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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들을 키웠다. 아들만 셋인 집안은 매 순간이 전쟁터였고, 나와 아내는 그곳을 함께 누빈 전우였다. 내 나이 이제 50대 중반, 주변에선 가사나 육아를 두고 ‘아내를 도와준다’며 자화자찬한다. 하지만 나는 그 '돕는다'라는 말의 오만함이 늘 거북했다. 육아는 누군가의 배려로 거드는 은혜가 아니라, 부모라면 당연히 함께 짊어져야 할 온전한 본업이자 치열한 노동이다. 그렇게 나름대로 깨어 있는 아빠로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를 읽기 전까지 나만의 착각이었다. 내가 보지 못했던 가사와 돌봄의 심연을 직시하게 했다. 청소기 돌리는 실행 노동 이면에, 상황을 조율하는 ‘기획 노동’이 존재함을 파헤친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다 할게’라고 외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왜 시키지 않았냐고 묻는 남편의 말은 기획 노동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가장 흔한 증거다. 무엇을 시킬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정신적 노동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를 가정이라는 우주선의 ‘관제탑’에 홀로 앉혀두고, 지시만 따르는 단순 노무자에 불과했던 것은 아닐까. 삼형제를 키우며 머릿속이 복잡했던 쪽은 늘 아내였다. 예방접종 시기, 학원 스케줄, 식단 고민까지 나는 시키는 일은 해냈지만, 일정을 구상하는 ‘세 번째 근무’의 지독한 과부하는 나누지 못했다. 가족을 돌본다는 것은 지침과 지시를 내리는 일에 가깝고, 육체 노동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은 바로 이 결정의 과정이다. 돌봄의 책임이 닥쳤을 때 사회는 약자인 '딸'이나 '엄마'를 관제탑으로 밀어 올리는 ‘돌봄의 성별화’ 구조를 작동시킨다. '사랑'과 '모성'이라는 외피는, 누군가의 기획 노동과 희생을 당연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가림막이었음을 깨닫는다. 돌봄의 무게를 개인이 아닌 사회적 시스템으로 어떻게 나누어 가질 것인가를 묻는다. 50대에 접어드니 이제 부모님 돌봄이라는 또 다른 파도가 밀려온다. 복잡한 제도의 미로 속에서 누군가는 또 홀로 밤새 검색창을 두드려야 할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이 일에 이름을 붙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노동은 결코 나누어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돌봄 경로의 결정 무게를 덜어줄 ‘케어 매니저’ 같은 공적 지원 체계가 절실한 이유다. 세 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훗날 가정을 이룬다면 아내에게 ‘내가 뭘 도와줄까?’ 묻지 말고, 함께 책임지는 '공동 기획자'가 되라고 말이다. 독자들은 가사와 돌봄은 생각하고 결정하는 정신적 기획 노동이라는 이 책의 핵심 주제를 통해, 일상 속 정신적 고갈의 실체를 명확히 인지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돌봄을 도덕적 수사나 희생에만 가두지 말고 공적 시스템으로 분담해야 한다는 작가의 메시지에 공감하며, 가정 내 공정한 분담의 기준을 세우고 연대하는 소중한 시선을 얻을 수 있다. 이 리뷰는 리앤프리서평단 자격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이일에는이름이없습니다#김희경#whalebooks#리앤프리책카페#리앤프리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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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김희경 작가의 전작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또렷하다. 특히 돌봄은 성별을 넘어 인간의 조건이라는 문장을 읽으며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이 떠올랐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언젠가는 다시 누군가를 돌보게 된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런데 왜 돌봄은 오랫동안 여성의 일이었을까. 가정 안에서 여성이 주로 생활하던 시대에는 돌봄이 여성에게 너무나 당연한 의무처럼 주어졌다. 아이를 살피고, 가족의 일정을 기억하고, 병원에 예약하고,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하는 일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었고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감당되었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그 많은 일에는 이름이 없었다.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일이라고 불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부분은 ‘기획 노동’이라는 개념이었다. 돌봄을 생각하면 우리는 흔히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 일을 먼저 떠올린다. 밥을 먹이고, 씻기고, 병원에 데려가고, 아이를 재우는 일처럼 눈에 보이는 노동 말이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존재하는 일이 있다. 어디가 아픈지 알아차리고, 어느 병원을 찾아야 할지 검색하고, 예약 가능한 시간을 확인하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이후의 상황까지 예상하는 일.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고, 정보를 찾아보고, 비교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도 누군가는 계속 생각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우리들 어머니들이 떠올랐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꼼꼼함’이나 ‘살림을 잘하는 능력’ 정도로 생각했던 것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실은 계속해서 작동하고 있는 노동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무서운 것은 이 노동이 너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엄마니까 하는 일”이고, “당연히 아내가 더 잘 아는 일”이며, “부탁하면 해주는 일”이 된다. 그러다 보니 일을 맡은 사람조차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책에서 ‘시키는 것도 또 다른 기획 노동’이라는 문제를 들여다보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이것 좀 해줘.” 그 말 뒤에는 사실 수많은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사람, 필요한 정보를 찾아주는 사람,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 상대가 제대로 했는지 확인하는 사람. 결국 한 사람은 실행만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기획하고 지시하고 확인하는 사람이 된다. 겉으로 보면 일을 함께하고 있는 것 같지만 머릿속에서 돌아가는 노동의 양은 전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가사와 돌봄을 ‘반반’으로 나눈다는 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물리적으로 같은 양의 일을 나누는 것이 언제나 공정한 것은 아닐 것이다. 누가 전체를 기억하고 있는지, 누가 다음 일을 예상하고 있는지, 누가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까지 들여다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공평함은 일을 똑같이 나누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계속 기억하고 있는지를 묻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더 깊게 다가왔던 이유는 기획 노동을 단순히 부부 사이의 가사 분담 문제로만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의 돌봄을 갑자기 떠안게 된 사람,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놓치고 싶지 않은 장애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돌봄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사회적 문제인지 보인다. 특히 장애인의 삶을 읽으며 ‘돌봄을 받는 사람’이라는 말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도움을 받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까지 대신 결정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손을 빌리면서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설계하고 싶은 마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해본 적이 없어서 못 한다”는 말은 정말 능력의 차이일까. 어쩌면 사회가 오랫동안 한쪽에게만 기회를 주고, 다른 한쪽에게는 그 일을 대신해줄 사람을 붙여놓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니 ‘돌봄 본능’이라는 말도 조금 불편해졌다. 엄마라서 더 잘 알고, 여자라서 더 세심하고, 아내라서 가족을 더 잘 챙기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오랫동안 그 일을 맡아왔기 때문에 익숙해진 것일 수 있으니까. 능력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은 반복된 경험이었을 수도 있다. 책을 덮고 나서 내 주변의 일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이 일에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이는 일이 가장 먼저라고 생각한다. #이일에는이름이없다 #이상한정상가족 #김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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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자라고, 부모가 늙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마다 삶은 누군가의 돌봄 위에서만 유지된다 우리가 보통 '노동'이라고 할 때 눈에 보이는 어떤 '실행'을 떠올린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를 돌보고 편찮으신 부모님을 병원에 모시고 가는 그런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일. 그러나 김희경 작가의 책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는 실행이 이루어지기 전에, 생각하고 계획하는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기획 노동', 즉 눈에 확실히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고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노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책을 몇 장 읽지도 않았는데 주제의식이 상당히 뚜렷하고 의미 있게 다가온다. 나처럼 이미 가족을 꾸려가고 있는 분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가까운 지역에 여행을 가는 일에도 상당한 '기획 노동' 이 든다. 미리 숙소를 알아보고 방문할 장소를 검색하고 맛집을 알아보는 등등등.. 그렇다면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계획하고 책임지는 보통 사람들의 기획 노동에는 얼마나 많은 인지적 노력이 들어가야 할까?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기획 노동'의 현주소를 파악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인터뷰하며 그들의 삶을 조사하였다. 맞벌이 부부, 싱글맘, 전업주부, 질환을 가진 부모를 돌보게 된 자녀,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까지... 그들의 실질적인 삶이 펼쳐진다. 결론을 말하자면, 부부가 함께 노동에 참여하더라도 여성이 기획 노동을 훨씬 더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와 자녀를 특별하게 돌봐야 하는 사람들의 기획 노동은 말할 것도 없다.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면서도 가족을 돌봐왔던 사람들은 어쩌면 그동안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던 '기획 노동'에 지쳐있는지도 모른다. 싱글맘인 정은경 씨와 워킹맘 이수혜 씨의 사례를 통해 저자는 기획 노동으로 인한 기회비용과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들인 저출생, 돌봄 공백, 여성의 경력 단절을 연관 지어 설명한다. 살림, 돌봄, 기획, 실행을 모두 혼자서 해야 하는 정은경 씨는 출근하기도 전에 이미 에너지의 80%를 쓰느라 회사 일 외에 다른 일을 하기 어렵다. 워킹맘 이수혜 씨 역시 수많은 가정의 일을 머릿속에 품은 채 회사 업무에 임하기 때문에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 이들의 사례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 한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동안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일을 재평가함으로써 이 책은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기획 노동’과 ‘돌봄’의 문제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함께 참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가정에서는 엄마 한 사람에게 책임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가 집안일의 기획과 실행에 참여해야 하고, 사회 역시 돌봄을 더욱 중요하게 바라보는 방향으로 제도와 정책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저출생, 돌봄 공백, 여성의 경력 단절 등 우리가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사회 문제의 기저에는 그동안 우리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노동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획 노동'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름이 없으면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으면 그 일을 누가 얼마나 짊어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책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는 그동안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서 알아보지 못했던 것에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제 우리는 친밀함 뒤에 가려진, 기획 노동을 제대로 명명하고 함께 나누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출판사에서 받은 책을 읽고 주관적으로 리뷰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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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살림과 돌봄에 관한, 이름 없는 노동의 실체를 밝히는 책이 나왔네요. 김희경 작가의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는 '기획 노동, 누구나 하지만 아무도 부르지 않은 일'에 관한 기록이네요. 저자는 집안일, 가사노동, 살림, 육아, 간병, 돌봄 등을 포괄하여 '돌봄'이라는 용어를 써왔고, 해외에는 '인지 노동' 또는 '정신적 부담'으로 부르지만 이 책에서는 국내 연구진이 명명한 '기획 노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그 개념과 본질을 소개하고 있네요. "집안일을 해본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조금만 꺼내도 '아, 그거!' 하고 '머릿속 살림과 돌봄'의 정체를 알아맞힌다. 아무리 쳐내도 끝나지 않는 '할 일 목록' 때문에 머릿속은 뒤죽박죽인데 마땅한 이름조차 없는 일. 뇌를 꺼둘 수도 없는데 눈에 보이지 않기에 '일을 나눠 하는데도 왜 나는 피곤할까'를 고민하게 만드는 이름 없는 노동. 이를 국내 연구진이 '기획 노동'이라 명명한 것이 2024년 무렵 매체에서 다뤄지자 맘 카페와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금기를 건드리는 소문처럼 '기획 노동'이라는 단어가 빠르게 번져나갔다. (8p) 요즘은 가사 분담이 평등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기획 노동을 떠맡는 사람과 주어진 일만 겨우 하는 사람 간에 깊은 간극이 존재하네요. 살림과 돌봄의 기획 노동은 눈에 보이지 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기획 노동을 떠맡은 사람만이 그 노동의 무게를 견디면서 점차 지쳐가고 있네요. 그래서 저자는 보이지 않는 노동, 이름 없는 일에 붙여진 '기획 노동'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알리고자 맞벌이 부부, 워킹맘, 싱글맘, 전업주부, 부모 돌봄을 혼자 떠맡다시피 한 자녀들, 장애아 엄마와 장애 당사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함께 전하고 있네요. 살림과 돌봄을 여성의 일로 간주하는 가부장제의 성별 역할 규범과 산업화 이후 남녀의 역할을 공적, 사적 영역으로 나눈 이데올로기 밑바닥에는 소위 모성 본능의 신화가 깔려 있는데 이는 20세기 중반 이후 다양한 연구를 통해 반박 증거들이 나오고 있네요. 미국 사회학자 앨리슨 데이밍거의 연구에 따르면 부부 간 기획 노동의 불평등은 성향이나 성격 차이가 아니라 기술을 어떻게 쓰냐의 차이라고 분석했네요. 이성 커플의 남녀는 유급 및 무급 노동에서 자신의 역량을 다르게 활용했는데, 많은 남성들이 돈을 버는 직장에서는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집안일을 돌볼 만한 정신적 에너지를 남겨두지 않는 반면에 여성들은 그럴 수 없어서 소진되거나 경력을 바꿔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다는 거예요. 이는 남녀의 기질 차이가 아니라 남성들이 일터에서 발휘하는 정신적 기술을 집에 돌아오면 꺼버리는 선택적 무능 때문이라고 보고 있네요. 주 양육자로 아이를 키우는 남성 동성혼 커플의 뇌를 관찰했더니 시상하부를 포함한 감정 처리 네트워크가 활성화되었다고, 즉 포유류 어머니와 같은 생물학적 반응이 남성의 뇌에서 활성화되었다는 거예요. 따라서 기획 노동의 본질은 여성의 전유물도, 사랑의 본능도 아니며 훈련과 경험을 통해 습득되는 기술이자 역량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돌봄을 수행하는 기획자이자 돌봄을 받아야 하는 당사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네요. 기획 노동에 대해 깊이 들어갈수록 돌봄은 단순히 개인이나 성별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서 공동체 기반의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는 계기였네요.
#이일에는이름이없다#김희경#웨일북#기획노동#누구나하지만아무도부르지않은일#보이지않는노동#돌봄노동#인지노동#사회문제#사회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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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속에서 쉽게 스쳐 지나가거나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여러 노동과 삶의 형태를 찬찬히 돌아보게 해 준 책이에요. 제목부터 마음을 가만히 두드리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도서거든요. 우리는 흔히 직업이나 역할을 어떤 단어로 딱 잘라 표현하곤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기존의 틀이나 이름으로 다 담아낼 수 없는 일들이 정말 많아요. 이 책은 제도나 관습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돌봄, 가사, 혹은 공식적인 직업으로 분류되지 않던 수많은 활동을 다양한 각도에서 다루었어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어째서 특정 형태의 노동만 높은 가치로 평가받고, 삶을 지탱하는 데 꼭 필요한 다른 일들은 당연시되거나 소외되어 왔는지를 담아두었어요. 저자는 여성의 돌봄 노동과 비공식 노동 영역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절하되어 왔는지를 세심하게 표현합니다. 단순히 감성적인 호소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연구 자료와 구체적인 사회적 통계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누군가의 희생이나 무급 봉사로 치부되었던 일들이 사실은 사회 전체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축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그동안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우리 주변의 수많은 수고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가사 작업부터 병원이나 시설, 혹은 가정 방문을 통해 이루어지는 돌봄의 현장까지, 이름 붙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치가 낮게 매겨졌던 현실을 마주했고요. 글쓴이의 시선은 매우 따뜻하면서도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사회학적 개념을 장황하게 늘어놓기보다는, 누구나 일상에서 한 번쯤 경험했거나 고민해 보았을법한 예시를 들어 풀어내고 있어요. 덕분에 사회나 노동 문제에 대해 깊은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읽더라도 상황의 엄중함과 의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평온한 일상의 뒤편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애써줌이 존재했습니다. 사회가 지정한 명칭이나 가격표만으로는 한 사람의 노고와 가치를 전부 담아낼 수 없다는 점을 깊이 체감하기도 했어요. 타인의 삶을 보살피고 유지하는 일에 더 정당한 대가와 존중이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남습니다.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적인 허점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어 줍니다. 개개인이 마주하는 삶의 자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어떤 시선으로 타인의 노고를 바라봐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숨은 일의 가치를 발굴하고 이를 사회적 논의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저자의 담담하면서도 힘 있는 문장들이 마음속에 오래도록 잔상을 남깁니다. #이일에는이름이없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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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쓴 서평임을 미리 밝힙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회/정치 부분 서평단 활동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은 좀 특별한 책을 가지고 왔는데요. 오늘은 "기획 노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알아 볼 수 있는 책!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라는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럼 빠르게 보실까요?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쓴 서평임을 미리 밝힙니다.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저자는?
김희경 지음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목차는?
1, 살림과 돌봄의 핵심 역량, 기획 노동 ~3. 함깨 짊어지기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서평하게 된 계기는?
오늘 제가 서평하게 된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를 서평하게 된 계기는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때 "일에 이름이 없다"라는 점에 대해서 의문점이 출발했습니다. 보통 우리가 직업을 얻거나 알아볼때 "이름"을 지칭하면서 구직활동을 하곤 하는데, 책 제목에 "이름이 없다"라는 의문에서 시작해 "기획 노동"이라는 새로 듣는 개념도 접하게 되어서 저자님께서 어떠한 내용으로 책을 집필하시는지 너무 궁금해 읽어본 후 서평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책 특징 및 기억에 남는 Key Point!
오늘 제가 읽어본,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라는 책을 읽어 보니 저자님께서 제시하시고 제가 처음 들어본 "기획 노동"이라는 개념을 알수 있었습니다 .책 내용은 먼저, "기획 노동"이라는 개념을 처음 듣는 독자들에게 "기획 노동"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여러가지 사례를 통해 "기획"이라는 단어로 노동이라는 단어로 이어지는 설명을 한 이후에 "기획 노동" 이라는 성별 차별과 또다른 기획 노동이라는 개념을 설명합니다. 이후 다른 나라 사례로 들어 2여년간 이어진 논쟁의 사례와 기획 노동의 사례를 예시로 들어서 우리 독자들에게 정확히 "기획 노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설명에 하고 사례로 들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을 함께 짊어지는 방향으로 설명을 하여 ,우리가 어떤 가치관과 생각을 가져야 할지 함께 의논을 해보는 이야기로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총평
오늘 제가 읽어본 이 책은, 저도 맨 처음에는 책 제목을 보았을때 이해가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이런분께 추천드려요!
오늘 제가 읽어 보았던, 이 책은 "기획 노동"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독자들에게 생소하지만 자연스럽고 자세하게 이해하기 쉽도록 그리고 예시를 들어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기획 노동"이라는 개념을 한번 알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오늘 제가 소개해드린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 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셔도 될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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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완독 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는 결혼과 가정을 생각할 때 사랑이나 관계 자체보다 그 이후에 따라오는 삶의 운영이 더 먼저 걱정되는 편입니다. 지금 당장 결혼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결혼을 상상하면 육아와 집안일, 부모 돌봄 같은 일들이 한꺼번에 떠오릅니다. 특히 아이가 생긴 뒤에도 직장생활을 계속한다면 회사 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면서 과연 제 시간과 삶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를 읽으면서 제가 막연하게 두려워했던 것이 단순히 ‘집안일이 많아지는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희경 작가는 <이상한 정상가족>과 <에이징 솔로>에서도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가족의 모습을 다시 질문해온 작가입니다. 이번 책에서는 돌봄과 살림 뒤에 숨어 있는 ‘기획 노동’을 이야기합니다. 직접 밥을 하고 청소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 실행 노동이라면, 그 일이 가능하도록 미리 생각하고 정보를 찾고 일정을 조정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기획 노동입니다.
본문 첫 장의 제목부터 인상적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노동, 기획 노동을 호명하다.’ 집안일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실제 행동만으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고, 필요한 물건을 확인하고, 병원 예약일을 기억하고, 가족의 일정을 조율하고, 예상되는 문제를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과정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을 한 사람조차 ‘내가 오늘 뭘 했지?’ 싶을 만큼 결과가 손에 잡히지 않지만 머리는 끊임없이 돌아갑니다. 특히 책에 등장하는 맞벌이 부부 이야기는 제가 결혼을 망설이는 이유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가사노동을 5대5로 나누고 있다고 해도 실제로 누가 먼저 일을 발견하고, 언제 해야 하는지 기억하고, 상대에게 부탁하고, 끝났는지 확인하는가에 따라 부담은 전혀 달라집니다. 그래서인지 ‘똑같이 나누어도 남는 차이’라는 표현이 그래서 기억에 남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일의 양만 반으로 나눈다고 해서 머릿속의 책임까지 반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 ‘시키는 것도 또 다른 기획 노동’이라는 장의 제목에도 공감했습니다. 흔히 한쪽이 “말하면 하지”라고 말하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발견하고 설명하고 부탁하는 일 자체가 이미 노동입니다. 저는 결혼 후 이런 관계가 반복된다면 상당히 지칠 것 같습니다. 배우자를 사랑하더라도 상대방의 생활까지 계속 관리해야 한다면 어느 순간 배우자가 아니라 프로젝트 매니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사랑이 갑자기 업무 관리 프로그램으로 변하는 순간입니다. 책은 특히 여성에게 기획 노동이 집중되는 현실도 짚습니다. 2018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조사와 2023년 EBS 프로그램에서 확인한 사례들이 소개되는데, 실행 노동보다도 기획 노동의 성별 격차가 크게 나타났다는 설명이 나옵니다. 육아휴직을 한 남편이 상당한 가사노동을 담당하면서도 정작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역할은 아내에게 남아 있는 사례도 등장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출생 문제를 단순히 ‘요즘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피상적인지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출산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수년, 어쩌면 수십 년 동안 누군가는 아이의 건강, 교육, 생활, 감정, 일정과 미래까지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에 직장생활까지 병행한다면 머릿속에는 회사와 가정이라는 두 개의 운영체제가 동시에 돌아가는 셈입니다. 제가 육아를 두려워하는 것도 아이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이 끝없는 정신적 책임을 감당하다가 제 삶과 일이 뒤로 밀릴 가능성이 두렵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러니 결혼하지 말라’거나 ‘여성만 희생한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결론 내리는 책은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이 노동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름이 생겨야 무엇을 나누어야 하는지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처음부터 기획과 실행을 함께 맡고, 가족 내부에서 해결할 수 없는 돌봄은 제도와 사회가 분담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저는 이 부분이 이 책에서 가장 현실적인 메시지라고 느꼈습니다. 결혼이나 육아가 두렵다고 해서 그 두려움 자체를 없앨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무엇이 두려운지를 구체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저에게는 ‘가족을 갖는 것’보다 가족을 유지하는 모든 책임이 자연스럽게 한 사람에게 몰리는 구조가 훨씬 두렵습니다. 그래서 만약 언젠가 결혼을 생각하게 된다면 저는 단순히 “집안일 잘 도와주는 사람”보다, 집안일과 돌봄을 자신의 일로 인식하고 먼저 발견하고 계획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인지를 더 중요하게 볼 것 같습니다. ‘도와준다’는 말부터 사실 조금 이상합니다. 함께 꾸린 삶이라면 누군가의 일을 돕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공동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는 제가 막연히 가지고 있던 결혼과 육아에 대한 불안을 없애준 책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불안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금 편해졌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보다 이름이 붙은 문제는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살림과 돌봄은 사랑만으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기억과 판단과 계획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일이 노동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비로소 어떻게 나눌 것인지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제게 이 책은 결혼을 권하는 책도, 비혼을 권하는 책도 아니었습니다. 어떤 관계와 가정을 선택하든, 내 삶을 잃지 않기 위해 무엇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지를 알려준 책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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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평생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기록되지 않는 노동'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으로서, 김희경의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는 책은 마치 내가 봐왔던 노동에 관한 영화의 훌륭한 각본을 마주한 듯한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나 <미안해요, 리키>에서 다루었던 것들 국가 관료제나 긱 이코노미(Gig Economy)의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짓눌리는 평범한 이들의 삶처럼 이 책이 조명하는 '정신적 기획노동' 역시 자본주의와 사회 시스템이 철저히 외면하고 은폐해 온 거대한 구조적 모순입니다. 이 책에 대해 내가 던지고 싶은 시선은 세 가지입니다. 1.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 '진짜 주인공'을 비추다 영화 감독은 카메라의 앵글을 어디로 돌릴지 끊임없이 결정해야 합니다. 대개의 세상은 화려하게 눈에 보이는 성과나 숫자로 환산되는 '임금 노동'만을 앵글 안에 담으려 하지요. 하지만 이 책은 앵글을 과감하게 프레임 밖, 집안의 가장 어두운 구석으로 돌립니다. 냉장고에 무엇이 남았는지 기억하고, 가족의 다음 달 병원 일정을 조율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뇌를 가동하는 그 '생각의 노동' 말입니다. 칭찬도, 대가도 없지만 그것이 멈추는 순간 한 가정이, 더 나아가 이 사회가 붕괴하고 맙니다. 책은 그 숨겨진 기획자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클로즈업해 줍니다. 2. '사랑'이라는 이름의 가스라이팅을 걷어내다 자본과 가부장제는 이 고된 노동을 아주 손쉽게 포장하곤 합니다. "엄마니까", "사랑하니까", "가족이니까 당연한 것"이라고 말이죠. 이건 아주 비겁한 속임수입니다. 켄로치 감독이 <미안해요, 리키>에서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택배를 나르는 리키의 고통을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라는 낭만으로 포장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 책 역시 돌봄과 살림의 무게를 결코 아름다운 미덕으로 미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한 인간의 영혼과 정신을 얼마나 갉아먹는지, 그 지난한 피로감을 가감 없는 다큐멘터리처럼 서늘하게 폭로합니다. 사랑이라는 달콤한 대사 뒤에 숨겨진 구조적 착취의 대본을 들춰낸 것입니다. 3. 이름이 없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이름을 불러주어야 한다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서 이름 없는 민초들이 영국의 압제에 맞서 싸웠듯, 이 책이 다루는 이들도 저마다의 소리 없는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통계청의 노동 지표에도, GDP 계산법에도 들어가 있지 않기에 이 일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없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기득권의 언어가 그 가치를 담아내지 못할 만큼 이 노동이 지닌 생명력이 거대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그 유령 같은 노동에 단단한 명사들을 부여하며 스크린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카메라는 권력자가 아니라, 권력의 그늘에 가려진 이들의 존엄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김희경의 이 책은 활자로 찍어낸 가장 강력한 리얼리즘 영화입니다. 책장을 덮고 나면,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일상 속에서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던 '이름 없는 노동'들을 비로소 눈을 똑바로 뜨고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 시선의 변화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연대의 시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