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교육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교육은 오랜 실패와 수정, 검증의 시간을 견뎌낸 시스템에서 나온다. 그래서 『IB를 넘어 KB로』를 읽으며 가장 크게 떠오른 생각은 “모르면 배워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원칙이었다. 자동차를 만들 때는 독일에서 배웠고, 반도체를 만들 때는 미국에서 배웠다. 운전을 못 하면 택시를 타는 것이 가장 빠르다. 교육도 다르지 않다. 잘하는 나라에 배우고, 그 경험을 우리 현실에 맞게 발전시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혁신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상식을 교육에 적용하자고 말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교육은 시스템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종종 좋은 수업이나 뛰어난 교사 한 사람에게 교육의 변화를 기대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교육과정, 수업, 평가, 채점, 대입이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되지 않으면 교실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평가가 바뀌면 교육이 바뀐다”는 문장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대구와 제주의 공교육 IB 학교 사례, 교사의 변화, 학생과 학부모의 경험을 통해 이러한 변화가 이미 현실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KB 역시 새로운 시험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육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국가적 프로젝트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저자들이 공정성과 신뢰성을 이상이 아니라 경험의 축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한국은 논술형 평가를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채점의 신뢰성과 공정성 앞에서 번번이 멈췄다. 채점 기준은 흔들렸고, 채점자의 전문성은 충분히 축적되지 못했으며, 사회적 신뢰도 얻지 못했다. 반면 프랑스 바칼로레아는 1808년부터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국가 단위의 서술형 평가를 운영하며 공정성과 신뢰성을 다듬어 왔다 IB 역시 1968년 출범 이후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국제 채점관 연수와 표준화, 반복 검증을 통해 세계적인 외부 평가 시스템을 구축했다. 지금 우리가 인정하는 신뢰는 하루 만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쌓인 경험의 결과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가장 공감한 부분은 AI 활용 학습과 채점이다. 많은 사람이 AI가 교사를 대신할 것인지부터 묻는다. 그러나 더 중용한 질문은 AI가 공정한 서술형 평가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가이다. 책은 AI를 사람이 쌓아 온 전문성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오랫동안 축적된 채점 기준과 루브릭을 더 안정적이고 일관되게 구현하는 도구로 바라본다. 이 관점은 매우 현실적이다. 우리는 새로운 채점 시스템을 처음부터 혼자 만들 필요가 없다. 이미 바칼로레아와 IB가 오랜 시간 검증해 온 원리를 배우고, AI를 활용해 그것을 한국 교육에 맞게 발전시키면 된다. 혼자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것보다 검증된 경험을 배우는 것이 훨씬 빠르고 안전하다. 책이 말하는 KB는 바로 그런 학습하는 교육개혁이다. 5장은 그 가능성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KB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우리의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 잘하는 사람에게 배우되 우리 현실에 맞게 새롭게 발전시키는 태도 말이다. 『IB로 대학 가다』에서 이야기했듯 시대가 바뀌면 인재상도 달라진다. 산업화 시대에는 기계와 기술을 다루는 능력이 경쟁력이었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지식의 양보다 인공지능을 올바르게 활용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협력하고, 윤리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앞으로 교육도 암기와 정답을 반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인공지능을 활용해 더 깊이 사고하고, 더 좋은 질문을 만들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기술만으로 미래 교육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IB를 넘어 KB로』는 단순히 IB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맞는 한국형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제안서에 가깝다. 특히 교육정책을 만드는 교육 행정가, 교육 관계자, 그리고 교실에서 변화를 만들어 가는 교사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교육은 한 사람의 열정이 아니라 시스템이 바꾸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