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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조각이 신화가 되기까지, [슬픔은 다 거짓이야] 📕대니얼 나예리 지음 / 해피북스투유 출판사 처음 제목을 마주했을 때, 그저 밀려드는 비극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고통을 애써 부정하려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짐작했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 슬픔이라 여겼던 수많은 파편들이 하나둘 모여 거대한 신화가 되고 결국 지금의 단단한 나를 완성하는 증거임을 깨닫게 된다.
부서진 조각들을 이어 붙여 자신만의 우주를 만들어내는 이 과정은 특별한 누군가만의 생존기를 넘어, 굴곡진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인생과도 결코 다르지 않다는 깊은 울림을 남겼다. 이야기는 종교적 이유로 모든 것을 버리고 낯선 땅으로 이주해야 했던 한 가족의 치열한 여정을 그린다. 어린 소년 호스로의 시선에서 출발하는 서사는 친절하지만은 않다. 현재와 과거, 그리고 작가가 전해 들었던 아득한 조상들의 이야기까지 꼬리를 물고 교차한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에는 이 생소한 전개방식에 길을 여러 번 잃기도 했다. 그저 눈에 보이는 글자만 읽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독서의 흐름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페이지를 넘겨야 했다. 하지만 중후반부가 되어갈 수록 이야기의 조각들이 하나의 초점을 향해 모여드는 순간, 이 낯선 서사가 상실의 고통을 견뎌내기 위한 생존방식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기억을 끊임없이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과정 자체가 곧 삶을 버텨내는 힘이었던 것이다. 작품은 단순히 고난을 극복한 서사를 넘어, 모든 것을 잃은 상황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낸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이 유독 많았던 이유는 폭력과 고통이 난무하는 현실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숭고함이 곳곳에 배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온갖 위험과 차별 속에서도 끝끝내 가족의 굳건한 방패가 되어준 엄마의 모습은 그 어떤 신화 속 존재보다 위대한 영웅으로 다가왔다. 서로를 지켜내려는 이 단단한 믿음은, 슬픔으로 시작된 여정의 끝이 결코 상처뿐인 비극으로 남지 않음을 증명하는 듯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움을 자아내던 슬픈 호스로가 언젠가는 자신이 바라던 그곳에 반드시 닿을 수 있으리라 굳게 믿는 부분에서 고단한 현실을 버티는 우리의 삶에도 꺼지지 않는 한 줄기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다정하게 일깨워 준다. 삶의 모진 풍파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 혹은 지나온 슬픔이 그저 아픈 흉터로만 남아 허덕이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비극의 늪에서도 기어코 존엄과 사랑을 지켜낸 한 가족의 서사는, 각자의 상처를 어떻게 삶의 동력으로 엮어내야 하는지 보여주는 훌륭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부서지고 흩어진 슬픔의 조각들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헛된 고통이 아니라, 내일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가장 진실한 희망의 신화가 된다고 믿는다. 📓이 글은 해북이2기로 출판사 해피북스투유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의견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슬픔은다거짓이야 #대니얼나예리 #해피북스투유 #해북이 #해북이2기 #서평 #서평단 #도서협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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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 이야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미국 학교에서 벌어지는 소년의 일상 사이로 페르시아의 오래된 설화가 끼어들고, 가족의 과거가 나타났다가 다시 역사와 신화로 건너간다. 한 소년의 난민 이야기를 읽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 수백 년 전의 왕과 사랑에 빠진 여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했던 이야기들이 하나의 책 안에서 겹쳐지는 것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고향을 기억하는 일도, 가족의 역사를 되짚는 일도 반듯한 순서로 이어질 수는 없다. 호스로의 기억 역시 그렇다. 조각난 시간과 희미한 장면,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와 스스로 상상한 장면들이 뒤섞여 하나의 삶을 이룬다. 이 낯선 형식은 결국 한 소년이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그 구조를 이해하고 나면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천일야화』가 선명하게 보인다.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는 죽음을 앞둔 왕에게 매일 밤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동안 그녀의 목숨도 끝나지 않는다. 호스로 역시 셰에라자드처럼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한 사람은 왕에게, 다른 한 사람은 교실의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둘 모두 이야기하는 동안 자신의 존재를 지켜낸다. 셰에라자드에게 이야기는 죽음을 하루씩 미루는 방법이었다면, 호스로에게 이야기는 자신이 살아온 세계가 정말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아무도 자신의 고향을 보지 못했고, 자신의 기억을 알지 못하며, 자신의 삶을 대신 증언해줄 사람도 없는 곳에서 그는 이야기로 자신을 세계 안에 세운다. 그래서 호스로에게 이야기를 멈춘다는 것은 단순히 말할 것을 잃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설명할 마지막 언어까지 잃는 일이다. 그렇다면 이야기 속에 섞여 있는 기억의 오류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호스로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 가족에게 들은 이야기와 자신의 기억이 어긋나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부분은 상상으로 이어 붙인다. 어린 시절 확실하게 믿었던 한 장면의 진실조차 나중에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이 작품의 독특한 제목이 모습을 드러낸다. 원제는 『Everything Sad Is Untrue』. 그 뒤에는 ‘A True Story’라는 문구가 붙는다. 슬픈 것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말처럼 보이지만, 호스로가 겪은 슬픔은 분명 현실이다. 고향을 잃은 일도, 가족이 흩어진 일도, 난민으로 살아가는 일도, 낯선 땅에서 차별받는 일도 거짓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거짓일까. 아마 슬픔이 영원히 삶의 모습을 결정할 것이라는 생각일 것이다. 이 책은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깔끔하게 가려내는 이야기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야기하는지를 보여준다. 기억은 과거를 그대로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라 지금의 내가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바라보는 방식일 수 있다. 조금 틀린 기억이라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삶까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확히 기억할 수 없기에 인간은 이야기를 만든다. 호스로가 미국에서 자신의 이름 대신 ‘다니엘’로 불리게 되는 장면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 하나가 바뀌는 순간, 그가 살아온 세계의 일부도 함께 낯설어지는 듯하다. 이란에서의 삶과 가족, 언어와 음식,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기억이 하나씩 뒤로 물러난다. 고향을 잃는다는 것은 결국 장소 하나를 잃는 일을 넘어 그곳에서의 나를 잃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호스로는 이야기 속에서 고향을 다시 만든다. 이스파한의 풍경과 가족의 역사, 오래된 전설을 들려주는 동안 돌아갈 수 없는 세계가 잠시 현재로 돌아온다. 이야기 속에서는 잃어버린 이름도, 오래된 기억도 다시 불릴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에서 슬픔을 신화로 바꾼다는 말은 현실을 아름답게 꾸며내는 일이 아니다. 이란을 떠나야 했던 이유도, 난민으로 살아온 시간도, 낯선 땅에서 마주한 차별과 폭력도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호스로는 그 슬픔을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꾼다. 출판사가 말한 ‘가혹한 역사를 등지고 쏘아 올린 눈부신 자유의 신화’라는 표현도 이 지점에서 이해된다. 신화는 고통을 지우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나머지를 함께 담기 위해 만들어진다. 슬픔을 이야기로 바꾸는 순간, 과거는 더 이상 자신을 짓누르기만 하는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게 해주는 언어가 된다. 인간을 지탱하는 것이 언제나 희망일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희망은 때때로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보게 한다. 언젠가는 나아질 것이라는 약속을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존엄은 이미 지나온 시간을 함부로 지우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호스로에게 필요한 것은 언젠가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보다 자신이 살아온 삶에도 이야기할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면 다시 이야기하고, 기억이 완전하지 않다면 그 빈자리까지 품은 채 이야기한다. 자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이름과 고향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 소년이 낯선 세계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식. 그것만으로도 한 사람은 자신에게서 빼앗긴 삶을 조금씩 되찾을 수 있다. 『슬픔은 다 거짓이야』라는 제목은 그래서 슬픔을 부정하는 말로 읽히지 않는다. 슬픔은 분명 진실이다. 다만 슬픔이 삶의 마지막 문장이라는 믿음은 거짓일 수 있다. 호스로가 셰에라자드처럼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과거는 다시 목소리를 얻고, 사라진 사람들은 이야기 속에서 이름을 되찾는다. 이야기는 지나간 시간을 되돌려놓지 못하고, 잃어버린 고향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주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계속 말할 수 있다면, 상실 이후에도 삶은 다른 문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그 작은 가능성이다. 슬픔을 잊지 않으면서도 슬픔만으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 것.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면서도 그 기억 속에 영원히 머물지 않는 것. 인간은 슬픔을 없애며 살아갈 수 없어서, 그것을 자신의 이야기로 바꾸며 다시 살아갈 자리를 만들어간다. 이야기가 가진 가장 오래된 힘은 바로 그것일 것이다. 끝나버린 삶을 되돌리는 힘이 아니라, 끝났다고 믿었던 삶에서 다시 한 문장을 시작하는 힘. 잃어버린 것을 모두 되찾을 수는 없어도, 그것을 이야기하는 동안 우리는 사라진 삶의 자리를 다시 마련할 수 있다. 『슬픔은 다 거짓이야』는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포개지는 『천일야화』의 구조를 사랑하는 독자에게, 낯선 땅에서 자신의 이름과 고향을 다시 써 내려가는 이주와 디아스포라의 서사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특히 잘 어울린다. 기억의 빈틈 속에서도 무엇이 진실한 이야기인지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 상실 이후에도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한 사람을 살아 있게 하는지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이 소설의 문장들을 따라가 보기를 권하고 싶다. 슬픔을 지워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마음에, 이 책은 조금 다른 생의 방식을 건넨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는 대신 그 시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부여하는 것. 잃어버린 것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로 삶을 다시 써 내려가는 것. ✏️도서출판 해피북스투유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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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도서 현실이 잔혹한 지점에 서 있을 때 나는 상상으로 도피를 한다. 그런 순간 나에게 문학이 주는 도피처는 아주 환상적인 곳이다. 그렇기에 호스로가 신화와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자신을 지키고, 기억을 재현하고, 자신만의 삶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것들이 진실이건 거짓이건 그 안에서만은 평온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처음에는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현실과 기억이 뒤섞이고, 낯선 이름들과 이야기들이 연달아 등장하면서 계속해서 메모를 하고 책장을 되짚어 읽어야 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조금씩 쌓이고 나니, 어쩌면 이 혼란 자체가 호스로를 더없이 정확하게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한 사람이 삶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기억들은 언제나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지 않으니까.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상상과 현실이 겹쳐지고, 잊고 싶었던 기억과 붙잡고 싶었던 기억들이 뒤엉키기도 하니까. 그런 슬픔을 지워보려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셰에라자드는 죽지 않기 위해 매일 밤 이야기를 하나씩 이어간다. 그 모습이 호스로와 겹쳐 보였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때로는 거짓이 섞여 있는 이야기의 이면에는, 어쩌면 말을 멈추는 순간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올 것 같아 계속 이야기를 지어내며 내일로 넘어가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종교도, 인종도, 출신도 모두 떠나 그저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세상은 그렇게 다정하지 못하다. 그래서인지 그런 폭력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때마다 호스로의 곁에서 손을 꼭 붙잡아주고 싶었다. 다 읽고나서는 슬픔은 다 거짓이야라는 제목이 처음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처음에는 슬픔은 거짓이니까 슬퍼하지 않을 거야라는 어린아이의 단순한 의지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끝까지 읽고 나니 슬픔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완벽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상황도 사람마다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고, 기억은 각자의 방식으로 왜곡되기도 하니까.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명확하게 선을 긋는 일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슬픔은 다 거짓이야라는 말은 슬픔을 부정하는 말이라기보다, 슬픔만을 진실로 여기며 살아가지는 않겠다는 다짐처럼 들렸다. 이야기를 계속해서 한다는 건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호스로가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가기를, 그 미래에 대한 믿음이 더욱 단단해져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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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란을 탈출해 두바이와 이탈리아를 거쳐 미국에 정착한 난민 소년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열두 살 소년 호스로는 어린 시절의 상실과 망명, 낯선 땅에서 겪는 차별과 외로움을 고대 페르시아의 신화와 『천일야화』를 닮은 이야기로 엮어 낸다. 현실은 참혹하지만, 유머와 전설, 기억이 뒤섞인 독특한 서사는 인간이 어떻게 상처를 견디고 끝내 자신의 존엄을 지켜 내는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천일야화』 속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처럼 풀어낸다. 처음에는 하나의 문학적 장치처럼 보였지만, 책을 읽을수록 그것은 생을 대하는 가장 간절한 태도처럼 느껴졌다. 셰에라자드가 이야기를 이어 가며 죽음을 미루었다면, 호스로는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난민이라는 하나의 범주로 지워질 수 있는 존재를, 기억과 목소리를 가진 한 사람으로 되살려 내는 것이다. 이야기는 그의 마지막 피난처이자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 된다. 나는 신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신화는 특별한 영웅에게만 허락된 이야기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면 신화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에도 끝내 남아 있는 기억의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순간들은 너무도 평범해서 기록할 가치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그런 순간들이 한 시대를 가장 선명하게 증언한다. 대니얼 나예리의 개인적인 기억이 한 가족의 역사를 넘어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다가온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인류이고, 인류는 결국 하나의 신화로 남는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또 다른 슬픔을 마주했다. 그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고통 앞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다는 무력감이다. 우리는 뉴스와 문학을 통해 전쟁과 기근, 난민과 차별을 수없이 접한다. 이전 시대보다 훨씬 넓은 세계를 알고 살아가지만, 개인이 실제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여전히 많지 않다. 그래서 어떤 날은 책을 덮고도 오래 침묵하게 된다. 하지만 문학은 그 무력감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을 남긴다. 인간은 끊임없이 사람을 국가와 인종, 종교와 언어로 나누지만, 좋은 이야기는 그 경계를 잊게 만든다. 난민이라는 이름보다 한 아이를 먼저 만나게 하고, 타인이라는 분류보다 한 사람을 먼저 만나게 한다. 그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하나의 범주가 아니라 온전한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일은,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는 작은 시작이 된다. 좋은 문학은 삶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슬픔은 다 거짓이야』는 신화와 기억, 경계와 인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신화는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잊히지 않도록 건네는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책을 덮고 나면 오래도록 한 사람의 이야기가 마음속에 신화처럼 살아남는다. 그리고 문득, 우리 모두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하나의 신화로 남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슬픔은다거짓이야 #대니얼나예리 #소설추천 #도서추천 #북스타그램 *도서증정 @happybooks2u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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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금까지 읽었거나, 앞으로 읽게 될 그 어떤 책보다 강렬하다.!!"라는 문구를 보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게 되는 뭉클함과 현실 감 있는 듯한 스토리 전개를 느끼는 것 같아, 아마 이젠 이러한 강렬함과 아름다움이 담긴 작품인 것 같았다. 또, 표지를 보는 순간 " 도대체, 뒷모습만 보여주는 10대 소년에게 어떠한 사연 이 있길레.... 저렇게 쓸쓸함과 위로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며.... 그 작품은 " 슬픔은 다 거짓이야"이라며 집필한 저자 ( 대니얼 나예리) 님이셨다. 저자는 작품을 사유는 본인 직접 경험담을 집필을 하고 싶다며, 작품 속에서 지금껏 누구에게 말하지 못한 사연을 거짓 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에 작품을 출간하였다고 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피부색이 어둡고 성인 남성처럼 팔뿐만 아니라 몸 전체로 털 북송이로 인생을 살게 되었고, 몇 년 후 미국으로 탈출하게 되며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그 이유는 원래 고향이 이슬람교 이였던 것!! 그러자 이러한 이유로 학교에서 또래들에게 왕따를 당하게 되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교실에서 본인이 여기로 오게 된 이유를 이야기하며 본인의 존재를 뚜렷 하게 증명하며 이야기가 끝이 난다. 개인적으로 요즘 10 소년이 이렇게까지 순수해?라는 입버릇처럼 말이 나오게 되면서 한밤중에 이란에서 목숨을 걸며 이란에서 탈출하는 소년( 호스로) 와 소년 가족들 을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긴장감을 놓칠 수 없을 정도로 몰임감을 가지게 되며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 이작품을읽는동안 학교버스를 타고 소년 ( 호스로) 와그들의 가족들과함께 과거를 오가는동안 시간이 가는줄모르고마침 타임머신여행을하는것처럼 짜릿함을 느끼게해준작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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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슬픔은 다 거짓이야》 대니얼 나예리/ 해피북스투유 페르시아, 난민이라는 소재에는 늘 관심이 많았다. 제목과 표지부터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역사와 신화가 켜켜이 쌓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어느 순간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이름과 언어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어떤 경험일까. 그래서 《슬픔은 다 거짓이야》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궁금했다. 슬픔이 어떻게 거짓일 수 있을까....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보다 먼저 한 아이의 시선을 따라갔다. “나를 소개하겠다”라고 시작했다가 곧바로 “나를 소개하지 않겠다. 내 목소리로 나를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는 호스로. 이 문장이 좋았다. 작가는 처음부터 독자에게 자신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호스로가 직접 말을 걸어온다.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페르시아라는 낯선 세계가 어떤 곳인지, 자신에게는 어떤 가족과 기억이 있는지를 아주 자연스럽게 들려준다. 그래서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난민 소년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는 생각이 조금 작가이고 그저 한 소년을 만나게 되는 기분이랄까 호스로에게 페르시아는 단순히 떠나온 나라가 아니다. 그곳에는 신화가 있고, 오래된 도시가 있고, 조상들의 이야기가 있고, 강물과 물고기에 말을 걸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특히 어린 호스로가 강물을 바라보며 물고기가 『천일야화』 속 이야기처럼 자신에게 말을 걸 것이라고 믿는 장면이 조금은 슬펐다. 아마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사실 아이에게 세계는 아직 현실과 신화로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강물은 그냥 강물이 아니라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소이고, 조상은 역사 속 인물이면서 동시에 전설 속 인물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호스로가 페르시아와 이란, 다스탄을 이야기하는 방식도 재미있다. “다스탄의 땅, 신화의 시대.” 이야기와 전설, 가족의 기억이 뒤섞여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그리고 그 세계를 떠나 미국으로 온 호스로는 이제 자신의 이름부터 설명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발음하지 못한다. 난민이라는 말에는 너무 많은 것이 한꺼번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전쟁, 이주, 국경, 종교, 차별, 가난 같은 단어들. 이름이 있고, 가족이 있고,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고,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고, 두려워하는 것이 있는 한 사람. 이 소설은 그 사실을 호스로의 목소리로 대신 말해주는 듯하다. 특히 페르시아의 신화와 가족의 이야기가 현재의 삶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방식이 좋았다. 호스로와 시린의 사랑 이야기, 아지즈의 전설, 조상에 대한 이야기, 어머니 시마의 종교와 영국에서의 경험까지. 과거의 이야기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들은 호스로가 지금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들여다보는 기억의 조각들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난민의 삶이 이렇구나 생각하기 보다는 오히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기억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책의 중반을 넘어가면서 웃음 뒤에 숨어 있던 슬픔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이 소설은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계속 농담을 한다. 때로는 엉뚱하고, 때로는 장난스럽고, 때로는 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며 이야기를 옆길로 새게 만든다. 그런데 바로 그 유머 때문에 오히려 슬픔이 더 선명하다랄까.. 어쩌면 이 소설이 독자에게 가장 먼저 건네는 것은 연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냥 불쌍한 사람으로 보지 말고,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소설은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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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거짓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근데 꽤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에 홀린 듯 빠져드네요. 분명 거짓말이라고 밝혔는데도 말이죠. 처음부터 속마음을 숨기고 남을 속이는 엉큼한 거짓말과는 아예 태생부터 다르네요. 왜냐하면 이건 거짓말이 허용되는 '이야기의 세계'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진실과 거짓말에 대한 어떤 이야기 하나가 생각나네요. 진실만 말하는 마을과 거짓말만 하는 마을이 있는데 두 마을로 들어서는 갈림길에서 나그네가 진실만 말하는 마을로 가고 싶다면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요. 정답은 '당신이 사는 마을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라고 물은 뒤에 그 사람이 가리키는 방향의 길로 가면 되네요. 거짓말쟁이가 우리를 속인다는 걸 알고 있으니 그의 말을 반대로 해석하면 되는 거죠. 진실과 거짓 사이의 딜레마, 때로는 허구를 통해 전하는 진심이 더 크게 와닿기도 하네요. 대니얼 나예리 작가의 장편소설 《슬픔은 다 거짓이야》는 난민 소년이 들려주는 이야기네요. 솔직히 첫 문장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네요. 고국을 탈출하여 떠돌이 신세가 된 난민들은 어딜가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서 그들의 목소리는 묻혀 버리고 마네요. 진실의 외침은 아무도 듣지 않는 공허한 소음일 뿐이지만 여기, 이 소설은 강렬한 흡입력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기네요. 이란에서 태어나 난민 생활을 거쳐, 일곱 살에 가족과 함께 오클라호마로 이주했다는 대니얼 나예리 작가는 소설 속 열두 살 소년 호스로를 통해 뼈아픈 난민 생활의 경험들을 고대 페르시아 신화와 《천일야화》의 셰에라자드처럼 우리에게 경이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네요. 슬픔은 다 거짓이라는 거짓말, 피투성이가 된 할아버지의 손처럼, 중요한 건 기억하고 있다는 것, 무엇보다도 살아남았다는 사실이겠지요. 언젠가는 자신들이 온전해지리라는 걸 알고 있다는 소년의 믿음, 어쩌면 천 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조금씩, 조금씩 그곳을 향하고 있다는 걸 이제는 우리도 알게 되었네요. "페르시아인은 다 거짓말쟁이다. 그리고 거짓말은 죄다. 이것이 밀러 선생님 반 아이들 생각이다. 아이들이 만나본 페르시아인은 나밖에 없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이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 어디까지나 인간은 다 죄인이고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아빠는 그 말이 틀렸다고 한다. 페르시아인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란다. 시인이라는데, 그게 더 나쁘다. 시인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른다. 자기 꿈만 기억하려고 할 뿐이다. 6천 년 역사와 지금껏 전해진 모든 이야기의 변형만 기억하려 든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내가 밀러 선생님 반 뒤편에 있는 난민 꼬마가 아니라 변장한 왕자일지도 모른다. 정체를 들키면 난 《천일야화》에 나오는 말을 할 것이다. '나를 보내주시오. 그러면 전해 내려오는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리다.' 이야기는 모두 이렇게 시작된다. 약속한다. 당신이 들으면 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이해받을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적이 아니다. ··· 여기에는 나의 기억을 세고 있는 나밖에 없다. 그리고 당신, 독자. 그대가 누구건 지금 나에겐 그대가 왕이다." (11-12p) "사실 이건 왕의 이름이었다. ··· 이것은 전설이다. 호스로. 이 이름은 당신 입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영웅은 늘 전설보다 못하다. 호스로는 엉덩이가 큼직한 열두 살짜기 꼬마일 뿐이다. 대니얼이라 불러도 좋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위대함이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 박힌 양탄자에 왕이 올라섰어도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면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을 거다." (26-27p) "당신이 관심을 기울이면 '불쌍한 나' 같은 이민자들의 고통 이야기로 허비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당신의 관심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신의 동정심을 바라지 않는다. 여기 당신 마음속 거실에서 소통이라는 도전에 우리가 잘 대처하면, 시간과 공간 그리고 모든 일상적인 것을 가로질러 서로의 가슴 깊은 곳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내가 당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에 동의할지도 모른다. 난 못생겼고 희한하게 말한다. 가난하다. ··· 하지만 당신처럼, 난 신중하게 창조되었다. 자신이 지은 것을 보고 기뻐하신 신이 나를 지었다. 당신처럼, 난 친구를 원한다." (31p) "진실을 알고 싶은가? 가장 아픈 것은 망각이다. 우리를 죽이려는 비밀경찰이 아니다. 내 목에 종이 클립을 쏘아대는 브랜던 고프가 아니다. 레이도 아니다. 나를 역겨워하는 모든 사람도 아니다. 이런 고통은 나를 강하게 해주는 고통이다. ··· 하지만 주먹을 아무리 힘껏 쥐어도 기억이 쏟아져 나와 사라진다. ··· 할아버지의 얼굴을 잊어가는 느낌이 바로 그렇다. 좋은 것은 하나도 없다. 별거 아닌 것밖에 얻지 못한다. 심장 한 조각이 신음 같은 소리를 내고 사라진다. 가끔 그 자리를 눌러본다. 구멍의 생김새로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해 내려 애쓴다. 그게 전부다. 당신은 무언가 덜해졌다. 그래서 내가 이런 걸 다 쓰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다. 내 뒤에서는 기억이라는 카오스가 가루로 부서지고 있다. 허물어지는 팔 한쪽을 지켜보지만 거기 무엇이 있었는지 곧바로 잊는다. ··· 난 영어를 배우면서 이탈리아어도 잊었다. 레이를 만나면서 아빠의 나쁜 점도 모두 잊었다. 엄마 쪽 할아버지도 잊었다." (73-7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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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결국 그 슬픔의 끝은 찬란한 이야기로 완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이 책을 펼쳐들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 것은 너무나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첫 시작부터 마음이 무겁게 짓눌러졌다. 이야기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황소를 죽이는 장면은 그 잔혹한 묘사에 마음이 너무 아파 몇 번이고 책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이미지가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떠올라 한동안은 책을 다시 펼치기가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곧 저자가 이 이야기를 왜 책의 도입부에 넣었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소년이 난민의 삶을 살며 온몸으로 느껴야 했던 그 비극의 무게는 그렇게 잔혹한 장면과 함께 시작됐다. <슬픔은 다 거짓이야>는 이란 출신의 난민 소년이 미국의 한 교실에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작된다. 소년은 고통스럽고 끔찍했던 잔혹한 기억을 끄집어낸다. 소년의 가족이 난민이 된 이유는 다르지만 마침 올초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본토를 공습하며 전쟁이 시작되었던 터라 소설 속 소년의 고통과 아픔이 더 피부로 와닿았다. 어린 나이에 낯선 땅에서 겪어야 했던 차별과 편견은 최근에야 읽은 소설 <아리랑>속 우리 민족의 현실을 떠올리게 했다. 나라를 잃고 타향을 떠돌며 수모를 견뎌야 했던 우리 선조들의 삶과 이란 소년의 삶이 겹쳐지며 마음 한쪽이 아파왔다. 몇 년 전 난민 문제로 큰 사회적 갈등이 생겼던 우리나라의 현실도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아랍권 난민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못한 것 같다. 여전히 수많은 이들이 종교, 전쟁 등의 이유로 난민이 된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누군가의 난민이었던 우리 역시 이제는 타인의 아픔에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지 않을까? 비극적인 고통 속에서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낸 난민 소년의 삶이 가엾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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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성적인 행동은 언제나 하위의 행동이라고 생각하며, 상위의 행동인 이성적인 행동을 하라고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은 이성적이지 않고 감성적이다. 그래서 일상 속에서 우리는 많이 웃고 운다. 슬픔도 마찬가지이다. 슬픔의 크기는 다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매일 슬픔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 슬픔을 이겨내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책 <슬픔은 다 거짓이야>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던 냄새나는 난민 소년의 슬픈 넋두리를 문학으로 풀어내고 있다. 오클라호마의 한 중학교 교실의 '호스로'는 피부색이 어둡고 팔이 털로 복슬거리고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그는 이란에서 온 난민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그를 슬프게 만든다. 적대감으로 가득한 교실에서 호스로는 슬픔을 이겨내고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삶 속에서 결국 슬픔을 극복하고 슬픔은 다 거짓이야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아직까지 인종이나 난민에 대한 갈등이 크지 않다. 이는 단순히 한민족이 다른 민족에 비해 열려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 다른 민족이 우리나라에 많이 들어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종차별이나 난민이 현실 속에서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하여 난민이 갖게 되는 슬픔에 대하여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슬픔을 하나씩 이겨내는 과정이 인상 깊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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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다 거짓이야-슬프지만 아름다운, 위대한 가족의 역사
리뷰어스 클럽에서 우연한 기회에 중동에 관한 책을 연이어 2권 접하게 되었다. 하나는 대니얼 나예리의 <슬픔은 다 거짓이야>라는 장편소설, 다른 하나는 박현도 교수의 <중동을 읽는 40가지 이야기>. 장르도 다르고 저자의 국적도 다르지만, 우리에게 멀고도 낯선 중동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자아낸다. 나는 박현도 교수의 책을 먼저 읽고 대니얼 나예리의 <슬픔은 다 거짓이야>를 읽게 되어 두 책의 시너지를 제대로 느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이란계 미국인 작가인 대니얼 나예리의 장편소설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책의 도입부 40페이지 정도를 두 번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 파편적인 이야기의 순서를 종잡을 수가 없어서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래서 두번째 읽을 때는 맨 뒤의 작가노트를 먼저 읽었다. 그제서야 이 책이 이란계 난민인 작가가 난민으로서 겪은 어려움과 이란에서의 가족의 역사를 듣고 기억한 바를 바탕으로 쓴 장편소설임을 알게되었다. 어린 아이의 기억이니 이렇게 조각조각 났을 수 밖에. 그 사실을 알고 두번째 읽었을 때의 느낌은 첫번째와 같은 혼란스러움이 아니라 이란과 그 이전의 페르시아를 살아간 가족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책의 전반은 주인공인 호스로의 현실(난민 출신으로 가난과 따돌림이라는 이중고)과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가는 가족의 역사,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로 거슬러 올라가는 가족의 역사가 혼재된다. 잠시 잠깐 한 눈을 팔다간 길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을 잃지 않고 잘 따라간다면 그 어느 중동 이야기보다 다채로운 이야기를 접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앞서 중동에 대한 두 책을 연달아 읽은 게 행운이라 했었다. <슬픔은 다 거짓이야>에서 묘사되는 호스로의 중동집, 이란 사람들의 행동양식 등에 대해 상상하는 게 더 쉬웠다. 중정을 집 안에 두고 정원을 꾸미는 이슬람식 건축 양식, 뉴졸파라는 도시를 설명하며 기독교를 믿는 아르메니아인들을 위해 도시 안의 도시를 만들어 주었지만, 이스파한 사람들에게 자기 종교를 말하면 샤가 목을 쳤다는 장면에서는 다른 종교를 믿는 것에는 관대하지만 그 종교를 전도하는 것에는 결코 관대하지 않은 이슬람의 율법, 제빵사인 아바스가 만드는 바클라바에 대한 묘사에서는 중동의 디저트가 얼마나 달콤하고 맛있는지를 상상했다. 하지만 중동에 대한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도 이란과 페르시아에 대해 오감으로 상상할 수 있을만큼 아름다운 묘사와 친절한 설명이 책을 읽는 동안 눈을 즐겁게 했다.
이란에서는 유복한 가정의 사랑받는 아들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살았던 아이가 하루아침에 난민이 되어 미국에 정착하면서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는 장면은 어른으로서 가슴아픈 부분이었다. 또 조각보 같은 이야기는 난민의 수치다(p58)와 같이 자신의 뿌리를 두고 떠나온 난민의 사연들은 지금도 전세계 곳곳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이기에 분쟁과 난민, 공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우리의 인식 속 이란은 뉴스에서 보여지는 혼돈의 이미지가 대부분이지만 그 곳을 살아가는 이란인들에게는 자랑스러운 페르시아의 역사를 담은 나라이며, 지금도 일상을 꿋꿋이 꾸려나가는 곳이기에 그 곳을 떠나온 난민의 가슴 아픈 역사를 이토록 아름다운 서사로 그려낸 이야기를 읽으며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게 한다.
이 세상 모든 호스로의 성장을 응원하며, 청소년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희망의 메세지를 전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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