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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유독 좋아하는 나라이다. 그 번역본만 500회 이상 출간이 되었다고 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아리스 인 보더랜드〉의 원작인 《임종의 나라의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오마주이고 드라마의 주인공 ‘아리스’는 앨리스의 일본어식 발음이다. 그리고 《굿바이, 재버워크》의 ‘재버워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재버워키〉에 등장하는 상상 속의 괴물이다. ”지금 나는 정말 ‘재버워크의 시를 읽은 앨리스’와 같은 상태이다. 머릿속이 온갖 감정으로 가득하다. 초조함과 공포, 걱정, 분노... 남편은 죽었다. 죽어 있다. 지난달에 서른여섯 살이 되었는데 지금은 죽어서 쓰러져 있다... 내가 죽였다.“ (pp.9~10) 소설 속에서는 재버워크가 ‘혼란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AI에 문의한 결과로는 재버워크(Jabberwock)는 속사포처럼 의미 없는 말을 빨리 내뱉다 라는 뜻의 'Jabber'와 복장, 군대를 뜻하는 옛 영어 Wock를 합쳐 ‘흥분한 목소리로 끊임없이 지껄이는 피조물’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굿바이, 재버워크》에서 ‘재버워크’는 인간의 뇌에 침투하거나 떨어져 나올 수 있는 어떤 물질로 좀더 구체화되었다. “... 재버워크에 뇌를 빼앗긴 사람이 죽으면 떼어낼 수 있어. 떼어지면 밖으로 나와. 근처에 생물이 있으면 그 뇌로 이동해. 그런데 말이야, 재버워크를 받는 데 가장 무난한 동물이 땅거북이야. 헤르만 육지거북.” (p.118) 소설은 료코와 도마라는 두 인물의 시점으로 번갈아가며 서술된다. 료코는 이제 막 남편을 죽인 여인이고, 그러한 료코를 갑자기 나타난 대학 동아리 후배 가쓰라 고고로가 돕겠다고 나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쓰러졌다 깨어난 료코의 곁에는 고고로 대신 에마와 하마야라는 젊은 2인조가 있다. 료코는 그들의 입을 통해 자신에게 위협을 가했던 남편 또한 재버워크에 감염된 상태였음을 알게 된다. “뇌의 전두엽, 전두전야前頭前野는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이른바 사령탑 같은 역할을 한다고. 재버워크는 그 전두전야에 들러붙어 사령관을 잠들게 하지...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자기 멋대로, 신이 나서 마음껏 놀고 있지만, 보통은 선생님이 잘 통솔할 수 있지...재버워크에 씐 인간의 뇌는... 수습되지 않는 유치원 같지.” (p.80) 료코와 함께 소설을 이끌어가는 도마는 왕년의 록스타 호쿠사이의 매니저이다. 호쿠사이는 오래전 설화로 인하여 반강제의 은퇴를 한 상태이다. 호쿠사이는 딸 우타코가 재버워크에 감염된 적이 있었고, 에마와 하마야가 이를 치료해준 적이 있다. 호쿠사이는 재버워크를 떼어내는 데 필요한 음악과 관련한 중요 인물이고,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등장 인물들은 큰 경기장에 모두 모이게 된다. “동물 가운데 이토록 온후한 종도 없고, 이토록 잔인한 종도 없다... 다른 동물은 억제라는 게 없어. 화가 나면 공격해. 상대를 물어뜯어 생명을 빼앗기도 하지. 그걸 반성하는 일도 없어. 사람은 달라. 최대한 공격성을 조절해 평화롭게 살려고 해. 누가 나를 건드렸다고 해서 손톱을 세우거나 바늘로 찌르지 않아... 가장 온후한 종이지... 한편으로는 깜작 놀랄 만큼 잔인하기도 해... 전쟁, 내전, 분쟁, 테러리스트와의 싸움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다 마찬가지야. 저기에 적이 있고 자신은 정의롭다. 그렇게 생각할 때 인간은 적에게 놀랄 만큼 잔인해져. 모든 동물이 모여 잔인 올림픽을 열면 틀림없이 금메달리스트가 될 거야.” (p.181) 꽤나 오랜만에 읽은 이사카 코타로(예전에는 이 이름으로 책들이 출간되었는데, 최근에는 이사카 고토라라는 이름으로 출간되는 듯하다)의 작품이었다. 이사카 월드, 라고 하여 작가가 만들어놓은 세계 그리고 그 안에 구축되어 있는 캐릭터들을 좋아했다. 《굿바이, 재버워크》에 나오는 에마와 하마야 같은 캐릭터들이었을 것이다. 이십 오 년 경력의 작가가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집어 넣어 만든 것 같은 미스터리물인데 흡족하지는 않다. 이사카 고타로 / 민경욱 역 / 굿바이, 재버워크 / 인플루엔셜 / 374쪽 / 2026 (20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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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독특한 제목에 끌려 가벼운 SF나 판타지 풍의 미스터리일 거라 생각했습니다. 인공지능이나 가상 현실 같은 현대적인 소재를 다루는 줄 알고 익숙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죠.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언어와 인간의 의식, 그리고 논리가 정교하게 맞물리는 전개 방식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기술적 상상력을 넘어 ‘언어’라는 틀이 인간의 사고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장르적인 문법으로 흥미롭게 풀어내더군요. 현란한 설정 속에서도 미스터리 특유의 지적 대결과 수수께끼를 푸는 재미를 놓치지 않은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소 낯설고 지적인 세계관에 기분 좋게 취해,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도 묘한 지적 포만감과 여운이 오래 남는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