 뛰쳐나와 연극계를 찾아갔더라도 그녀를 동정한 감독이 아이를 임신시키고 결국 그녀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해 절망에 빠져 괴로워하다 목숨을 끊었을 거라고 한다. "셰익스피어 시대에 어떤 여성이 셰익스피어의 재능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 같은 천재는 교육받지 못하고 노동하며 노예처럼 사는 사람들 가운데서 태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저자는 여성 작가의 가난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기 위해 영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 작가들인 제인 오스틴과, 조지 엘리엇, 브론테 자매 등의 작품들을 비교한다.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가 가부장제 사회에서 움츠러들지 않고 자신만의 글을 쓴 데 비해 더 재능 있는 샬롯 브론테와 조지 엘리엇은 내면의 분노와 좌절로 인해 연속성이 단절되고 창조성의 빛을 잃었다고 비평한다. "그녀는 고요히 써야 할 곳에서 분노에 싸여 쓸 것이고, 현명하게 써야 할 곳에서 어리석게 쓸 것입니다. 또한 그녀는 등장인물에 대해 써야 할 곳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 쓸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과 격투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비틀리고 꺾인 그녀가 젊은 나이에 죽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저자는 창조하는 사람의 위대한 마음은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은 '양성적인 마음'이라고 설명하며 대표적인 작가로 셰익스피어의 마음을 들고 있다. 시인 "콜리지가 언급한 양성적 마음이란 타인의 마음에 열려있고 공명하며, 본래 창조적이고 빛을 발하며 분열되지 않은 것"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젊어서 글 한 줄 쓰지 못하고 죽은 셰익스피어의 누이는 여전히 우리들 가슴 속에 살아 있다고 강조하며 여성이 일하여 앞으로 백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자기만의 방과 연간 오백 파운드의 수입을 가지고 자기만의 세계가 아니라 리얼리티의 세계와 관련을 맺고 글을 쓰며 살아가게 될 거라고 단언한다.
사실 이 책은 여성해방 문학론인데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여져 있어 저자의 논지가 흐려질 우려가 있다. 처음 읽는 독자가 지루하거나 난해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역시 마찬가지 이유다. 하지만 단지 활자를 좇는 게 아니라 집중해서 읽는다면 전혀 어렵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여성 문학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통찰력과 박식한 마음을 엿볼 수 있고, 의식의 흐름이 보여주는 풍경화 같은 이미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되는 점은 여전히 왜 버지니아 울프를 읽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소중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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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이미애 민음사/2017.12.26. sanbaram 미투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페미니즘이 활발하게 전재되고 있다. 페미니즘이 발생한 것은 오래 전이지만, 근현대 페미니즘 문을 활짝 연 것은 <자기만의 방>의 저자 버지니아 울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1907년 <타임즈> 문예 부록에 서평을 싣기 시작하면서 <델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독자>와 같은 뛰어난 문학평론, 서평 등을 발표해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한 동안 잊혔다가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1970년대 이후 페미니즘 비평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면서 울프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자기만의 방>이 피력한 여성의 물적, 정신적 독립의 필요성과 고유한 경험의 가치는 우리 시대의 인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자기만의 방> 1장에서 대학의 문제를 제기한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같은 고등교육기관은 중세에 설립된 이후 남성에게 기득권을 보장하는 통로였다. 울프가 이 에세이를 쓰던 당시에도, 여학생들은 강의에 참석할 수 있었지만 학위를 받을 수 없었으며, 대학 구성원으로서의 자격도 인정되지 않았다. 2장에서 여성은 수 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확대 반사하는 거울 노릇을 해왔다고 한다. 남성의 활동은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치부함으로써 얻은 자신감에 기반을 두고 식민지를 개척하고 사회를 움직이며 가부장제도를 이어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3장에서는 과거의 여성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글 쓰는 법을 배웠는지 자기만의 방이 있었는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아이를 낳은 여자는 얼마나 되었는지 등 기존의 역사서에서 여성에 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셰익스피어에게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누이가 있었더라도 자기 스스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 이외는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4장에서는 여성이 쓴 픽션을 고찰한다.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를 제외하면 19세기의 여성 작가들도 공동의 거실에서 제한된 경험과 인습적 통제로 고통을 받으며,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여성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5장에서 울프는 당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논한다. 몇 세기 동안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묘사되었던 여성이 이제 “클로이는 옥타비아를 좋아했다.”처럼 표현한 메리 카마이클의 <생의 모험>에 대해 언급하면서, 여성 간의 관계를 통해 묘사될 수 있다는 점은 대단한 파격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6장에서는 남성으로서 자의식과잉 상태인 현대 남성 작가의 작품을 살펴본 후, 두 남녀가 함께 택시를 타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두 여성이 화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는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을 열등한 집단으로 치부하여 모든 특권을 조직적으로 박탈하고 기득권에서 배제하였으며, 그 현상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영속화해 왔음을 분석한다. 아웃사이더로서 여성의 위상, 소유욕과 경쟁을 부채질하는 대학 교육과 전문직, 여성 억압과 자본주의, 가부장제 사회의 문명의 결핍 등, 울프의 에세이가 페미니즘 비평에 그치지 않고 진지한 문명 비판에까지 이르게 된다. <3기니> ※1기니는 21실링을 말하며 : (1파운드=20실링)+ 팁1실링을 합한 단위라고 한다. <3기니>는 전쟁을 방지하고 ‘문화와 지적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방법을 문의한 중년 변호사의 편지와 여자대학 재건 기금을 요청하는 편지, 여성의 전문직 진출을 원조하려는 협회의 기금 요청 편지에 대해 답변하는 세 가지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에세이는 바로 이러한 결정에 이르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울프는 여성의 역사적 사회적 위상, 공적 기관을 지배하는 정치적, 개인적 가치, 군국주의와 남성성의 관계, 남녀 관계를 특징짓는 심리적 요인 등에 대한 복잡하고 다양한 논의를 전개한다. 1장에서 여자대학 재건 기금을 요청한 편지에 답하면서 “아서 교육자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집안의 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딸들의 교육은 희생되어야 했음을 지적한다. 가부장제 사회의 중추 기관인 대학은 경쟁적이고 호전적이며 비타협적인 문화를 유포하여 전쟁을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부장제와 제국주의 및 파시즘은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바탕에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 깔려 있다고 울프는 지적한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전제 조건이므로, 울프는 여성대학 재건 기금에 조건 없이 1기니를 보내기로 결정한다. 교육을 혁신적으로 재조직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현행 전문직의 경제적, 사회적 구조라는 것이다. 2장에서는 여성의 전문직 진출을 원조하는 협회의 기금 요청 편지를 놓고, 여성이 전문직을 가지게 된 지 이십년이 지났는데 어찌하여 가난한가 하는 물음을 제기한다. 전문직 여성이 가난한 이유를 여성이 고용과 승진에서 차별을 받아왔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차별은 “여성에게 가장 적합한 곳은 가정”이라는 견해들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전문직에서 여성이 차별받아 여전히 가난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여성 전문직 진출을 위한 협회에 1기니를 보내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19세기 이래로 전문직이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경쟁과 배제, 갈등의 온상이었음을 지적하며, 전문직에 종사하면서도 권위주의적이고 배타적인 문화에 물들지 않을 수 있도록 조건을 제시한다. 그것은 네 가지 원칙으로서 가난, 순결, 조롱, 비실재적 충성심으로부터의 자유다. 3장에서는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문화와 지적 자유”를 수호하는 것이 바로 대학의 목적이 아니었냐고 반문한다. 교육제도와 문화적 생산을 지배해온 남성이 여성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아이로니컬하다는 것이다.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협회에 1기니를 기부하기로 결정하며, 이러한 정치적 결속을 축하하기 위한 상징적인 행위를 제안한다. 그것은 곧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불태워버리는 일이다. 남성과 여성이 모두 “가부장제의 폭정”에 대항하여, 더 나아가 국내외의 권위주의적 독재 세력에 대항하여 싸우리라고 기대한다. 협회에 기금을 보내기로 동의 하지만 그 협회에 가입하기를 거부하고, 그 대신 여성에 의한 “아웃사이더의 단체”를 제안한다.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가치들을 실천하는 익명의 인간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단체나 조직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무형의 집단이다.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는 여성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3기니>에서는 빈곤이 여성의 의식에 미친 영향을 상세히 분석 하고,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여성대학 기금조성에 1기니, 여성의 전문직 진출을 위한 협회 활동에 1기니, 전쟁방지를 위한 협회에 1기니를 기부한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후원하며 남녀가 평등한 사회가 이루어지길 후원하는 에세이를 쓴 저자의 바람이 조속한 시일 내에 이루어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페미니즘 활동에 동참하길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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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에서 대학의 문제를 제기한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같은 고등교육기관은 중세에 설립된 이후 남성에게 기득권을 보장하는 통로였다. 울프가 이 에세이를 쓰던 당시에도, 여학생들은 강의에 참석할 수 있었지만 학위를 받을 수 없었으며, 대학 구성원으로서의 자격도 인정되지 않았다. 2장에서 여성은 수 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확대 반사하는 거울 노릇을 해왔다고 한다. 남성의 활동은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치부함으로써 얻은 자신감에 기반을 두고 식민지를 개척하고 사회를 움직이며 가부장제도를 이어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3장에서는 과거의 여성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글 쓰는 법을 배웠는지 자기만의 방이 있었는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아이를 낳은 여자는 얼마나 되었는지 등 기존의 역사서에서 여성에 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셰익스피어에게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누이가 있었더라도 자기 스스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 이외는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4장에서는 여성이 쓴 픽션을 고찰한다. 제인 오스틴과 에밀리 브론테를 제외하면 19세기의 여성 작가들도 공동의 거실에서 제한된 경험과 인습적 통제로 고통을 받으며,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여성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5장에서 울프는 당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논한다. 몇 세기 동안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묘사되었던 여성이 이제 “클로이는 옥타비아를 좋아했다.”처럼 표현한 메리 카마이클의 <생의 모험>에 대해 언급하면서, 여성 간의 관계를 통해 묘사될 수 있다는 점은 대단한 파격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6장에서는 남성으로서 자의식과잉 상태인 현대 남성 작가의 작품을 살펴본 후, 두 남녀가 함께 택시를 타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두 여성이 화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는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을 열등한 집단으로 치부하여 모든 특권을 조직적으로 박탈하고 기득권에서 배제하였으며, 그 현상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영속화해 왔음을 분석한다. 아웃사이더로서 여성의 위상, 소유욕과 경쟁을 부채질하는 대학 교육과 전문직, 여성 억압과 자본주의, 가부장제 사회의 문명의 결핍 등, 울프의 에세이가 페미니즘 비평에 그치지 않고 진지한 문명 비판에까지 이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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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졸업 논문으로 버지나아 울프의 소설에 대해 평론했다. 도서관에 처박혀 그녀의 수많은 저서들을 탐독하며 가슴 설레이고, 그녀의 작품 중 헐리우드 영화로 극장가에 걸려진 작품이 있다면, 극장 앞에서 살다시피 하루 3편 연달아 관람했다. 시대가 다르고, 국적도 다르고, 역인 건 아무것도 없는 그녀와 나이지만 나는 그녀의 광적인 팬이다. 그녀의 작품 중 유일하게 좀 읽기 힘든 책이 바로 이 책. 자기만의 방. 고정적인 수입과, 자기만의 방. 이 것이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나서게끔 자리하는 첫 발걸음이라고 정의내린 그녀의 사고방식과 그녀의 인생, 그녀의 삶, 그리고 그녀의 죽음. 이 모든 걸, 교수님으로부터 배우고, 책으로 배우고, 영화로 다시금 느끼고, 내 집 책장에 꽂힌 수많은 그녀의 저서들을 통해 다시금 익히고. 여튼. 벌써 3권째 구매이다. 나는 언제나 그녀의 생각에 격하게 동감하는 바이다. 그녀와 같은 죽음을 택할까 늘 아슬아슬한 내 감정이다. 나도 내가 여성이라서 너무나 안타깝다. 모든 재능과 가능성이 육아 앞에서 무너졌다. 내 남편은 별 재주 없는 무난한 사람이지만, 깜냥보다 더 큰 가능성 있는 길을 걷는 걸로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나는 집안에 갖혀 오로지 육아와 청소와 취사만 반복하고 있다. 결혼은 하지 말았어야했다. 고정적인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었건만. 뭣하러 치명적인 실수를 했던가. 울프! tell me now. what shall i do. 제법 두툼한 책이다. 한방에 읽을 생각말고, 고민하며 읽자. 이 책은 그런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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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유명한 작가의 책! 너무나 많은 여성들이 읽었을 법한 책과 작가. 자기만의 방이 아니라 여자만의 방이라 해도... 이 책은 대표적인 페미니즘 에세이로 꼽히고 있는 책이다. 20세기 초반의 작품이지만 지금까지도 페미니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책에선 여성에게도 남성과 더불어 자신만ㄴ의 꿈을 펼치며 살아가는 자립적인 삶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해 순수하고 원론적인 페미니즘을 선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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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적인 수입과 자기방의 방이 있어야한다는 그 유명한 말이 바로 여기서 나왔구나 고전을 읽다가 이런 유명한 말들을 발견하면 정말 반갑다. 근데 곱씹어볼수록 씁쓸하다. 버지니아울프가 살았던 시대에는 여자들에게 주어지는 여러 제한들..차별들..이 당연시되었다. 그 차별들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도 이어지고... 물론 그때랑 지금이랑은 다르지. 적어도 참정권도 있고 자기실현의 꿈을 가지니까. 하지만 나조차도 어릴 때 할머니한테 알게모르게 차별받았던 것들, 집에서 딸이라는 이유로 소소하게나마 제한되었던 것들이 떠올라서 좀 멍해지더라.. 버지니아울프는 소위 말하는 금수저집안이어서 더 쓸쓸했던 거 같기도 하다.. 저런 집안도 저런데 다른 집 딸들은 오죽했을까.. 책을 다 읽고 나니까 깨어있는 한 사람의 생각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고있으니 정말 대단한 거 같다 사실 난 이 책이 좀 어렵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끼는 건 되게 많았던 거 같다.......우선 지금은 빨리 취업해서 취약계층에 있는 아이들을 돕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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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께 선물로 받은 책. 자기만의 방. 주인공이랑 저랑은 완전히 동떨어진 성격이에요. 니나는 주체적으로 살고,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고. 또 그 결과로 자기만의 방을 갖고 살아가네요. 지금에야 이런 것들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람들이 많을 지 몰라도, 이 당시에 여자가 할 수 없었던 생각들을 하고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아요. 버지니아 울프의 다른 작품들도 다 읽어보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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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은 소설이 얇은 편이라 책은 금방 읽었지만 책을 읽고 난 후의 여운을 길게 남을 것 같습니다. 자기만의 방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의견, 즉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은 사실 매우 일반적이 이야기 같지만 그래서 더욱 근본적인 이야기입니다.
울프가 숙모에게서 1년에 500파운드의 유산을 상속받게 된 이후에 두려움과 쓰라림에서 해방됐다고 기술했듯이 온전한 독립을 위해서는 자산(돈)과 자기만의 방(집)이 필수적인 것은 과거나 현재나 다름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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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수록되어있다. <자기만의 방>이 <3기니>에 비해서 짧아서 아쉬웠다. <자기만의 방>에서 그녀가 여성으로서 진심으로 느꼈던 문제의식에 절절하게 공감했다. 아마 여자라면 대부분 공감하지 않을까싶다. 그녀가 살았던 시대에 비해서 여성의 권리는 많이 신장된 편이라 볼 수 있지만 아직 완전한 양성평등이 실현되기에는 요원해보인다. 그렇지만 많은 여성들이 울프의 이 <자기만의 방>을 읽고 같은 문제의식을 공감하고 행동하다보면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는다. 나 역시 그녀가 당부했던대로 한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했다. 나는 그녀가 살았던 시대보다 여성으로서 누릴 것이 더 많은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갖가지 핑계를 대며 불평불만만 하며 살았던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었다. 울프의 영혼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 셰익스피어의 누이의 영혼이 죽지 않고 어떤 여성의 육체에 들어가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그녀의 말처럼, 그녀 또한 죽지 않았다. 그녀는 내 안에 있다. 조용히 사색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자기만의 방과 자유를 보장하는 연간 500파운드의 돈이 의미하는 것은 여성이 최소한으로서의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한 조건이라고 그녀는 제시했다. 이 두 가지 조건을 절대 잊지 말아야겠다. 결혼을 해서도 여성이 자기 직업을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하고 빈둥거리며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성찰하고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며 길거리를 배회하고 사고의 낚싯줄을 강 속에 깊이 담글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여러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 바랍니다.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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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버지니아 울프' 하면 떠오르는 시가 있다.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이다. 이번 기회에 일단 감상하고 시작하기로 한다.
그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본 것도 사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책도 사실 오래전부터 읽어보려고 벼르던 책이다. 진작부터 책장 속에서 나에게 읽힐 차례를 기다려왔지만, 이제야 나와 만나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책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제130권 『자기만의 방』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이며, 이 책에는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수록되어 있다. 『자기만의 방』은 1929년작이고, 『3기니』는 1938년작이다. 20세기 페미니즘 비평의 선구자 버지니아 울프 여성 작가들을 다룬 최초의 문학사, 여성 문학 비평의 정전正典, 「자기만의 방」 페미니즘 비평을 넘어선 진지한 문명 비판과 총체적 대안의 발견, 「3기니」 (책 뒤표지 중에서) 드디어 이번 기회에 이 책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책의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 1882년 런던에서 태어나 당대 최고 수준의 지적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문예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한 후 리튼 스트래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던컨 그랜트, 경제학자인 케인즈 등과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1907년 《타임스》 문예 부록에 서평을 싣기 시작하면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와 같은 뛰어난 문학평론, 서평 등을 발표해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소설가로서 울프는 내면 의식의 흐름을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 내면서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삶과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평화주의자로서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쳐 온 울프는 1941년 독일의 영국 침공이 예상되는 가운데 평생동안 수차례 앓아 온 정신 질환의 재발을 우려하여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자기만의 방」과 「3기니」가 1970년대 이후 페미니즘 비형의 고전으로 재평가되면서 울프의 저작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자기만의 방」이 피력한 여성의 물적, 정신적 독립의 필요성과 고유한 경험의 가치는 우리 시대의 인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책날개 중에서)
일러두기 이 에세이는 1928년 10월 뉴넘 대학의 예술 협회와 거턴 대학의 오타에서 발표한 두 강연문에 기초하고 있다. 그 논문들은 전부 다 읽기에 너무 길었고, 그 이후에 수정되고 확장되었다. (책 속에서) '하지만 '여성과 픽션'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했는데 내가 자기만의 방이라는 말을 꺼낸다면 도대체 그게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말하겠지요.'라며 이 책은 시작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의견, 즉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10쪽)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의견이라지만 상당히 중요하게 다가온다. 지금도 여성이 글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것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시절에 그 의견을 선구자처럼 제시했다는 것은 정말 파격적인 생각의 전환이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모든 여성들이 일 년 내내 일하면서도 2,000파운드를 모으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고 3만 파운드를 마련하기 위해 온갖 일들을 다 해야만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우리는 비난받아 마땅할 여성의 가난에 경멸을 터뜨렸습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우리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었을까요? 콧잔등에 분을 바르고 있었을까요? 상점 유리를 들여다보고 있었을까요? 몬테카를로에서 일광욕을 하며 으스대고 있었을까요? (35쪽)
읽어나가다 보면 여성에 대한 사고를 그 시절에 이렇게 하며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 놀랍다. 불행한 사실은 현자들이 여성에 대해 결코 똑같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포프는 이렇게 말했지요. 대부분의 여성은 성격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라 브뤼예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성은 극단적이다. 그들은 남성보다 우월하거나 또는 저열하다. 동시대를 살았던 두 예리한 관찰자들이 보여주는, 전적으로 상반되는 의견이지요. 여성에게 교육받을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 나폴레옹은 여성이 교육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존슨 박사는 정반대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영혼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어떤 야만인들은 여성에게 영혼이 없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여성이 반쯤 신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며 그러한 이유로 그들을 숭배합니다. 어떤 박식한 사람들은 여성의 두뇌가 더 얄팍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여성의 의식이 더욱 심오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괴테는 여성을 찬미했고, 무솔리니는 여성을 경멸합니다. 어디를 돌아보든 남성은 여성에 관해서 생각했고, 그것도 서로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47~48쪽) 이렇게 생각해보자, 이렇게 상상해보자, 그렇게 함께 상상해보니 여성으로서 픽션을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셰익스피어 시대에 어떤 여성이 셰익스피어의 재능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말에 동의하게 된다. 셰익스피어같은 천재는 교육받지 못하고 노동하며 노예처럼 사는 사람들 가운데서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디스 셰익스피어의 생애는 『자기만의 방』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이기도 한데, 철저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교육을 받거나 돈을 벌 수 있는 권리 및 결혼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당한 여성에게 재능을 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으며, 더욱이 법과 관급으로 강화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불합리한 갈등을 겪으며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음을 시사한다(483쪽)라고 작품해설에서 언급한다. 16세기에 태어난 위대한 재능을 가진 여성은 틀림없이 미치거나 총으로 자살하거나 또는 마을 변두리의 외딴 오두막에서 절반은 마녀, 절반은 요술쟁이로 공포와 조롱의 대상이 되어 일생을 끝마쳤을 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적 재능을 발휘해 보려고 시도한 천부적 재능을 지닌 여성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방해받고 저지되었으며 자기 내면에서 상충하는 충동들로 고통받고 갈가리 찢겨서 틀림없이 건강과 온전한 정신을 잃었을 거라고, 심리학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77쪽) 어쩌면 별생각 없이 접했던 그 시대의 이야기일지 몰라도, 버지니아울프를 통해 들으니 생생하고 아프고 안타까운 현실로 다가온다.
『자기만의 방』 다음으로는 『3기니』를 읽어본다. 『3기니』는 『자기만의 방』보다 더 울분을 토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3기니』에서는 여성을 소외시킨 역사로 인해 도리어 여성들이 정치적,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파시즘과 전쟁에 대립하는 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자기만의 방』에서 암시된 아웃사이더로서 여성의 위상, 소유욕과 경쟁을 부채질하는 대학 교육과 전문직, 여성 억압과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적 기획 및 전쟁과의 관련성, 가부장제 사회의 문명 결핍 등은 『3기니』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면서 가부장제 문화에 대한 대안 제시로 이어진다. (책 뒤표지 중에서)
『자기만의 방』에서 울프는 여성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3기니』에서는 빈곤이 여성의 의식에 미친 영향을 상세히 분석하기도 한다. (472쪽) 이 책은 작품해설을 읽으며 배경지식을 접하고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정신병력이 있다는 것이 선입견으로 작용했는지, 나도 사실 처음에는 상당히 감상적일 것이라 생각하며 이 책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오히려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독자 스스로 상상하게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시키니 예상 밖이었다. 그러니 점점 몰입해서 읽어나가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보니 버지니아 울프는 그 시대에 남다른 사고를 창출한 선구자였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서를 직접 구매하여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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