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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의 사고』, 에릭 사댕 한 달 전쯤, Ray-Ban 메타(Gen 2) AI 안경을 비롯한 스마트 안경이 이번 수능 시험일 반입 금지 물품으로 지정됐다는 뉴스를 보았다. 시험장까지 침투한 AI라니, 낯설면서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무언가를 쓰거나 답을 찾을 때 챗GPT나 Gemini부터 켜는 모습을 너무도 쉽게 보게 된다. 나 역시 그 편리함을 누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한켠이 늘 불편했다. 분명 유용한 도구인데, 이 편리함 뒤에서 우리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조금씩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막연했던 불안의 언어를, 나는 이 책에서 찾았다. 에릭 사댕은 인간을 다른 존재와 구분 짓는 것은 "사유와 자유를 행사하는 일인칭 주체자로서의 발화 능력"(p.15)이라고 말한다. 책의 첫 장이 '언어'에서 시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계가 대신 쓰고 말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질수록,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은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더 가까이 다가왔다. 저자는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를 언급하며 학생들의 읽기와 사고 능력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노력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배움의 과정 자체를 점점 회피하게 되는 현실을 짚는다. "더 넓게 보면, 노력과 참여도가 떨어진다는, 즉 게으름과 경솔함이 만연한다는 말이다."(p.229) 책을 읽으며 특히 와닿았던 대목은 이 부분이었다. "AI는 우리가 무슨 질문을 던져도 극도로 개인화된 답변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답변을 찾으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게 된다. 영구적인 자기만족과 태만이 우리의 어리석음을 전체적으로 퍼지도록 만드는 데 매우 튼튼한 기반이 된다."(p.238) 교육자로서도, 엄마로서도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편리함이 어느 순간 '성장의 생략'이 될 수 있다는 것. 쉽게 얻은 답은 쉽게 잊히고, 스스로 생각해보지 않은 문장은 결국 자신의 문장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 책이 AI를 쓰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AI는 이미 우리 삶에서 떼어놓기 어려운 도구가 되었고, 잘 활용한다면 배움의 폭을 넓혀줄 수도 있다. 다만 답을 너무 빨리 얻는 데 익숙해질수록, 스스로 생각하고 헤매고 문장을 만들어가는 과정까지 함께 놓치게 되는 건 아닐까 싶다. 틀려도 좋으니 먼저 자기 생각을 말해보고, 오래 읽고,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 앞에 조금 더 머물러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책은 마지막에 일곱 가지 선언문을 제시하며, 우리가 지금 무엇을 지켜야 하고 어떤 태도로 행동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대로 빈껍데기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요구하고 행동하여 고유성을 지킬 것인가?" 결국 AI 시대에 지켜야 할 것은 정답을 얼마나 빨리 찾아내느냐보다,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하고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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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인간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은 창의성이나 감정을 떠올리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시간'이라는 단어를 오래 붙잡게 됐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가장 확률 높은 답을 만들어 낸다. 반면 인간은 시간을 들여 경험하고, 실패하고, 수정하며 자기 생각을 만들어 간다. 비효율처럼 보이는 그 시간이 결국 한 사람만의 사고를 만든다. <멸종 위기의 사고>는 AI를 비판하는 책이라기보다, 인간이 스스로 사고하는 일을 얼마나 쉽게 기술에 넘겨주고 있는지를 묻는 책에 가깝다. 지난번 읽었던 <읽기의 위기>보다 훨씬 천천히 읽혔다. 여러 번 책을 덮고 생각을 멈추게 만드는 책이었다. 계속 남아 있는 한 가지 질문, 우리는 지금 AI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 질문을 붙잡고 있다 보니, 발터 벤야민이 도시를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구분했던 세 가지 인간상과연결해 보게게 되었다. 벤야민은 19세기 자본주의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경꾼, 관찰자, 그리고 산책자라는 서로 다른 태도로 설명했다. 세 사람 모두 같은 도시를 걷지만,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구경꾼은 눈앞의 자극에 쉽게 이끌린다. 수많은 볼거리와 정보 속에서 자신의 기준보다 순간의 흥미를 따라 움직인다. 결국 생각하기보다 소비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관찰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멈춰 서서 살펴보고, 기록하고, 현상을 이해하려 한다. 눈앞의 정보를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한 번 더 생각하는 사람이다. 산책자는 조금 더 다르다. 군중 속을 걷지만, 군중에 휩쓸리지 않는다. 자신의 속도로 거리를 거닐며 서로 무관해 보이는 풍경과 경험을 연결해 스스로 의미를 만든다. 도시를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시를 읽어내는 사람이다. AI를 사용하는 우리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AI가 내놓은 답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 누군가는 그 답을 검토하고 비교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AI를 하나의 재료로 삼아 자신의 경험과 질문을 더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연산해 가장 가능성이 높은 답을 제시한다. 하지만 인간은 조금 다르다. AI는 가장 높은 확률을 계산하지만, 인간은 실패할 가능성을 알면서도 자신의 선택을 할 수 있다. 효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선택. 때로는 돌아가는 길을 택하고, 정답보다 자신의 기준을 믿어 보는 일. 어쩌면 사고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AI는 완성된 형상을 빠르게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 형상에 어떤 의도를 담을지, 왜 그것을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삶과 연결할지는 대신 결정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은 AI를 잘 사용하는 방법보다 AI 시대에도 산책자로 살아갈 수 있는가를 묻는 책처럼 읽혔다. 우리가 몸을 사용하는 방식은 결국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고,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이며, 생각과 경험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결국 인간의 사고는 머리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 몸으로 살아낸 시간, 실패를 감수하며 내린 선택, 그리고 그 경험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를 아는 능력이 아니라, 구경꾼처럼 소비하지 않고, 관찰자처럼 기록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산책자처럼 자신의 기준과 속도로 세계를 해석하는 힘. 그리고 AI가 계산한 가장 높은 확률보다, 자신이 믿는 하나의 가능성을 선택하는 용기. 어쩌면 그것이 AI 시대에도 인간의 사고가 멸종되거나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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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처음 갖게 되었을 때 나는 ‘기능을 100퍼센트 활용해야 진정으로 스마트한 인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단지 일부 기능만 쓰는 것은 손해처럼 느껴졌고, 새로운 기능을 익히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AI가 등장하자 상황은 더욱 급박해졌다. 수많은 활용법 도서들이 쏟아져 나오며 “빠르게 배우지 않으면 시대에 뒤쳐진다”는 압박을 주었다. 그 불안은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에릭 사댕의 『멸종위기의 사고』는 다른 관점을 제시해 주었다. AI를 활용하지 못하는 두려움보다, 그것에 지나치게 의지해 사고 자체가 사라지는 두려움이 더 크다는 것이다. " “ 창조하는 것은 바로 선택하는 것이다” 화가는 특정한 재료와 화폭크기, 물감과 선을 선택하고, 작곡가는 특정한 리듬, 음정, 음색을 선택하고, 작가는 특정한 서사를 구성하는 동기, 극적구조, 단어의 색감을 선택한다. 폴 발레리" 멸종위기의 사고,에릭 샤댕,헤이북스, p57 “멸종위기의 사고” 라는 책 제목만 들어도 두려움이 앞섰다. ‘생각이 없어지다니, 모두 로봇이 된다는 말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가끔 서평을 쓰다 글이 잘 정리되지 않는 구간을 쳇지피티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다. 그가 내 글을 마무리해 줄 때면 정돈된 느낌이 들어 좋았다. 그러나 몇 번 시도해 보니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비슷한 표현이 반복되게 나오거나 글이 정돈된 느낌은 있지만 나만의 호흡과 리듬이 희미해지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내가 일상을 기록하는 소셜미디어 글을 본 지인들은 재미있다고 했다. 한 지인은 서평을 쓰며 조금씩 다듬어진 글을 보고 “네 글 같지 않다”는 말을 했다. 그는 날것의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인 듯하다. 사실 맞춤법도 틀리고, 단어 선택도 어색할 때가 많았다. 그저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빨리 글로 남기고 싶어 쭉쭉 써내려간 기록이었다. 독자를 위한 글이라기보다 일기 같은 글이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가독성을 위해 문단을 나누고 반복되는 표현을 줄이다 보니 글이 그럴싸해졌다. 동시에 나만의 날것의 느낌은 조금 사라진 듯했다. ‘나만의 담화가 사라진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렇지만은 않았다. 내 생각은 여전히 내 안에 있고, 표현은 더 풍부해졌으며 글은 조금 더 정돈되었을 뿐이다. 결국 나는 여전히 나만의 언어로 서평과 일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나는 나름 창의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글을 쓰면서,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림이나 악기 대신, 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다정한 말들을 골라 글로 담아내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창의적인 삶을 살아내는 방법이었다. 이런 아름답고 창의적인 사고들이 AI로 인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에릭 사댕의 경고를 함께 읽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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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 아이크는 “지옥에 익숙해진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삶을 바꾸라는 요청에도 무심해지는 면역이 이미 생겨 있다.”라고 한다. 서문에 있는 이 글이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가 무엇에 익숙해지고 무엇에 무심해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게 했다. 지금 AI는 모든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보이고 이는 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과 AI 활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대학에서 교수님들은 학생들의 AI를 활용하여 과제를 그대로 복붙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과제 속에 암호를 넣어 네가 AI라면 과제에 특정 단어를표기하도록 명령어를 넣어서 과제를 제시하기도 한다고 한다. 우리는 AI로 편리하기도 하지만 그 편리함 속에 편법을 찾아내기 위해 또 다른 명령어를 입력하고 있는 샘이다. 우리에게 학교의 의미가 지식만을 얻는 곳이 아니다. 학교뿐 아니라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겪어보고 느끼고 깨우쳐가는 과정 없이 정답만을 요구하고 정답만 외쳐대는 삶이 과연 행복한 삶인지 이 책을 읽고 우리는 나의 삶 속에 AI가 어떤 범위로 다가와 있고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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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일자리를 빼앗는 미래를 그 조급함 속에서 AI를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AI는 우리가 무슨 질문을 던져도 당장의 달콤한 편리에 빠져
그가 제시한 타나톨로고스라는 "인간의 언어를 닮았지만 생성형 AI가 만들어 내는 문장이 AI가 사람의 언어를 대체하면서
기술이 열광의 대상이 된 시대에 바로 지금이 올바른 방향을 잡아가는
중요한 것은 AI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있는가' 하며 경계하는 태도다. 기술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지,
AI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보다, 끝까지 스스로 해야 하는가. 기술의 거센 파도 속에서 에릭 사댕의 경고는 지나쳐서는 안 될
#에릭사댕 #멸종위기의사고 #ai시대 #생각하는힘 #헤이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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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포기하고 있을까? 에릭 샤댕의 '멸종 위기의 사고'는 인공 지능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과 무관심으로 인한 위험성을 경고한다. AI는 편리함, 효율성, 혁신을 말하며 완벽한 세상을 떠들지만, 인간을 점점 더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한다. 어느 날 사람들이 왜 이렇게 AI에 열광할까? 의문을 품게 되었다. AI를 학습시키기 위해 모든 걸 수집하고 있다고 한다. AI 가 나도 모르게 내 블로그 글을 인용하고 나의 모든 것을 수집해 가는 걸 보고 무서움을 느낄 때 이 책을 만났다. 챗GPT 출시된 지 4년이 지났다. 지금이라도 인공 지능이 어떻게 우리를 위험에 빠트리는지 정확히 알고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에는 이러한 내용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p177 “우리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 때문에 멸종의 위기에 있는 동식물 얘기를 종종 해 왔다. 이제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일부인 소중한 능력이 소멸하는 현상도 깊이 생각해야 한다.” P238 “AI는 우리가 무슨 질문을 던져도 극도로 개인화된 답변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 답변을 찾으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게 된다.” 근육을 사용하지 않으면 근손실이 오는데 뇌를 사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인간은 편리함을 얻는 대신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포기하고 있다. AI에게 생각과 판단까지 맡겨 버리면 우리의 뇌는 점점 퇴화할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까?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AI 시대 필독서로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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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 ‘왜?’ 질문을 끝없이 하는 아들에게 챗GPT를 사용하면서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심 불안했다. 지금 직업의 70%가 사라질 것이며 앞으로는 모두가 직업 활동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 앞에서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을 안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첫 서문을 읽으며 머리를 세게 맞은 듯했다. 자신을 포기하고 내려놓은 것도 모르고 사는 나의 모습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우리가 주체성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려놓고 있다고 말한다. AI가 대신 쓰고 판단해 주는 사이 사유하고 부딪히는 과정 자체가 조금씩 생략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서술은 위임과 인간성 상실을 거의 일직선으로 연결해, 도구를 주체적으로 판단하며 쓰는 사람조차 매도의 대상이 된 듯한 인상을 준다. AI가 인간을 업그레이드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지워버리는 것 같아 아쉽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 이전의 직업들과 기술들이 무용지물이 되었던 역사는 늘 있었지만 결국엔 인간들은 각자 자리에서 자신만의 길을 다시 찾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저자의 설득은 여전히 유효하다. 기술의 편리함을 예찬하는 목소리가 넘쳐나는 지금, 잠시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묻는 이런 시선 하나쯤은 필요하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인간 고유의 사고와 창조 능력이 기술에 위협받아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아이를 키우며 기술과 교육의 접점을 고민하는 부모라면, 이 책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해 볼 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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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쓴 글을 읽은 누군가가 물었다. “AI가 쓴 글 아니에요?” 뜻밖의 질문이었다.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오래 머뭇거렸고,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을 지우고 다시 썼다. 단어 하나를 고르면서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몇 번이나 되물었다. 그렇게 완성한 글이었다. 매끄러운 문체가 인간의 손을 떠난 글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사실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사람의 언어에는 완성된 결과만으로 드러나지 않는 시간이 스며 있다. 망설이고, 고치고, 다시 고르는 동안 한 사람의 사유도 함께 자란다. 문장에는 글자보다 먼저 머뭇거림이 새겨진다.
에릭 사댕의 『멸종 위기의 사고』는 생성형 AI가 인간의 사고에 가져온 변화를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이전의 디지털 기술이 정보의 검색과 처리를 도왔다면, 생성형 AI는 언어와 이미지의 생산까지 수행한다. 무엇을 읽고 선택할지, 어떤 답을 믿을지, 어떻게 표현할지까지 기술의 도움을 받으면서 스스로 판단하는 과정은 점점 짧아진다. 사댕이 말하는 사고의 ‘멸종’은 이러한 변화가 일상에 스며드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빠른 응답에 익숙해질수록 질문을 품고 숙고하는 순간도 짧아진다. 책장을 덮은 뒤에도 한 가지 생각이 오래 남았다. 생각에도 머무는 시간이 필요하다.
도서관에서 일하다 보면 그 느린 시간을 자주 목격한다. 책 한 권을 찾으러 왔다가 엉뚱한 서가 앞에 멈추고, 우연히 펼친 한 페이지에 붙잡혀 한참을 서 있는 학생을 본다. 처음 품었던 궁금증은 또 다른 물음으로 이어지고, 손에 들린 책도 어느새 바뀌어 있다. 서가 사이를 헤매는 동안 사고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지를 뻗는다. 나는 이런 머무름을 ‘사유의 체류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책과 책 사이를 서성이는 동안 처음의 물음은 조금씩 깊어진다. 빠르게 도착한 답보다 오래 품은 질문 하나가 마음에 더 긴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생각은 때로 정답으로 향하는 직선보다 서성이는 곡선 위에서 깊어진다.
그래서 나는 조금 서툴더라도 내 언어를 오래 붙잡고 싶다. 물음을 만들고, 얻은 답을 곱씹고, 떠오른 생각을 나만의 표현으로 옮기는 과정을 지키고 싶다. 한 문장을 쓰기까지 망설였던 순간과 지웠다가 다시 쓴 흔적도 글 속에 고스란히 스며든다. 누군가 다시 내 글을 읽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네. 제가 오래 생각해서 쓴 글이에요.” 빠르고 정확한 응답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답 앞에서 서성일 줄 아는 능력은 더욱 귀해질 것이다. 질문과 답 사이에 오래 머문 사람의 언어에는 그만의 결이 생긴다. 머뭇거림은 생각이 사람 안에서 숙성되는 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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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미래보다 더 두려운 것은,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을 조금씩 기계에 넘겨주는 현재인지도 모른다. 생성형 AI는 정보를 찾는 도구를 넘어 글을 쓰고 이미지를 만들고 판단과 선택까지 대신하기 시작했고, 그만큼 우리가 직접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생각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줄어든다. 이 책은 기술의 발전 자체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너무 쉽게 위임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는다. 결국 문제는 AI가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디까지 생각하기를 포기할 것인가에 있다. 사람들은 위의 문단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상한 지점이나 불편한 문구, 어색한 표현이 있었을까. 서평을 쓰기 전, 이 책에 대해 한 문단으로, 서평이라 생각하고 정리해 달라고 하자 챗GPT가 1초 만에 내놓은 답이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 간결하고 정확하게 정리되어 있어 말문이 턱 막힌다. 한 문단이라는 제한 없이 추가적인 명령어를 잘만 넣는다면 제법 그럴싸한 한 편의 글도 만들어 줄 것 같아 무서워진다. AI의 도움을 받아 에세이를 쓴 집단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에세이를 쓴 집단을 비교한 연구가 있다. 완성된 글의 수준보다 흥미로운 것은 글을 쓰는 동안 참가자들에게 일어난 일이다. 직접 글을 쓴 사람들은 이야기를 엮고, 논리를 배열하고, 적절한 단어를 고르는 동안 활발한 뇌 활동을 보였다. 반면 AI를 활용한 집단에서는 상대적으로 낮은 뇌 연결성이 관찰되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글에 대한 ‘소유감’이었다. AI의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쓴 문장을 정확히 기억하거나 자신의 글이라고 느끼는 정도가 낮았다. 생각을 외부에 맡기는 순간 결과물은 빠르게 얻을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내 안에 남는 것은 줄어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일은 이미 우리 일상에서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 그로 인한 생물의 멸종만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우리가 가진 소중한 능력들이 사라지는 ‘사고의 멸종’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생각하고, 의심하고, 판단하고, 적절한 언어를 찾아 헤매는 능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학습하고 실패하며 어렵게 내 것이 된 능력들이다. 편리함을 얻는 동안 그것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퇴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의 마지막에서 힘주어 제시하는 일곱 가지 요구사항과 행동강령을 반복해 읽는다. 기술을 거부하고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을 기계에 맡기고 무엇만큼은 끝까지 내가 할 것인지, 지금 여기에서 경계를 다시 정하자는 요구에 가깝다. 나 역시 이 책을 덮으며 그 경계를 생각한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으로 남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작고도 중요한 선택인지 모른다.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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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탄생과 성장.파급력과 파괴성을 실시간으로 마주하는오늘, 인간을 위한다는 선의적 표현을 구분할줄 모르고 선택의 기준도 방지턱도 없이 광속으로 몰려든 이들의 속도를 조절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AI와의 러브스토리까지 진지하게 수용하는 세상에서 그들에겐 이미 필요의 충분 조건들을 다 채우고 나타난 귀인이고 선지자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것같다. 미야자키하야오 감독의 얼굴이 굳어지는 모습의 방송을 지켜보면서 그의 얼굴에선 당황과 경악이 읽혀졌고, 절대 본인의 작품엔 학생들이 발표한 자동프로그램을 쓰지 않겠노라 말하는 목소리와 눈빛은 단호했었다. 그 의지를 유지해왔기에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라 생각든다. 장인,장인정신. 그 안에 포함된 인내와 숙려, 시간, 사고와 사유, 인간 고유유 창의성을 무엇으로 대체하겠는가하는 물음을 기본으로 둔다면 AI를 찬양하듯 쫒는 자들의 속도를 조금은 늦춰보거나 방향전환을 할 수있지 않을까?(그들이 이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가능한 속도조절일 것이다) 기술적,기계적 발전은 불가피하다.막대한 정보처리와 제공.인적 물적 자원의 극효율성의 기여도는 인간 개인에 대한 도움이 아닌 그효율성으로 이익을 얻는 자들에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 단순터치 반복으로 빠져드는 현혹세계의 문에는 문지기도 걸쇠도 없는 수렁이니 잘 피해가라는 경고문만 덜렁 세워 놓고 이 엉터리 환경에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치.경제.언론 등 기쎈 수많은 AI찬성론자들의 힘에 맞서며 꾸준하게 목소리를 키워가면서, 삶의 중심엔 사람이 있고, 아이들에게 순수한 배움이 있어야 하며, 인간 개인의 자유와 선택은 과학적 논리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저자는 꾹꾹 눌러 한 자 한 자 적어 한권을 채웠다. 망상의 세계는 실존하지 않으며 우리는 실존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