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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만큼 넓어지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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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기자로 일하며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온 유지영 작가에게 ‘듣기’란 어떤 의미를 지닌 행위일까. 듣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자(정확히 말하면 타인)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다. ‘세상이 스스로 소리를 내지 않는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가만히 있어도 소리는 들려오지만, 상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잘 듣기 위해서는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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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기자로 일하며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온 유지영 작가에게 ‘듣기’란 어떤 의미를 지닌 행위일까. 듣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자(정확히 말하면 타인)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다. ‘세상이 스스로 소리를 내지 않는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가만히 있어도 소리는 들려오지만, 상대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잘 듣기 위해서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던 판단을 잠시 미뤄두어야 하고, 상대의 말이 향하는 곳을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그동안 듣기를 말하기보다 수동적인 행위라고 생각했다면, 책 <심장 듣기>는 오히려 듣는 사람에게 더 많은 노력과 태도가 요구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해당 도서를 읽고 나면 좋은 청자가 된다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듣는 동안에는 타인의 마음에 집중해야 하며, 때로는 상대의 말로 인해 나의 굳은 믿음을 수정해야 한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뒤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제대로 들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달리 진정한 의미의 ‘듣기’가 행해진다면, 자신의 세계를 넓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의 삶의 의지를 회복하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듣는다는 것은 상대의 목소리를 받아들이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목소리가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가능성을 허락하는 일인 셈이다.


P.8 실내 수영장에 갈 때마다 나는 소음이 좋았는데, 조금 더 자세히 들어보니 그것은 수영장이 스스로 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헤엄을 치면서 물살을 가르고, 힘차게 발차기 하면서 물을 튀기는 파열음이 내가 좋아하는 소음의 정체였다.


 해당 도서의 흥미로운 점은 듣기를 개인적인 관계 밖에서도 탐색한다는 점이다. 가까운 사람과 마음을 주고받는 일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점차 사회의 여러 현장으로 넓어진다.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만은 아니다. 어떤 말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확산하는 반면, 어떤 말은 아무리 외쳐도 좀처럼 사회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듣는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가 놓일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지 않을까. 각기 다른 계층, 성별의 목소리가 동등하게 울려 퍼질 자리가 마련될 때, 우리 사회는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는 소통의 장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

 예컨대 저자는 ‘묻지마 범죄’라는 명칭의 기괴함을 지적하며, 피해자의 목소리를 도외시하지 말 것을 강조한다. 해당 명칭의 문제는 가해의 목적을 회피하는 데 있다. 여성 살해와 여성 폭력의 구체성을 부정하고 ‘묻지마’라는 이름으로 도피하는 순간, 그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관련 범죄 통계를 집계할 명분조차 사라지고, 결국 대책 마련은 온데간데없게 된다. 저자의 지적처럼 범죄 현장 속 처절한 목소리를 듣지 않고 ‘우리에게 묻지 마’라는 말로 일관하는 태도는 문제의 실체를 흐리고, 마땅히 논의되어야 할 사회적 책임마저 지워버린다. 


P.121 그들의 명명은 마치 여성 시민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묻지 마, 우리에게 아무것도 묻지 마.’


 저자가 모든 말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태도를 좋은 듣기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대에게 맞추기 위해 자신을 지우는 ‘착한 듣기’ 역시 경계한다. 이 지점에서 듣기는 흔히 생각하는 배려와 조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한쪽이 말하고 다른 한쪽이 받아주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말하고 듣는 위치를 오갈 수 있어야 비로소 대화가 성립한다. 잘 듣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나를 없애고 상대의 말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나와 타인이 모두 사라지지 않는 관계를 만드는 일인 것이다.

 사실 아무리 오래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듣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가 모르는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귀를 기울이는 태도야말로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일 것이다. 저자가 사회 속 목소리를 듣고, 이를 하나의 정론으로 만드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중심에 서고 싶은 이기심 속에서, ‘듣기’가 존재하는 세상은 누구든 그곳에 설 기회가 있음을 인정하는 여유가 있다. 그리고 그 여유는 타인에게 중심을 내주어 그의 시점으로 세상을 볼 기회를 마련한다. 그렇게 각자의 세상을 조금씩 넓혀야만, 사회 구성원의 간절한 외침이 존중받는 세상이 된다.


P.136 경험에 대해 들으려면 우선 한 사람의 경험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는 사실을 새겨야 한다. 내가 가진 기준은 잠시 내려놓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빈틈없이 소화시킨다.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만 외치는 데 익숙한 시대에 <심장 듣기>는 목소리가 도착할 자리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저자의 말처럼 세상은 스스로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소리와 더불어 가는 것은 모든 이가 지닌 이야기와 함께하는 것과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세상이 내는 소리를 소음이 아닌 음악으로 들을 용기를 얻었다. 효율을 이유로 듣고 싶은 목소리만 골라 듣기보다, 때로는 낯설고 불편한 이야기에도 기꺼이 귀를 기울이고 싶다. 그렇게 들은 이야기를 마음 한편에 남겨두는 데 그치지 않고, 내가 알지 못했던 삶과 현실을 향해 나아가는 동기로 삼고 싶다. 더 많은 목소리를 들을수록 내가 살아가는 세계 역시 조금씩 넓어지지 않을까.


P.88 듣기는 오히려 적극적인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귀는 입과 달리 늘 열려 있는 기관이지만 누군가의 말을 새겨 듣는다는 건 선택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YES마니아 : 골드 h*********6 2026.08.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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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듣기, 유지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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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는 지금까지 '듣는 사람'이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이었다. 작가가 설명한 그 구분 즉, 공기를 읽는 일과 호흡을 마시고 내뱉는 일 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나 자신을 좋은 청자라고 믿어왔던 순간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보게 되었다. 고개를 끄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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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는 지금까지 '듣는 사람'이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이었다. 작가가 설명한 그 구분 즉, 공기를 읽는 일과 호흡을 마시고 내뱉는 일 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나 자신을 좋은 청자라고 믿어왔던 순간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보게 되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적절한 타이밍에 웃고, 상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말을 골라온 시간들. 그것은 상대를 배려하는 일처럼 보였지만, 돌이켜보면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침묵 속에서 동의하는 척하는 동안, 나는 안전했다.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았고, 아무것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으므로.

진짜 듣기란 화자와 청자가 함께 추는 춤이라고 말한다. 그 비유가 오래 마음에 남는다. 들어주는 일이 한 사람만 무대에 세워두고 나머지는 관객석에서 박수를 치는 일이라면, 듣는 일은 두 사람이 서로의 리듬에 반응하며 함께 움직이는 일이다. 그러려면 나 역시 흔들려야 한다. 상대의 말에 내 생각이 부딪히고, 때로는 부서지고, 다시 다른 모양으로 맞춰져야 한다. 이것이 무섭다는 걸 이 글을 읽으며 비로소 인정하게 됐다. 나는 흔들리고 싶지 않아서, 변하고 싶지 않아서 오랫동안 겉으로만 듣는 사람인 척했던 것 같다. 특히 마음에 오래 남은 장면은 장례식장에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는 대목이다. 진심으로 애도했지만 정작 물어야 할 것을 묻지 못했던 그 순간을, 작가는 실패라고 단정하지 않으면서도 오래 되짚는다. 나는 이 장면에서 듣기와 침묵의 차이를 생각했다. 우리는 종종 침묵을 배려라고 부르지만, 어떤 침묵은 그저 내가 불편해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진짜 듣기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이다. 상대의 고통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어설프더라도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이 상대에게 가닿을 자리를 마련하는 일. 그것은 예의 바른 침묵보다 훨씬 어렵고, 훨씬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반려견 밤이와의 관계에서 듣기가 언어를 넘어서는 순간들이다. 사료를 코로 눌러보고 내쉬는 한숨, 침대에서 일어나는 몸짓의 미묘한 차이. 작가는 그것을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조금씩 앎의 범위를 넓혀가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듣기라는 것이 결국 관계의 축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누군가의 말을 정확히 듣는다는 건 한순간의 집중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침묵이 어떤 감정을 담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시간과 반복이 필요하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잘 듣는다고 흔히 말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일 것이다. 오래 듣고, 자주 곁에 머물렀기 때문에 비로소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듣기는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 사랑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더 가깝다.

무안공항 참사를 다룬 부분에서는 듣기가 언어화될 수 없는 순간까지 확장된다. 작가는 그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이 솔직함이 오히려 듣기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고 느꼈다. 우리는 종종 위로의 말을 찾는 데 급급한 나머지, 정작 들어야 할 소리, 창자가 끊어질 듯한 울음, 텅 빈 공항의 적막, 비에 씻겨 알아볼 수 없게 된 메모지의 흔적을 지나쳐버린다. 말을 보태는 일이 언제나 최선은 아니다. 때로는 그저 곁에 몸을 두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듣기는 성립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내가 위로한답시고 서둘러 말을 채워 넣었던 순간들을, 그로 인해 정작 상대의 침묵을 들을 기회를 놓쳤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책을 덮으며 나는 내가 지금까지 누구의 말을 '들어주었는지'와 누구의 말을 진짜로 '들었는지'를 구분해보려 애썼다. 부끄럽게도 후자의 목록은 훨씬 짧았다. 나는 여전히 공기를 읽는 데 익숙하고, 침묵 속에서 동의하는 데 능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능숙함이 때로는 상대를 혼자 두는 일이었다는 것을.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이 혼잣말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다정함은 그 혼잣말을 대화로 바꾸는 일일 것이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듣고, 다시 질문하며 함께 춤추는 일. 그 서투른 스텝을 밟는 용기를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내보고 싶다.


p****r 2026.08.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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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에 대한 '쓰기' <심장 듣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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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다 보면, 생각보다도 더 '듣는' 행위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유독 현대 사회가 더 그런 것 같다. 사람들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 그로 인해 생겨나는 오해들, 날선 시선들, 그리고 소통의 부재로 고조되는 갈등들은 사람들은 지치게 만들고, 그 지침은 단절을 야기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피로를 느끼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책이 바로 유지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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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살아가다 보면, 생각보다도 더 '듣는' 행위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유독 현대 사회가 더 그런 것 같다. 사람들은 남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 그로 인해 생겨나는 오해들, 날선 시선들, 그리고 소통의 부재로 고조되는 갈등들은 사람들은 지치게 만들고, 그 지침은 단절을 야기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피로를 느끼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책이 바로 유지영 작가의 <심장 듣기>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은 책이었다. 듣는 행위에 대한 책인 만큼, 표지를 설명한 글 밑에 '이 텍스트는 TTS로 이 책을 접할 독자에게 표지를 설명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라는 안내가 있었는데, 정말 듣는 것에 초점을 맞춘 책인 것 같아서 괜히 웃음이 나왔다. 

 가장 좋았던 건, '듣는 사람은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라는 챕터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부정적으로 답하곤 했다. 사람들은 유머있게 말하고, 막힘없이 말하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새우지 듣는 사람에게는 관심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의견을 멋지게 말하는 장면이나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장면들은 내 가슴도 두근거리게 만들었기에 그들이야 말로 꼭 필요한 인물들이라 생각했다. 오히려 누군가의 의견을 잘 들어주는 역할은 '주변 인물'의 임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듣는 인물에 대한 비중이 큰 영화를 알게 되어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비로소 듣는 사람이 주인공이 된다'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얼른 책을 마무리하고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쉽게 읽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김하나 작가의 추천사처럼 나 역시 이 책을 읽은 후 나의 듣기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i*****t 2026.08.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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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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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맞추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때로는 속눈썹 개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상대에게 애정을 품는 일. 나에게 잘 듣는 일이란 구체적으로는 그런 것이다. 쓸모를 증명할 수 없으나 그 증명할 수 없음으로 인해 무가치해지지는 않는 일. 그것은 잠시나마 '나'를 넓혀가는 일이다. 내가 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아는 일이다. 116" '심장 듣기'를 앞에 두고 열심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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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맞추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때로는 속눈썹 개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상대에게 애정을 품는 일. 나에게 잘 듣는 일이란 구체적으로는 그런 것이다. 쓸모를 증명할 수 없으나 그 증명할 수 없음으로 인해 무가치해지지는 않는 일. 그것은 잠시나마 '나'를 넓혀가는 일이다. 내가 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아는 일이다. 116"

'심장 듣기'를 앞에 두고 열심히 들었다.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나는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 좀처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저 열심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독자가 될 수 있을 것만 같기도 했다. 그가 자신의 내면에서, 또 이웃에서, 세상에서 들어온 이야기는 내밀하고, 익숙하고, 낯설고, 어려운 일들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함께 듣는 동안 내게도 뭔가 채워지는 것들이 있는 기분이 들었다.

임보 중이었던 밤이를 입양해 온 이야기는 언뜻 흔하디 흔한 이야기면서 매번 특별하게 여겨지는 구원 서사다. 12키로 까지 클 것으로 예상된다던 6킬로그램의 밤이가 21키로의 중형, 아마도 진도비빔일 강아지로 성장하게 되면서 보호자인 그가 겪는 산책길 시비 경험담은 너무나 예상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중대형견 보호자들은, 특히 진도의 핏줄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거기다 여성이라면 더욱더 수많은 시비와 싸움에 휘말린다.
" 날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라는 아주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서 있을 때는 아무도 괜한 시비를 걸지 않았다. 반면 아침저녁마다 하는 산책을 그런 마음으로 할 수는 없었다. 169"
내 개는 안물지만 나는 뭅니다 싶은 전투력과 산책 상황을 영상으로 기록해놓을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입마개와 중대형견 분류 조항 등을 눈만 마주쳐도 쏟아낼 수 있을 정도의 준비를 한 채 하루에도 몇 번씩 내 강아지의 행복한 산책을 위해 집을 나서는 보호자들이 많다. 산책 뿐이랴 애견동반시설 등에서도 중대형견 특히 진도의 핏줄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이용이 불가하다는 거절을 당하기도 한다.
이 남일같지 않은 분투에 웃기도 하고 공연히 혼자 더 화도 내다가, 입양한지 몇 년이 지났어도 강아지를 이해하는데 실패하고 언젠가 더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올까봐 두렵다(40)고 고백하는 두려움에 깊이 공감하기도 했다. 반려동물을 버리는 것은 그들을 집으로 들였었던 사람들이라는 사실, 그 무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버린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니 부디 이해할 수 없는 그 간극마저도 오래도록 사랑하는 반려인이 되길.

" 나는 2021년의 미얀마를, 2022년의 우크라이나를, 2023년의 팔레스타인을 떠올렸다. '그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는 건 대체 누가 결정하는 거야? 76"

123의 밤을 듣는 일은 새삼스러웠다. 불행하게도 텔레비전을 보던 어느 평범한 밤에 갑자기 쏟아져나온 속보를 무방비하게 목격할 수 밖에 없던 충격과 무력함이 다시 찾아왔다. 미처 준비도 각오도 없이 현장으로 가야만 했던 저자의 생생한 그날밤을 들으며 이것 역시 상처로 남았구나 깨달았다. 그 밤을 지나왔으면서 어떻게 아직도 그 짓을 저지른 사람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을까.
왜 시간과 이익은 모든 잘못을 덮어버리는데 충실히 쓰일까. 비단 그 밤 뿐 아니라 아주 오래도록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81번째 광복절을 앞두고 터져나왔다. '세월이 자신들의 편'이었다던 매국 집안이 쌓아올린 부와 명성을 자랑하던 부조리 앞에 다시금 터져나온 분노가 길게 이어지는 요즘이다. 둘 사이에서 닮은 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를 옹호하고 덮어두자고 말하는 사람들 역시 같은 이익을 바라고 있다.
온갖 정당화와 거센 몰이 앞에서 때로는 무력하고 이대로 저들이 원하는대로 세상이 굳어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주워야 할 말은 주워서 '기억'하기 위해(103)" 애쓰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린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그저 잠시 귀를 기울이고, 몸을 기울이고, 그곳에 나의 몸을 존재하게(97)"함으로써 힘을 보탤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안에서 나와 타인과 사회를 연결하기 위한 사랑을 느꼈다고.

" 대체 그것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사랑이라 생각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에, 심지어 자신에게 그다지 호의적이도 않았을 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이라고. 79"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저자와 겹쳐졌다가 다시 나로 떨어져나오기를 반복했다. 열심히 듣다보면 내가 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소리들이 있었다. 저자 역시 말하거나 듣는 일을 오갔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심장을 듣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궁금했었는데, 의미를 파악하려 애쓰지 않아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우리 사이에 공감하고 나눈 것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 당신이 확장되어 나와 연결되는 특별한 시간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인상적인 듣기였다.


* 152 백화점에 서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m******j 2026.08.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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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우고 타인을 채우는 듣기 | 유지영 <심장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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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와 듣기는 일상에 필수적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말하고 대답하며 소통을 이어간다. 그 속에서 '진짜 듣기'는 과연 얼마나 이뤄지고 있을까.타인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기란 쉽지 않다. 친한 친구와 있어도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휴대폰으로 시선이 향한다. 계속 듣고 있으니 말하라며, 스스로 단단한 벽이 된다. 이런 건성으로 듣는 태도 때문에 위로보다 불화가 쌓이고,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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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와 듣기는 일상에 필수적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말하고 대답하며 소통을 이어간다. 그 속에서 '진짜 듣기'는 과연 얼마나 이뤄지고 있을까.


타인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기란 쉽지 않다. 친한 친구와 있어도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휴대폰으로 시선이 향한다. 계속 듣고 있으니 말하라며, 스스로 단단한 벽이 된다. 이런 건성으로 듣는 태도 때문에 위로보다 불화가 쌓이고, 대화의 맥락 대신 꽂히는 특정 어휘만 뇌리에 박히곤 한다.


비밀을 듣기 위해서는 상대방 삶의 맥락을 이해하기에 앞서 그의 말을 유심히 듣는 수밖에 없다(p. 8). 저자가 10년 동안 기자로 만난 이들은 혼자서는 안고 갈 수 없는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줄 때까지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12·3 사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참사 유가족, 각종 혐오 사건의 당사자와 춥든 덥든 광장으로 나서는 이들까지. 유지영은 그들을 취재하고 들으며 스스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담담히 털어놓는다.


듣기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행위다. 내가 들은 말은 좋든 나쁘든 나와 내 삶을 바꾸었다. 나는 많은 사람의 말하기 덕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내게 듣기란 타인을 보는 창이고, 때로는 강강술래처럼 함께할 수 있는 놀이다. (p. 9)


그는 "나는 내가 들어온 것의 총체(p. 17)"라고 말한다. 우연히 내뱉은 말, 계속 기억되는 말은 모두 '듣는 나'가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들은 말의 무게를 무책임하게 옮기지 않고, '내가 정확히 그렇게 들었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를 가꾸겠다고 다짐한다.


마지막 퍼즐 조각의 모서리가 빈 공간에 딱 들어맞은 것 같은 정확감, 내가 어찌저찌 흘러온 삶이 말하는 이의 삶과 밀착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물론 그것은 순전히 나만의 착각일지 모르고, 말하는 이의 감정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말을 '나는' 그렇게 들었다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p.48~49)


요즘의 일상은 타인의 불편감으로 가득 차 있다. 저마다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털어놓으며 온전한 환대를 바라지만, 정작 감정 쓰레기통처럼 변해버린 대화가 듣는 이의 영혼에 어떤 생채기를 낼지는 생각지 못한다. 말에는 나만 가득 차 있고 답은 정해져 있다.


무엇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일 거라고. 내가 뭔갈 듣기로 결정했다면 그건 내가 그걸 듣고, 느끼고, 변화하겠다는 뜻이다. (p. 7)


제대로 듣기 위해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왜 나는 이 부분이 불편할까', '그 불편함은 내게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내가 들은 것을 쉽게 옮길 때 나의 듣기는 온당했는가', '나는 훌륭한 청자였는가'.


내 삶을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남의 말을 담을 수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제 듣기의 중심을 바꿔야 한다. 머리가 아닌 마음, 그 중심인 심장을 향하도록.

r*******7 2026.08.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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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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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영 <심장 듣기>한국 에세이 | 듣기 | 청자의 존재👂듣는다는 것은, 상대에게 마음을 기울이는 일- 지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믿음을 그에게 심어줄 수만 있다면, 그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삶 역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한 개의 이야기인 이상,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 이야기는 멈출 수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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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영 <심장 듣기>

한국 에세이 | 듣기 | 청자의 존재


👂듣는다는 것은, 상대에게 마음을 기울이는 일


- 지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그러한 믿음을 그에게 심어줄 수만 있다면, 그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삶 역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한 개의 이야기인 이상,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 이야기는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 첨부된 판결문의 일부이다. 판결문은 딱딱한 문체로 쓰여 감성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이 두 문장이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 법. 백날 이야기해 봤자 들어주는 이 하나 없다면 말을 하는 의미가 사라진다. 그만큼 청자의 역할은 크다. 큰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는 힘이 되고, 용기가 된다. 우리 모두 한 번쯤은 자신의 말을 늘어놓기보다는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그리고 남의 얘기를 듣는 게 재밌을 때도 많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과연 나는 어떤 쪽인가. 답은 금방 나왔다. 나 역시 화자보다는 청자의 역할이 더 편하기도 하고 익숙한 편이다. 예전부터 쭉 그렇게 생각해왔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어쩐지 부끄럽기도 하고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나도 가끔은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다. 보통 내 이야기 상대는 부모님인데, 이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이 책의 후반부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남도 좋지만 자기 자신을 궁금해해주라는 말. 나처럼 듣기가 익숙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나 자신의 말도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이 되자.



#심장듣기 #유지영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g********8 2026.08.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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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듣기 #유지영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심장 듣기. 유지영 지음. 한겨레출판. 2026._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되는 사랑나는, 듣는 인간일까 말하는 인간일까.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자꾸 가늠해보게 된다.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아는 귀를 갖고 있는지, 어느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는지 말이다. 물론, 듣는 것이 나의 일이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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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듣기 #유지영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심장 듣기. 유지영 지음. 한겨레출판. 2026.

_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되는 사랑


나는, 듣는 인간일까 말하는 인간일까.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자꾸 가늠해보게 된다.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아는 귀를 갖고 있는지, 어느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는지 말이다. 물론, 듣는 것이 나의 일이 될 때가 있어, 잘해야하는 면이 있기는 하다. 물론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그럴 때 생각한다. 나의 듣기 능력이 어느정도나 발휘될 수 있을지를.

듣는다는 것은 잘 참는다는 것과도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과 마음과 관점과 욕심으로 말하고 싶은 충동을 이기고 잘 참으며 들어줄 줄 아는 인내심이 가장 1순위 자질일 것이다. 이게 갖춰져 있어야 그 다음이 공감하는 능력이다. 공감은 하지만 자기 말을 먼저 하고 공감을 표시하느라 다른 사람의 말을 막는다면, 다 소용이 없어지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거라고. 내가 뭔가 듣기로 결정했다면 그건 내가 그걸 듣고, 느끼고, 변하겠다는 뜻이다.(...) 듣기는 그렇게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7쪽)


그런데 단순히 참을성과 공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듣기는, 나의 삶을 바꾸는 시작이 되고 또 다른 이의 생각을 수용하겠다는, 그래서 나의 생활을 기꺼이 변화시키겠다는 열린 마음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저 듣고, 듣는 것으로만 끝나는 건 어쩌면, 겉으로만 듣는, 가짜 듣기일 수 있다. 귀만 열고 입만 닫고 있다고 다 듣기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테니, 진정한 듣기는 이 책의 제목처럼 '심장 듣기'여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 좋은 듣기란 들리는 것을 유심히 들은 끝에 내면이 흔들리고, 나와 다른 타자가 가진 고유의 역사성을 존중하는 일이다. 타인이 내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고 나 또한 "그 사람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갈 여유를 마련하는 일.(...) 그러니까 기꺼이 변두리로 물러남으로써 타자를 중심에 세우는 일. 여기에는 내가 잘 비워져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내가 나로 가득 차 있으면 남의 말 같은 건 담을 수 없다.(114-115쪽)


여기서 또 하나의 자질 등장. 결국,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내 안으로 들이기 위한 빈 자리를 항시 마련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나로 가득 차 있을 때, 어느 것 하나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을 때, 사람은 아무런 변화도 만들 수 없다. 나의 것을 덜어내고 다른 이를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한 자세가 되어 있을 때, 비로소 듣기가 가능한 것. 듣는다는 것이 결국은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로 인한 나의 삶과 생활의 변화를 만들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충분히 줄 줄 알 때 비로소 진짜 듣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듣는 사람이 없이는 말하는 사람이 없고, 말하는 사람이 없이는 듣는 사람이 없다.(...) 듣는 사람의 곁에 말하는 사람이 있고, 말하는 사람의 곁에는 듣는 사람이 있다. 두 역할은 어느 한쪽으로 고착될 새도 없이 수시로 바뀐다.(198쪽)


너무 당연하다. 듣기 위해서 누군가는 말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당연하고 말하는 사람이 당연히 내가 되어야 한다. 듣기만 하는 것은 안 된다. 들는 사람이면서 말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일방적인 것은 있을 수 없다. 한쪽으로만 쏠리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건장하지도 않고. 그러니, 진짜 잘 듣기 위해서는 듣기도 말하기도 하며 그 역할을 모두 다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 또 생각하게 된다. 나는 잘 말할 줄 아는, 듣는 인간일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n*****0 2026.08.1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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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워야 들을 수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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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이 나를 사로잡는다. 누군가에게 정말로 중요한 무언가를 내가 알고 있다는 감각. 어쩌면 그 마음이 나로 하여금 ‘듣는 일’을 처음 인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입을 열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을 사랑하게 됐고, 그들로부터 진짜 이야기를 들으려고 부단히 애썼다고 말한다.또한, 저자는 듣는 것이 삶과 연결된다고 말한다. 과거에 내가 들었던 말이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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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이 나를 사로잡는다. 누군가에게 정말로 중요한 무언가를 내가 알고 있다는 감각. 어쩌면 그 마음이 나로 하여금 ‘듣는 일’을 처음 인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입을 열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을 사랑하게 됐고, 그들로부터 진짜 이야기를 들으려고 부단히 애썼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는 듣는 것이 삶과 연결된다고 말한다. 과거에 내가 들었던 말이 현재의 내게 도착해 나를 계속 듣는 사람으로 만든다. 책의 이름처럼 귀로 들어서 머리로 이해한 후 심장으로 삼키는 과정을 거쳐온 것 같다. 내가 지금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과거에 내가 들었던 수많은 말들이 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저자의 말처럼 사랑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쉽게 들리지 않는다는 말에 긍정하게 됐다. 그래서 듣는 일은 귀보다 마음이 하는 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질문 앞에서는 잠시 멈추게 된다. 누군가를 이해하고 사랑해야만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이해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오히려 어떤 소리를 듣고 있는지, 어떤 의미와 언어를 읽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내가 원하고 원하지 않는 것과 상관없이 들려오는 말들도 있다. 때로는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와 마주해야 하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 앞에 서야 한다. 듣는다는 것은 결국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골라 듣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저자는 ‘들어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다르다고 말한다. 들어주는 것이 상대의 말을 받아주는 일이라면, 듣는 것은 그 말과 나 사이에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에 가깝다. 듣는 것은 답을 주고받으며 호흡하는 일이다. 상대의 말에 즉시 답을 내놓기보다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말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까지 살피는 일이다. 귀로 들리는 말뿐 아니라 눈동자의 방향과 표정, 침묵과 현장의 공기까지 읽어내는 것. 듣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필요로 할때도 있다.


책은 잔잔하게 이어지다가 뒤로 갈수록 감정이 터지며 격해지는 느낌을 준다. 그만큼 저자에게 듣는다는 것은 소통의 기술을 넘어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말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들어보기로 했다. 듣는 사람의 위치에서 이 불완전함을 마주해보기로 한다. 온전히 변하기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들으려는 노력을 반복하는 저자의 이야기가 오히려 빛났다.


바깥에서 내면으로 돌아오는 이 '듣기'의 본질은 그 사람의 삶을 내 안에 잠시 머물게 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내가 나로 가득 차 있으면 남의 말 같은 건 담을 수 없다. 내 삶이 무거운 것처럼 남의 삶도 무겁기에, 듣고자 할 때는 내 삶을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가진 생각과 판단을 잠시 밀어내고 다른 사람의 삶이 들어올 자리를 만드는 일. 당장 무언가를 해결하지 못하고 뚜렷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잠시나마 나를 넓혀가는 일이다. 내가 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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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 2026.08.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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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지극한 사랑과 환대의 마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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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유지영 #심장듣기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오래도록 이야기해왔다. 읽는 일은 곧 듣는 일과도 같다고. 잘 읽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하고, 잘 듣기 위해서는 나의 '자리'를 내어줄 필요가 있다고. 듣기는 말하기와 말하는 사람, 이 둘의 존재를 전제해야만 한다. 언젠가 읽은 적이 있다. 아무도 없는 세계에 덜렁 놓인 사람이 아무도 없느냐고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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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도서제공: 한겨레출판

#유지영 #심장듣기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오래도록 이야기해왔다. 읽는 일은 곧 듣는 일과도 같다고. 잘 읽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하고, 잘 듣기 위해서는 나의 '자리'를 내어줄 필요가 있다고. 듣기는 말하기와 말하는 사람, 이 둘의 존재를 전제해야만 한다.


 언젠가 읽은 적이 있다. 아무도 없는 세계에 덜렁 놓인 사람이 아무도 없느냐고 물을 때조차 그는 듣는 사람을 전제하고 있다고. 듣기와 말하기는 이토록 서로를 필요로 한다. 혼자, 너무도 혼자인 고독, 스스로를 쪼개 바라볼 수조차 없는 외로움 속에서는 아무것도, 스스로의 존재를 전할 수조차 없다는 뜻이다.


 p.7 내가 뭔갈 듣기로 결정했다면 그건 내가 그걸 듣고, 느끼고, 변하겠다는 뜻이다. 내가 의도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된다. 우리는 결국 들은 것이 된다. 단지 내가 들은 내용뿐 아니라 듣는 태도를 통해서도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다. 듣기는 그렇게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p.87 "말하기는 적극적이고 의식적인 주체적인 외향적 행위인 반면, 듣기는 수동적이고 반응적인 내향적 응대처럼 보인다. 과연 그러한가?" 듣기는 단순히 수동적이고 반응적인 응대가 아니다. 듣기는 오히려 적극적인 상대에서만 가능하다. 귀는 입과 달리 늘 열려 있는 기관이지만 누군가의 말을 새겨 듣는다는 건 선택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최소한 스스로에게 타자로 인식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자기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시작도 끝도 없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혹은 들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세계와 전능자는 듣기와 말하기 모두 불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 들을 수 없고, 아무도 듣지 못하니 말하기 또한 성립되지 않는다. 이 얼마나 적막한 절멸이란 말인가.


 여기서 물을 수 있다. 듣기에는 무엇이 요구되는가. 이는 다시 처음의 생각으로 돌아간다. 듣기 위해서는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단단히 틀어쥐고 올라앉은 나의 자리를 말하는 이에게 내어주어야 한다. 말하는 이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그의 초대에 응해야 한다. 그의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


 p.48 인터뷰를 하다 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감각을 만나게 된다. 내가 말하는 이의 말을 아주 정확히 듣고 있다는 느낌이다. 마지막 퍼즐 조각의 모서리가 빈 공간에 딱 들어맞은 것 같은 정확감, 내가 어찌저찌 흘러온 삶이 말하는 이의 삶과 밀착되어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물론 그것은 순전히 나만의 착각일지 모르고, 말하는 이의 감정과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말을 '나는' 그렇게 들었다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p.115 듣는 행위에는 이렇듯 비생산적인 구석이 있다. 귀를 기울여서 잘 듣는, 잘 들으려 애쓰는 일은 생산적일 수도 효율적일 수도 없다. 듣는 것만으로는 그 무엇도 생산해낼 수 없고, 자랑도 되지 못한다. 그러니 듣기에 성공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은 형태일 것이다. 매순간 인간을 이해하는 일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듣는 일이 한 명의 인간을 이해하는 최선의, 그리고 최소한의 행위라는 걸 인정하는 것.



 동시에 '듣는 나'를 그 세계에서 소거하지 않아야 한다. 말하는 이를 이 장에 홀로 남겨두지 않아야만 그의 말을 허공에 던져버리지 않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듣고 말하기란, 누군가의, 나의 말을 잘 듣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제각기 소리높여 '나'의 자리를 다투니 기다리고 바라볼 여유가 없다. 크고, 많고, 사나운 목소리에 작고, 약하고, 느린 말이 설 자리가 없다. 하물며 듣기의 자리란 얼마나 좁고, 얕고, 위태로울까.


 저자가 인용한 판결문을 보며 김진영의 『단 한 사람』을 떠올렸다. 단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오직 그 한 사람을 위해 힘껏 내뻗는 손이 있다면, 오직 단 한 사람이 또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홀로 남겨두지 않는 세상이, 귀 기울여 듣는 사람 하나만이라도 꼭 있으리란 믿음을 잃지 않는 세상이 그 한 사람을 그대로 사라지지 않게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닐까.


 p.105 내 안에서 이미 옳고 그름이 정리된 주제라면 어느 한쪽의 편에 서는 게 크게 주저되지 않는다. 가치중립이라는 명제 아래 어떤 목소리는 과대 대표되고 어떤 목소리는 과소 대표된다고 믿어서다. 과소 대표되는 이들의 목소리를 더 정확하게 듣기 위해 그들의 편에 선다. 어떤 목소리는 편파적일 때 더 정확하게 들린다.


 p.116 나에게 잘 듣는 일이란 구체적으로는 그런 것이다. 쓸모를 증명할 수 없으나 그 증명할 수 없음으로 인해 무가치해지지는 않는 일. 그것은 잠시나마 '나'를 넓혀가는 일이다. 내가 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걸 아는 일이다.



 부디, 이 사납고 잔인한 세상에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 끊이지 않기를 바란다. 듣기 위해 눈을 마주치고, 이해하기 위해 어깨를 기울이고 가슴을 맞대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연약하고 짧은 삶, 한 명이 외로운 홀로가 아닐 수 있는 길은 오직 그뿐이리라.


 p.198 듣는 사람이 없이는 말하는 사람이 없고, 말하는 사람이 없이는 듣는 사람이 없다. 이 문장을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듣는 사람의 곁에 말하는 사람이 있고, 말하는 사 람의 곁에는 듣는 사람이 있다. 두 역할은 어느 한쪽으로 고착될 새도 없이 수시로 바뀐다.


 p.199 앞으로도 내내 오직 한 사람의 이야기를 정확하게 듣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사람이고 싶다. 설령 그것이 실현 불가능한 소망일지라도 계속 소망하고 싶다. 이렇게 겁도 없이 쓴 문장이 앞으로의 내 삶을 붙들어줄 족쇄가 되기를 바란다.

s*****7 2026.08.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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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듣기》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하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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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나는 내가 들어온 것의 총체다. 수많은 이의 말은 나와 내 삶에 축적되었고, 나는 불시의 습격에 때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말이 과거의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아직 그 말이, 그 사람이, 내 안에 이렇게나 생생하게 남아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안심했다. 그 기억은 문장으로 오기도 하지만 마치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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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내가 들어온 것의 총체다. 수많은 이의 말은 나와 내 삶에 축적되었고, 나는 불시의 습격에 때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말이 과거의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를 살폈다. 그리고 아직 그 말이, 그 사람이, 내 안에 이렇게나 생생하게 남아 있음을 알아차리고는 안심했다. 그 기억은 문장으로 오기도 하지만 마치 동영상으로, 일부 구간만 반복 재생되는 동영상으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목소리의 톤, 표정, 손짓과 입고 있는 옷, 주변 환경까지 선명하게 기억난다.                     p.17


'듣기'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행위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그에 맞춰 행동하거나 반응하게 된다. 듣기란 타인을 보는 창이 되기도 하고, 함께할 수 있는 놀이이기도 하며, 나와 내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누군가와 귀 기울여 듣고, 말하는 행위에는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고, 공감하려 애쓰고, 적절한 반응을 건네는 것까지 모두 포함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10년 동안 인터넷신문사 기자로 일하면서 타인의 말을 질리도록 들어왔다는 유지영 기자는 자신이 '듣는 사람'이라는 게 좋았다고 말한다. 자신은 언제나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고 싶었고, 동시에 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고, 그것이 살면서 욕심을 낸 유일한 무언가라고 말이다. 이 책에 수록된 열아홉 편의 글에서 저자는 듣기를 인식한 인생 최초의 순간과 그 의미를 오인한 역사, 이윽고 듣기가 진정으로 무엇인지를 알게 된 결정적 순간 등 '듣기'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사유한다. 살아오며 만나 온 사람들, 마음과 시간을 나눈 사람들, 한순간 멀어진 사람들, 이유도, 까닭도 묻지 못하고 끝나 버린 관계들에 대해서, 그리고 다 기억나지도 않는,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말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말을 할까? 저 말에는 어떤 뜻이 숨겨져 있을까? 저 말이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숨은 바를 집요하게 파악하려는 시도가 내 삶에 적잖은 이득을 가져다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냥 지나가는 사람의 말 한마디에서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발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타인의 말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이는 결국 어떤 태도로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물음과 닿아 있다. 가볍게 지나갈 수 있는 말을 무겁게 이고 지고 싶지 않았다.               p.172


이야기를 듣고, 강의를 듣고, 연설을 듣고, 음악을 듣는 행위는 얼핏 수동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순간에도 청자는 타인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내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게 인식하고 추구하는 일이 바로 ‘심장 듣기’라고, 잘 듣는 일이란 '쓸모를 증명할 수 없으나 그 증명할 수 없음으로 인해 무가치해지지는 않는 일'이라고 말이다. '듣기'가 '누군가의 말을 받아들임으로써 내가 어제와는 다른 형태가 되는 일'이라는 저자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저자인 유지영 기자는 여성들이 자유롭게 ‘몸’에 관해 이야기한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펴낸 적이 있다. ‘말하기’에 이어 이번에는 ‘듣기’의 영역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10년간 기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온 이력덕분인지 듣기의 정의에 대해 깊이 있는 사유를 만날 수 있었다.


타인의 말을 듣는 것이 직업인 기자뿐만 아니라 우리는 일상에서 가족으로서, 친구로서, 후배로서, 선배로서, 혹은 팀원으로서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 된다. '무엇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무언가를 듣고, 느끼고, 생각하며, 변화한다. 저자는 '듣는 일이 아닌 들어주는 일이란 침묵 속에서 동의하는 것이라고, 사실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상대방은 알지 못하므로 동의 여부가 중요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은 듣는 법을 아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말을 그저 들어주는 법만을 알았다고, 그래서 오랜 시간 듣는 사람이 아니라 들어주는 사람으로 살았다고 말한다. 적극적이고 의식적이며 주체적인 외향적 행위인 말하기와 수동적이고 반응적이며 내향적 응대처럼 보이는 듣기라는 행위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실 흘려 듣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말을 새겨 듣는다는 것은 선택적 행위이기 때문에, 오히려 적극적인 상태에서만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마음 다해 귀 기울여온 한 사람의 조용한 목소리'를 만나보자!


r*******n 2026.08.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