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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품절이지만, 마루야마 겐지에게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꼭 한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저자의 자전적 에세이인 <소설가의 각오> 이전에 나온 에세이인데, 작가의 개인적 정보가 많이 나와있다.
어린 시절 이야기, 중고교 시절, 직장에 들어가고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으며 어떻게 도코를 떠나 북알프스에 정착하게 되었는지의 이야기가 <소설가의 각오>나 다른 수필집 보다 더 자세하게 나와있다. 모터사이클과 사륜구동차를 타고 달리던 폭주족 시절 이야기는 이 책에만 있는 것 같다. 머리를 50에 삭발하게 된 사연도 이 책에서 처음 읽었다.
전체적으로 흥미롭게 보이는 것은, 이 사람의 '차남콤플렉스'이다. 장남은 가업을 이어받고 차남은 창업한다. 장남은 아버지의 나라를 지키지만 차남은 혁명하여 새 나라를 건국한다. 시골 고등학교 문학 교사 아버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작가는 '이토록 많은 책을 읽어도 고작 이 정도 사내밖에 못 되는가. (43쪽)'며 아버지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마더콤플렉스'도 없다. 대리만족을 위해 장남의 교육에 자신의 인생까지 다 거는 어머니를 천박하게 생각한다. 차남에 서자였다가 국왕이 되는 홍길동은 그래도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을 구하기는 했는데, 이 저자는 그런 면도 없다. 부모 역시 저자에게 별 기대가 없었던듯, 저자가 신인상을 받자 표절을 의심한다. 결국 저자의 형은 아버지처럼 시골 고교 문학 교사가 되고, 저자는 일본 문단에서 인정받는 소설가가 된다. 저자는 그냥 아버지도 형도 선배도 없이 자기 생각대로 살고 글쓰는 사람이다. '네 고집대로 하는 게 좋아. 모범이 될 만한 선배가 없으면 네 자신이 모범이 되도록 해!(149)' 결국 제목인 <산 자의 길>은 죽은자, 살아도 죽어 있는자인 자기 아버지와 반대로 살려 하는 자신의 길을 말한다. 아, 난 동서고금 문학사에서 이렇게 강력한 차남 작가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매우 흥미롭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혹시 마루야마 겐지의 차남 콤플렉스를 논한 책이 이미 일본에 나와 있지 않을까?
그밖에, 어린 시절에 갑자기 마음에 구멍이 뚫리고 그곳으로 찬바람이 드나드는 경험을 서술한 부분을 읽고는 좀 놀랐다. 나도 그런데. 저자는 어떻게 그 구멍을 데리고 살고 있을까. 나이들면 좀 나아지나?
늙음의 입구가 보이게 되어 인생의 끝에 실재하는 죽음이 생생함을 더하게 되자, 가치관에 다소 변화가 생기는 게 당연하리라. 그렇다고 해서 마음에 뻥 뚫린 바람구멍이 어느 결에 막혀버렸다는 뜻은 아니다. 변함없이 거기에는 허무의 찬바람이 불어닥치고, 동시에 그에 대항하기 위한 열정의 폭풍이 휘몰아친다. 그리고 거기서 발생하는 회오리바람으로부터 잇달아 새로운 소설이 튀어나오고 있다. 변함없이 나는 나인 채로 있다. - 본문 235~ 236쪽에서 인용
예술도 과학도 철학도 의학도 종교도 정치도, 제아무리 용을 써보았자 인간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인 위안 정도에 불과하며, 인간을 진짜로 구원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구원받지 못하는 부자유한 존재이니까 더욱 드세게 자유를 찾아 싸우고, 그것을 갈구할 때 튀는 불똥이야말로 현실에 뿌리내린 진정 살아 있는 사람의 감동이라는 것이 아닐까. 구원받지 못할 몸이니까 더욱이 이 세상을 살아갈 힘과 가치가 생겨나는 게 아닐까. - 본문 179쪽에서 인용.
아, '변함없이 나는 나인 채로 있다.', ' 구원받지 못할 몸이니까 더욱이 이 세상을 살아갈 힘과 가치가 생겨나는 게 아닐까',,, 라니요! 겐지 오빠, 왜 진작 내게 나타나서 이 말을 들려 주지 않으신거에요?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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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겐지의 소설을 먼저 읽은 것이 다행이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나는 '산자의 길'이나, '소설가의 각오(아직 읽지 않았지만)'같은 에세이집을 먼저 접했다면, 뭐 이렇게 오만하고 자기 멋에 사는 인간이 다 있나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거부감을 가졌을 것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승부한다' 는 사람이 에세이를 쓸 필요가 있는가라고 누군가 반문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인간 겐지의 면모를 볼 수 있어서 나는 좋았다. 그에게도 흔들리는 순간이 있었고, 자신의 길이 바른 것인지에 대한 나약만 면모도 있었다. 그리고 진정 산자의 길을 걷는다고 말할 순 없어도, 최대치의 스피드를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명확하게 말할 순 없다. 나도 좀 의심이 되니까. 겐지는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확연하다. 마마보이와 외디푸스 콤플렉스.... 나약하고 자립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는 싫어한다. 여자, 여자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여자를 경멸하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것을 난 에세이를 읽기 전까지는 몰랐다. 읽은 사람들의 글을 통해 들은 적은 있었기에 그렇게 당황하지는 않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는 무시하다 못해 경멸해 마지 않는다. 소녀취미를 가진 아버지의 문학을, 장남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어머니를. 아버지가 사망하자 자신도 아버지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잠깐 반문하기도 한다. 인간 겐지는 너무 냉철한 것이 아닌가. 너무 오만한 것인가. 아니면 너무 우월한 존재인가. 그는 진정 자립과 자유를 꿈꾸고, 어떤 권력이나 힘에 의해 자신이 침해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런 그도 방랑기일 때 돈 때문에 광고에 출현했다는 고백에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도 인간인 게다. 이럴 때 난 왜 기뻤던 걸까?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그의 풍모와 칼 같은 매서운 문장들이 가지는 완벽주의에서 그런 것을 건졌으니 어찌 아니 웃을 수 있겠는가? 나는 아마 그가 좋아하고 기대하는 독자는 아닐게다. 그의 기대치는 얼마나 높은가. 그러나 겐지니까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이겠지..... 이 책을 읽고 그렇게 좋았다고는 말할 순 없지만 여전히 겐지가 좋다. 새로운 작품이 번역된다면 당연히 사볼 것이다. 그가 칭송해 마지 않는 '백경','기병이야기'를 능가하는 소설을 써서 기대하는 독자에게 찾아왔으면 좋겠다. |
| '산자의 길'은 이미지를 써나가는 작가로 알려진 마루야마 겐지의 자전전 에세이다. '산자의 길'은 내가 참된 산자가 아니라고 끝없이 이야기한다. 그래서 불편하다. 에세이를 쓴것이 작가가 또다시 돈들어가는 취미가 생긴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분명 그에게 나같은 자는 정지한 자이고 죽은자이다. 어찌보면 우리 모두는 죽어있다고 말하는 듯 하다. 권위에 머리숙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혼자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눈치를 보고, 그런 것을 거부해서 치뤄야 할 대가를 너무 두려워하는 나는 분명 그에게 한심한 인간일 것이다. 가족에게조차 '아니오'라고 하는 그에게 그의 소설을 읽고 나서 느낀 경이감을 넘어 두려움마저 느끼게 한다. 물론 확신에 찬 발언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현실과 타협했고, 스스로를 정당화하기도 했다. 이런 정당화는 조금 뻔뻔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한 그리고 문학에 대한 그의 자세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불편한만큼 움직이라고 재촉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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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의 이야기엔 유독 여성비하적인 발언이 많더군요. 여성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여성적인 것'에 대한 격렬한 혐오가 잔뜩 뭍어 납니다. 선 굵게 진실로 육박해들어가는 강한 역동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니 소위 여성적인 것이라고 불리우는 것, 즉 주변부를 어슬렁거리며 미사여구에 빠져드는 꼴이 싫다이거지요. 거기에 집단적 삶에서 부산되는 위선과 허식도 거부하지요. 아직 그의 작품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창작에 있어서의 근기는 아주 투철한 작가인 듯 합니다. 문학애호가 집안의 독특한 분위기에서 그 분위기를 역겨워하다 못해 깔보던 그가 아쿠타가와상이란 엄청난 상을 받고 도리어 스스로가 문학인으로 변신하게 되다니...
참 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내...내... 후기를 쓰신 이문재 시인의 말대로 압도적이고 압도적이군요. 나름대로 즐거운, 주먹에 힘이 들어가게 만든 만남이었습니다. 아참 겐지는 (실명을 거론하지 않지만) 자살한 미시마 유키오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자살을 자기 기만적인 엽기적 희극 쯤으로 치부하고 있는 듯 한데 제가 보기엔 겐지 마저도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되네요. [인상깊은구절] 그토록 경멸했던 문학이, 막상 스스로 써보니 좀체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았다. 여기서 손을 빼다가는 이제는 문학 쪽이 나를 경멸할 차례였다. 어렵다는 사실이 도리어 나를 자극했다. 투지가 불타올랐다. 싸움하는 자세로 소설의 집필을 시작한 사람 따위는 모르긴 해도 나 정도에 지나지 않으리라. ....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 소설을 자기 자신이 도취되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읽히기 위한 소설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없었던 타입의 소설을 남에게 읽혀 감동을 주고 싶다는 자각이 당초부터 있었다. 직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었더라면 소설을 쓰려고는 마음먹지 않았으리라. 다른 일로 밥벌이를 하면서 창작활동을 벌인다는 생각은 전혀 품고 있지 않았다. |
| <산 자의="" 길="">은 소설가로서 살아가야 할 자세에 대해, 별난 소설가로 알려진 마루야마 겐지가 에세이 형식으로 쓴 글이다. 과연 그가 어떤 점에서 별난지는 내가 일본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닌지라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이들이 한결같이 마루야마 겐지의 자세에 대해 공감하고 부러워하고 더러 자성했기에 적지 않은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결론은? 글쎄, 시종 글에서 그가 견제하고 비난하고 있는 것은 소설가입네, 하고 살아가는 이들의 허세에 대해서였지만, 그렇지만 결국은 그 또한 그가 비난하고 있는 이들이 걸었던 길과 일부 같은 길을 걸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가 소설가로서만 살 수 있었던 데에는 소설만으로도 먹고살기가 가능했던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신이 주신 선물과 노력이니 뭐라 할 수 없지만)과 소설의 시대에 태어나서 살 수 있었던 운까지 더해서 생각하면, 그의 글이 그다지 감동적으로 읽히지는 않는다. 하기야 이러한 무감동은 소설을 읽지 못하고 에세이로 우선 그를 만난 까닭일 수도 있겠으나, 어쨌거나 이런 식으로 소설가의 자세, 운운한 교훈적 에세이를 쓰지 않고도 삶으로 소설로 생존을 견디는 우리의 공선옥이 내게는 훨씬 더 감동적이다.산> |