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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미드 C.S.I. 를 즐겨봤다. C.S.I.는 Crime Scene Investigation의 이니셜로 과학수사연구소쯤 되는 곳이다. 이 드라마는 범죄 현장에 출동해서, 현장에서 수집한 단서를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수사해가는 것이다. 살인 사건의 경우에는 시체를 부검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부검을 통해 드러난 여러 단서들은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체포하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C.S.I외에도 이젠 법의학을 바탕으로 한 사건 해결을 담은 드라마는 그야말로 봇물처럼 많아서, 에지간한 사람들에게 루미놀 시약을 뿌리면서 혈흔 감식하는 것이나 DNA 분석하는 것은 하도 많이 봐서 익숙하고 상식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그만큼 과학기술이 법의학으로 적극 활용되는 시대라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원통함을 없애게 하라'는 조선시대 법의학 교재, 매뉴얼이라 할 수 있는'무원록(無怨錄)을 풀어쓰고 정약용의 흠흠신서에 나오는 사건 몇가지를 덧붙인 책이다. 조선시대에도 살인 사건을 용의자를 고신하는 데에만 의존하거나, 주먹구구식으로 수사하지 않았고, 당시까지 쌓였던 과학적 기술을 활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원래는 원나라때 편찬된 책을 수입했지만 조선의 실정에 맞게 다시 수정하고 보완해서 실제 검시하는 데 지침으로 삼은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별순검'이라는 우리나라 드라마도 있었다. 보지는 않았지만 조선 말기 수사를 담당했던 순검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이 드라마에서는 '무원록'에 나오는 검시방법을 차용해 증거를 확보하고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보여준 것으로 알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시체를 해부하고 부검하는 현대와 달리 검시를 했는데, 가장 먼저 시체의 안색부터 살폈다고 한다. 안색을 가장해서 타살된 흔적을 감추지는 않았는지 가려내는 것도 검시과정에서 할 일이었다. 은비녀를 활용해서 독살여부를 확인하는 건 많이 알려진 얘기인데, 실제로 조선시대에는 그렇게 했다. 이외에도
" 구타당해 죽은 것을 스스로 목을 매 죽었다고 위장한 경우는 입과 눈을 뜨고 손을 벌리고 상투가 늘어지며 숨통 아래에 혈맥이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목졸인 흔적이 얕고 흐려서 피맺힌 자국이 없다. 혀가 나오지 않았고, 이에 닿지도 않으나 머리 정수리 부위에 손톱 흔적이 있고, 몸의 급소에 치명상이 있을 터이니 주의깊게 살펴야 한다. "(87쪽)
등 목매어 죽거나, 익사, 소사 등 죽은 이유에 따라 여러 검시 방식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친자 관계나 형제인지를 가리는 방법으로 혈액을 떨구어 응집하느냐 여부로 판단한 것은 지금 기준으로는 어이없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지금봐도 수긍할 수 있는 방식들이 많았다. 더러는 C.S.I.에서 나오는 법의학적 정보와 같은 방식으로 확인하는 경우도 있어서 이 시대의 검시 방법에 대해서 다시 보게도 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검시 방법이 쭉 나열돼 있어서 한번 읽어서는 잘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간간히 정약용의 흠흠신서 속 사건해결을 간략하게 소개해준 대목은 실제 사건에서 어떻게 검시하고 판단했는지 예를 들어주고 있어서 이 부분은 눈이 번쩍 뜨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높이 평가하고 싶었던 부분이 있었다. 이렇게 법의학적 방법으로 시체를 검시했던 것이나 수사과정에 '무원록'을 적극 활용했던 기술적인 이유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더불어 이런 방식으로 수사하게 된 데에는 바로 인정(仁政)을 추구했던 조선의 통치 가치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더더욱이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한다는 사자를 위로하는 정신과 함께 다른 면에서는 억울하게 혐의를 뒤집어 쓰는 산 사람 또한 없어야 한다는 정신 또한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것야말로 조선다운 민본정신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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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 시대의 법과학에 관한 책입니다. 당시에 있던 사건과 관련한 법과학을 말해주는 책입니다.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각 사건은 짧게 서술이 되고, 익사한 시체나 맞아 죽은 시체에 관한 긴 설명이 시작됩니다. 말투는 현대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만약 조선의 법과학이 어떤지 궁금한데, '무원론'이나 '신주무원론'의 두께와 가격에 놀라워하시는 분이라면 이 책을 가볍게 읽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가끔 나오는 어휘들이 이해하기 쉬운 편이 아닙니다. 주석이 달려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조선 시대에도 법과학이 있었고, 색과 형태, 사체의 모양 등을 관찰해내 분류하였던 조상들의 슬기로움도 알 수 있습니다. 현대 법과학에는 맞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그들이 어떻게 보았는지를 볼 수 있는 책입니다.
위의 설명까지가 그나마 보편적인 견해에 해당되고 이제부터는 주관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사실, 이 책이 개편되어서 표지까지 바뀌어서 현재도 그런 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이전의 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워낙 추리 쪽 분야에 흥미를 가져서 책은 사지만 읽는 속도를 못 따라가거든요. 요새는 잘 사려고 하지는 않고 읽으려고 노력해도 많이 벌어진 차이를 좁히기가 쉽지 않더군요. 아, 이런 저의 책 사랑이(독서 사랑 말고요) 제 책장에 몇 번 펼쳐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예전에 학교에서 들은 과목의 소논문 과제를 하게 도와준 '신주무원론'이 있습니다. 보니 '증수무원록언해'도 있군요. 비싼 책이긴 하지만, 자료 찾는 용으로 샀었고, 소논문 쓸 때도 그런 식으로 썼었습니다. 이 책의 경우에는 신주무원록에서 나오는 몇몇 가지를 뽑아 엮은 느낌도 듭니다. 두 책의 성격이 상당히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신주무원록의 경우에는 조선에 사건이 일어날 때, 어떻게 사건을 처리하고 검안해야하는지 참고 서적이고, 이 책은 그 내용을 빌려 당시 있던 사건과 몇몇 경우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신주무원록을 띄엄띄엄 부분부분 읽은 저한테 이 책이 신선하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두꺼운 책은 못 읽고 이 책은 다 읽을 수 있었다는 것에는 만족합니다.(신주무원록의 경우, 원래 표기인 한자와 오른쪽에 한글로 옮긴 것이 구성되어있어서 내용에 비해서 두껍습니다) 게다가 우연히 운좋게 보게 되었던 '조선의 법의학과 풍속'의 인터넷 강의에서 봤던 저자분이라서 흥미로웠습니다. 비록 강의를 본 시간과 이 책을 읽은 시간의 관계가 있긴 했지만, 충분히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는 배경 지식들을 알려주었습니다. 만약에 책에 흥미있으신 분은 나중에 강좌 쪽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책 자체는 재미나다기보다는 이 책이 속한 시리즈인 '지식전람회'에 맞게, 전문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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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 태어난 이상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 전반을 뒤숭숭하게 만든 끔찍한 사건에 의한 죽음이 발생했을 시엔 특히 그러하다.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죽은 자를 생으로 돌려 놓진 못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자들의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고 죽은 자의 원통함을 풀기 위해 우리는 죽음을 파고 들어야 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가 남기고 간 육신은 침묵 속에서도 많은 바를 우리에게 말하곤 한다. 그 단서를 놓치지 않았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지금도 한 사람이 왜 죽었는지, 그 원인을 밝히는 것은 어렵다. 하물며 의학이 충분히 발달치 못했던 과거에는 검시의 과정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하지만 오래 전이라 하여 아무런 지식도 없이 시체를 다루었던 건 분명 아니다. 나름 과학적인 수사의 토대가 되어준 <무원록>의 존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치밀한 수사가 지난 날에도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다. 물론 <무원록>은 중국에서 수입된 책이다. 그렇지만 조선 사회에서 널리 활용되면서 이는 조선의 실정에 맞는 지침서로 변모하게 된다. 실제로 이 책에도 수록되어 있는 간수를 먹고 죽은 사례나 연탄가스 사고의 경우는 조선 특유의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물론 시대적인 한계는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끝부분에 가서 등장하는 ‘피를 섞어 친자를 확인하는 방법’을 살짝 살펴보자. 친형제는 피가 서로 응결한다는 부분은 믿기 힘들다. O형인 내 피는 A형인 동생의 피를 만났을 때 아마도 응고하지 않을 것이므로, 당대의 지식만을 놓고 본다면 우린 친형제가 아닌 것이 된다. 자식의 몸을 찔러 한 두 방울 피를 낸 후 부모의 해골 위에 떨어뜨려 봄으로써 친자식 여부를 알 수 있다는 부분은 해괴망측하게까지 들린다. 하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활용하는 사람의 의도와 마음이다. 발달한 기술을 부정한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 경우 이는 없느니만 못하다. 오늘날 많은 죽음이 외면당하는 까닭 역시 의학의 불충분한 발달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의지의 박약이나 정치적인 악용, 무마를 위함일 때가 많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죽음마저도 아우르는 질서로 우리 사회에 자리잡은 지 오래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조선의 발달한 의학보다도 죽음을 거두는 따스한 시선이 내겐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오직 한 사람의 말에만 의존하지 말 것이며, 백성의 목숨을 관장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치밀하고 상세히 살펴야만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이 말이 왜 오늘따라 그토록 절실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몇몇 부분에 등장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