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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7일부터 2026면 8월 8일까지 읽음 실화 바탕의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브 스필만 저)처럼 본인이 직접 쓴 수기가 아니고서야 실제 인물의 마음을 모르는 제3자가 쓴다는 게 괜찮은지 싶어진다. 그럼에도 서점에서 <벨 그린>이 눈에 밟힌 이유는 '위대한 사서'라는, 약간 성립하기 어려워보이는 단어의 조합 때문이었다. 물론 벨이 일한 피어폰트 모건 도서관은 일반 도서관이 아닌 희귀 서적과 미술 작품이 전시된 곳이긴 하니 내 예상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긴 했다. 책은 나의 우려대로 조금 자극적이고 실화 기반 소설에서 빠지지 않는 불륜 요소가 들어가긴 했지만(근거가 없던 건 아니라고 해도) 벨 그린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좋은 작품이었다. 심리묘사와 소설적 서사도 흥미롭긴 했지만 그걸 걷어낸 벨 그린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흑인 인권 운동가의 딸이자, 평생을 백인인 척하며 살며 그 시대 전문직 여성으로서 최고의 커리어를 쌓아오고 상류층 사교계의 유명인사가 된 사람. 예전에 읽었던 브릿 베넷의 <사라진 반쪽>도 생각났다. <사라진 반쪽>은 (벨 그린처럼) 백인으로 보이는 흑인 혼혈 쌍둥이 자매가 각자 다른 삶(백인으로서의 삶과 흑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이야기이다. 그저 태어났을 뿐인데 피부색 때문에 어떤 하나의 정체성을 강요받아야하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직업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커리어의 최정상에 올랐는데, 외견으로는 구분조차 잘 가지 않는 인종을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벨의 모습을 보며 지금의 우리는 또 어느 지점까지 왔을까? 비록 과거의 이야기이고 지금보다 극단적인 시대였지만, 지금도 이 세상에는 수많은 벨들이 존재한다. 본문에서 벨의 아버지는, 벨이 인종을 숨기고 백인 행세를 하고 있지만 훗날 유색인종들은 벨을 보고 희망을 찾을 거라며 벨을 격려한다. 그것을 보며 나는 세상에 완전한 평등이 찾아오는 날이 오지 않는더래도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향해야 한다고 다시금 믿게 된다. 새삼 내가 모르는 타인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게 한다는 점에서 독서란 얼마나 아름다운 행위인가 싶다. 비록 한 번의 경험이 수백 권의 책보다 낫다한들 그 한 번이 절대 겪을 수 없거나 겪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수천 권의 책으로 이해하려 노력이라도 해보는 것이 낫지 않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