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9.0
리뷰 총점 종이책
[도서]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
"[도서]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 내용보기
서로를 이상형이라고 여겼던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결혼 직후 유방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고, 짧은 행복 뒤의 시간은 고통스러운 투병과 간호의 나날들로 채워집니다. 마침내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남편은 아내의 일기를 정리하여 그 고통의 세월들을 책으로 펴냈습니다. 어쩌면 훈훈한 미담으로 아침 TV에 소개될 수 있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힘든 투병
"[도서]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기" 내용보기
서로를 이상형이라고 여겼던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결혼 직후 유방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고, 짧은 행복 뒤의 시간은 고통스러운 투병과 간호의 나날들로 채워집니다. 마침내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은 남편은 아내의 일기를 정리하여 그 고통의 세월들을 책으로 펴냈습니다. 어쩌면 훈훈한 미담으로 아침 TV에 소개될 수 있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힘든 투병과 간호, 서로에게 지쳐가는 세월들과, 서로를 용서하고 추억이 남는 그런 이야기이겠지요. 얼마나 많은 유사한 사연들이 세상에 있을까요.

다만, 한 가지 이 부부에게 있어서 독특한 점은, 남편이 마침 동서양의 여러 학문을 섭렵하고 젊은 나이에 10여권의 저술을 낸 유명한 저술가로서 철학자와 과학자와 선사를 모두 합친 듯한 묘한 인물이었던 거지요. 게다가 부인도 나름 영적 수련을 꽤 했던 것입니다. 과연 명상수련을 오래하고 일반인보다 득도에 좀 더 가까이 간 사람은 악성 암과 같은 질병, 죽음 앞에서 어떤 더 나은 모습을 보일까? 하는 다소 짓궂은 의문이 듭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반인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모습도 있고, 그래도 역시 뭔가 다른 바 또한 있다는 생각입니다.

켄 윌버는 23세에 ‘의식의 스펙트럼’을 쓴 후 방대한 독서와 명상을 계속하면서 ‘사교적인 신’, ‘무경계’ 등 철학, 심리학과 선(禪)을 통합한 초개인심리학 저서들을 거의 1년에 1권꼴로 출간하였습니다. 그는 테리 길람을 만났던 30대 중반에 이미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저술가였습니다. 테리 길람은 그의 저서를 이전에 읽고 있었고, 환경보호와 영성에 관련된 활동을 해왔습니다. 게다가 엄청난 미인이었습니다! 36세의 노총각 켄 윌버는 당시 친구 부부의 집에 얹혀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근 1년 가량 이 독특한 친구의 짝을 찾아주기 위하여 이리 저리 헤매고 다니다가 마침내 영리함과 미모를 겸비한, 하늘에서 떨어진 별과 같은 여인을 찾아 짝지워준 거지요.

소개받은 자리에서 켄과 테리는 첫눈에 서로에게 필이 꽂혀 사랑에 빠졌습니다. 켄은 테리를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몇 번의 전생에 걸쳐 인연을 나누어왔던 짝을 비로소 만난 것처럼 여겼습니다. 테리는 켄의 독특한 외모 -1미터 90센티가 넘는 키에 박박 깎은 삭발머리-와 심리상담가로서의 자상함과 지성, 유머에 반하여 “믿을 수 없게도 이상형의 남자를 만났어!”라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결혼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혼 직후, 아내는 유방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습니다. 수술을 받았지만, 종양은 계속 재발하였고 방사선 치료와 강력한 화학요법에도 불구하고 암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암은 지독하게 미분화된, 아주 활동력이 강한 악성 중의 악성이었던 거지요.

과연 켄 윌버는 부인에게 잘 해 주었는가? 예. 특히 처음에는요. 초기에는 상황이 크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유방 일부를 절제하였지만, 윌버 나으리께서는 당연히 젊은 아내를 자상하게 위로하고 ‘암과 같이 재미있게 살아가는 방법’ 같은 것을 토론하면서 충분한 정서적 지지를 해 줄 수 있었습니다. 그 정도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쉬운 일이었지요.

그러나, 그것도 암이 계속 재발, 또 재발하여 아내의 마음을 메마르고 날카롭게 만들고, 또한 켄의 저술활동이 거의 불가능해지면 한계가 있지 않겠습니까. 켄과 테리는 아주 형편없이 망가져버립니다. 연이은 재발에 테리는 절망과 공포에 사로잡혀, 건강할 때의 활력과 매력을 잃어버리고 신경질적이며 이기적인 태도에 빠져들었습니다. 켄은 성의껏 아내를 돌보려 했지만, 어느덧 명상을 그만두고, 저술은 불가능해지고, 매일 술을 마시고, 급기야 병을 앓는 아내와 심하게 다투기를 반복합니다. 돈 한 푼 없이 아무 술집에나 들어가서 마구 술을 퍼마시고는 엉엉 울어버리기도 했지요. 테리를 잃고야 말 것이라는 두려움과 자신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것 같았던 부부의 삶은 짧은 행복의 시간 후 고된 투병과 간호의 고통스런 시간들로 채워지게 되고, 마침내 아내는 몇 년의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러한 고통의 시간들이 어떻게 삶을 더욱 고양시키는 의미가 되었는가?

부부는 암에 대처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의학저널들을 읽고 (켄 윌버는 생화학을 전공하였고, 의과대학을 다니다가 의학이 환자를 다루는 비인간적 태도에 반발하여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대체요법들을 공부하고, 미국과 유럽의 여러 종양센터의 항암요법을 수소문, 비교하여 여러 나라를 돌아다닙니다. 켄은 소위 뉴에이지 사이언스에 근거한 전일적의료와 대체의학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제4기 종양환자에게는 그것만으로는 의미 없다는 거지요. 켄 윌버는 명상과 초개인심리학을 이야기하면서도 대단히 hard evidence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식이요법과 병행하여 방사선 치료와, 미국과 유럽에서 각기 가장 공격적인 항암요법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암세포는 그 모든 것을 견디고 살아남는 지독한 놈이었습니다. 방사선, 항암요법과 재발이 반복되고, 당뇨병까지 겹치게 됩니다.

가슴에 오톨도톨하게 튀어올라온 돌기를 발견하고, 암의 재발이 아닐 수 없다는 확신과 잇따른 죽음의 공포. 이를 극복한 것은 테리 자신의 변화였습니다. 테리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요건에 대하여 켄은 별로 설명을 하고 있지 않고 크게 찬사를 보내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사려깊은 행동인데, 우선 그 치료가 영적 상담의 일종으로서 손으로 몸의 기운을 감지하는 일종의 비과학적 치료였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는 테리의 한 케이스만 가지고 새로운 치료다!라고 떠들지 않을 만큼의 과학적 태도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적 상담이 암을 완치한 것은 아니었지요. 다만 그 상담과정에서 테리가 병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바꾸었던 것인데, 이는 테리가 영적 수행을 오래전부터 해오던 사람이라는 면도 있었고, 또한 무엇보다 상황이 그토록 절박하지 않았다면 켄 자신도 그런 상담을 해 줄 수 있었을 겁니다. 어쨌든 자신의 글로 인하여, 정체 모를 아주머니의 상담소에 전 세계의 암환자가 구름처럼 몰려든다면 켄으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테리는 그 상담을 통해 삶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딸로 태어나 남자들의 세계에서 뒤지지 않으려고 남성적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왔던 자신의 모습을 깨닫습니다. 남성적 가치라서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현재 모습을 다른 외부의 가치를 향해 바꾸려고 채찍질하였던 것이 문득 그럴 것이 아니었다고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지금의 자기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서 다른 모습이 되려고 애쓰는 안달함이 있는데, 테리는 그것을 ‘남성적 가치’라 표현하였던 것이지요. 문제는, 그 가치가 테리의 삶을 지속적으로 이끌어가는 내면의 목소리, 다이몬daimon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닌, 외부로부터 주어진 가치는 다이몬이 아니라 데몬demon으로 삶을 억압하는 강박적인 것이 됩니다. 그녀는 상담을 통해 일생의 지향이랄까 할 수 있는 다이몬을 알아차리게 되는데, 그것을 ‘여성적 가치’라 표현하면서 이름을 테리(남성적 이름)로부터 트레야(스페인어로 별을 의미하는 estrella에서 따옴)로 고칩니다. 그것은 지켜보기보다는 창조하는 자이며, 분석하기보다는 통합하는 자이며, 말없이 실천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켄 또한 지치고 지친 어느날, 아내가 입원한 병원 근처 어느 이름모를 술집에서 처음 보는 노인들 틈에 어울려 자기를 놓아버리고 무아지경이 될 만큼 취하고, 울고, 웃고 춤추었습니다. “괜찮아, 젊은이. 그냥 춤추는 거야. 춤을 추라고.” 이름 모를 사람들의 관대한 미소 속에 응어리를 온통 풀어놓으며 켄은 문득 삶 자체를 관조하는 시선을 얻습니다. 이 경험으로 그는 다시 명상을 계속하고, 트레야와의 남은 날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트레야가 된 테리는 얼마 남지 않은 삶의 길을 명상과 이런 저런 활동들로 채웁니다. 켄은 여전히 테리를 잃을 것이라는 슬픔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이지만, 보다 관조적으로 그녀의 마지막 시간들을 조용히 지켜봅니다. 어느날, 트레야는 ‘여보, 먼저 갈께요.’라는 말을 남기고 곡기를 끊고 조용히 세상을 떠나갑니다.

암이란 무엇인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 중에는 인간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된 개미가 암에 대하여 한 수 가르쳐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합성 페로몬을 통해 개미와 의사소통하듯, 암세포와도 대화를 해야한다는 거지요. 개미가 듣기에, 암세포는 계속 뭐라고 말을 걸어오고 있는데,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요? 나는 어디에 있나요?”라고 합니다. 분화의 방향을 알려주고 위치를 찾아주면 암세포는 정상세포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현대의학은 암의 원인에 대하여 유전적 요인, 바이러스, 환경 유해요인 등등.. 을 거론하면서 암세포를 죽이는 방법들을 연구해왔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트레야 길람 윌버의 경우에는 듣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절망의 끝에서, 사람들은 물어왔습니다. 왜 죄 없는 자가 고통을 당하고 죽어야 하는가?

구약성서의 욥기는 죄 없는 자의 고통에 대한 치열한 논쟁을 담고 있습니다. 신장개업한 음식점에 자주 걸려있는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운운은, 성서를 제대로 읽으면 사실은 잘못된 말입니다. 그 말은 욥과 논쟁하던 엘리바즈가 한 말이고, 결론에서 신은 엘리바즈를 벌하므로, 구조적으로 틀린 주장이었습니다. 맥락과 구조를 보지 않고 문장 하나하나를 다 똑같이 의미 있다고 보며 읽으니 저런 촌극이 벌어집니다. 욥기는 ‘나는 죄가 없는데 하느님이 그냥 나를 치신다. 슬프다’라고 하는 욥의 탄식과, 이에 대하여 ‘그런 건방진 소리를 하다니. 네가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는 거겠지. 이제라도 뉘우치면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세 친구들의 충고가 번갈아 가며 세 번씩, 총 아홉 번 논쟁을 벌이는 구조입니다. 뒤에 가면 엘리후의 잔소리를 거쳐 신이 직접 개입하여 판결을 내립니다. 아마도, 욥기는 구약성서 중 가장 실존적이고 논쟁적인 문서일 것입니다. 순진하게도 ‘고통 속에서도 그저 신을 찬미하여 결국 축복받았다’ 그런 이야기 아닙니다. 시작부터가 ‘내가 태어난 날이여, 사라져버려라!’인데 순종이라니요.

개인적 고통에 대한 일차적인 반응은 일반적으로 거부, 분노, 슬픔 등입니다. 좀 시간이 지나면 좌절과 우울에 빠지게 되는데, 혹 운이 좋으면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고통을 좀 더 적극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은, 나만이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고통받는 자들끼리 연대하여 고통의 원인을 종식시키는 것입니다. 빈곤, 열악한 환경, 비인간적 대우와 같은 것에 대해서는 이러한 연대를 통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좀 더 보편적인 고통, 그러니까 늙음, 질병, 죽음과 같은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자신만만한 의사들은 호르몬제와 이런저런 요법을 들고 나오기도 하지만, 그들은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죽음, 환자는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 앞에서의 무력감을 흰 가운으로 가리고 있을 뿐인 것은 아닌가?

욥기에서 욥은 친구들에게 고통 받는 자들을 내가 돌보아주지 않았던가? 얼마나 많은 가엾은 사람들이 내 뜰에서 휴식하였던가? 하고 항변합니다. 그럼에도 죄없는 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신의 뜻은 무엇인가? 친구들은 답하지 못합니다. 결국 하느님이 직접 행차하여, 내가 천지를 만들때 너는 거기 있었는가? 너는 베헤못과 레비아단을 보았는가? 무엇을 안다고 떠드는가? 하고 꾸짖습니다. 그게 답니다. 그럼에도 욥은 ‘이제 알겠습니다. 입을 다물겠습니다’하고 평화로와집니다. 마치 장자가 한 번에 삼천리를 난다는 붕새를 거론하여 상상할 수 없는 장대함을 들이대어 상대의 좁은 식견을 퍽 터뜨려버렸듯이.

불가에서는 인생만사가 모조리 고통이고(일체행고 一體行苦), 인간의 모든 일이 헛되며(제행무상 諸行無常), ‘나’라는 것은 허상(제법무아 諸法無我)이라고 합니다. 욥기의 메시지도 이와 통하는 바 없지 않습니다. 고통은 누구에게(예를 들면 죄인에게) 골라서 오는 것이 아니요, 내가 의롭다 하여 복받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은 하느님의 뜻일 뿐이라는 인식인데요. 불가에서 자아를 깨려 한다면, 기독교에서는 자아를 신에게 맡긴다는 형식을 취합니다. 비슷한 이야기 같지만 수행방법이나 교리가 확연히 달라집니다. 그러나 그 양자 간의 차이가 아니라, 영적 통찰을 통하여 고통의 의미를 안다는 공통점에 주목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도 의미 있을까요. 분명히, 지금은 사막종교나 고대사상이 태동되었던 그런 세상은 아닙니다. 현대 서양의학이 유전자를 조작하는 수준에 와 있는 지금, 질병으로 인한 고통은 분명히 상당히 경감될 수 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삶의 질도 향상되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살아남고 있고, 평균수명도 지극히 길어졌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현대의학의 비인간성 운운은 어쩌면 배부른 소리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육체적 건강이 삶의 행복의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건강하지 못하다고 해서 행복의 가능성을 전면 부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겠지요. 게다가 현대의학이 치료하지 못하는 질병은 아직도 수두룩하며,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질병 코드나 병리검사 수치로 취급한다는 불평도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 그런 와중에 한 구석에서는 안수기도와 같은 비과학적 치료가 불쌍한 희생자를 여전히 내고 있기도 하구요. 잘잘못을 서로 따지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세상에는 서양의학도 있고, 질병도 있고, 이런 저런 사람들도 있고, 사기꾼도 있고, 그냥 그렇게 다 섞여 살고 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싯다르타가 생로병사의 고통을 보고서 의사가 되지 않고 수행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근원적 고통을 목도하고 질병만이 아니라 삶 자체를 치유하는 의술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누구의 몫일까요. 바로, 그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과제이겠지요.

켄 윌버는 이 책을 통하여 짧은 시간 만났다 헤어진 아내와의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추억하고, 그 속에서 빛나던 아내의 영성을 찬미하며, 슬쩍 자기 철학의 핵심을 문맥에 섞어 같이 풀어놓기도 합니다. 그런 것도 재미있지만, 악성 종양과 죽음을 매일매일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그들의 사랑은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굳이 오늘내일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병들어 죽고 말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신뢰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새삼 감사하게 됩니다.

※ 번역된 제목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원래 제목인 'Grace and Grit' (우아함과 먼지)가 잠시 곁에 머물다 떠나간 사랑을 향해 그대는 우아하고도, 먼지처럼 덧없구나..하는 탄식과 그리움을 너무도 잘 전달해주고 있는걸요.
r********s 2007.11.22. 신고 공감 14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트레야의 삶, 열정적 평정심
"트레야의 삶, 열정적 평정심" 내용보기
"Grace and Grit" 이 책은 동서양의 위대한 전통과 사상, 종교, 철학, 심리학을 통합하여 내재된 공통성과 본질을 정리한 위대한 지성 캔 윌버와 그 아내 트레야의 사랑과 트레야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기술하고 또 캔 윌버의 사상을 보여 주는 책이다 캔 윌버의 사상을 설명하는 부분은 일번적인 독자를 위하여 기본적이고 개략적인 면을 다루었지만 무척 흥미로왔고 그의 다른 저
"트레야의 삶, 열정적 평정심" 내용보기
"Grace and Grit" 이 책은 동서양의 위대한 전통과 사상, 종교, 철학, 심리학을 통합하여 내재된 공통성과 본질을 정리한 위대한 지성 캔 윌버와 그 아내 트레야의 사랑과 트레야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기술하고 또 캔 윌버의 사상을 보여 주는 책이다 캔 윌버의 사상을 설명하는 부분은 일번적인 독자를 위하여 기본적이고 개략적인 면을 다루었지만 무척 흥미로왔고 그의 다른 저서에 대해서도 호기심을 불르일으키게 했다. 하지만 이 책의 더 중요하고 감동적인 부분은 무엇보다도 트레야의 오랜 세월 암의 재발과 당뇨병 등 여러 질병으로 점철된 시간을 지혜와 용기로 맞써온 그녀의 이야기이다. 캔과 트레야는 만나자마자 서로의 존재를 알아봤고, 일주일 만에 결혼을 약속하여 4개월후에 결혼을 한다. 결혼 한지 1주일 지나 유방암이 생긴것을 알게 되었고 그후 5년후 죽기까지 유방암의 재발과 뇌종양 당뇨병 등 여러 질병의 계속된 고통속에서도 자기의 운명을 담담히 수용하며 삶과 그 모든 것에 저항을 하지 않고 다만 최선을 다했다. 끊임없이 자신의 영성을 개발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도왔으며 자신의 질병치료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 노력했으며 그러면서 죽음에 대해서도 회피하지 않고 마음을 열어놓았다고 할까. 트레야의 말대로 표현하자면 “뜨거운 평정심”을 가지고 삶을 수용한 것이다 살기 위한 의지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 균형을 가지고 내면의 느낌을 따르면서 영성을 키우며 그 모든 시간을 지켜보았다. 그리하여 트레야는 그 고통을 통하여 위대한 도약을 한 것이다. 이승에서의 삷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노화하고 죽어가는 모든 단계를 포함하는 것이다. 삶을 누리는 것도 또한 고통을 받는 것도 그리고 죽어가는 과정도 피할수 없는 삶의 일부분이다. 참으로 성공적인 삷은 잘 사는 것 뿐만 아니라 죽는 것 마저 생의 일부분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적인 삶이란 잘 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범인으로서는 어려운 과제이다. 치열한 자기 수양과 평소에 영성을 개발하고 삶을 관조하는 자세에서 그 토대가 이루어지는 것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트레야의 삶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성공적인 삶의 자세를 제시해준다. 짧은 생에서 오랫동안 병마와 싸웠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자기의 내면을 가꾸고 영성을키웠으며 또한 열린마음으로 관대하고 자유롭게 사랑과 우정을 누렸으며 삶의 모든 부분 특히 막다른 고통조차도 담대하게 용기있게 품을 수 있었던 그녀는 분명 성공적인 삶의 모델을 우리에게 제시해준다.
l****y 2006.03.13. 신고 공감 5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 책의 제목에 관하여...
"이 책의 제목에 관하여..." 내용보기
밑에 리뷰를 보다보니까 약간의 오류가 있습니다. grace and grit 는 우아함과 먼지라고 보기 어려울듯 싶네요. grit〔〕 n. 1 [집합적] (기계 등에 끼이는) 잔모래;왕모래;자갈;거친 가루2 (연마용에 알맞은) 석질(石質)3【암석】 사암(砂岩)의 일종4 《구어》 용기, 기개, 담력, 투지 본 책에서 grit는 4번 뜻 "용기"가 합당할듯 싶네요.   책 본문을 읽어봐도, 켄은 트레야의 죽
"이 책의 제목에 관하여..." 내용보기

밑에 리뷰를 보다보니까 약간의 오류가 있습니다.

grace and grit 는 우아함과 먼지라고 보기 어려울듯 싶네요.

grit

 n
1 [집합적] (기계 등에 끼이는) 모래;왕모래;자갈;거친 가루
2 (연마용에 알맞은) 질(石質)
3암석사암(砂岩) 일종
4구어용기, 기개, 담력, 투지

본 책에서 grit는 4번 뜻 "용기"가 합당할듯 싶네요.

 

책 본문을 읽어봐도, 켄은 트레야의 죽음앞에서 초연하게

대면하는 모습에 깊은 감동을 받는 장면이 여러번 나옵니다.

죽음에 대해 용기있게 감수하는 모습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인것

같아요..

 

또 제가 생각하기에는 책제목이 별로 전문적인 관심이 없는 일반인

들에게 어필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참 괜찮은것 같아요. 약간 통속

적인 면은 있지만요...

 

이 책만 읽어면 진짜 넘 어렵구요, 켄윌버의 무경계가 더 쉽고 구체

적입니다.. 좋은책 마니 읽구 행복하세요... 

YES마니아 : 로얄 o****3 2008.02.2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