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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올라야 화자인 영국인은 스페인에서 전투 중 부상을 입고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다. 그는 높은 신분이지만 돈이 없어서 빈궁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신부님에게 듣고서 서로 윈윈하는 처지로 그곳에 가서 요양하는 게 어떻겠냐고 말을 한다. 그것은 오랫동안 고귀한 가문이었으나 후손인 여인이 하류층과 결혼을 하여 팰리페와 올라야라는 딸을 낳았다고 말을 한다. 지금은 그 세 사람만이 성에서 살고 있는데. 그는 자신의 방에서 펠리페와 그녀의 어머니와 닮은 여인의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에 빠진다. 하지만 그가 정말로 빠진 것은 팰리페의 누이 올라야였다. 그가 상처를 입자 그의 피를 빠는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그를 구해 영국인을 떠나보내려고 한다. .... 카톨릭 전통이 지배하는 오지의 산속 배경, 가문의 쇠락을 상징하는 허물어져 가는 오래된 저택, 과거의 죄악으로 말미암은 가문의 업보, 현재의 인물를 사로잡는 과거의 초상화, 성에 갇힌 젊고 아름다운 여성, 그 여성을 구하려는 젊은 남자 주인공 등에 전형적인 고딕 소재를... 옮긴이의 말 중에서 매우 화려한 문체로 쓰여진 이 사랑 이야기는, 잘못된 성질의 유전, 고립되어 더 일그러진 기형적인 모습으로 뱀파이어 물을 그린다. 이번에도 뱀파이어 영화인 《드라큘라》가 상영될 예정이지만, 거기에서는 집착, 고립, 신에 대한 반발, 뱀파이로서 영원한 생명이 불멸의 사랑으로 이어짐을 볼 수 있었지만, 이 작품 '올라야'에서는 인간의 퇴보, 성적 충동, 여성에 대한 이그러진 잣대 등을 보여주고 있다. 두 번째, 앨저넛 블랙 우드의 죽음의 춤 브라운은 한낱 사무원에 불과했지만 삶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의사는 심장이 안 좋다며 무리하지 말라는 충고를 하고 그는 춤을 추러 가는 자신의 재미를 억제해야 하나 고민한다. 하지만 그는 다시 춤추러 나가게 되고 거기서 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이 춤을 추는 녹색 드레스의 여인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를 주목하지 않게 되고 그는 결국 그녀와 춤을 추게 된다. 하지만... 그가 추는 마지막 춤은 죽은 자로서의 춤이었다. 죽음을 앞둔 이를 치명적으로 유혹하는 여성. 거기엔 마치 같이 숨쉬고 생활하고 일하는 여성의 모습보다는 어떤 상징적인, 보는 사람에서의 관점으로서의 여성만이 존재하는 듯하다. 세 번째 마주리 보웬의 플로렌스 플래너리. 대니얼 슈트는 아주 큰 저택에 상속자였다. 하지만 그 저택을 은행에 맡기고 돈을 꺼내서 흥청망청 쓴 젊음이 거의 지나고 난 뒤 그는 플로렌스 플래러니라는 여자를 만나 결혼하고 저택으로 데려온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녀에게 싫증을 느끼는데. 그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오래된 집의 유리창에 새겨진 이름 '플로렌스 플래너리' 랑 이름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 플로렌스 플래너리는 300년 전에 자신의 선조 존 슈트가 여행길에서 만났던 아일랜드 소녀였다. 아니 메디츠 가문의 일원일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그녀는 존 슈트를 만나기 전에 사귀었던 남자에게 실증이 났고 글을 남태평양의 한 섬에 돌에 묶어 놓고 도망가 버린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묶인 남자는 자신이 복수할 때까지 그녀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신상에게 빌었다고 한다. 그 저주가 살아 있는 걸까? 왜? 물속에 사람과 같은 커다란 물고기가 살아 있는 거지. 어 이 이야기는 약간 그로테스크하다. 초자연적 공포 소설을 스는 작가의 작품이었다. 네 번째 토마스 스마이스 히친스의 사랑이 길디어 교수를 찾아오다. 머친슨 신부는 사랑을 강조하는 연설을 하는 다정한 교수였고 프레드리딕 길디어 교수는 자신의 집사하고도 거의 사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 냉정하고도 독립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연구 목적으로 데려온 앵무새에게도 다정한 소리 하나 건네지 않는 그런 인물로서, 남에게 이타적인 목적이 없이도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연구를 한 것이 타인에게 혜택을 줄 수 있다며, 사랑이 없는 이기적인 삶을 강조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밤 만나서 자신에게 사랑을 느낀 어떤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얘기한다. 아니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질려 버린 듯한 짜증이었다. 신부는 믿지 않았지만, 주변의 임무를 따라하는 앵무새의 모습을 보고 그는 두려움을 느낀다. 이 작품은 음악 비평가로 더 이듬을 날렸던 작가의 최고 작품이라고 한다. 오컬트, 고딕, 공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 작품에서 사랑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붙어 버린 어떤 애정어린 초 자연적 존재를 그린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방을 배려치 않는 애정이었으며 이는 그 상대방으로부터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과연 사랑을 강조하던 신부는, 이에 대해서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계속적으로 즉각적인 스릴를 만끽하고 있던 나에게 간만에 잡은 이 고딕 소설은 매우 흥미로웠다. 뭔가 초자연적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 그러나 생명을 움켜질 수 있을 만한 엄청난 존재. 여름밤 혼자 앉아서 읽고 있자니 약간 소름이 돋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