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지금 어느 주파수로 누구와 얘기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혼자 라디오 주파수에 맞추고 일방 통행중이신가요?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제목만으로도 왠지 끌리는 책이다. 쓸쓸함이란 주파수는 어떤 것일까...
이 단편집에는 모두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 가장 맘에 드는 단편은 물론 <필름 속="" 소녀="">다. 환상적이면서 미스테릭한 이 작품은 한 남자의 일방적인 얘기다. 남자는 말을 한다. 상대방에게. 우리는 그가 누구와 대화하는지 마지막에 가서야 알 수 있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게 만든다. 궁금하게 만든다. 누구에게 얘기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진다. 필름 속 소녀와 더불어. 단편추리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독특한 것은 이 작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군가에게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다. 그 주파수는 과연 어떤 식으로 맞추게 되는 걸까...
첫 번째 작품 <미래 예보="">에서 소통은 예보가 아닌 생각임을 각인시킨다. 아무런 일도 없이 친구의 말 한마디 때문에 더 소원해진 초등학교 동창인 남녀가 그 뒤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만남 한번 갖지 않았으면서도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슴속에 담고 있었다는 것은 마치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의 풋내처럼 읽는 내내 다가왔다. 그 소통은 단절이 아닌 그런 소통, 그런 주파수도 엄연히 존재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두 번째 작품 <손을 잡은="" 도둑="">은 손을 맞잡은 도둑과 벽을 사이에 둔 도둑질 당할 사람의 소통을 담고 있다. 재미있는, 그러면서 아이러니한 작품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밝은 주파수를 내뿜고 있다.
네 번째 작품인 <잃어버린 이야기="">는 매일 다투고 소원해진, 그래서 어쩌면 사랑이 식어가고 있는 한 부부가 남자의 교통사고로 인해 신경이 살아 있는 오른팔과 손가락 하나만으로 소통하는 이야기다. 아내는 그 남편의 팔에 피아노를 연주한다. 하지만 남편은 의식만 있을 뿐 자신이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통을 단절한다. 그것은 그에게 자살과도 같은 일이었지만 때론 소통의 단절이 다른 소통을 여는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소통에서 어느 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
세상에는 참 많은 주파수가 있다. 쓸쓸함의 주파수, 기쁨의 주파수, 불쾌의 주파수, 즐거움의 주파수... 매일 매일 우리는 어떤 주파수에 자신을 맞추고 살아가고 있다. 다행한 것은 우리가 그 주파수를 맞출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매일 주파수를 맞추고 있었다. 이 작품을 읽고 더 좋은 주파수에 맞춰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쓸쓸함의 주파수는 근사해보이지만 매일 맞출 수는 없을 것 같아 가끔 그리울 때 한 번씩 맞추고 싶다.
작가와의 주파수라는 것이 있어 내가 맞추기만 하면 작가들이 우루루 나와 주면 얼마나 좋을까. 모르고 지나갔을 지도 모르는 책을 알게 해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소통은 이렇게 여기에서도 맞추어져 있다 생각하니 더 많은 전파를 쏘아 올리고 싶은 기분이다. 내 전파를 받아주세요!!! [인상깊은구절] 18p 미래가 보일 때, 어떤 느낌이냐는 질문에 후루데라는 "어두운 밤길에 문득 스쳐 지나가는 길가의 간판 같은 거야"라고 말했다. "그것을 본 순간, 너무 불확실해서, 잘못 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그것이 또 어둠 속에서 사라지면, 그것은 역시 미래에 일어날 일이구나, 그런 느낌이 들어." 168p 터널 속은 어둡지만, 밖은 분명, 맑게 갠 하늘이 계속되고 있을 것입니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세상이 완전히 하얗게 되어, 우리는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름 햇살이 나뭇잎에 쏟아지고, 분명 길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것입니다. 그 속을 달리고 싶습니다.잃어버린>손을>미래>필름> |
| 얼마전에 후배와 대화를 나눴다. 녀석은 내게 왜 일본 소설을 그렇게 열심히 읽는 거냐고 물었는데, 달리 할 말이 없어서 이제 우리 나라 소설에서는 별다른 메시지를 읽어내지 못한다는 요지의 대답을 했다. 반투명 유리를 통해 바라보는 듯 아슴프레한 문장으로 도배되어 있지 않아도, 일본 소설은 내러티브가 분명하고 캐릭터가 확연하고 짧은 단편들에도 갖가지 에피소드들이 포함되어 있어 맘에 든다고도 했다. 처음 일본 소설을 읽을 때는 그런 그들의 사소설적 매력이 혹시 시나리오를 쓰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열심히 읽었다. 물론 생각만큼 도움이 되지는 않았는지 별다른 시나리오를 쓰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이번에 읽은 오츠 이츠는 그저 제목이 맘에 들어서 불쑥 사게 되었다. 그런데 네 편의 소설에는 책의 제목과 같은 소설이 들어 있지 않다. 아뿔싸, 실수한 것이 아닌가, 했는데 의외로 꽤 재밌게 읽힌다. 「미래예보」. ‘애절한 이야기 특집을 하니 하나 써줘’라는 권유를 받고 쓴 소설이란다. 나와 시미즈는 같은 동네 마주보이는 집에 살고 있으며 같은 학년 같은 반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간혹 학교에 빠지는 시미즈를 위해 나는 급식으로 나온 빵을 가져다주고는 했다. 같은 학교, 같은 동네에 사는 후루데라라는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어느날 시미즈와 나는 급식용 빵을 전하기 위해 함께 후루데라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고, 이후 간혹 세 사람이 만났다. 그리고 후루데라는 미래를 예보하는 능력을 자신이 지니고 있다고 했고, “너희 둘, 어느 한쪽이 죽지 않으면 언젠가 결혼할 거야.”라고 미래를 예보했다. 이 말 때문인지 나는 초등학교 이후 점차 시미즈와 멀어지게 되었고 시간은 흘렀다. 나는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프리타로 살면서 아무것도 없는 듯한 인생을 살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병원에 입원한 시미즈와 만나 대화를 나눴고, 며칠 뒤에 그녀의 죽음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렇게 그녀는 죽었지만... 「손을 잡은 도둑」. ‘쓰고 싶었기 때문에 썼다’는 소설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시계 디자인을 하며 살고 있는 나의 동네에 어느 날 부자로 잘 살고 있는 큰어머니와 그 딸이 찾아온다. 여관에서 온천도 할겸 그 동네에서 촬영되는 영화, 그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볼 겸 찾아온 것... 하지만 나는 이들을 그리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설상가상 나의 두 번째 디자인 작품은 동업자인 친구가 난색을 표하면서 제작도 되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리고 나는 결심한다. 그날 낮에 큰 어머니가 가방을 던져놓던 여관의 벽장을 향해 여관의 바깥에서 구멍을 뚫을 결심, 그래서 그 구멍을 통해 가방을 훔칠 결심, 그렇게 훔친 돈으로 기어코 시계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그렇게 여관의 벽에 구멍을 뚫고 가방을 훔치기 위해 손을 밀어넣었는데, 이런 외출한 줄 알았던 큰어머니의 딸(이라고 생각하는)이 덜컥 그 손을 잡아챈 것... 진퇴양난의 순간, 손을 잡은 혹은 손을 잡힌 도둑이 되어버린 그는 도대체 어떻게 그 위기를 헤쳐나갈 것이며, 그 위기가 어떻게 그에게 호기가 되어버리는 궁금하다면 읽어보시라... 「필름 속 소녀」. “무서운 이야기 특집에 무언가 써주세요.”라는 권유를 받고 쓴 소설이란다. 대학교 2학년인 나는 친구의 부탁으로 그 친구의 아버지의 친구인 소설가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한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구어체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계속해서 무서운 이야기를 친구의 아버지의 친구에게 한다. 영화 연구회 회원이었던 나는 어느 날 우연히 8밀리 필름을 발견한다. 그리고 필름을 영사기에 걸어놓고 보다가 5분이나 지났을까, 터널 안으로 사라지는 주인공과는 전혀 상관없이, 화면의 가장자리에 카메라에 등을 진 채 서있는 소녀의 영상을 확인한다. 그리고 선배들을 통해 그 필름에 찍힌 터널에서 소녀의 시체가 발견되었으며, 그 필름 속의 소녀는 필름을 계속해서 볼 때마다 조금씩 몸을 화면을 보는 관객들을 향해 튼다는 것이다. 때문에 회원들은 소녀가 완전히 몸을 틀게 될까봐, 그 얼굴을 보게 될까봐 필름을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봉인해 버렸던 것... 그것이 몇 년의 세월을 거쳐 나에게 왔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필름 속의 소녀의 죽음과 관련한 비밀을 풀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이 모든 것은 친구의 아버지의 친구에게 무서운 이야기가 되어 전달된다. 「잃어버린 이야기」. ‘문득 생각이 나서 썼다’는 소설이다. 어쩌면 애절한 특집을 위해 썼던 소설보다 애절하고, 무서운 이야기 특집을 위해 썼던 소설보다 무섭다. 나는 교통 사고를 당했다. 교통사고가 나기 전까지 나는 아내와 어린 딸과 함께 자인 장모의 집에서 살았다. 나는 아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자주 다투었다. 하지만 교통 사고를 당한 후 나는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까딱거리는 행위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 되었다(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다.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른팔에 느껴지는 따뜻함 정도). 그런 나를 찾아온 아내와 나는 최소한의 행위로 의사소통을 한다. 비록 나는 손가락의 까딱거림을 통해 예스와 노라는 의사전달만을 할 수 있지만(“손가락 예스는 1 노는 2), 그런 나를 위해 아내는 세상의 일을 오른팔 안쪽에 손톱으로 적어 알려준다. 그리고 어느날부터는 (음대를 졸업한 아내의 피아노 연주를 싫어했던) 나를 위해 아내는 나의 팔에 자신만의 연주를 시작한다. 실려 있는 네 편의 소설이 모두 하나의 단편 영화를 보는 것처럼 짧지만 내러티브가 살아 있다. 작가는 작은 공을 하나 가지고 운동장을 일관되게 드리블해서(실은 지금 축구가, 아니 축구같은 연애가 소재로 등장하는 재미난 책을 읽고 있는 중이라서...^^) 돌파하는 것 같다. 불필요한 동작은 하지 않는다. 현란한 묘기를 부리지도 않는다. 그저 유연하게 자신과 공, 그리고 골을 위해서 필요한 것만을 최소한으로 보여준다. 그게 이 책에 실린 소설의 장점이다. 굳이 쓸쓸함의 주파수 따위, 느끼지 않아도 좋은 소설이다... |
|
우선 책에대해 말하기 전에 오츠이치-작가에 대해 말해 볼까나~? 취미가 밤중에 조깅 이란다. 으잉? 하고 보니 -사람들과 마주치기 싫어서...라고. 밤에 달리다가 사람이 오면 나무뒤로 숨고발견되지 않도록 기도 한단다. 그러다 만약 발견되면 쏜살같이 달아난다고.... 이거야 원~~~치한으로 오인 받기 딱좋은....ㅡㅅ ㅡ;; 어쨋든 친구로는 싫은 타입이지만 작가로는 흥미가 일었다. 왠지 작가란 현실과 어긋나야 재미 있는 법이니까...
이책은 제목 답게 사람 마음속의 고독에 대해 잘 표현 했달까? 아닌것 같으면서도 다 읽고 나면 '아~외로움이 살짝 깔려 있었구나... 누구나 한번쯤 느껴 보았을 법한 상황속의 외로움이구나...' 하는것이 읽혀진다. 작가가 소심하다보니 이런 종류의 외로움에 익숙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걸 글로 담기는 굉장히 어려웠을 텐데 상당히 자연스럽게 딱히 드러내는게 아닌 어쩌면...하고 느껴지도록 만드는 필력이 놀랍다.
후기를 읽자니....이사람 글을 쓰면서 마감때 마다 캔을 땄을때 그 옆면의 날카로운 부분으로 자살을 꿈꾸는 모양이다. 아직 성공은 못했지만... 제발...자살 따위는 꿈꾸지 말고 이런 애틋한 느낌의 글좀 계속 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
어디한번 이 작가는 어떤 풍의 소설을 쓰는지 볼까 하고 펼처보게 된 단편집 "쓸쓸함의 주파수" 제목에도 보듯 4편의 단편들은 쓸쓸하거나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이지만 이상한 긴박감과 공포들이 섞여 있어 묘한 재미를 준다. 4편의 단편들이 각각 독특한 소재와 개성이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해본다.
미래예보 - 어린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멋진 작품 후루데라는 역시 탁월한 점장이 었던 것인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어린시절의 이야기
손을 잡은 도둑 - 실업자의 탁월한 심리 묘사와 살짝의 반전이 재미있다. 필름속의 그녀 - 1인칭의 대화형식으로 풀어나가는 공포. 대화형식이지만 멋진 묘사와 범인에 대한 추리와 용서 잃어버린 이야기 - 전신 불구지만 뇌만은 멀쩡한 그남자의 자살법
또 멋진 작가를 알게 해준 멋진 단편집 약간의 공포나 미스테리와 함께 사랑과 소통의 방법을 생각하게 해주는 멋진 작품집이라고 생각해본다. |
|
여름과 불꽃 그리고 나의 사체를 잼나게 읽은 기억이 나 쓸쓸함의 주파수를 집어 들었습니다. 제목이 참 근사하죠 ? 쓸쓸함의 주파수는 미래예보, 손을 잡은 도둑, 필름 속 소녀, 잃어버린 이야기 이렇게 4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미래예보] 고이즈미와 시미즈의 사이에는 그들을 10년이나 어정쩡한 관계로 만들었던 믿거나 말거나 한 예언이 있었고 [손을 잡은 도둑] 주인공과 그 ‘손’의 주인공 사이에는 낡고 물러터진 벽이 있었다. [필름 속 소녀]에서의 ‘소녀’는 영화 필름을 통해 자신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잃어버린 이야기]의 주인공은 큰 교통사고를 당하지만 유일하게 남은 오른팔의 감각으로 바깥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네 가지 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 예언, 손, 필름속모습, 오른팔의 감각 등의 매개체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려 합니다. 원래 단편 안좋아하는데 이 사람의 단편은 그 하나하나가 소설 한권이 주는 많은 느낌을 전해주는 것 같아요 그 어느것 하나 부족함이 없이 만족스럽습니다. 미래예보 - "너희 두 중 어느 한쪽이 죽지 않으면 언젠간 결혼할거야." '나와 마찬가지로, 시미즈도 다른 장소에서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항상 서로를 의식하며 살고 있었다. 이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던 것인가.' 나머지 3개의 단편은 콕 찝어 보여줄 좋은 글귀가 없어 안적은게 아니예요. 맘같아선 이 단편집 전체를 타이핑 쳐 보여주고 싶다는 !! 다 좋지만 그중에서도 잃어버린 이야기의 여운이 쉬 사라지질 않네요. 내가 말하지 못하는 덩어리로 물건처럼 놓여있을 때에도 시간을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소리 없는 어둠 속에 있지만 그 사이에도 세상은 소리와 빛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많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고, 생활하고, 웃거나 울거나를 반복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영원히 잃어버린 광경을 꿈꾸면서 나는 조용히 어둠에 몸을 맡겼다. 오해가 이해로, 미움이 사랑으로 바뀌어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다양한 분위기기로 표현해 냈지만 언제나 남는것은 쓸쓸함 그 속에 깃든 게 바로 우리네들의 진심인 듯 ~ |
|
さみしさの周波数 :: 乙一 사람 없이 못사는 천성 덕에(그 누가 아니겠냐만은) [소통] 에 관한 이야기에 쉽게 혹해서 제목에서부터 첫눈에 매료 되어 작년초인가, 서점 가판대 앞에 서서 단숨에 다 읽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고 돌아서는데 서점에 대한 미안함은 없었어도(!!) 영영 그 감흥이 가슴에서 내리질 않아 마치 첫눈에 혹한 애완동물 마냥 데리고 돌아와 이후로도 애지중지 돌보고(!) 모셨더랬다. 감상문을 쓰면 그 책은 웬만해선 밀어 넣어두는 탓에 이 책은 그 핑계로 별다른 감상글도 남기지 않았더랬다. (어차피 리뷰도 아니고 서평도 아닌 잡설만 쓰고 있는데, 그냥 애정도 라도 드러내 보일걸!) 책에 대한 감상문이야 여느 책을 읽고 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지만, [쓸쓸함] 을 [소통] 하는 이야기에 관해선 너무나도 쏟아내고 싶은 말이 많아서, 행여 두서없는 글이 될까, 혹은 미처 못다한 이야기를 남기지 않을까 전전긍긍 하는 마음에 오히려 더 미뤄두게 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안타까움이 쌓여져 가는 책이 되버리고 말았다. 까짓거 한번 쓰고 나서 나중에 수정 하거나 보충 하면 되지! 하는 체념 반 타협 반의 심정이 되기 전까진. 의외로 흔한 경험이다. [○○가 너 좋아한대] 라고 들어 버리면 그동안 그닥 신경도 안썼던 존재라도 그날부터 두드러진다. [좋아] 라는 말에 주술적 효과라도 있는지, 설령 내 입맛에 안맞아도 어째 쉽게 버릴 수가 없다. 상대방이 주는 마음 만큼 보답도 못하고 때로는 부담 스럽다고 투덜 거리면서 정작 그 상대가 힘들다고 마음 끊어 버리면 되려 아쉬워 하고 원망 하는 건 이쪽이 될 때도 있다. 절실히 꿈꿔왔던 사랑도 아닌데 그 마무리는 항상 버려진 기분 마냥 씁쓰름 하다. 다른 경우도 있다. 어떤 외로워 보이는, 홀로 독백 하는 듯한 존재를 우연히 본다. 왠지 자신과 공명 하는 것 같아서, 과감히 먼저 손을 내밀어 아는 척 하고 친한 척을 한다. 어느덧 스스로 그것을 [상대를 좋아하는 감정] 이라고 착각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정작 상대는 무엇을 재고 있는지 내가 주는 만큼 돌려주지를 않는다. 누군가 도망가면 쫓아가고, 누군가 쫓아오면 도망간다. SM적인 밀고 당김으로 [관계] 에 지쳐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못하고, 세상의 누군가가 나만을 절실히 좋아해 주길 바라고 내가 절실히 좋아하게 될 대상을 꿈꾸게 된다. 그래서 여전히,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고, 받는다. 그것을 통칭, [쓸쓸함의 주파수] 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방적이면서도, 복잡한 감정의 노이즈를 포함한, 불완전한 자아의 구조 신호. 채널을 열어 파도처럼 몰려 들어오는 전파에 무얼 맞출지 겁을 집어 먹기도 하고, 우연히 맞춘 채널에서 흘러 나오는 타인의 감정으로 예기치 않은 인생의 변혁을 일으키기도 한다. 철저하게 이기적인 바램만을 담아 보내는데도, 그다지 원하지 않은 신호를 공격 받는 마냥 강제 수신 하는데도, 그 모든 신호가 나를 변하게 하고 누군가를 변하게 한다. [관계의 유기성] 이 그로써 증명 된다. 얼핏 개별 장르처럼 보이는 이 소설집의 단편들은 아마도 그것을 공통 분모로 삼고 있는게 아닐까. 친구의 기묘한 말장난으로 강제로 맞춰진 전파가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채널이 되기도 하고 (미래예보) 실수로 연결 되었던 라인이 인생의 대반전을 가져 오기도 하고(손을 잡은 도둑) 반쯤은 운명적으로 정신이 홀렸던 울림 덕에 누군가의 인생을 바로 잡아 주기도 하고 (필름 속 소녀) 유기적이기 때문에 굴레가 되기도 하는 그 주파수를 희생으로 차단 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이야기) 단 하나도 의미 없는 관계가 없다. 스쳐 지나가는 군중 속에서 항상 홀로 외롭고 쓸쓸한 것 같은데도, 사실 언제나 누군가와 연결 되어 있다. 차단하고 거부하고 나홀로 살고자 하는 순간에도 나는 늘 절박하게 구조 신호를 보냈고 누군가가 받아 주었다. 비록 반드시 [소통] 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해도, 원하는 채널에 딱딱 맞출 수 없어 실망을 거듭한다 해도 그 주파수 덕에 나는 생존을 확인하고, 감사하고, 살아간다. 그러니 이것을 일인칭의 [쓸쓸함] 으로 생각하지 말자. [쓸쓸함들의 무한한 공유] 라고 생각하자. 내 주파수를 누군가가 받기를 절실히 원한다면, 나부터가 보다 더 열린 채널이 되어야 하지 않나. * * * * * [내 신작은 이것을 마지막으로 당분간 발표되지 않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덮으려는데, 작가의 후기에 이런 선언 글귀가 있다. 이게 무슨 독자를 기만하는 협박성 문구인가! 이렇게나 훌륭한 단편집으로 마음을 꼬드겨 놓고선!! 정말로 일시 절필했나 다급해진 마음에 팬페이지를 찾아보니, 왠걸, 그야말로 낚였다. 이후에도 착실히 신작을 발표하고 있더라. 그럼 그렇지. 휴우. 그런데 좀처럼 국내에는 번역될 기미조차 안보여서 초조 해졌다. 그냥 원본으로 읽어야 하나, 하고. 다행히! 이제서야! 오츠 이치의 주요작이 신간으로 발간 되었다! 늦은 감은 있어도 이리 반가울 데가. 게다가 오츠 시리즈를 연달아 발간할 예정이라니, 이제나 저제나 하고 목놓을 일도 없어져서 광희난무. 오시이 마모루의 딸과 결혼 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는데, 오시이 감독이 손주 볼 나이라는 것에 우선 놀랐고, 이 작가가 이제 갓 서른을 넘었다는 것을 새삼 각인해서 놀랐다. 작가로서 전성기 라고 할 수 있는 나이에 안정된 기반까지 얻었으니, 앞으로의 행보가 더더욱 기대 되누나. |
|
오츠이치...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오히려 좀 다작을 해줬으면 할 정도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책에는 4개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1. 미래예보 좋아하는 동급생이랑 누가 죽는 일이 없다면 결혼할 것이라는 예언을 듣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딱히 신용할 수 없는 예언가의 예언이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예언... 믿고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믿어버리에는 찝찝한 그런 예언.. 예언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의지와 함께 있어야지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2. 손을 잡은 도둑 나쁜 마음을 먹고 도둑질을 하려다가, 벽을 사이에 두고, 상대의 손을 잡게 됩니다. 들켜버린 도둑질의 끝에서 주인공은 상대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을 받아 정신 차리고 착하게 살게 됩니다. 오츠이치판 장발장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필름 속 소녀 영화 동아리방에서 우연히 찾은 옛날 필름. 그리고 그 필름 속에 담긴 옛날에 살해당한 소녀의 마지막 모습. 주인공은 그 필름을 바탕으로 소녀의 사건을 추적합니다. 그리고 드러나는 사건의 진실... 이혼하고 떠나버린 아버지를 찾아간 소녀에게서 옛날 아내의 모습을 발견한 아버지는 그만 소녀를 살해하고 자살했던 것이지요. 마지막까지 소녀가 아버지에게 남기고 싶었던 것은, 억울한 복수가 아닌, 그런 아버지지만 용서하고 싶어했다는 사념이었답니다. 4. 잃어버린 이야기 사고로 모든 오감과 운동능력을 잃어버리고, 오직 손가락 하나만을 움직일 수 있게 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미워했던 아내는 사고가 나자, 오히려 자신을 사랑으로 보살펴주고, 그런 아내에게 너무나 미안했기에 남자는 손가락을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 고독의 세계로 숨어들어갑니다. 그것이 자신이 마지막으로 해 줄수 있는 아내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말도 안되는 것 같은 이야기지만,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떡일 수 밖에 없는 마성의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4가지 단편집이었습니다. 읽어갈 수록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쉬운 그런 책이었습니다 |
|
오츠이치의 충격적이었던 소설집 ZOO에 압도되어서 국내에 출간된 그의 소설을 모두 구입하였다. 오츠이치의 작품이기때문에 읽기전에 기대를 하였지만, ZOO보다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쓸쓸함의 주파수는 분명 ZOO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좀더 감성을 자극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의 울림과 감동을 준달까..그 감동이라는 것이 상당히 진하다. 지금의 나의 상황과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그만큼의 감동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미래예보'는 그야말로 위안이며 치유였다. 고이즈미처럼 인생의 목표도 없이 그저 청춘을 탕진하고 있는 나는 극도의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하루하루를 슬프게 살아간다. 항상 남과같은 멋진 삶을 질투하고 부러워하며 그에 비해 초라한 나를 자학하는 행위의 반복..특히나 요즘들어 이런 기분을 많이 느꼈고 그로인해서 난 깊은 어두움속에서 떨고 있었다. 이런 나를 괜찮아라며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이 소설.. '의미 없는 인생은 없어. 나는 그렇게 생각해' '네가 있어서 다행이었어. 그러니까 울지 말고 살아. 이제부터 너는 태양이 비추는 인생을 걸어갈 테니까..' 이러한 구절 하나하나가 큰 힘이 되었다. 지금의 나를 다시금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이런 나를 보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전부터 누군가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그래서 서로의 어두움과 밝음 모두를 나누어 가질수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멋진일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이 단편에 나오는 고이즈미와 시미즈처럼.. 어쩌면 관계라는 것은,서로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의 위안이 되길 원하고, 누군가에게 위안을 받기를 원한다.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길 바라는 것...그렇기 때문에 소통이 소중한 것 같다... 투명하고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잘 배어 있었던, 너무도 좋았던 단편이었다.
손을 잡은 도둑은 오츠이치의 기발함과 유쾌함이 돋보였던 작품이었다. 역시나 작가의 상상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단편...정말 그의 그런 상상력과 필력이 너무나 부럽다... 한번의 우연한 만남(?)으로 인해 뜻밖의 좋은 일을 경험하게 된 주인공.. 위기상황에서의 주인공과 소녀의 대화가 무척이나 재미있었다.웃기기도 했고... 만남이란 소중한 것이라는 걸 다시한번 느끼게 해준 단편...
무서운 이야기 특집으로 썼다던 필름 속의 그녀는 역시나 으시시했다..마치 링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영화를 반복해서 볼때마다 영화속에서 뒷모습만 보이던 소녀가 조금씩 앞을 보게 된다... 미스테리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서 매우 흥미롭게,무섭게 읽었던 단편이다... 소녀의 간절했던 염원을 주인공은 알수없는 힘에 이끌리듯 이뤄주게 된다...
마지막 단편은 참으로 쓸쓸하고 어둡고 무거웠던 작품이었다. 그는 일생을 어둠 속에서 살았다. 들을수도 말을 할수도 없다.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떠한 감각도 느낄 수 없고, 오로지 의식만 있을 뿐이다. 그의 유일한 소통 도구는 자신의 오른팔과, 손가락이다. 그는 자신의 오른팔과, 손가락으로 아내에게 대답을 하고 아내가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다. 아내는 그의 팔을 피아노삼아서 연주했고, 팔에 느껴지는 촉감을 통해서 음악을 상상하는 것이다. 소리를 통해서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닌 촉감으로 음악을 듣는 주인공을 보면서 놀랐다. 이러한 상상이 마음이 들었다.
그는 의식만 살아있는 온통 어둠으로 뒤덮힌 세상속을 지극히 쓸쓸하고, 고독하게 살았다. 어쩌면 사람들은 이 단편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끝이보이지 않는 어둠속을 조금씩 조금씩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상처받기도 하면서, 때로는 행복하게..그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놓아버리지 않는 것,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는, 애절한 생각을 해보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은 '미래예보'였고 나머지 세작품도 만족스럽게 읽었다.. 소통에 대해서, 삶의 재생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만들었던 오츠이치의 쓸쓸함의 주파수 꼭 읽어보시길.....
|
| ''너밖에 들리지 않아''를 읽고 나서 오츠 이치라는 작가의 굉장한 팬이 되었는데, 이 작가의 또 다른 책을 찾다가 이 책'' 쓸쓸함의 주파수''를 알게 되어 곧바로 사 읽었다! 개인적으로 흐지부지한 결말을 굉장히 싫어하는데 이 책의 마지막 이야기가 그런 결말이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는 필름 속 소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고, 끝에서는 시원하게 반전?! 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이 조금 있는 것 같다. 다른 이야기들도 그런대로 마음에 들고... 이 책보다는 ''너밖에 들리지 않아''가 조금 더 감동적인 듯... ''너밖에 들리지 않아''도 꼭! 읽어보시길!! 어쨌든 돈이 아깝지 않은, 괜찮았던 책~~! |
|
책을 읽으면서 한번 새로 만났다가 또 다시 만나는 작가가 많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며, 오츠 이치의 이름이 익숙하단 생각을 했다. 시집이야말로 같은 시인의 다른 시집을 한번이라도 다시 만나는 일이 반드시 생기기를 염원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외의 책들도 한번 읽었던 작가의 글을 또 선택하도록 마음에 드는 일이 흔한 것은 아니다. 근데, 내가 오츠 이치라는 이름을 어디서 봤더라 하고 생각하면 무슨 책을 읽었는지 분명하게 떠올르는 것은 아니라 답답한 마음이 좀 들었다.
'쓸쓸함의 주파수'는 지난 7월 말 경 앓았던 우울-쓸쓸함의 영향 아래에서 고른 책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지난 번 시집처럼 제목을 보고 골랐다. 시집은 보통 서가에서 고르는 편이지만 책은 전부터 읽어볼까 하고 리스트에 올려놨던 제목들 중에서 고르기 때문에 정말 무작정 고른 것은 아니다. 때문에 제목을 보고 책을 골랐지만 오히려 제목과 비슷한 감상을 떠올릴 수 없도록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감성적인 내용도 더러 있었지만, 우울-쓸쓸을 파고들어갈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짧은 단편들도 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흥미롭고 하나하나 짜임새가 깔끔한 편이라 읽기 좋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일본 특유의 섬세한 감성, 사춘기 심리를 잘 묘사해낸 단편인 '미래예보'였다. 마치 짧은 순정만화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어느 한 남자의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서로 한마디 말을 제대로 주고 받거나 감정을 표현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를 잔뜩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단 둘만은 알고 있는- 그만큼 진지하고 긴장된 분위기를 아주 잘 담아냈다. 영화로 치면 '러브레터'같은 작품이 연상된다. 두 주인공이 도서실에서 서로 눈빛을 주고 받는 느낌이. 풋풋하고 아련한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수수께끼 같은 아이, 전학생 후루데라는 자신이 미래를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그의 말을 미심쩍어 하면서 긴가민가 하는데, 아무래도 그 애의 이야기는 허술한 점쟁이가 "어렸을 때 크게 아팠던 적이 있을거야." 하고 말하는 것 같은 면이 있어 그의 말을 믿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그가 나와 동급생 시미즈를 두고 그가 본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 날 이후로 아주 먼 미래에 이르기까지 나는 시미즈를 의식한다. 내색하지 않으려 애를 쓰지만 후루데라가 말해준 미래는 나와 시미즈를 옭아매어 떨어지지 않고 두 사람을 이어놓았다.
[ "또 미래가 보였어." 그는 이윽고 눈을 깜박이고, 시선을 나에게 향한 채 말했다. 정말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나는 후루데라가 단순한 거짓말쟁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건성으로 흘려들으면서 끄덕였다. "듣고 싶어?" "별로." 그렇게 대답하자 시미즈가 내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니, 듣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저 말이지." 그는 말했다. "너희 둘, 어느 한쪽이 죽지 않으면 언젠가 결혼할 거야." ]
이 특유의 분위기가 침전되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달큰한 여운을 남기는 것이 좋았던 단편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잃어버린 이야기'라는 단편이었다. 이건, 영화 '비밀'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이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기성의 것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 과연 좋은 것일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 비슷한 흐름과 분위기인데 설정이 독특해서 흥미롭게 읽었다.
오츠 이치의 글들은 하나같이 짧은 내용 안에 꽉 차여진 짜임새를 가지고 있어서 읽는 사람이 순식간에 그 내용에 빠져들었다가 또 바로 다음 이야기로 금새 옮겨가게 만든다. 일본책 특유의 분위기가 있지만 그 분위기를 싫어하거나 질린 것이 아니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절판된 것으로 나오는데, 구할 수 있다면 한권 두고 읽고 싶다. '미래예보'는 청춘물을 좋아하는 감성 탓인지 참 마음에 들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