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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 이야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미국 학교에서 벌어지는 소년의 일상 사이로 페르시아의 오래된 설화가 끼어들고, 가족의 과거가 나타났다가 다시 역사와 신화로 건너간다. 한 소년의 난민 이야기를 읽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 수백 년 전의 왕과 사랑에 빠진 여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했던 이야기들이 하나의 책 안에서 겹쳐지는 것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고향을 기억하는 일도, 가족의 역사를 되짚는 일도 반듯한 순서로 이어질 수는 없다. 호스로의 기억 역시 그렇다. 조각난 시간과 희미한 장면,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와 스스로 상상한 장면들이 뒤섞여 하나의 삶을 이룬다. 이 낯선 형식은 결국 한 소년이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그 구조를 이해하고 나면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천일야화』가 선명하게 보인다.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는 죽음을 앞둔 왕에게 매일 밤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동안 그녀의 목숨도 끝나지 않는다. 호스로 역시 셰에라자드처럼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한 사람은 왕에게, 다른 한 사람은 교실의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둘 모두 이야기하는 동안 자신의 존재를 지켜낸다. 셰에라자드에게 이야기는 죽음을 하루씩 미루는 방법이었다면, 호스로에게 이야기는 자신이 살아온 세계가 정말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아무도 자신의 고향을 보지 못했고, 자신의 기억을 알지 못하며, 자신의 삶을 대신 증언해줄 사람도 없는 곳에서 그는 이야기로 자신을 세계 안에 세운다. 그래서 호스로에게 이야기를 멈춘다는 것은 단순히 말할 것을 잃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설명할 마지막 언어까지 잃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야기 속에 섞여 있는 기억의 오류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호스로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 가족에게 들은 이야기와 자신의 기억이 어긋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부분은 상상으로 이어 붙인다. 어린 시절 확실하게 믿었던 한 장면의 진실조차 나중에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이 작품의 독특한 제목이 모습을 드러낸다. 원제는 『Everything Sad Is Untrue』. 그 뒤에는 ‘A True Story’라는 문구가 붙는다. 슬픈 것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말처럼 보이지만, 호스로가 겪은 슬픔은 분명 현실이다. 고향을 잃은 일도, 가족이 흩어진 일도, 난민으로 살아가는 일도, 낯선 땅에서 차별받는 일도 거짓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거짓일까. 아마 슬픔이 영원히 삶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라는 생각일 것이다. 이 책은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깔끔하게 가려내는 이야기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야기하는지를 보여준다. 기억은 과거를 그대로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라 지금의 내가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바라보는 방식일 수 있다. 조금 틀린 기억이라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삶까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확히 기억할 수 없기에 인간은 이야기를 만든다. 호스로가 미국에서 자신의 이름 대신 ‘다니엘’로 불리게 되는 장면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 하나가 바뀌는 순간, 그가 살아온 세계의 일부도 함께 낯설어지는 듯하다. 이란에서의 삶과 가족, 언어와 음식,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기억이 하나씩 뒤로 물러난다. 고향을 잃는다는 것은 결국 장소 하나를 잃는 일을 넘어 그곳에서의 나를 잃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호스로는 이야기 속에서 고향을 다시 만든다. 이스파한의 풍경과 가족의 역사, 오래된 전설을 들려주는 동안 돌아갈 수 없는 세계가 잠시 현재로 돌아온다. 이야기 속에서는 잃어버린 이름도, 오래된 기억도 다시 불릴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 슬픔을 신화로 바꾼다는 말은 현실을 아름답게 꾸며내는 일이 아니다. 이란을 떠나야 했던 이유도, 난민으로 살아온 시간도, 낯선 땅에서 마주한 차별과 폭력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호스로는 그 슬픔을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꾼다. 출판사가 말한 ‘가혹한 역사를 등지고 쏘아 올린 눈부신 자유의 신화’라는 표현도 이 지점에서 이해된다. 신화는 고통을 지우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나머지를 함께 담기 위해 만들어진다. 슬픔을 이야기로 바꾸는 순간, 과거는 더 이상 자신을 짓누르기만 하는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언어가 된다. 인간을 지탱하는 것이 언제나 희망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희망은 때때로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보게 한다.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는 약속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존엄은 이미 지나온 시간을 함부로 지우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호스로에게 필요한 것은 언젠가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보다 자신이 살아온 삶에도 이야기할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면 다시 이야기하고, 기억이 완전하지 않다면 그 빈자리까지 품은 채 이야기한다.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이름과 고향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 소년이 낯선 세계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식. 그것만으로도 한 사람은 자신에게서 빼앗긴 삶을 조금씩 되찾을 수 있다. 『슬픔은 다 거짓이야』라는 제목은 그래서 슬픔을 부정하는 말로 읽히지 않는다. 슬픔은 분명 진실이다. 다만 슬픔이 삶의 마지막 문장이라는 믿음은 거짓일 수 있다. 호스로가 셰에라자드처럼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과거는 다시 목소리를 얻고, 사라진 사람들은 이야기 속에서 이름을 되찾는다. 이야기는 지나간 시간을 되돌려놓지 못하고, 잃어버린 고향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계속 말할 수 있다면, 상실 이후에도 삶은 다른 문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그 작은 가능성이다. 슬픔을 잊지 않으면서도 슬픔만으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 것.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면서도 그 기억 속에 영원히 머물지 않는 것. 인간은 슬픔을 없애며 살아갈 수 없어서, 그것을 자신의 이야기로 바꾸며 다시 살아갈 자리를 만들어간다. 이야기가 가진 가장 오래된 힘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끝나버린 삶을 되돌리는 힘이 아니라, 끝났다고 믿었던 삶에서 다시 한 문장을 시작하는 힘. 잃어버린 것을 모두 되찾을 수는 없어도, 그것을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는 사라진 삶의 자리를 다시 마련할 수 있다. 『슬픔은 다 거짓이야』는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포개지는 『천일야화』의 구조를 사랑하는 독자에게, 낯선 땅에서 자신의 이름과 고향을 다시 써 내려가는 이주와 디아스포라의 서사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특히 잘 어울린다. 기억의 빈틈 속에서도 무엇이 진실한 이야기인지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 상실 이후에도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한 사람을 살아 있게 하는지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문장들을 따라가 보기를 권하고 싶다. 슬픔을 지워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마음에, 이 책은 조금 다른 생의 방식을 건넨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는 대신 그 시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부여하는 것. 잃어버린 것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로 삶을 다시 써 내려가는 것. ✏️도서출판 해피북스투유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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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도서 현실이 잔혹한 지점에 서 있을 때 나는 상상으로 도피를 한다. 그런 순간 나에게 문학이 주는 도피처는 아주 환상적인 곳이다. 그렇기에 호스로가 신화와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자신을 지키고, 기억을 재현하고, 자신만의 삶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것들이 진실이건 거짓이건 그 안에서만은 평온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처음에는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현실과 기억이 뒤섞이고, 낯선 이름들과 이야기들이 연달아 등장하면서 계속해서 메모를 하고 책장을 되짚어 읽어야 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조금씩 쌓이고 나니, 어쩌면 이 혼란 자체가 호스로를 더없이 정확하게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한 사람이 삶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기억들은 언제나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지 않으니까.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상상과 현실이 겹쳐지고, 잊고 싶었던 기억과 붙잡고 싶었던 기억들이 뒤엉키기도 하니까. 그런 슬픔을 지워보려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셰에라자드는 죽지 않기 위해 매일 밤 이야기를 하나씩 이어간다. 그 모습이 호스로와 겹쳐 보였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때로는 거짓이 섞여 있는 이야기의 이면에는, 어쩌면 말을 멈추는 순간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올 것 같아 계속 이야기를 지어내며 내일로 넘어가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종교도, 인종도, 출신도 모두 떠나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세상은 그렇게 다정하지 못하다. 그래서인지 그런 폭력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때마다 호스로의 곁에서 손을 꼭 붙잡아주고 싶었다. 다 읽고나서는 슬픔은 다 거짓이야라는 제목이 처음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슬픔은 거짓이니까 슬퍼하지 않을 거야라는 어린아이의 단순한 의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 나니 슬픔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완벽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상황도 사람마다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기억은 각자의 방식으로 왜곡되기도 하니까.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명확하게 선을 긋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슬픔은 다 거짓이야라는 말은 슬픔을 부정하는 말이라기보다, 슬픔만을 진실로 여기며 살아가지는 않겠다는 다짐처럼 들렸다. 이야기를 계속해서 한다는 건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호스로가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가기를, 그 미래에 대한 믿음이 더욱 단단해져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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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란을 탈출해 두바이와 이탈리아를 거쳐 미국에 정착한 난민 소년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열두 살 소년 호스로는 어린 시절의 상실과 망명, 낯선 땅에서 겪는 차별과 외로움을 고대 페르시아의 신화와 『천일야화』를 닮은 이야기로 엮어 낸다. 현실은 참혹하지만, 유머와 전설, 기억이 뒤섞인 독특한 서사는 인간이 어떻게 상처를 견디고 끝내 자신의 존엄을 지켜 내는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천일야화』 속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처럼 풀어낸다. 처음에는 하나의 문학적 장치처럼 보였지만, 책을 읽을수록 그것은 생을 대하는 가장 간절한 태도처럼 느껴졌다. 셰에라자드가 이야기를 이어 가며 죽음을 미루었다면, 호스로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난민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지워질 수 있는 존재를, 기억과 목소리를 가진 한 사람으로 되살려 내는 것이다. 이야기는 그의 마지막 피난처이자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 된다. 나는 신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신화는 특별한 영웅에게만 허락된 이야기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신화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도 끝내 남아 있는 기억의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순간들은 너무도 평범해서 기록할 가치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그런 순간들이 한 시대를 가장 선명하게 증언한다. 대니얼 나예리의 개인적인 기억이 한 가족의 역사를 넘어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다가온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인류이고, 인류는 결국 하나의 신화로 남는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또 다른 슬픔을 마주했다.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통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다는 무력감이다. 우리는 뉴스와 문학을 통해 전쟁과 기근, 난민과 차별을 수없이 접한다. 이전 시대보다 훨씬 넓은 세계를 알고 살아가지만, 개인이 실제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여전히 많지 않다. 그래서 어떤 날은 책을 덮고도 오래 침묵하게 된다. 하지만 문학은 그 무력감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남긴다. 인간은 끊임없이 사람을 국가와 인종, 종교와 언어로 나누지만, 좋은 이야기는 그 경계를 잊게 만든다. 난민이라는 이름보다 한 아이를 먼저 만나게 하고, 타인이라는 분류보다 한 사람을 먼저 만나게 한다. 그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하나의 범주가 아니라 온전한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일은,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는 작은 시작이 된다. 좋은 문학은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슬픔은 다 거짓이야』는 신화와 기억, 경계와 인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신화는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잊히지 않도록 건네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책을 덮고 나면 오래도록 한 사람의 이야기가 마음속에 신화처럼 살아남는다. 그리고 문득, 우리 모두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하나의 신화로 남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슬픔은다거짓이야 #대니얼나예리 #소설추천 #도서추천 #북스타그램 *도서증정 @happybooks2u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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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지금 이란과 미국은 전쟁중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미국 트럼프정권이 이란의 핵정책 관련하여 전쟁을 일으켰고 이 전쟁은 전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란의 경우 중동국가와는 다른 노선을 지금까지 견지해 왔고 또 다수의 수니파 아랍국가들과는 달리 시아파 이슬람을 믿고 있으며 종교와 정치가 일치하는 특수한 국가입니다. 무엇보다 저자의 아빠와 엄마가 극명하게 대조되는데요. 엄마의 경우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도 끝끝내 희망을 포기하지않고 이루어내는 강인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편으로 아빠는 비록 도움을 주긴했지만 이란을 떠난 자식들을 너무도 쉽게 포기하는 모습으로 엄마와는 너무도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채 이란을 떠나 미국의 오클라호마에서 살아가게 된 소년의 또 다른 천일야화. 천일야화의 끝에 이제 소년은 어른이 되었고 또 자기가 이란을 떠났을때의 나이를 가진 아들을 두고 있고 이제는 호스로가 아닌 대니얼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는 한국을 떠날 일본을 거쳐 미국에 정착하게 된 한국인 디아스포라의 이야기와 또 닮아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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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 슬픔은 다 거짓이야 by대니얼 나예리 🌱 "가혹한 역사를 등지고 쏘아 올린 눈부신 자유의 신화!” 모든 것을 잃고도 끝내 존엄을 지켜낸 한 가족의 생존기이자, 슬픔조차 아름다운 신화로 바꿔버리는 마법 같은 이야기! 🌱 ~ 어릴 적 읽었던 <아라비안 나이트>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흥미로웠다. 그도 그럴 것이 재미난 이야기가 끊임없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하나의 이야기지만 계속 해서 몰입감을 자아내는 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여기 21세기 청소년 문학계에도 그런 작품이 있었다. 작품 소개에 따르면 '청소년 문학 부문에서 최고 권위의 상으로 꼽히는 뉴베리 아너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고 마이클 L. 프린츠 대상까지 받았으며, 청소년 문학계에서 독보적인 성취를 인정받았다는 작품' 이다. 이렇듯 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 이유는 이 이야기가 단순히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넘쳐난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이야기꾼이 세헤라자드라는 여인이었다면 이 작품 속 이야기꾼은 열두살 소년 호스로였다. 이야기가 재미없었다면 언제 죽음을 당할 지 모르는 세헤라자드와 이란을 탈출해 여러 나라를 떠돌다 간신히 미국에 정착한 난민 소년은 다르지만 같기도 하다. 그들의 이야기는 살아남기 위해 세상을 향해 외치는 항변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화려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현재 그곳 주민들의 삶은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떠돌이 신세다. 그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호스로는 자신과 자신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고대 도시에 살았다. 우리 반에서 이 이야기를 하자 재러드가 “얼마나 오래된 도시야?”라고 물었다. “그냥 도시야.” 내가 말했다. “<알라딘>에 나온 도시 같은?” “응. 그런 도시.” 아이들에게는 낯설고 신비롭게 들리는 이야기이다. 마치 세헤라자드의 이야기를 듣는 왕처럼.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이들이 호스로를 자신들과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냥 신기하고 낯선, 재밌어 보이는 무언가이다. 그럼에도 호스로의 이야기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점점 그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고 미처 생각지 못했던 다른 세계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는 사람을 가장 크게 성장시킨다. 그것도 질풍노도의 시기인 10대가 겪은 고난은 슬픔조차도 거짓이어야 할 만큼 절박했다. 그러나 호스로는 그 과정을 거치며 자신이 이야기하는 신화 속 존재처럼 당당해진다. 슬프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데, 지금도 이런 아픔을 겪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happybooks2u 🔅< 해피북스투유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 #슬픔은다거짓이야 #대니얼나예리 #청소년소설 #해피북스투유 #성장소설 #뉴베리아너상 #올해최고의책 #서평단 #도서협찬 #추천도서 #책추천 #신간 #베스트셀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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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난민 소년 대니얼이 이란을 탈출해 두바이와 이탈리아를 거쳐 미국 오클라호마에 정착하기까지의 험난했던 여정을 다루고 있는 대니얼 나예리의 자전소설이다. 사실 이 책은 내게 쉽거나 가볍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고대 페르시아 신화와 소년의 이야기 방식이 계속 교차하듯이 내용이 연결되고, 과거와 현재에서 이란에서의 기억과 미국에서의 현실이 끊임없이 번갈아 등장하기 때문에 차근차근 집중해서 읽어도 헷갈리고 어려웠다. 등장인물도 많고 (어려운 이름^^:) 소년의 시선에서 소년의 문체로 간결하고 쉽게 표현한 문장들이라고 해도 내용은 무겁고 어두운 내용이기에 읽으며 마음이 조금 힘들기도 했다.😢 책장을 넘길수록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장면들이 많았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엔 너무나 참혹했던 삶의 순간들.. 정말 화가 치밀어 올라 머리가 지끈한 상황 상황들.. (제발 사실이 아니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그러나 그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도 소년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빠와 할아버지에 대한 짙은 그리움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이란에서 아빠와 함께했던 아름다웠던 집의 기억, 꿈속에서조차 그 향기를 맡고 싶어 하는 마음,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손을 뻗어 자신을 자랑스러워해 주었던 할아버지의 모습까지.. 멀리 떨어진 가족과 그리운 고향을 향한 애절한 기억들이 글 곳곳에 흘러넘쳐 읽는 내내 마음이 아려오고 슬퍼서 어떤 페이지에서는 꺽꺽 울기도 했다. 난민으로서 겪어야 했던 수치심과 외로움은 아름다운 양탄자가 아닌 누더기 조각보 같았다고 고백하지만 소년은 자신을 끊임없이 설명하고 증명해 내며 삶을 이어간다. 비록 가족을 잃고 마음속에 거대한 구멍이 뚫린 채 살아갈지라도 언젠가는 사랑으로 들어주는 신이 정의를 알려주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으면서 말이다. 슬픔과 고통의 기억들을 거친 신화와 이야기로 직조해낸 대니얼의 고백은 단순히 한 소년의 비극적인 난민 잔혹사에 그치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그리고 가족과 사랑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삶이 아무리 가혹할지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의 이야기를 이어가야 한다는 깊은 울림을 전해준 고맙고 따뜻한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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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협찬 #슬픔은다거짓이야 #대니얼나예리 #김래경 옮김 #해피북스투유 20260810 💭처음에는 조금 낯설었던 책. 이란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난민 생활을 하고, 미국 오클라호마로 이주한 이야기를 따라가는데 한 가지 이야기가 쭉 이어지는 게 아니라 가족 이야기와 신화에 대한 이야기, 과거의 기억들이 계속 이어져서 처음에는 조금 헷갈리기도 했다.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이라 그런지 소설 같기도 하고,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이야기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읽다 보니 이 책은 자신의 기억과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떤 사람인가’를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인 <슬픔은 다 거짓이야>도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책을 읽고 나니 기억과 이야기,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있는 이 책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상을 받은 작품인 만큼 다른 책에서는 쉽게 만나기 힘든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던 <슬픔은 다 거짓이야>. @happybooks2u 보내주신 책, 잘 읽었습니다! 🙏 ✏️이 세계에서 폭탄이 터져 죽거나 굶어 죽는 아이들에 비해 당신이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 1초의 반만 그 일을 생각해도 당신이 좋은 일을 얼마나 할지 상상하라. 이내 사람을 때리고 증오하는 것만이 악함의 전부가 아니게 된다. 당신이 하지 않고 내버려둔 그 모든 것이 순식간에 악함이 된다. 당신이 베풀 수 있었던 그 모든 친절. 친절 대신 당신이 들이댔던 그 모든 핑계. 잠깐만 이걸 상상해보라. 이게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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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거짓이라 해도, 이야기는 남는다 <슬픔은 다 거짓이야>는 열두 살 소년 호스로가 미국 오클라호마의 교실에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미국에서는 ‘다니엘’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호스로는 친구들 앞에서 자신이 떠나온 이란과 가족, 그리고 그곳에서 겪었던 일들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호스로의 기억 속 이란은 단순히 떠나온 고향이 아니다. 할아버지와 친척들, 가족에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와 페르시아의 전설, 세 살 무렵의 강렬한 기억까지 뒤섞여 있는 거대한 세계다. 때로는 너무 극적이고 놀라워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지만, 호스로에게 그 모든 이야기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설명해주는 중요한 조각들이다. 평온했던 가족의 삶은 엄마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비밀 지하교회 활동에 관여하면서 크게 달라진다. 결국 호스로는 엄마와 함께 이란을 떠나 난민의 삶을 시작하고, 여러 곳을 거쳐 미국에 정착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완전한 자유와 행복만은 아니다. 낯선 언어와 문화, 가난과 차별 속에서 호스로는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야 한다. 이 작품에서 특히 눈여겨보게 되는 것은 ‘기억’과 ‘이야기’, 그리고 ‘거짓말’의 관계다. 호스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시간 순서대로 차분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현재의 교실에서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갔다가 가족의 이야기와 페르시아의 옛이야기로 뻗어나간다. 처음에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읽을수록 이 비선형적인 구성이야말로 호스로가 자신의 삶을 기억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은 언제나 순서대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장면이 오래전의 기억을 불러오고, 그 기억이 또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데려온다. 작가는 이러한 기억의 움직임을 서사 구조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처음에는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하나씩 연결되며 한 아이의 삶과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인상 깊었다. 친구들은 호스로의 이야기를 과장된 거짓말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객관적으로 얼마나 정확한가보다 ‘호스로가 왜 끊임없이 이야기하려 하는가’에 있다. 고향을 떠나면서 그는 장소 하나만을 잃은 것이 아니다. 아빠와 가족, 자신의 언어와 어린 시절, 그리고 그 안에서 존재했던 자신까지 많은 것을 한꺼번에 잃었다. 그래서 호스로에게 이야기는 잃어버린 세계를 기억 속에서 다시 불러오는 일이자, 낯선 땅에서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지켜내는 방법처럼 느껴진다.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선택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엄마의 신앙과 용기는 가족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았고, 그 선택으로 가족은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동시에 너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아빠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떠나야 했던 호스로의 모습을 보며,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큰 상실을 감당해야 하는 일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청소년문학 부문에서 수상한 작품답게 열두 살 소년의 목소리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종교와 자유, 가족의 선택과 희생, 난민으로 살아가는 정체성, 그리고 기억과 이야기의 의미까지. 청소년의 시선을 통해 어른에게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건넨다는 점에서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 독자에게도 충분히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은 것은 호스로가 슬픔을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난민, 종교적 박해, 가족과의 이별처럼 무거운 사건들이 담겨 있지만 이야기는 슬픔으로만 채워져 있지 않다.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이야기와 아름다운 기억, 가족에 대한 사랑이 슬픔 사이사이에 존재한다. 그래서 오히려 그 밝은 기억들 뒤에 자리한 상실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슬픔을 직접 설명하고 강조하기보다 잃어버린 것들의 아름다움을 계속 이야기함으로써 그 상실의 크기를 느끼게 하는 것. 나는 그 지점에서 이 소설의 힘을 가장 크게 느꼈다. 처음에는 제각기 흩어져 있는 듯했던 기억과 전설, 가족의 이야기들이 읽어갈수록 하나의 정서와 주제로 모여드는 과정도 좋았다. 독특한 서술 방식이 단순한 형식적 실험에 머물지 않고 호스로의 기억과 정체성, 작품 전체의 주제를 연결하는 장치가 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문학적 완성도를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슬픔은 다 거짓이야>는 한 난민 소년의 이야기를 넘어, 사람이 자신의 기억과 이야기를 통해 잃어버린 것들을 어떻게 간직하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이 이야기가 정말 사실일까?’ 보다 ‘호스로는 왜 이 이야기를 반드시 해야 했을까?’ 그 질문을 품고 읽다 보면 제목 속 ‘거짓’ 너머에 자리한 한 아이의 진짜 슬픔과 사랑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해피북스투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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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속의 말 씨앗 > 📚 - "사람은 사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붙잡는다." - "슬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른 모습으로 살아남는다." - "기억은 언제나 진실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다." - "우리는 상처를 감추기 위해 이야기를 만든다." - "모든 애도는 결국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다." -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함께했던 시간을 다시 쓰는 일이다." - "인생은 기억의 총합이 아니라, 기억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제목이 눈에 걸렸습니다. 《슬픔은 다 거짓이야》. 너무 단정적인 말이라 오히려 반발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이 문장은 슬픔을 부정하는 선언이 아니라 슬픔을 둘러싼 우리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향한 질문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대니얼 나예리는 슬픔을 소비하지 않습니다.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인간이 상실을 견디기 위해 기억을 어떻게 바꾸고, 삶을 어떻게 다시 이야기하는지를 차분히 바라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읽는 동안보다 읽고 난 뒤가 더 오래 남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을 한 편의 이야기로 엮으며 살아갑니다. 견딜 수 없는 기억은 조금 덜 아프게 고쳐 쓰고, 이해할 수 없는 상처에는 새로운 의미를 덧입힙니다. 어쩌면 그 거짓은 자신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일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인간적인 방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은 큰 목소리로 위로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곁에 앉아 한 가지를 묻습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믿어온 기억은 정말 진실이었나요?" 그 질문 하나가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문득, 나 역시 지나온 시간을 수없이 다시 해석하며 오늘의 나를 만들어 왔다는 사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문학은 정답을 주지 않습니다. 대신 오래 품고 살아갈 질문 하나를 건네줍니다. 《슬픔은 다 거짓이야》는 제게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한 줄 평♤ 우리를 붙들고 있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끝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추천☆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읽게 만드는 소설을 찾고 계신다면, 이 작품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 해피북스투유(@happybooks2u)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슬픔은다거짓이야 #대니얼나예리 #해피북스투유 #청소년소설 #북러버의독서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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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 모든 것은 슬픔이 아니었을지도- <슬픔은 다 거짓이야>. 미국 작가 대니얼 나예리의 작품으로 이민 가족의 서사를 담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족의 이야기는 비록 중동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이란 가족의 내용이지만, 우리와의 정서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에서부터, 치열하고 고달팠던 난민 생활, 그리고 미국인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은 슬프긴 하지만 결코 슬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이자 꼬마인 대니얼은 두 이름을 갖고 있다. 집에서는 호스로, 밖에서는 대니얼. 외모부터 다르기 때문일까? 학교에서 무지막지한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족에게 숨기며 혼자서 고군분투한다. 한국인 관장이 운영하는 태권도 학원을 다니며 무술을 익히고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모습이 이민 가족의 모습을 잘 대변해 준다. <슬픔은 다 거짓이야>. 사실 예전에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어린 시절 미국에서 보내면서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었던 유색 인종의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국에서의 지위와 명예는 미국에서 쓸모가 없었다. 소설 속 대니얼의 부모님도 이란에서 인정받은 의사이지만 미국에서 그 자격증은 통하지 않는다. 분명 그 나라에서는 고급 엘리트였겠지만, 미국에서는 언어도 잘되지 않고 의사 일을 할 수 없는 노동자가 되어버린다. 이야기는 웅장하다. 페르시아인들의 특징인 이야기를 잘 지어낸다가 유쾌하게 반영되어 있다. 대니얼의 눈으로 바라본 가족의 대서사는 순수하고 맑고 꾸밈이 없다. 특히, 미국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음식들의 특징을 똥으로 묘사한 장면은 웃음이 나왔다. 한국인의 음식은 맵고 자극적이고 똥 또한 그렇다고 한 문장은 재미있었다. <슬픔은 다 거짓이야>.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인 만큼, 미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성숙하게 발전해 왔다. 모든 것의 원천은 창조성이기 때문이다. 대니얼의 유년 시절은 우울하긴 했지만 때로는 따스한 햇살도 비쳤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긍정적인 사람으로 성장했고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작가의 삶이 반영된 책으로 일상에 최선을 다하면 분명 좋은 결과가 올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중동 문화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가족들의 내리사랑을 통해 사람이 얼마나 단단하고 튼튼한 뿌리가 형성되는지에 대해서도 느낄 수 있다. 슬픔은 다 거짓이지만, 사랑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슬픔은다거짓이야, #대니얼나예리, #김래경, #해피북스투유,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