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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하 준의 《중국화하는 일본》은 출간 당시 일본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던진 도발적인 저작이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일본의 자부심을 뒤흔들며, 진정한 의미의 근대화—신분제 타파, 능력주의 관료제(과거제), 전국 단위 시장 및 화폐 경제—는 이미 1천 년 전 송(宋)나라 시기에 완성된 이른바 ‘중국화’ 모델이었다고 규정한다. 반면 저자는 근대 이전 에도 막부의 폐쇄적 연고주의, 파벌과 세습, 지역 분권 체제를 ‘에도시대화’로 명명하고, 현대 일본의 장기 침체 역시 이러한 봉건적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로 진단한다. 동아시아 1천 년의 궤적을 ‘중국화(송나라형 중앙집권과 유동성)’와 ‘일본화(에도형 분권과 고착성)’라는 이분법적 틀로 해석해 낸 통찰력은 지적 지형을 넓히는 데 분명 신선한 자극을 준다. 그러나 저자가 설정한 이론적 매혹에 취해 책장을 덮기 전, 우리는 이 책이 교묘하게 생략하거나 축소한 송나라 체제의 ‘비참한 결말’을 반드시 되짚어보아야 한다. 저자가 ‘선진적 근대 모델’의 정점으로 치켜세운 송나라의 중앙집권과 문치주의는 실제 역사 속에서 어떤 열매를 맺었는가? 그것은 바로 군사력의 전면적 거세, 극단적 불신, 그리고 내부 투항에 의한 제국의 궤멸이었다. 송 태조 조광윤은 5대 10국의 군벌 난립을 종식한다는 명분으로 장수들의 병권을 회수(배주석병권)하고 지방의 모든 권한과 조세를 수도로 집중시켰다. 내부 쿠데타를 원천 차단하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 대가는 혹독했다. 군사 전략을 모르는 문관이 군대를 장악했고, 전공을 세운 무장들은 역모의 의심을 받으며 견제당했다. 이는 오늘날 중동의 자원 독점 왕정 국가,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통치 메커니즘과 놀라울 정도로 겹쳐 보인다. 생산성 높은 경제 자원을 수도의 최고 권력자가 독점하고, 내부 백성에게는 경제적 시혜를 베풀어 참정권을 잠재우며, 외부 적에게는 막대한 재정(세폐)을 쏟아부어 돈으로 평화를 사고, 내부 반란을 두려워해 군부를 갈라치기해 정작 군대의 실질적 전투력은 거세해 버린 구조다. 이러한 ‘재정 매수형 평화’와 이빨 빠진 중앙집권은 영토 정복 자체를 목표로 밀고 들어오는 몽골 제국 앞에서 완전히 파탄 났다. 더 치명적인 것은 극단적 중앙집권이 낳은 내부의 신뢰 붕괴였다. 전선에서 피 흘리며 싸우는 장수와 지방관들은 황제와 중앙 권신의 끊임없는 의심과 횡포에 지쳐갔다. 결국 양양성이 함락된 뒤 바얀이 이끄는 몽골군이 수도 임안으로 남하할 때, 수많은 관할지와 수군 기지들은 교전 한 번 제대로 치르지 않고 통째로 배와 성을 적에게 넘기며 항복했다. 이것이 바로 1인 독점의 중앙집권이 맞이한 적나라한 현실이었다. 내부 장악에는 효율적이었을지언정, 국가적 위기 앞에서 자발적으로 목숨 걸고 지켜낼 ‘체제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붕괴시킨 것이다. 저자는 능력주의 과거제가 현대의 대의 민주주의 선거제보다 낫다는 식의 파격적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21세기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는 단순히 ‘시험 잘 치는 관료를 뽑아 중앙 권력에 집중시키는 효율성’에 있지 않다. 권력의 독점이 가져올 필연적 부패와 취약성을 제어하기 위한 권력 분립, 풀뿌리 지방 자치, 상호 견제와 균형에 있다. 이 책은 일본의 봉건적 적폐와 장기 불황을 질타하려는 목적의식에 사로잡혀, 황제 1인에게 모든 권한을 몰아주고 사회 구성원을 원자화된 경쟁으로 내몰았던 고대 중앙집권 전제군주정을 마치 미래의 대안인 양 포장하는 위험한 역사적 퇴행을 보여준다. 지방분권과 자치가 만능은 아닐지라도, 그것을 무조건 구시대적 봉건의 잔재로 매도하고 송나라식 단일 중앙집권으로의 회귀를 역동성의 해법으로 제시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논리다. 역사는 분명히 증명한다. 이빨을 스스로 뽑고 돈으로 평화를 사며 내부를 의심했던 극단적 중앙집권 제국이 외부의 거센 파도 앞에서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는지를. 도발적인 가설로서 읽을 가치는 충분하지만, 우물안 일본 관점에서 저자가 파놓은 화려한 이분법 뒤편에도사린 ‘역사적실패’를 냉철하게 분별하며 읽어야할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